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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22 20:03:50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장평, 원귀의 땅
장평대전 자체에 대해서 제가 평가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조괄이 진나라 첩자질을 해도 저정도로 조나라를 초토화 시킬수 없었을 것이다.

장평대전 전에 파견된 사람은 다름아닌 염파였습니다. 그리고 염파는 최대한 전쟁을 장기전에 수비로 일관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실 진나라가 압도적으로 우세에 서 있던 상황은 영정, 즉 진시황이 즉위한 후 정국거를 통해 황하와 위수 일대를 개발한 이후이고, 당시 파와 촉땅을 집어먹었어도 삼진(조,위,한)의 힘은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따라서 염파는 진군과 일체 정면으로 맞붙지 않고 지구전으로 상대의 전력을 고갈시키는 방법을 썼습니다. 조는 외교로는 인상여, 군사적으로는 염파 등의 인재 포진 덕분에 진의 수차례 책략과 공격을 막아냈죠.

잘 아시다시피 전쟁에서 일관된 수비전략은 지휘관이 빛날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전투에 승전하는 지휘관이 빛이 많이 나죠. 거기에 당시 자신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인상여, 조사가 사망하면서 염파는 조정 내에서 방패막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곽개가 난리를 침에도 염파를 비호해 줄 수 없었죠. 거기다가 인상여와의 일화에서 보듯 염파 자신은 자신의 전공에 관해서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고, 자존심도 상당했습니다. 이런사람들은 적이 많기 마련입니다.

염파는 진의 약점이 엄청나게 긴 진의 보급선이라 봤고 각 지역의 지형과 성채에 의존해 일체 대응하지 않고 진군의 보급선을 기습하거나 유격부대를 통해 적진 교란등의 방식으로 무시할수 없는 출혈을 진군에게 강요하고 있었죠. 그런데 여기서 곽개가 날뛰고 조괄로 책임자가 교체되면서 망트리를 타기 시작합니다.

조괄은 염파가 구축한 방어를 중심으로 하면서 적에게 기습과 유격전을 통해 출혈을 강요하는 방식을 버리고 적과이 전면전을 통해 적을 격파한다는 작전으로 전쟁 양상을 바꿉니다. 그런데 이건 당시 진군 총사령관이었던 백기가 원하던 방식이었습니다.

조괄에 대해서 당시 중병에 걸려 생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상경 인상여, 조괄의 어머니이자 조사의 아내까지도 그를 염파를 대신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죠. 뭐 조효성왕은 그 말 안들었다가 어떤 꼴 당했는지는 잘 아실테고..

장평에서의 대학살에 관해서 말할때 백기를 상당히 깝니다. 사기 등에서도 보면 백기가 자살할때 "장평에서 40만의 목숨을 한번에 땅에 파묻었으니 천벌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죠.

그러나 좀 다르게 보겠습니다. 엔하에서는 노예시장 같은 제도가 없다고 하지만 이전부터 전쟁 포로들이 노비 또는 노예가 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백기는 이들을 전부 노비, 혹은 노예화를 하지 않고 생매장 한 것일까요?

전 두가지 이유로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다들 잘 아시는 대로 40만 포로들을 먹일 양식 문제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두번째 이유는 이 40만 포로들을 진이나 기타 나라에 노예로 팔아치웠을 때의 이후 문제입니다.

자 이들을 진나라 내로 분산 이주 시켰을 경우에도 40만이라는 인원수는  엄청난 위험수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민간 이동 파악이 확실하다면 모르지만 고대 국가는 이러한 체계가 상당히 약합니다. 그런데 이 조나라 포로들이 일제히, 혹은 순차적으로 반란이 일어난다면? 이건 정말 진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40만의 인원이라면 파나 촉의 농토를 경작하거나 혹은 물자 이동 등에 동원할 인력을 확보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이 인원들이 멀쩡하게 진의 통치를 받아들인다는 보장이 없죠.

결국 백기는 이들을 몽땅 장평에다가 산채로 파묻어버립니다.

글쎄요. 40만이나 되는 인원이 장평 들판에서 파묻혀 원귀가 된 사건은 백기에게도 큰 사건이 됩니다. 그러나 조 입장에서는 이 일로 인해 국력을 완전히 까먹어버리고, 주변국은 이러한 진의 행동에 심각한 공포를 느끼게 되죠. 장평대전은 결국 진이 전국 6국 중 최강자의 위치를 확인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40만의 조나라 사람들이 쏟아지는 흙더미를 피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흙벽을 타고 오르는 조군 포로들을 밀어내기 위해 진군은 칼 창 등으로 이들을 흙구덩이로 던져버렸을 겁니다. 진 입장에서는 어차피 파묻어 버릴건데 찔러죽이나 파묻어 죽이는 거나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마구 행동했을 테죠.

사실 역사 공부하다보면 이런일을 보게 되는데...정사 기록은 이런일은 상당부분 상당히 짧게 쓰고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이 상황을 추리하려면 단 하나....상상력을 발휘해야 하죠. 하지만 이런 일에 관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은 상당히 괴로운 일입니다. 가끔 이런 글 쓸때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거든요..

언젠가 장평대전 이야기 하려했는데 티라노님이 써주셔서 이건 스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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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엔
13/03/22 20:20
수정 아이콘
사실 백기라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한 게,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가르는 큰 기준 중 하나가 전쟁에 임하는 태도의 차이랄까 수행 방식의 차이였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진나라는 전국칠웅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섬멸전을 펼쳤고(솔직히 뒤가 걱정이 없으니까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고), 백기는 개중에서도 가장 섬멸전 교리를 신봉했던 장수죠. 그러니 40만을 4000명 파묻듯 했다고 봅니다.
루크레티아
13/03/22 20:49
수정 아이콘
뭘 하든 사후관리가 가장 어려운 법이죠.
진나라 입장에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깔끔한 방법이었겠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참혹한 반인륜적 범죄로 손 꼽을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하니 참...
.Fantasystar.
13/03/22 20:57
수정 아이콘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혹시나 이 전쟁에서 염파가 끝까지 지휘관으로 남아서 진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면....
진의 천하통일은 굉장히 먼 이야기 혹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됬을수도 있지 않을까요?
레지엔
13/03/22 21:09
수정 아이콘
삼진의 몰락이 궁극적으로 진의 폭주를 못막은거니까 꽤 길어지긴 했을 겁니다. 뭐 장평 이후에도 이목같은 사람이 있어서 통일이 늦어진 걸 생각하면 결국 같은 시기에 됐을지도 모르지만요.
13/03/22 21:18
수정 아이콘
역사의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일부는 뇌물이 지배합니다. 크크크크크크..
진짜 뒷골 많이 잡죠.. ;

진을 이겼다면 하는 가정이라도 그 시기가 한~참 늦어졌다는것에는 레지엔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백기가 승리하지 못했으면 다시 육국이 진에 대항하는 구도가 나올수도 있었으니까요.
레지엔
13/03/22 21:25
수정 아이콘
어 저는 의외로 대세에 지장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견도 제시했습...
안산드레아스
13/03/22 21:38
수정 아이콘
결국 시간문제..
진이 통일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낭만토스
13/03/22 23:00
수정 아이콘
백기도 대단하네요
이듬해인 기원전 293년에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해 이궐 전투에서 승리, 24만 명을 잡아 죽이고
기원전 275년에 한나라·위나라·조나라 연합군과 싸워 13만 명을 잡아 죽였다
조나라 장수 가언(賈偃)과 싸워 그 휘하 병졸 2만 명을 황하에 빠뜨려 죽였다
기원전 265년에 한나라 형성(陘城)을 공격해 5개 성을 함락시키고 5만 명을 잡아 죽였다
기원전 260년에 장평 대전에서 조나라와 정면충돌, 조괄이 이끄는 조나라 군대를 대파시켰다. 이때 40만 명이나 되는 포로들을 먹여살릴 식량이 없어서 소년병 240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조리 생매장해 죽였다.

사기에 나온 내용만 해도 -_- 몇만은 우습네요

근데 이런 엄청난(?) 장수가 재상이랑 틀어져서 왕이 죽으랬다고 그냥 자결하나요?
하긴 너무 죽여놔서 망명도 못할듯
깃털티라노
13/03/22 23:15
수정 아이콘
백기의 죽음은 너무 엄청난 공을 세운그의 진 군부에 대한 영향력때문이라고 합니다.
진소양왕은 50년여년간 재위한 그것도 산전수전
온갖 세상의 쓴맛을 다본 임금으로써 자신의 사후
오랫동안 태자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자기보다 먼저죽고 갑작스레
태자로 임명된 아들 효문왕이 과연 백기를 제어할수 있을까 우려해
제거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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