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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02 23:24:05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하느님의 나라 ⑥ 환상
1840년에 있었던 아편전쟁은 청 왕조의 무력성을 완벽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마약인 아편을 만들어 판다는 것 자체도 상당히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고, 실제로 영국 내에 자각이 있던 사람들은 아편전쟁의 부당성을 이야기 하곤 했죠.

뭐 어쨌든 아편전쟁은 다룰 일이 있을테니 이만 줄여두죠. 아편전쟁은 그나마도 남아있던 청의 자존심, 아니 중국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짓밟힌 사건이었습니다. 청의 정규군이 영국군에 의해 연전연패 하는 와중에, 한족이 주축이된 자치방어대나 농민들은 영국군과 맞서 싸워 승리하기도 했죠. 중국에서는 특히 삼원리에서 있었던 영국군에 대한 삼원리 주민들의 투쟁을 '삼원리 항영투쟁'이라면서 추켜세우지만 실제로 대부분 극소수의 영국군을 주민들이 쇠스랑 같은 농기구로 공격했습니다. 당연히 영국군이 다치거나 혹은 도망가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주민들의 피해도 컸죠. 삼원리 항영투쟁은 1841년 5월 30일에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영국군은 광주를 함락시킨 이후 이 일대에서 살인, 방화, 강간등을 저지릅니다. 그 와중에 있던 삼원리 지역의 농민들은 영국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칼과 농기구로 무장한채 기다리고 있다가 영국군이 나타나자 기습하죠. 당시 이들을 막아야 할 청의 관군은 영국군이 나타나자 도망간 상태였고, 당연히 농민들은 자위조직을 만들게 됩니다. 삼원리 인근의 자위조직을 규합한 농민들은 수백명의 영국군 병력을 공격하고, 영국군 소령 하나를 찔러 죽입니다. 거기다 세차게 비가 내려 영국군의 소총은 쓸수 없는 상황이었죠. 영국군은 궁지에 몰리자 청 관리들을 협박하고, 이 협박에 굴복한 관리들은 농민들에게 가서 다시 그 농민들을 협박하죠.

"포위를 풀고 영국군을 보내줘라. 이 명령을 거부하면 네놈들에게 각기 수십만냥의 벌금을 매기겠다."

궁핍하던 농민들이 수십만냥의 벌금을 납부할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포위를 풀고 이들을 돌려보내죠.

일반 민중들이 오히려 용감하게 맞서 싸운반면, 청군은 도망가거나 혹은 삼원리처럼 한족 백성들을 협박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절강성 진강현의 팔기주방으로 있던 성수위는 일부 한족들이 영국군과 내통했다고 죄를 씌워 수천의 한족 백성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청 조정은 위신이 심하게 떨어지게 되죠. 거기다 난징조약으로 체결된 1800만 달러의 배상금은 재정파탄이 심각했던 청나라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거기에 광저우, 샤먼, 푸저우, 닝보, 상하이의 개항과 홍콩 할양등으로 기존의 운하 운송로 대신 양자강과 기타 해안 지역이 운송 루트로 변했으며, 아편을 비롯한 고가의 물품이 중국 국내로 들어오면서 국내 경제 여건이 붕괴하게 됩니다. 거기다가 배상금 지급 문제와 재정 악화로 인해 농민을 비롯한 일반 민중들의 세부담이 크게 증가되면서 청에 대한 반감이 심하게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거기다 여기에 강희,옹정,건륭 시기의 활황~호황기에 늘어난 인구는 19세기 중엽에는 무려 4억명에 육박했지만 농업생산력은 오히려 줄어들기 시작했죠. 특히 광서성 일대는 유민들의 인구 이동의 종착지가 됩니다.

청조의 권위가 실추되기 시작하자 호남성과 양자강 유역에서는 명 말처럼 소작료 납부와 조세 납부를 거부하는 항조항량 운동이 거세게 일어납니다. 이 와중에서 광서성 일대에서는 선주민과 이주민&유민들간의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특히 이주민과 유민들은 이른바 객가(客家)라고 불리던 이들이었습니다. 객가들은 강남 지방에 살던 한족 들 중, 이주민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 객가들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영가의 난을 피해 내려온 화북의 한족들이 시작이라는 주장과 남송 시기에 광동이나 복건으로 이주해온 화북 출신 사람들을 이르는 주장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후자의 것을 정론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영가의 난을 피해 내려왔던 동진 원제 사마예가 처음 동진을 세웠을때 명성이 낮고 북에서 왔다는 이유로 강남호족이 그에게 전혀 협력하지 않았고, 사마예는 그를 강남으로 오도록 권한 왕도에게 같이 황제에 올라달라고 할 정도였죠. 광서성의 주민들은 세 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산악지대에 살던 광서성의 토착민과 당송시대에 이주해온 본지민, 그리고 17~8세기에 이주한 객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객가들은 본지, 토착민들과 분리된 생활습관을 고수하면서 전족등을 거부했고, 언어도 본지인이나 토착민들이 쓰던 광서방언이나 광둥어와는 다른 베이징 방언과 가까운 객가어라는 언어를 고수했죠. 객가인들은 배타적인 성향을 지녔고, 경제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본지, 토착민들과 토지를 두고 큰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객가인들은 서로 단결하면서 자위 조직들을 만들면서 자신들만의 조직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런 시기인 1813~14년 경 광동성 화현에서 홍인곤이라는 사람이 태어납니다. 바로 태평천국의 천왕, 홍수전이었습니다. 홍수전의 집안은 원래 광동 가응주에서 살다가 화현으로 이주해온 객가 출신이었습니다. 홍수전은 막내아들로서 그의 집안은 한미한 집안이었습니다. 그의 집이 매우 빈곤한 집안이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그의 집안은 두마리의 소를 보유할 정도의 자경농 집안이라 관료로 입신양명하려는 그를 집안에서 지원해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1827년 홍수전은 처음으로 과거시험에 응시하지만 1차 시험인 초시에도 합격하지 못합니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조선에서의 과거시험에서도 수차례 떨어져 머리가 희게 세었어도 진사시험을 보던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중국의 과거 시험의 경쟁률은 심각할 정도였고 따라서 홍수전이 과거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놀랍지도 아니었습니다. 홍수전은 4번이나 과거에 응시했지만 매번 낙방했고, 그는 과거를 주관하는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낙방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성의 중심지역인 광저우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1836년 2차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광저우로 온 홍수전은 우연히 양아발이라는 중국 최초의 목사가 지은 기독교 교리서인 권세양언을 얻게 됩니다. 당시 홍수전은 권세양언을 얻었지만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서가에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1837년 3번째 과거에 실패하자 충격으로 인해 그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환상을 보게 되었고 1842년 4번째 시험에 응시하지만 또 낙방합니다. 결국 홍수전은 결국 서당의 교사가 되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도중, 그는 권세양언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가 1837년 3번째 과거에서 실패한 이후 정신착란을 일으켜 본 환상과 비슷한 구절을 보게 됩니다. 홍수전은 환상에서 흑의금발의 노인을 만났고, 그 노인은 사악한 악귀를 퇴치하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검과 인장을 주었고, 옆에 있던 중년인에게 몇가지 조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수전은 권세양언에 포함된 성서 교리를 통해 흑의금발의 노인은 하느님, 중년인은 예수라 판단하고 자신은 하느님의 둘째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이라 판단합니다. 거기에 권세양언에 있는 일부 교리를 자신의 환상에 짜맞추면서 스스로 세례를 올리고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린 후, 친척과 친구들에게 자신이 만든 교리를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제자인 풍운산과 동생인 홍인간 등에게 전도하며 세례를 주었고, 1844년 홍수전은 자신이 교사로 있던 서당에 있는 공자의 위패를 부숴버립니다. 우상 숭배라는 이유로 이것을 부숴버린 것이죠. 결국 홍수전은 동료들에 의해 일하고 있던 서당과 향교에서 쫓겨났고, 결국 광서성으로 설교한다는 목적으로 도피에 가까운 선교를 떠납니다. 이 와중에 독실한 신자가 된 풍운산은 홍수전의 교리를 바탕으로 그 종교를 신봉하는 배상제회라는 교단을 만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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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3/03/03 00:10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하군요. 잘 읽고 있습니다!
진리는나의빛
13/03/04 07:42
수정 아이콘
잘 읽고 있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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