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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15 16:52:21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하느님의 나라 ⑨ 신의 군대
1851년 3월 영안 인근의 산성에서 출진한 태평군은 영안 전 지역을 석권하는데 성공합니다. 영안은 사천 지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었죠. 광서와 영안을 차지했다는 것은 이후 호북과 광주 등으로 동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호북은 백련교의 난으로 인해, 광주는 대대로 청과 반목해오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영안 함락은 말 그대로 청 입장에서는 1급 경계태세였습니다. 그리고 영안 지역을 함락하자, 바로 직접적인 국가체제를 갖추게 됩니다.

천왕에 오른 홍수전은 상제회의 주요 인사들을 요직에 배치합니다. 양수청을 동왕으로, 매제였던 소조귀는 서왕, 상제회의 창립자이자 관리자로서 태평천국의 기반을 마련했던 풍운산을 남왕으로, 위창휘를 북왕으로, 석달개를 익왕으로 봉합니다. 또한 영안을 함락한 이후 성고(聖庫)제도를 시행하죠. 성고는 개인의 사유재산은 물론이고 청군이나 향용 등 적대세력과 싸워 얻은 전리품도 보관하는 창고였습니다. 즉, 사유재산 뿐만 아니라 전리품을 성고에 보관해 공유함으로서 전리품 분배의 분쟁을 줄이고 태평군의 단결을 꾀하도록 한 것이죠. 이 성고제도는 이후 천조천무제라는 제도로 발전하죠. 태평군은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까지도 군대에 편입시켜 병력이 5만에 달했습니다. 거기에 1852년 2월에는 독자적인 달력인 천력 반포와 12간지의 문자 변경을 가하죠. 동왕 양수청과 서왕 소조귀가 같이 발표한 3매의 격문은 각기 봉천주요격,  유구세인격, 봉천토호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각기 봉건질서의 공격,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적 혁명론, 사회성격과 민족 성격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청조는 청조대로 광서 반란과 영안 함락의 소식을 듣자 새상아에게 흠차대신 직을 주어 태평군 토벌을 명령합니다. 1851년 11월, 새상아는 각 지역의 군영 병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합니다. 새상아는 장군  영통에게 영안 북쪽의 통로를 봉쇄해 북진하지 못하도록 하고, 오란태에게는 남로를 통해 광서의 상제회의 원군을 차단하게 합니다. 그리고 영안 방어의 중심인 영안 고성을 포위하게 하죠. 고성에 포위된 태평군은 원군의 도착을 기다리며 버티지만 군량마저 떨어져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견디지 못한 태평군은 다음해 2월 말, 남로의 포위망을 공격합니다. 이 지역을 지키고 있던 오란태는 병력을 이끌고 태평군을 추격, 후미를 공격합니다. 이 전투로 인해 태평군은 천덕, 흥대왕이라는 간부급 장수 둘과 2백의 전사자를 냈지만 마침 큰 비바람을 이용해 탈출해 태평군 본대와 합류합니다. 청군은 이러한 비바람으로 인해 보급로와 진군로가 열악해지기 시작하죠.

태평군은 본대를 진격시켜 총병장으로 있던 서장수, 동광갑, 추학령을 패사시키고 계림현 지역으로 나아갑니다. 영안 고성 남로에서 대패한 오란태는 군사를 재정비 태평군 본대를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태평군은 계림현 인근 육당허 지역에서 추격해오던 오란태 군을 포위하고 반격을 가합니다. 결국 이 전투에서 오란태는 대패하고 전사하죠.

태평군은 3로로 나누어 계림성을 포위하고 공세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계림의 청군을 지원하기 위해 장군 향영과 호남순무 추명학은 서로 합세해 계림의 방어전을 지원합니다. 이러한 지원에 계림 공략에 난항을 겪던 홍수전은 전세를 재정비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던 중 호남 수수현의 지현인 강충원이 향용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자 전군을 퇴각, 재편성해 호남성으로 나아갑니다. 호남성은 백련교 잔당과 청에 반발하던 항조항량 세력이 포진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기로 가서 반청세력과 연합하겠다는 의미였죠. 태평군은 흥안에서 전주 지역으로 나아가 호남성 경계에 이릅니다. 호남성 경계에 이르렀던 태평군은 장강을 타고 내려가 광서와 연계하기 위해 장사 공략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때 기록에 보면 태평군은 장사를 공략하기 위해 수천의 병선을 띄워 진격하기 시작했다고 하죠.

이러한 태평군의 진격이 알려지자, 향용을 이끌고 있던 수수현 지현 강창원은 서둘로 장사지역으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강창원은 일단 장강에 목재들을 띄워 태평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한편 장사 인근의 방어거점의 방어태세를 갖추게 합니다.


영안 역공과 장사 공략에 나선 사령관은 남왕 풍운산이었습니다. 태평군을 이끌고 영안 고성과 영안 공략, 그리고 포위망 돌파를 성공적으로 지휘했던 풍운산은 장사와 전주 공략에 전력을 집중하기로 하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던 상황이었죠. 강충원이 이끄는 향용은 태평군이 선박으로 남하할때 기다렸다가 이를 기습합니다. 향용군과 태평군의 싸움은 2일 간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이틀간의 전투는 매우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의 승자는 강충원이 이끄는 향용군이었습니다. 전투가 극으로 치닫던 와중, 사령관인 남왕 풍운산이 전사한 것이죠. 사령관인 풍운산이 전사하자 태평군은 장사 공략을 포기하고 전장에서 퇴각합니다. 그리고 장사가 아닌 인근의 도주로 진격 방향을 바꿉니다. 도주의 방어책임자인 도주제독 서만청은 도주성을 버리고 도망가고, 태평군은 도주를 함락하죠. 이때가 1852년 5월(함풍 2년)이었습니다. 장사를 지원하기 위해 군량과 보급품이 집결해있던 도주가 태평군에 넘어가자 장사의 청군은 크게 곤란을 겪습니다. 거기다 토벌군의 보급이 곤란해지자 흠차대신 새상아가 이끈 토벌군 본대는 꼼짝할 수가 없었죠.

도주를 함락한 홍수전은 태평천국의 군관민 전부에게 축발을 명령합니다. 청의 변발을 거부하는 의미로 머리를 기르는 것이었죠. 도주 함락으로 자신감을 얻은 홍수전은 진격 명령을 내립니다. 6월 태평군은 2개 군으로 나누어 강화, 영명 회화, 남산을 점령하고 7월에는 청군에게 넘어갔던 계양과 참주를 탈환하는 동시에 안인과 예주를 손에 넣어 강을 가운데 두고 장사에 근접합니다.

수만 세력으로 성장한 태평군 앞에 선 장사성의 병력은 8백의 장교와 8천 병력밖에 없었습니다. 장사를 지키던 제독 포기표는 병사들의 사기를 크게 돋우고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을 결의합니다. 또한 태평군의 공격에 대비해 성을 수리하고 내부 민심을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인근의 우군들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도주가 넘어가고 장사가 위협되는 상황에서 토벌군의 사령관인 흠차대신 새상아는 군사를 독전하기만 할뿐 직접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순무로 있던 장량기는 포기표의 구원 요청에 영향에서 주둔하다가 바로 장사로 달려갈 준비를 했고, 총병으로 있던 화춘, 상선, 덕량 등의 장군들은 태평군을 매번 격파하던 상승장군인 강충원과 그 아래 향용들과 연합해 장사 근교로 나아가 태평군을 요격하기로 합니다.

태평군은 태평군 나름대로 장사 공략을 위해 최정예 인원을 편성합니다. 서왕 소조귀는 휘하의 이개방, 임봉상과 함께 1천의 결사대를 구성해 장사 인근의 안인, 유현, 예릉을 함락시키고 장사의 청군이 아군과 연계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강행군이 이어진 7월28일, 소조귀 군은 장사의 남문 앞에 진을 치고 장사 공격을 준비합니다.

소극적인 새상아의 활동에 격노한 함풍제는 흠차대신으로 있던 새상아를 비롯해 정유채 등의 지휘부를 파면하고 새 흠차대신으로 서광진을 파견하고 향영을 부장으로 삼습니다. 향영은 그간 태평군이 두려워 병을 핑계로 4월부터 움직이질 않고 계림에서 눈치만 보다가 새상아가 파면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울며 겨자먹기로 장사로 들어갑니다. 새로 온 순무 장기량 역시도 장사성으로 합류하죠.

청군의 지원군이 속속 도착하자 장사성의 사기는 크게 오릅니다. 지원군이 오기 전에 성을 함락해야했던 소조귀는 점차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공략을 서두르면서 무리하게 성을 들이치기 위해 선두에 나선 소조귀는 청군의 공격에 전사합니다.홍수전은 풍운산과 소조귀의 전사소식을 듣자 직접 친정을 나서면서 참주를 버리고 장사 공략에 나섭니다. 그리고 폭약을 동원해 성벽을 무너뜨리려했지만 장사의 청군이 발빠르게 대응하는 덕분에 장사는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풍운산과 소조귀가 전사함으로서 태평군은 군사적으로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이 둘의 사망은 나중에 태평천국의 앞날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게 됩니다.

청은 청대로 홍수전의 반란이 백련교의 난 처럼 장기간에 걸쳐 파급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광주를 비롯한 양주와 남경 일대는 과거부터 명의 근거지였고 거기에 이 지역은 대대로 청에게 반기를 들던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에 있는 반청세력과 태평천국이 결합하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했습니다. 이 생각은 홍수전 역시도 똑같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홍수전은 동진에 착수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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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15 23:36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
13/03/16 21:5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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