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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9 20:58
읽을 때는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재미를, 덮고 난 후에는 계속 곱씹게 하는 기회를 주는 작품이 좋은 작품 같습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성, 위화의 인생, 엔도 슈사쿠의 침묵 등이 생각나네요. 어쨌든 선후는 재미가 먼저, 통찰이 나중이므로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저는 재미가 그나마 우선한다고 보네요.
22/06/19 22:18
저는 소설의 최고 장점을 묘사의 한계가 없다는 점으로 치고, 이 부분은 다른 매체가 대체하기 힘든 압도적인 장점이라고 보기 때문에 소설을 읽습니다. 다른 매체(특히, 시각적 매체)의 경우 만든이의 의도가 반영되는 정도가 굉장히 높은 장점이 있는 반면에 만드는 비용이 매우 크기 때문에 묘사에 제약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죠. 반면 순수한 글은 의도의 반영도는 좀 떨어질지라도, 표현에 한계가 없고 독자 개개인의 상상으로 묘사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도 좋게 봅니다. 그런 부분에서 다른 매체들과 다른 재미가 있다고 보고요.
22/06/19 23:05
재미는 필요없는데 지금껏 알려져 있지 않았던 정보를 원한다면 논문 보면 됩니다. 재미는 필요없는데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면 전공서적 보면 됩니다.
짧고 간결하고 데이터 정리까지 잘 돼 있는 걸 놔두고 문장으로 엮인 긴 이야기를 본다는 건 거기서밖에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저는 그 무언가가 문장과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오는 재미가 문학을 읽게 합니다.
22/06/19 23:29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는 책에서 언급한 문학의 의의가 기억에 남습니다. 문학이란 특정 심리적 효과를 유발하는 고도의 장치(테크놀로지)라는 것. 10대 때는 문학이 막연하게 글이라는 수단을 통한 주제의식의 전달이라고 생각했고 20대 때는 텍스트가 줄 수 있는 고유의 즐거움을 반영하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즐거움의 강렬함, 효율성(시간, 비용)이 다른 매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곰곰이 경험을 떠올려보니 아직은 글이 주는 효과를 대체하기는 멀지 않았나는 생각이 듭니다.
22/06/20 00:45
작가의 독특한 고민을 일반독자가 이해가능한 수준으로 납득시킬 때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소설이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했어요. 독특한 고민이 경제적 난관을 만나면 러시아 문호가 되는 거 같고요. 독특함을 모두 담아내기에 영상은 (아직?) 한계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22/06/20 01:49
소설은 감상하면서 여유있게 곱씹고 생각할 수 있죠. 소설을 읽는 다는 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나 사물을 어떤 매체보다 더 깊숙이 이해하는 과정이고 인간이 상상력을 극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저는 고전부터 장르문학까지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인데 그래서 순문학 대중문학 가르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냥 다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순문학으로 분류되는 소설을 읽는다고 딱히 주제의식을 찾으며 공부하듯이 읽진 않습니다. 그런 게 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읽으면 재미가 떨어져서요. 소설 뒤에 적힌 평론도 전문가 의견이 아니라 남의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읽습니다. 순문학도 순문학만의 재미가 있어요. 시를 읽듯 조금 더 공들인 문장을 읽는 재미도 있고 깊은 통찰에 놀라기도 하고 좋은 작품을 감상했을 때 드는 정서적 만족감도 넓게 보면 재미의 일종이죠. 전 19세기의 유럽 대하소설을 가장 좋아하는데 사실 순간의 몰입감이나 재미는 오늘날 장르소설에 비하면 덜하거든요. 그런데 다 읽고 난 뒤의 만족감이나 재미 생각하면 제 취향에는 이것들만한 게 없어요. 읽을 때 넉넉한 시간과 다소 인내심이 필요하긴 하지만요. 결국, 게임할 때와 유튜브 볼 때 재미의 종류가 다르듯 어떤 종류의 문학이 재미없고 재미있다는 것도 선입견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취향의 문제인 것이고 굳이 평가하려면 대중성 정도로 평가할 순 있겠지요. 주제의식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학의 종류를 주제의식에 따라 가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롤리타에 대해 당시 평론가들이 교훈이나 주제에 대해서 물었는데 나보코프가 내 소설에는 그딴 것 없다고 일침한 적이 있다고 하죠. 주제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 아니긴 하지만요. 사실 문학은 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는 것인데 이걸 그냥 뭉뚱그려 주제라고 하는 건 작품을 너무 단순화하는 개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학을 학습할 때는 좋겠지만 소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감상에 독자의 영역이 크다는 건데 주제에만 집중을 하면 그 장점이 없어지는 거니까요. 아무튼 뭔가를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재미겠죠. 소설 읽기도 마찬가지고요. 재미는 취향의 영역이 큰데 이 취향도 재미있는 게 사람은 나이나 상황에 따라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느끼거든요. 이건 같은 작품을 시간 텀을 오래 두고 보면 확실히 느낍니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보는가도 의외로 영향이 크고요. 저는 감상을 인생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로 삼고 있는데 이 행위는 하면 할 수록 오묘한 점이 있어요. 지금 결론은 세상에 취향은 정말이지 아주 다양하다. 취향을 너무 강요하지 말고 내 취향을 과신하지 말자 입니다. 언제든지 변하는 게 취향이니까 폭넓은 감상을 하려고 합니다. 세상엔 좋은 게 정말 많더라구요. 평생 봐도 모자랄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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