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벌써 고향집으로 내려가신 지도 5년이 다되셨다.
아들 딸 자식들 모두 시집 장가 잘 보내고 삭막한 아파트에서 아버지와 그래도 재미나게 살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동안 우리 집에 계시다가 무슨 마음을 먹으셨는지 예전 외할머니 댁으로 돌아가신다고 한단다. 솔직히 이고 사는 것도 편치만은 않아 내심 안도하며 말렸지만 엄마는 내 진심을 알았는지 돌아가신단다.
“실은 내 거기 땅을 좀 사놨지. 가서 죽을 때까지 밭일이나 하며 살련다.”
그 말이 그대로 가 몇 주 후 주말에 엄마의 짐을 챙겨 온 가족이 바깥 바람도 좀 쐴 겸 다같이 나가기로 했다.
결혼 후 들러보지 못 했던 외가라 그런지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추억은 먼지에 켜켜이 쌓여있는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아이들을 풀어놓고 엄마와 아내를 먼저 들여보내 청소를 하게 한 후 짐을 내렸다. 가구를 해 드리려고 했지만 엄마가 부득불 우겨 조립하는 가구들을 가져갈 수 밖에 없었다.
“가구도 없이 어찌 사시려고….”
“늙은이 죽어가는 곳에 뭔 가구냐. 다 필요 없다.”
그래도 엄마를 모시고 살지 못한다는 게 찔려 이렇게나마 보상해드리고자 했지만 너무 우기셔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거 나마 들고 올 밖에.
집안을 대강 정리 하니 그래도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 대강 모냥새는 갖춰졌다. 거기에 몇 가지 가재도구를 놓고 나니 그럴듯하게 되더라.
“엄마, 수도랑 전기 예전에 연락해서 연결해 놨으니 사는데 불편함은 없네요. 그래도 불편한 거 있으면 전화해요. 다음에 올 때 가지고 올 게.”
그렇게 엄마는 고향에 살게 되셨다.
다음 날 출근하면서 엄마께 전화를 드리니 벌써부터 밭나갈 준비를 하신단다. 원래 6자매 시골 딸 부잣집 장녀로 태어나(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아들 낳으려다 그리 됐다더라. 그래서 장남인 내가 태어났을 때 외할머니가 그리도 좋아하셨다고 했다.) 손재주가 박하지마는 않은 양반이라 밭일이 어렵지는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시골로 가자마자 그리하실 줄은 몰랐다. 종자는 어디서 구했냐고 물었더니
“아직도 예전 동네 오빠네 아들이 여기 살더라. 그래서 얻어왔지.”라고 말씀하셔 기가 막히게 했다. 어머니가 그곳을 나와 산지도-명절마다 들르긴 했지만-어언 40여년인데 아직도 그렇게 시골은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신지도 몇 달, 일도 있고 아이들도 있기도 하여 매주 들르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틈틈이 들르다 어느 날 보니 엄마는 벌써 촌사람 다 되어 있으셨다. 머리에 수건 질끈 두르고 흙냄새 풍기며 밭에 계시더라. 엄마가 밥상을 차려 같이 밥을 먹고 있자니 예전 외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던 기억이 났다. 논밭을 돌보느라 항상 흙에 계서 명절 저녁 외할머니와 밥상머리에 앉아 있자면 나던 그런 흙냄새가 엄마한테 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시장에서 사가지고 오신건지 묶어놓은 개 몇 마리에게 시끄럽다고 타박하는 모습은 외할머니와 그리도 닮으신지.
그 해 가을, 추석 언저리하여 동생과 같이 찾아뵙기 전에 뭐 필요한 거 추석에 싸가지고 올까하여 찾아 갔더니 고추를 말리고 계셨다. 고추란 게 그냥 말린다고 능사가 아니라 여름 내 비오면 걷고 해 나면 다시 펴 말리고 뒤집고 다시 비오면 걷어가고 해야 하는지라 밭일 하시는 입장에선 쉬운 일만은 아닐 터인데 어머니는 밭에서 난 고추 절반을 그리 말리고 절반은 나와 동생을 준다고 따로 갈무리하고 계신 것이었다. 또 미리 말려 놓은 고추는 이미 빻아놓았는지 부엌 한쪽 푸대에 담아놓으셨다.
“어머니, 이 많은 걸 언제 다 해놓으셨데?”
“하다보면 다 돼.”
추석에 와 동생과 나누겠다는 걸 굳이 빻은 것과 생고추 한 봉다리씩을 쥐어주시며 얘기하시길 “슬기한텐 말하지 말구.”
오늘 집에 도착해서 보니 경비실 아저씨가 택배가 있다면 붙잡아 세웠다. 뭐 주문한 것도 없는데 뭔가 하고 살펴보았더니 엄마가 부치신 것이어서 조금 놀랬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몇 가지 채소와 함께 편지가 있었는데, 생전 편지라곤 반찬 뭐 있으니 챙겨 먹어라, 란 쪽지밖에 안 쓴 양반이라 신기해하며 찬찬히 읽기 시작하였다.
‘아들아, 잘 있느냐.
(중략)
…어느덧 그 이를 떠나 보낸지도 몇 년이 다 되있더라. 참으로 사람이 신기한 게 흙에 파묻혀 시간가면 시간 가는데로, 계절가면 계절가는 데로 살고 있지나 이리되더구나. 참 도시에 살 때는 아들이랍시고 있는 것이 막아줘서 며느리 괴롭히는 재미도 없어 하루하루 시간이 가지 않아 고생했으나 이곳에 와 순리대로 살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되는지. 참 그곳에선 속앓이도 많이 했지만 흙내음에 취해서 어느 정도는 잊혀지더구나. 어찌나 신기한지 나도 참 신기할 노릇이란다.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예전 친구들과 동네를 쏘이던 기억들도 나고 막내를 업어 키우던 기억도 나고. 어찌보면 이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싶다. 결국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지…
(후략)’
그렇게 편지를 읽고 있자니,
갑자기
흙냄새가
그리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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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 재탕이고 수필의 형식을 흉내낸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좋은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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