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작가는 삼국전투기 55편에서 손권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좋게 내렸는데 이걸 좀 반박해보겠습니다.
손권이 손책을 이어받았지만 힘이 약한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장소,주유의 이해관계로 연결되어있다? 이것은 좀 아닙니다.
손책이 아들이 없었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손책에게는 어리지만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손책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이해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면 손책의 명령은 얼마든지 무시할수 있는 일입니다. 거기에 장소가 먼저 손권을 지지했더라도, 주유가 이에 반대했다면 손권의 위치는 매우 불안, 아니 위치가 아닌 목숨이 달린일이었습니다.
장소의 경우 원래 서주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만 조조의 서주대학살을 피해 강남으로 내려온 사람이었습니다. 장소는 서주자사 도겸에 의해 무재로 추천받을 정도로 능력이 있었고, 손책이 장소를 장사, 무군중랑장으로 삼고 장소의 모친에게 절할 정도였지만 그의 능력에 반해 양주 지역에 가진 영향력은 일천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주유는 다릅니다. 주유의 당조부와 당숙은 태위를 지낸 명문가였죠. 거기에 고향인 여강군 서현에서 알아주는 호족집안이었죠. 실제로 손견이 반동탁연합군에 가담했을때 가족들을 서현으로 피난시켰는데 손책과 친해지면서 손견의 가족들에게 큰 저택을 주어 살게 하고 생필품을 대어주었습니다. 거기에 손책이 독립할 당시 가세하여 양주 평정에 큰 공을 세운 창업공신이었습니다.
주유의 경우 손책의 아들을 후계자로 올렸을때 어느 누구도 반발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여강의 대호족이고 창업공신. 그를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주유전에는 손책이 죽자 주유는 병사를 이끌고 조상하러 갔다가 오군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급변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만, 다른 쪽으로 보자면 손권 입장에서는 주유가 데려온 군사로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막을 여지가 없었습니다. 주유가 이끌던 군사들은 유훈과 형주의 군사들을 격파한 정예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유는 손권을 지지함으로서 그의 입지가 확고해졌습니다. 손권 입장에서는 이러한 주유의 행동이 정말 고마웠죠. 실제로 주유의 딸을 손등의 비로 맞아들였고 아들인 주순과 주윤은 종실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며 주윤이 죄를 지었음에도 끝까지 감싸다가 제갈근과 보즐이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음에도 감쌌고 주연과 전종까지 처벌을 주장하자 그제서야 처벌할 정도였죠. 거기에 주유는 마둔과 보둔에서 일어난 반손권 반란을 직접 진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형주 공방전 관련한 주장에서는 최훈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최훈 작가는 무언가를 잊고있으니 바로 익양대치 이후의 형주 분할을 잊고 있습니다. 강하 장사 계양을 오가 가지고 갔다는 점이죠. 하지만 이 지역을 잘 다스렸냐...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의 통치에 반발한 이민족을 제압하느라 노장인 황개까지 동원되는 등 이 지역에서 파열음이 심하게 났습니다. 거기에 기존에 오와 반목하던 산월 뿐만이 아니라 손권의 통치권역내에서도 반란에 도적들 그리고 백성들의 반란까지 마구 일어나서 하제가 진압에만 종사하게 되는 일도 일어났죠. 이는 내정이 안정되있던 촉이나 강과 선비같은 이민족과의 충돌만 있었던 위와는 사정이 매우 다릅니다.
거기에 그의 용인술은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주유 노숙 여몽 육손을 임명한 것으로만 용인술이 좋다고 하기에는 이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실질적으로는 손권이 직접 임명에 영향력을 줬던 사람은 여몽외에는 실질적으로는 없는 편입니다.
주유의 경우는 두말하면 입이 아프죠. 그렇기 때문에 노숙을 살펴보겠습니다.
노숙 자경. 연의에서의 제갈량에게 휘둘리는 문약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무관으로서의 재능도 있고 임회군 동성현의 대부호이자 대호족으로서 양주지역 내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손권에게 끌어들인 사람은 다름아닌 주유였습니다. 거기에 적벽대전에서 반조조친유비파로서 주전론의 선봉이었고 유비에게 오의 이익을 주장하는 문약한 선비가 아닌 행동파적 외교관이자 지휘관이기도 했습니다.
육손의 경우 역시 잘 아시니 패스하고...
하지만 여몽의 경우는 다릅니다. 여몽은 호족출신이 아니었고 그는 병사부터 시작해 대도독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가 어마어마한 성장을 하긴 했지만 제가 항상 말한
"십리를 보는 모사에는 적합하나 천리를 보는 책사로서의 능력은 없다."의 단적인 모델입니다.
형주 공격당시 위오동맹은 성사가 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이후의 북벌문제는 차지하고서라도 위오동맹이 맺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우 협공? 위의 상황이 급박했기에 망정이지 만일 대치상태가 됐다면 오히려 오나라가 더 위험했을 수도 있었죠. 워낙에 관우의 공포를 위나라가 너무 잘 알았고, 관우 공포증이 극심한 상황이었기에 위가 오를 역공할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죠.
여몽과 손권이 더 까이는 이유는 이들이 단순히 50보 조차도 보지 못하는것도 있습니다. 주유가 유비와 힘을 합쳤지만 유비가 남형주를 장악하자 유비와의 결혼동맹을 추진한 것, 노숙이 대유비 노선에 있어서 친유비파이긴 했지만 온건과 강경을 적절히 사용했다는 점은 이들이 단순한 전투나 전쟁만이 아닌 그 이후에 오가 취득할수 있는 이익 지분을 요구할수 있는 외교적 능력과 정치적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주유-노숙 노선을 회복하려던 육손과 많은 일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동맹관계 파탄내고 얻은 형주는 실리적인 이익이 있는 양양-남양-번성 라인은 얻지도 못했고 오히려 오의 통치에 반감이 가득한 남형주 지방의 친촉파 호족들과 오계만이들때문에 오가 망할때까지 이 지역은 계속 반란 진압에 골몰하게 됩니다. 남의 식탁 가로채려다가 오히려 식탁은 다른사람에게 뺏기고 자기는 썩은 구정물 마시고 배탈약만 계속 복용하는 격일까요.
어느분은 이것을 결과론적으로만 본것이 아니냐는 제기를 하실수도 있지만, 단순히 황개의 건만 보더라도 남형주에서의 반오감정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당장 유비가 복수전에 나서자 형주 전역이 유비에게 붙어버렸고, 남형주의 오계만이가 유비에게 붙지 못하기 위해 반준과 보즐을 보내 이들을 억제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오히려 근근히 지키기만 했다는 점을 보면 당시의 누가 봐도 실패한 전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손권의 평가는 손가의 쥐새끼, 즉 손제리의 평이 많습니다. 최훈 작가처럼 여러가지 면을 들어 쉴드를 쳐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분들의 평 역시 후반기에 이궁지변을 비롯한 일은 절대 쉴드 못친다죠. 하지만 그가 오를 이어받은 이후부터 행한 일들에 대해 찬찬히 뜯어보면 이런 일로 쉴드가 감옥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양주땅의 명사이자 인자로 유명해서 자기 형도 일체 건드리지 않은 성헌을 죽였다가 성헌을 따르던 규람과 대원이 손권의 동생 손익을 죽인일이나 11살에 당시에 유명한 유학자인 화흠을 관광하고 오군 지역에서 현인으로 유명한 심우를 연회자리에서 끌어내 모반혐의를 씌우고 한실 충성파라는 이유로 29살에 죽여버린 일도 있었고요 거기에 말년에는 자신이 사는 궁궐 내의 장악력마저 없어서 황후가 후궁을 죽이고 후궁과 궁녀가 황후를 살해하는 노골적인 궁중 암투마저도 못막는...
이궁지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많은사람들이 단순히 손권의 노망이라고 하지만 저같은경우는 이궁지변의 경우 손권이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노리고 조작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손등이 죽은 이후 손등에게 후계로 인정받았던 손화의 위치를 뒤흔들고, 거기에 오나라 내부를 두패로 갈라버리고 양쪽을 전부 박살내버린것이 단순히 노망이라고는 볼 수 없죠.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였던 임오화변도 당파와 정치적 문제가 결부되었던 것 만큼 이궁지변 역시 황제라고는 하나 단순히 이름만 황제지 실제적으로 오를 들여다보면 손권 역시도 호족, 아니 여전히 토착 대호족들이 힘을 지녔던 만큼 그것을 참지못했던 형 손책과 비슷한 생각이었겠죠. 그리고 그 결과는 황족의 힘이 키워진것도 아닌 제갈각-손준-손침으로 이어지는 권력자들의 출현과 그에 이은 손권의 아들들은 폐위당하고 죽어버리면서 황권은 땅에 떨어졌고 후계마저도 무시당한 뒤 멸망해버린 손오였습니다.
손권 중모. 수성의 대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절대 수성의 대가, 천재도 아니었고 인재보는 눈도 그닥이었으며 또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내는 것 역시 상당히 뒤떨어진 인물이었습니다.
암군이라고 평가받는 유선은 손권보다 덜떨어진 인물이었습니다만 촉의 네 재상이라고 불리는 제갈량, 장완, 비의, 동윤의 보좌를 받을 시기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손권의 평가는 더 떨어집니다. 사실 조비 역시도 상당히 악평가를 받을만도 합니다만 그 부작용이 조예의 요절로 인한 권력투쟁 문제로 벌어졌던걸 감안하면 2세대 이후에 터져나온 일이라 딱히 당장의 비판을 면할 정돈 됩니다.
조조가 말했던, 아들을 낳으면 손권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했는데....아무래도 저세상에서 조조가 이불킥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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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삼국지를 너무 멀리했네요. 제리타임이란 말에 손제리를 즉시 떠올리지 못하다니...
형주 무브는 참 근시안적이고 결과적으로 얻은 것도 없었다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애초부터 제 텃밭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남의 땅에 욕심부린 경우였었군요.; 여몽에 대한 평이나 이궁지변에 대한 글쓴분의 생각에도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 추천하고 갈게요. 저도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