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유독 근하신년이라는 말이 귀에 안 박히고 입에 잘 안 맴돌더니, 신년이 채 1/12도 지나지 않은 1월 중순, 부서 인원 두명이 동시에 장기 휴가를 제출했다. 한명은 와이프의 출산이 이유고, 한명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쉬고 싶단다. '아니 그냥 쉬고 싶다는것도 그렇게 쉽게 컨펌해줘요?' 하고 선배에게 묻자 그냥 쉬고 싶은 사람의 눈빛이 영원히 쉴 각오를 한 사람의 눈빛이었단다. '무슨 엄청난 개인사가 있나보지, 우리 일이 원래 사람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하는 일 아니겠어?' 라는 선배의 말에 '그래 뭐 둘 정도 빠진다고 별 일이야 있겠어, 정 안되면 인원보충이라도 해주겠지' 라며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어디까지나 초짜라서 가능한 생각이었으며, 일을 티나게 대단히 잘하는 편이 아니라 해도, 자기 몫은 묵묵히 해내던 사람 둘이 떠난 자리는 그렇게 쉽게 채워지는것이 아니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두달째 계속되는 잦은 철야속에 우리 부서원들은 모두 인원 충원 하나만을 바라고 있었고, 과장님이 어디 중앙 부처 회의라도 다녀오실때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새 사람의 소식을 기다리고는 했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들려온 결원 보충에 관련된 소식이 들려왔다. 인력난이 심해서 새 직원을 가져다 줄 여력은 없으며, 대신 인턴도 아니고 계약직도 아닌 꼴랑 아르바이트 한명 정도 새로 올 수 있을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아니 보너스 한푼도 챙겨주기 어렵고 철저하게 최저 시급 맞춰야 되면서 일적으로는 바라는 것이 많은 우리 사정에 알바라니? 그게 그렇게 쉽게 구해질리가 있을까? 그 소식은 나에게 그저 새로운 불만만을 가져다 주었는데, 수개월간의 덧없는 기다림이 초짜 하나를 아주 네거티브한 사람으로 만드는데는 차고도 넘쳤으리라.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생각보다 금방 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은 제법 쓸만한 친구였다. 과장님의 이직 전 인연으로 알게 된 친구라던데, 우리 일과 관련된 학과를 갓 졸업하고, 국가 시험을 준비중인 20대 중반 남자애였는데, 공부하면서 돈도 좀 벌겸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단다. 왜 박봉에 일도 많으면서 돈은 쥐꼬리만큼밖에 안 주며,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우리 회사를 선택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부서원들에게 그는 큰 행운이었다. 비록 실무 경험은 커녕 이론적으로도 의외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좀 못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소위 말하는 일 감각이 있었고 눈치가 빨랐으며 그 덕에 우리는 서서히 철야 근무의 빈도도 줄고 사람의 삶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알바생은 일 하는 동안 지각과 큰 실수는 커녕 사소한 얼굴 붉힘, 불만사항 한번 없이 성실히 일했는데, 유일한 특이한 점 한가지를 꼽으면, 그가 이주일에 한번 정도 오전 오후를 가리지 않고 '집에 다녀오겠다' 라는 이유로 사무실을 30~40분 정도 꾸준히 이탈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일 자체가 사무실에 종일 박혀 있어야만 하는 일도 아니고 (아르바이트일뿐이었던 그의 일은 더더욱 그랬다) 미리 양해를 구한 시간을 넘겨서 돌아온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일에 대해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다만 그와 조금씩 친해질수록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자리를 비우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높으신분들이 대부분 여름 휴가를 떠나고 일도 한가해 사무실에서 그와 노닥 거리던 어느 7월 오후, 그가 전화기를 붙잡고 근심어린 눈빛으로 십여분 정도를 씨름하더니 뭔가를 부탁할때 그가 언제나 보여주는 잔뜩 미안함이 묻어 나오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형님, 저 지금 또 집에 잠깐 다녀와야 될 거 같아요. 일이 좀 생겨서... 사무실에 사람도 얼마 없는데 죄송해요"
다시 밝히지만 그 날은 그렇게 바쁜 날이 아니었고, 남자 넷이 지키던 사무실을 남자 셋이 지킨다고 특별히 달라질것도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그냥 다녀오라고 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침 다른 사람들도 많이 없었던 그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그가 왜 그렇게 간헐적으로 자리를 비우는지 그 이유가 듣고 싶어서 허가에 덧붙여 한마디를 보태 되돌려주었다.
"괜찮아 갔다와~ 뭐 나 혼자 있는다고 큰 일이야 있겠나, 근데 너 매번 그렇게 차도 없으면서 집에 꼬박꼬박 갔다오는데 왜 그러는지 말해줄 수 있어? XX역 근처 살잖아, 40분이면 그냥 말 그대로 문만 열어보고 와야 되는 시간 아니야?"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 말해줄 수 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 수 도 있으니 집에 먼저 다녀오겠다고 하였다. 별 일이 아니라는 그의 말과 달리 표정에는 걱정기가 묻어나 보였기에 나는 그에게 어서 집에 다녀오라고 말해주었고, 그렇게 대충 가디건을 챙겨 입고 나간 그는 언제나처럼 채 50분도 되지 않아 다시 사무실에 돌아왔다. 떠나기전과 달리 걱정 근심이 아예 사라진 맑아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안도한 나는, 이야깃 값으로 직접 내린 커피를 한잔 그에게 건넸고,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님 저 동생 하나 있는거 아시죠? 걔가 올해 대학교 2학년인데, 이번 학기 몸이 좀 안 좋아서 휴학하고 집에서 쉬거든요. 막 입원해서 병원 신세 지고 뭐 신변에 위험이 생기거나 어디가 어떻게 되거나 할만큼 심각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밖에 종일 싸돌아 다닐 몸상태도 아니라 집에서 컴퓨터도 하고 글도 쓰고 공부도 하면서 쉬는데, 가끔 낮잠을 자서 연락이 안되고는 해요.
뭐 낮잠 자니까 별일이야 있겠냐 싶지만, 20년 사는 내내 건강해서 병원 몇번 안가본 애가 갑자기 아프다고 집에서 골골대고 있으니 부모님도 더 걱정하시고, 또 저도 걱정되고 해서 낮에 별 얘기없이 갑자기 연락이 안되면 잠깐 집에 잘 있나 보고 오는거에요. 진짜 별거 없죠?"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의 내 첫 심정은 정말 착한 친구라는거였다, 그리고 좀 더 이야기를 깊게 나눈 이후에 변화한 내 심정은 착하긴 한데 좀 유난인듯 싶다는거였다. 집에 동생이 잘 있는지 보고 왔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내가 바로 떠올린 심장병이나 뇌질환등의 질병 얘기를 듣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그 정도 큰 병은 절대 아니다. 이번 학기 한번 쉬고 다음 학기부터는 아마 학교 잘 다닐 수 있을것 같다.' 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렇게 큰 일이 아니라면 매번 잘 있나 확인하기 위해 집에 갔다 오는것은 좀 신기하게 느껴졌다.
"혹시 막 연락 안되다가 가봤는데 동생이 진짜 아파서 쓰러졌거나 한 적은 있어? 여기 온 다음에는 그런거 같은 느낌은 못 받았는데..."
"아뇨, 다행히 그런적 한번도 없어요. 매번 잘 자고 있거나 아니면 헛짓거리 하다가 폰을 못 봤거나 뭐 그랬죠."
"그럼 어떻게 보면 매번 헛걸음 하는거네? 안 귀찮아? 너 차도 없는데 집에 갔다 오려면 버스타고 15분씩 왔다갔다 하는거잖아, 그 고생해서 집에가서 동생 자고 있는거 보고 몇번 그러면 귀찮아서 가기 싫다는 생각은 안해봤어?"
당시 내가 가볍게 던진 이 질문에 대한 그가 '그런 얘기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다' 라고 얼굴로 말하는듯한 리액션과 함께 들려준 대답은 질문에 어울리지 않는 무겁고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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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옛날에 어느 시골에, 한 형이랑 제 중간 정도 연령대의 '남자'가 한 명 있었어요. 그 남자는 거기서 태어나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그 학교 나온 완전 토박이었는데, 머리가 나쁜편은 아니라 말단으로나마 지역 티오로 공단에 취업해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죠.
그렇게 말단으로 들어간 공단에서 남자가 맡게 된 일은 선박 점검원이었어요. 선박의 안전을 점검하는 일, 구명보트가 잘 달렸나, 구명 튜브가 잘 달렸나, 적재량은 잘 지켰나, 인디케이터는 잘 작동하나, 그걸 체크하고 기록하는, 딱 말단들이 할법한 손발이 고생해야 하는 타입의 일이었죠.
점검원 보직을 맡게 되자, 공단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같이 입을 모아 해주는 말은 '야 너 진짜 운 하나는 타고났다' 라는 거였어요. 왜냐면 점검원 자체가 꿀보직으로 공단 전체에 소문이 자자했거든요. 선박 적재량 같은건 무슨 밀도 대비 질량이 높은 특수 금속 같은걸 실어서 일부러 배를 가라앉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면야 한 눈에 훤히 보이는거고, 구명 조끼나 보트, 튜브 같은건 뱃사람들이 알아서 빠릿하게 관리 잘하는 데다가 한달, 아니 세달에 한번만 점검해도 누가 일부러 칼집이라도 내지 않는한 이상이 생길수가 없는거거든요.
그런데 그 꿀보직-점검원으로 일하게 된 남자는 보통 말하는 좀 요령이 없는 타입이었어요. 적당히 둘러보고 체크표에 대충 사인하고 넘어가도 사고가 나지 않는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었고, -형도 잘 아실거에요, 우리가 하는 일도 그렇잖아요. 결국 큰 문제 안 생기면 일을 어떻게 하건 아무 문책도 뭣도 없는거- 사고가 그렇게 자주 나는것도 아닐뿐더러 사고가 나도 대부분 공단 점검원이 점검 가능한선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정말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수준으로 드문일이었고, 남자도 그 사실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남자는 그렇게 안한 일을 했다고 구라로 넘기는것 자체를 스무스하게 해낼만큼 담이 큰 사람이 아니었고, 매일같이 멍청하게 모든 사안을 진짜로 점검하고, 체크하고, 점검하고, 체크하고 소위 말하는 미련하게 일을 했어요. 꿀보직이라는 주위의 인식과는 달리 공단 말단중에, 아니 그냥 공단 전체를 놓고 봐도 제일 근무량이 많은 사람이 되고 말았죠.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 남자가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걸 당연히 몰랐어요. 그래서 매번 바쁘고 힘들어하는 그를 보며 한심해 하고는 했죠. 촌놈이라 그런가 제일 꿀보직을 맡고도 시간을 저렇게 쓰네. 그런식으로요. 그러던 어느날, 그가 그렇게 매번 미련하게 일을 꼼꼼하게 한다는것을 공단 사람들이 알게 되었는데, 그 반응이 어땠을거 같아요? 칭찬했을까요? 감탄했을까요? 물론 아니었어요. 공단 사람들이 그때부터 그에게 보내기 시작한 것은 박수가 아니라 조소였어요. 형도 짐작하셨겠지만요.
'와 얼탱이 없게 저걸 다 하나하나 보고 있네? 시간많냐?'
'저렇게 모자란놈이 대체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하... 이래서 지역민 출신 티오 함부로 보장하면 안되는데'
'진짜 찐따처럼 일한다~ 그래서 오늘 별 일 있었냐? 매번 똑같이 '이상없음' 란에 사인하면서 뭐하러 매일 확인해?
물론 저런 요령이 없는 타입은 보통 주위의 조소조차도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지요. 그도 그랬어요, 주위 사람들이 그를 비웃고, 때로는 그 조소가 특정한 실체를 갖춘 불이익이 되어 돌아와도, 그는 우직하게 본인이 할 일을 했어요. 때로는 속이 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하는 일이 정말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게 본인의 일이니까, 계속 본인이 하던 일을 했죠.
하지만 사람의 삶은 바다 한복판에서 사방에서 밀려오는 물살을 맞는것과 같아서, 회의감, 짜증, 불확실함, 자신에 대한 의구심, 개인사, 안일함등의 모든 물살의 운때가 겹쳐, 하나의 큰 파도가 되어 몰려오는 날이 있죠. 그렇게 그는 그 조소들덕에 딱 한번의 방심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이 마침 그의 어머니가 건강 검진으로 시내 병원에 가야할 날이라 연차를 써야 했는데, 인수인계 작업이 귀찮고 인수인계 받을 사람의 조소가 두려운 나머지 그만 점검표에 휴가를 낼 다음날것까지 미리 체크해버린거에요.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 날 거기서 운항하는 가장 큰 배의 안전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무리 허술해도 이중, 삼중으로 안전 체크를 하고 있고, 담당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오늘은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거에요. 그러나 그 날 그런 사고가 일어날거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안전속에서 성실하지 않았던 그 어느 누구도 그 비극의 날에도 당연히 성실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그 배는 잔뜩 엉망인 몸을 이끌고 바다 한복판으로 길을 나서게 되었어요.
결국 그 날 일어난 사고로 정말로 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 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을 죽인 가장 큰 원인이 뭘까요? 암초? 파도? 기후? 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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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그 얘기 설마..."
"아뇨, 형이 생각하시는 그건 아니에요. 이게 만약 형이 아실법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고 치면, 제가 이렇게 자세한 뒷 내용을 알리가 없죠. 이건 제가 형이랑 비슷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 행동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그냥 지어낸 얘기에요."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마음속 한구석에 남은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알바생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가 버스 타고 집에가서 멀쩡한 동생을 보고 오는것도 이 이야기에서 그 남자가 해온 일하고 근본적으론 별 차이가 없어요. 대부분의 경우 별 일이 없겠죠. 그리고 별 일이 없으면 저나 그가 한 일은 미련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아요. 동생은 집에서 몸이 안 좋으니 잠깐 낮잠을 잤을뿐이고, 저는 사무실에서 일하다 말고 뜬금없이 왕복 차비와 시간과 힘을 허비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왓을뿐이죠.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굉장히 미련하고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이야기에요.
그러나 회사에 있는 제 입장에선 집에가서 제 눈으로 확인하기 전엔 사실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것도 모르는거니까요. 제가 만약 헛걸음을 백번, 아니 천번을 했다고 하더라도, 동생에게 실제로 생긴 이변을 단 한번이라도 큰 일이 되기 전에 막았다면, 저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보람있는 일을 한거죠. -바꿔 생각하면 만약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무슨 일이 생겼다면, 죽을때까지 갚지 못할 죄의식속에 살게 되엤죠- 그리고 그렇게 중요하고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결국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특별한 일이 없는 일상속에서, 매번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 밖에 없는거니까요.
한 과학자가 SF 작가들이 쓴 소설에 나오는 가상적인 요소들을 보고 세가지로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고 해요. '가까운 미래에 과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 '아직은 택도 없지만 과학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은 일'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인식이 완벽하게 변하지 않는한, 즉 물리법칙이 무너지지 않는한 절대로 불가능한 일' 이렇게요.
예지력은 개중에 몇 안되는 세번째 카테고리에 분류되는 일이었고, 저는 물론이고 그 어떤 사람도 당연히 예지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결국 이변, 위기에 맞서 예지력도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의 일상이 혹시 위기가 아닐까 미련하게 의심하고, 또 대비하는것뿐이에요.
형, 저는 퍽 가파른 언덕에 올라갈때 저 위에 아주 어린 아이나 혹은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가 보이면 모든 신경을 거기다 쏟은채 올라가요. 혹시나 아이가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하구요. 물론 여태까지 살면서 누가 굴러 떨어진적은 한번도 없고, 매번 저 혼자 잔뜩 신경만 써서 머리 아프고 눈 아프고 말고 넘어가지만, 저는 제가 죽을때까지 단 한명도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형은 좋은분이고, 그래서 저를 조금도 비웃으지 않으셨지만, 제가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면 형 생각보다 훨씬 더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위와 같은 비유적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거에요. 양념은 매번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게 치고는 있지만요."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가 평균 이상으로 좀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약 이 세상에서 누군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걸린 위험하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다루는 일을 맡는다면, 저렇게 유난인 사람이 맡는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