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6/12/06 01:23
원균이 이순신을 도운 사람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순신을 더 도운 사람이겠네요...
이런저런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이순신장군께서 성웅이 되셨지만, 성웅이 못나타나셨더라도 전쟁이 없어그 시대 민초들이 덜 고통받는 쪽이 되었다면 당연 더 좋은 역사였겠지요?
16/12/06 01:24
그렇죠. 막 히틀러부터 독재자 이런 얘기까지 하려다 참았어요
그렇게 영웅이 없고 전쟁사 없으니 재미도 없고... 이런 게 오히려 좋은 역사인 게 맞죠
16/12/06 01:29
언제나 전쟁이 없는 시대가 국민들에게 좋은 시대였죠. 태평성대란 말이 괜히 있는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겁니다.
16/12/06 07:45
예전에 전공과는 무관하게 일종의 취미로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등 포진법을 간단히 연구한 적 있는데, 진짜 말이 안나옵니다.
동등하거나 좀더 많은 적을 상대로도 승산이 99.9%라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진법입니다. 적과 자신들의 수가 같다고 했을때, 거의 피해도 없이 적을 쳐부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당시 제 계산으로는, 대포를 장착한 이후의 일본 수군을 상대로도 화력집중비율이 100배 이상 차이납니다. 무슨 말이냐면, 조선 수군이 평균적으로 대포를 한 대 맞을 동안, 일본 수군은 백 대 맞도록 포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괜히 학익진 학익진 하는게 아니었어요. 해전은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서, 이순신 장군 이전에는 이렇게 정밀한 포진법을 해전에 적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진짜 거의 인간이 아니라고 봐야죠. 그 이면에는 이순신 장군의 엄청난 고뇌와 고충이 있었겠죠.
16/12/06 01:29
나중에 알긴 했습니다만, 제가 저 사진을 보고 제일 어처구니가 없었던건 백번 양보해서 국회의원 원유철 지역구라면 그래도 어떻게 이해는 해보려고 할 수 있겠는데, 자그마치 여수라는 점이....너무 어처구니가 없더라구요.
16/12/06 01:31
유게에도 썼는데
일본에 잡혀갔다 돌아오던 조선인 여성등과 어린 아이들을 모두 죽여 왜군의 목을 벤 것이라 속인 진짜 인간 백정입니다 그냥 새가슴 무능력자를 넘어선 학살범이에요
16/12/06 01:39
"이순신 장군이 파직되자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었으나,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렇게 씌여있는것 같은데... 아무리 팩트만 나열해도 입맛대로 서술하면 날조가 될수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보여주네요;;
16/12/06 03:38
원균이 없고 이순신만 있었다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냥 지금 이대로만 해도 감지덕지입니다. 이순신이 없고 원균만 있었다면... 으아아아악
16/12/06 04:21
진짜 이순신 장군이라는 존재는
한반도 수호신이 심심해서 잠시 화신으로 인간계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6/12/06 06:03
You complete me~~~....
그리고 반대로 이순신 장군 덕분에 원균도 이렇게 꾸준히 욕을 먹고 있죠. 만약 이순신 장군이 없어서 그 때 일본한테 제대로 탈렸다면 아마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지거나 했을테니까요. .........
16/12/06 06:10
최근에 갑자기 명량 해전에 대해 꽂혀서 남는 시간에 이런저런 자료들을 뒤져보고 있는데 알면 알수록 명량 해전과 이순신 장군은 조선 역사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통틀어서 보아도 미스테리 투성이입니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이런 전투를 승리할 수 있었을까 싶죠. 명량 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가장 열세인 전력으로 전투의 승리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정유재란 자체를 끝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화 명량에서는 좀 더 절박함을 표현하고자 사상자가 많이 나오게 했지만 실제 사상자는 몇명에 불과하죠. 그것도 2시간 가까이 밀물을 타고 들어오는 일본군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어느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 홀로 33킬(!)을 하셨다고도 하구요. 이런 분이 칠천량 해전이나 부산포에 계셨다면 재란이 더 일찍 끝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명량 해전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날 일도 없었겠죠. 노량 해전으로 전사하실 일도 없었을테고요.
16/12/06 08:13
위에 대댓글로도 적어 놨지만, 자세히 알면 알수록 이순신은 인간이 아니라 뭔가 수호신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초월적 존재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육군에서나 사용될까말까 했던 정밀한 전술들을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해전에 접목했다고 보면 됩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할 때 사용했던 전술이 조총을 사격할 동안 후열이 장전하고, 장전이 끝나면 교대하는(3교대였습니다.) 방식을, 그런게 있는지도 모른 채 해전에 적용해서.. 대포 발사후 장전할 동안 판옥선을 제자리 회전해서 발사, 이걸 반복함으로서 사격 간 딜레이를 없앴죠. 이걸로 화력을 극대화한 것이 장사진이고, 이것을 포위섬멸전에 응용한 것이 학익진입니다. 학익진은 너무 완벽해서 이길수밖에 없는 포진이었습니다. 학익진은 날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도 있죠. 중앙을 일본 수군에게 돌파당했을때를 대비한 설계까지 존재했는데, 이 진법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포알 샤워를 일본 수군이 도저히 견딜 수 없었죠. 적과 자신의 화력밀도가 100배 이상 차이가 나도록 만드는 진법입니다. 일본 수군의 전력이 한산도대첩 당시의 10배였어도 조선 수군이 이겼을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학익진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유인 작전의 성공이었죠. 이 유인 작전도 어이없는 것이, 일본 함선에 비해서 그야말로 느려터진 판옥선을 가지고 완벽한 거리조절을 하면서 유인에 성공했죠. 유인한 이후에는 매복하고 있던 함선들이 나타나서 학익진을 형성했고요. 이순신 장군이 해전사에서 최초로 이룬 업적이 대단히 많을 텐데, 제가 역밀덕 (전쟁사 덕후)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순신 장군 이전에 해전에서 유인작전, 매복작전, 포위작전 등을 이렇게 구현한 제독은 없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순진 장군 이후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세계 전쟁사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서. 보여준 능력으로 따지면 삼국지의 제갈량, 조조, 유비 등의 인물들보다 더더욱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활약상의 규모가 백만 대군이 아니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보면 삼국지의 인물들보다 훨씬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멸망에서 구해냈으니까요.
16/12/06 10:06
이순신 장군이면 10배의 전력을 1/10으로 쪼개서 확실하게 피해없이 각개격파하는 방법을 선택했겠죠(...) 방법이야 짐작이 안 가지만, 어떻게든 해냈을 겁니다.
16/12/06 11:05
가끔은 이순신장군의 해전기록보다 무협지나 판타지가 더 현실성있어보입니다.. 이후의 세계적인 해군제독들 중에도 저런 정교한 전술구사를 했다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에서 무전으로 지시할 때나 할법한 정교한 전술이 조선시대에 나왔죠..
16/12/06 15:29
이순신이 치룬 해전은 아군피해가 지나치다 싶을정도로 적은 편이라서,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려면 없던 피해를 만들어서 넣어야 하는 수준이죠;;
16/12/06 09:02
이순신 장군은 단연코 역대 최고의 해군 명장 중 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미힐 더 라위터르랑 호레이쇼 넬슨과 함께 세계사 해군 명장 3대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6/12/06 13:58
더 무서운 것은 이순신 제독은 원래 육군 출신으로 소규모(?)로만 전쟁을 접하고, 책으로만 읽고 이해한 부분을
국가적 전투의 대규모 전쟁에 전략/전술/보급/행정까지 부족함없이 수행한 부분으로 생각합니다.
16/12/06 16:52
임진왜란 이전 무장으로서 경력 대부분이 수군입니다. 특히 수군절도사 이전 가장 높은 직책에 오른것이 만호인데 이 만호직을 두번 했고 둘다 수군 이였습니다. 왜란이전 최고 전공인 녹둔도 전투도 수군일때 한거고요
그리고 조선시대 육군 수군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을때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