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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9/19 13:13:17
Name 박재현
Subject [일반] [1][우왕] 자전거
1992년 5월에 봄날이었다. 나는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이 되는 해였다.
그날은 비가 왔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을 예고하는 듯 그렇게 비는 내렸다.
당시 우리 집은 참 부유했다. 아직 어려서 제대로 그 부유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
정원이 딸린 집과 아버지께서 모시는 차 세 대는 늘 차고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누구나 다 입학하고자 노력하지만 아무나 입학하기는 쉽지 않은 그런 학교였다.
그렇다 보니 친구들 집도 다 부유했다. 등굣길에는 운전기사가 모는 차에서 내리는 친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당시 부유함을 몰랐던 것 같다. 친구 집에 가도 우리 집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풍경들이 펼쳐졌으니까.
나에겐 여동생 하나와 남동생 하나가 있었다. 여동생은 두 살 터울 남동생은 다섯 살 터울이었다.
아무래도 어릴 적이다 보니 남동생과 코드가 잘 맞았다. 밖에서 뛰노는 걸 좋아했고 특히 자전거 타기를 참 좋아했다.
사업을 크게 하시는 아버지 대신 난 동생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쳤다. 시간이 지나 동생이 능숙하게 자전거를 탈 때쯤
우린 옆 동네 좀 더 먼 옆 동네를 같이 자전거를 타고 누볐다.
그땐 우리 둘만은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과 늘 몰려서 자전거를 탔었다.
내가 사는 곳은 대구다. 당시 아파트가 새로 개발되는 지구에 생기기 시작했는데 주택 생활을 접고 우린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
어릴 적이라 참 신기했다. 주택에 살 땐 친구들 모으기가 참 어려웠는데 가구 수가 많다 보니 아이들이 참 많았다.
동생과 나는 그 아파트 주변을 동네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자전거를 탔다. 우리의 주 무대는 아파트 뒤편 주차장이었다.
어른들이 출근하시는 아침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 주차된 차가 거의 없어 그곳은 우리만의 놀이터였다.
자전거를 타지 않을 땐 동생과 나는 집에서 당시 유행하는 게임기를 같이 즐기곤 했다.
1992년 5월에 봄날에도. 비가 오는 날씨 탓에 우린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원래 그날은 남동생이 참 좋아하던 골프장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당시 주말마다 아버지는 골프장에 남동생을 데리고 가셨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씨 탓에 아버지는 골프 약속을 취소하셨고
동생은 그렇게 그날 집에 남게 되었다. 그때쯤이 아마 시험 기간 직전이었던 것 같다. 한두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는 나에게 공부하러 어서 내 방에 들어가라고 소리를 치셨다. 할 수 없이 방에 들어온 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문제집을 펼쳤다.
혼자서는 게임 하기가 지겨웠는지 비 오는 날씨에도 동생은 자전거를 타러 가겠다고 했다.
내방은 현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현관을 나서는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내 머릿속을 지날 때쯤 동생은 이미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20-30분쯤 문제집을 한창 풀고 있는데 우리 집 인터폰이 울렸다. 어머니께서 받으시는 것 같더니 이내 나를 부르신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수화기를 건네셨다.
받아보니 동네에서 자전거를 같이 타던 동네 아이 중 하나였다.동생이 사고가 났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안방에서 주무시던 아버지를 깨우시고 옷을 걸치고 나를 앞장세우셨다.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15층이었는데 어머니와 둘이 탔던 그 엘리베이터 속에 정적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난 혼자서 생각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던 그 주차장엔 차가 거의 없고 아무래도 주차를 하던 중에 주의 부족으로
살짝 부딪혔을 거라 생각했다. 이놈의 녀석 때문에 나도 이제 자전거를 타긴 글렀구나 생각하는 중에
우린 아파트 1층에 도달했다. 내려서 기다리던 녀석에 얼굴은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색이 된 얼굴이었다.
다급하게 우리를 인도한 곳은 주차장이 아니었다.
우리 아파트 앞 왕복 8차선 도로 쪽이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이성을 잃으셨다. 이미 날 지나쳐 그 녀석과 함께 어머니는 달리셨다.
어머니를 뒤따라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큰 대로변이 눈에 보일 때쯤 수십 명에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그 무리 사이를 밀치고 들어가셨다. 그 틈에 동생이 보였다. 주위엔 동생이 흘린 피가 흥건했다.
그땐 난 어렸고 너무 무서웠다. 피투성이가 된 동생을 껴안고 우시는 어머니를 멍하게 바라보다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비겁했다. 난 어머니 옆이 아닌 사람들 틈 속에 나를 숨겼다. 애타게 동생의 이름을 부르시던 어머니에게 동생은 한마디
말도 답하질 못했다. 어머니는 우셨다. 그 사람들 앞에서 한참을 동생을 붙잡고 우셨다. 어머니께서 거의 실신해갈 무렵
난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어머니를 안았다. 이제 그만하시라고.. 그때쯤 구급차가 도착했다.
누군지 모르는 그 사람에 입에서 이미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쓰러지셨다.
아버지가 도착하시고 우리 둘은 쓰러진 어머니를 부축해서 구급차에 올라탔다.
구급차에 타서도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때 내 방문 앞을 지나던 그때 내가 동생을 잡았다면 어땠을까.
난 왜 비겁하게 피 흘리며 누워있는 동생 곁에 바로 가지를 못하고 한참을 사람들 속에서 맴돌았나.
어머니를 안았다. 그리고선 어머니께 귓속말로 그만 슬퍼하시라고 앞으로 내가 동생 몫까지 어머니께 잘할 테니 이제 그만 우시라고..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분께서 동생에 상태를 보시곤 다시 한번 사망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이미 떠나버린 동생을 껴안고 한참을 우셨다. 그 일이 있고 우리 가족은 참 많이 변했다.
수다스럽던 우리 어머니 입에선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흘러나오지를 않았다. 동생을 보내고 돌아오던 날 어머니께선
아무 말 없이 내 자전거를 내다 버리셨다. 그리고 내게 앞으로 자전거는 평생 타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난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지금 내 나이 서른다섯 어느덧 내 여동생은 결혼하고 예쁜 남자 조카를 낳았다.
올해로 세 살이 되는 조카 녀석은 남자아이답지 않게 다정하고 애교가 많은 녀석이다.
처음으로 보는 손주다 보니 우리 부모님에 애정이 남다르다. 하루종일 파워레인저와 둘리에 빠져 사는
그 조카에게 부모님은 각종 장난감과 놀이기구를 사주셨다.
언젠가 조카 녀석이 동네에 놀던 같은 또래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세발자전거를 보곤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옆에서 본 적이 있다. 어머니께선 아직 어린 조카 녀석에게 어떤 대답도 하지를 못하셨다.
나도 결혼을 했다. 이제 삼 년이 다되어가는데 8개월 전 태어난 예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보며 늘 흐뭇하지만 요즘 큰 걱정이 하나 생겼다.
이제 막 소파에 기대 일어서는 딸아이를 보면서 이제 시간이 지나 내 딸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동네에 친구들과 뛰어 놀 때쯤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자전거를 내게 사달라고 하면 난 내 딸아이에게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까.
아직 아니 평생을 가슴에 동생을 묻고 사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면 차마 딸에게 자전거를 사줄 수가 없는데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나오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답을 나는 오늘도 나 스스로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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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아
15/09/19 13:34
수정 아이콘
[추천]
세인트
15/09/19 14:30
수정 아이콘
[추천] 제가 약간 다른 이유로 그래서 오토바이를 안(못) 탑니다.
둘째 누나가 국내 있을 때 결혼 약속했던 연인분이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본인 과실도 아닌데...
읽는데 뭔가 참 먹먹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15/09/19 18:28
수정 아이콘
[추천]
솜이불
15/09/19 21:56
수정 아이콘
[추천] 가슴 속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15/09/20 02:10
수정 아이콘
[추천] 잘 읽었습니다.
come32855
15/09/20 02:16
수정 아이콘
[추천] 아픈 이야기인데 감사합니다.
몽키.D.루피
15/09/20 10:02
수정 아이콘
[추천] 드립니다..
싸이유니
15/09/20 14:47
수정 아이콘
[추천]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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