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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9/05 20:35:30
Name 지민
Subject [일반] 담배 권하는 그녀 _ 3(끝)
담배 권하는 그녀 _ 1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60636
담배 권하는 그녀 _ 2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60690



숨을 뱉으니 하얀 것이 올라간다. 몹시 추운 11월 겨울날이었다.




-야, 어디냐?




그날따라 J에게서 먼저 톡이 왔다. 옷을 여러 겹 챙겨 입고 계속 핸드폰으로 카톡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별이 쏟아지는 밤’. 학교에서 번화가로 꺾지 않고 큰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숨겨진 보물처럼 나오는 술집이었다. 주변은 썰렁한 데 가게만 환했다. 문 앞에서 손을 비비고 몇 번 쥐었다 폈다.




-말해줘, 하나, 둘, 셋. “I want you.”




문을 열고 들어가니 J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볍게 흥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석자리에서 벽을 등진 채 그녀가 핸드폰을 하며 앉아있었다. 톡이라도 하는 건지 맛폰을 타자를 이리저리 치다가 다시 화면을 껐다. 내 폰에 톡 진동이 울렸다. 그녀는 내가 온 줄 모르고서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기분이 좋았다.




냉동고에서 내가 좋아하는 맥주와 잔을 하나 골라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며 표정과 손으로 인사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내 맥주 입구의 포장을 벗기고 깊고 액체를 잔에 따라주었다. 오늘따라 가볍게 웃으며 J가 먼저 말했다.




“일단 한 잔 마시고 이야기하자.”


“좋은 생각일세.”


나도 말을 받으며 잔을 잡았다. J도 잔을 잡고 내밀었다.


“1년 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수.”


나는 잔을 부딪히며 대답했다.


“알면 됐구요.”




잔과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즐겁게 울렸다. 그녀는 뭐가 즐거운지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서로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쌓여있던 무언가를 해소하듯이 자연스럽게 최근 이야기까지 업데이트 된다.




“내가 알바하는 거 기억나니?”




“알지. 그것 때문에 학기 중에도 고생이 많았잖아.”




정확히는 그 알바 때문에 내가 불러낼 시간이 뜸해졌다. 그녀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 근처로 갔고 나는 그녀와 거리를 두느니 밀당을 하느니 온갖 상상을 하면서 연락을 참고는 했다. 그러다 몇 주 씩 금세 시간이 지나곤 했다.




J를 곁눈질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눈을 감았다. 요즘 그녀 앞에 있으면 말은 줄고 생각은 많아진다. 그녀에게서 특별해지는 즐거움과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는 서운함. 요즘은 그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술이 하나 둘 이어져간다. 생각은 줄고 입이 자꾸 열렸다. 그녀도 얼굴이 잘 붉게 물든다. 내가 손을 툭 건드리면 손을 때린다. 옆에 앉으면 오히려 나를 끌어당겨 같이 셀카를 찍는다. 내가 담배를 피면 그 담배를 빼앗아서 핀다. 술 취한 모습은 몇 번 봤지만 이렇게 흥이 오른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신기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이런저런 말을 막 쏟는다.




“역시 맥주가 좋아. 가볍게 넘어가고.”


“사케나 고량주도 좋은데.”


슬쩍 단계를 올려본다. 도수가 조금 높아지면 J는 잘 마시지 않는다. 그래도 칵테일처럼 향을 지워주거나 기름진 음식과 같이 먹는 술은 잘 먹는다.


“오늘은 저녁을 먹어서. 나중에 한 잔 하자.”


“요즘에 xxx 어때? 대세잖아?”


맛이 부드럽고 향이 좋다고 입소문을 타고 있는 소주를 추천한다. 그녀는 입을 오므린다.


“여기서 안 파는걸. 게다가 돈도 없어.”


“그냥 편의점에서 사서 들어가면 되지. 근처에 공짜로 퍼질러 있으면서 밤새도록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잖아.”



내가 좀 더 밀어 붙이듯 말을 하고도 아차 싶었다. 몽롱한 표정을 한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이 없었다. 나는 슬쩍 눈치를 보았다.


“좋아.”




그녀가 웃었다. 당장 가야지~ 하면서 술을 털고 일어나는 데 그녀는 비틀거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꽉 쥐나 쉽더니 많이 비틀거린다. 몸이 닿는 건 즐겁지만 그 이상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조심스럽게 그녀가 흔들릴 때는 부축하고 다시 혼자 걸으려고 할 때는 멀어지며 그녀와 함께 걸었다. 자취방으로 향하는 길을 그녀와 함께 걷게 될 줄이야.




자취방으로 들어오더니 그녀는 갑자기 내 컴퓨터를 켰다. 나는 편히 있으라고 한 뒤 빨리 집 앞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xxx와 과자, 마른 안주 등을 사고 떠먹는 아이스크림도 하나 샀다. 봉투를 들고 돌아오니 방이 소리로 가득했다.




J가 좋아하는 노래.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창가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가 내가 오니까 방긋 웃었다.




“야, 왔냐?”


“헐. 나 쫓아낼 일 있냐?”


“쫄보야. 이 정도는 괜찮아. 아니면 끌까?”




  마지막에는 비겁하게 뭔가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다. 이길 수가 없다. 무엇보다 그녀가 즐거우면 나는 흐뭇하다. 그저 옆에 앉아서 책으로 창을 향해 부채질했다. 조금씩 탁한 공기가 빠져나가고 대신 시원하고 찬 공기가 들어왔다. 그런다 싶으면 다시 그녀의 입에서 연기가 나와 주변을 채운다. 나는 한숨을 쉬고 그냥 옷장이나 잘 닫혀 있는지 확인했다.




J는 “한숨 쉬다보면 일찍 늙는다니까~” 태연하게 말하며 담배를 비벼끈다.




술이 오가고 안주가 오갔다. 노래는 애절한 보이스가 들리는 팝송. 그녀는 내 귀에 가사를 하나하나 번역해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일어서서 막 춤을 추었다. 나도 일어서서 어설프게 박자를 맞춘다. 손이 마주하고 눈이 스치고 즐겁다.





그러다가 다시 포개지듯 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음악이 끝나갈 때쯤 나는 문득 말했다.




“뭔가 할 말 있지?”


“......내가 친구를 잘 키웠네.”


"누가 누굴 키워?"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녀는 베시시 웃었다. 눈치라기보다는 경험이었다. 혹은 그녀 한정으로 눈치가 늘었다고 말해도 좋다. 평소와는 다를 이유가 없는데도 몹시 다르게 구는 그녀였다. 내 찌르기는 아주 오랜만에 그녀의 숨겨진 의도를 들춰냈지만 그것이 꼭 기분 좋은 결과로 이어지라는 법은 없는 거겠지.




“나 알바할 때 만났다던 사람 있잖아.”


“아, 밥맛이라던 사람.”


밥맛이지만 잘생겼다고도 했었지.


“오늘 점심에 둘이서만 만났거든. 세 번째 만남이었나."


그녀가 소주를 들이켰다.


"밥도 먹고 차를 타다가 들어갔지. 말로만 듣던 그 앱을 써보니 편하긴 하더라."


최근에 같이 이야기했던 어플 이야기를 떠올렸다.


"내 처음이었어. 역시 밥맛이더라.”




너무 많은 말을 생략한 거 아닌가? 두뇌가 풀가동하다가 겨우 말뜻을 깨닫고 멈췄다. 그녀의 매력이자 벽. 짧고도 긴 시간동안 생각을 하다가 그녀를 안아주며 겨우 말을 꺼냈다. 일부러 힘을 주면서.




“...고생했어.”


“하하. 그 남자 자기 좋은 것만 알고 밥맛이야. 이런 말을 너한테 듣는 것도 우습다.”




자기 좋은 것만 아는 남자라서 나와는 다른 건가?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생각을 끊으며 나는 가만가만히 그녀를 다독였다. 내 마음은.......




.......



.......




J가 갑자기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1시를 좀 넘겼다. J는 말없이 화장실로 가서 세수 몇 번을 했다. 나는 서랍에 포개 놓았던 새 수건을 던져주었다.




“땡큐.”


“...갈꺼야?”


“술 겨우 깼으니까. 미안해. 신세졌어.”


“...그냥 하룻밤 자고 가도 되는데. 나 안전한 사람이여.”


“아냐. 그냥 갈게.”




농담에 반응도 안하고 즉답이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나도 마주보았다.



“.....바래다 줄 게.”




그 뒤로도 ‘바래다 준다’의 정의를 가지고 잠시 옥신각신했다. 택시를 타고 J가 사는 지역까지 들어가는 걸 본 뒤 나는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택시를 타는 곳까지만 데려다 주기도 했다. 어쨌건 여기서 택시를 탈 수 있는 도로까지 가려면 내 안내가 필요했다.




골목을 걸으면서 일부러 조금 먼 길을 걸었다. J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따라왔다. 그 길에서 놀이터가 나왔다. 흰색 조명 때문에 미끄럼틀이 쓸쓸하게 보였다. 모래밭과 그네는 거의 창백하게 보였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약간 먼 길을 걷는 동안 나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J에게 권했다.




“잠시 쉬었다가 갈래?”


“......응.”



둘 다 그네에 걸터앉았다. 발을 살짝살짝 움직이며 가볍게 그네를 탔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서 앞만 보았다. 끼익 끼익. 그네 윗부분을 지탱하는 사슬이 유일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몇 분을 그러다가 던지듯 J가 말했다.




“할 말 있구나?”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서로를 알게 된 걸까. 마음이 우물우물 번져가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그네를 서서 탄 다음 발을 크게 놀렸다. 앞뒤로 넘어갈 때마다 시린 바람이 부딪힌다. 그네가 움직일 때마다 나도 어둠과 가로등 빛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녀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 피웠다.




보지 않아도 그녀가 담배 한 개비를 다 피는 시간을 알 수 있었다. 그때쯤 그네도 멈췄다.



“우리 OT 첫 날 기억나?”


“응? 아. 기억나지.”



나에게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J에게는 기억을 뒤적여야 하는 일이구나. 같은 시간이라도 부여하는 의미가 이렇게 다를까.



“나는 그때부터 네가 눈에 들어오더라.”


“담배 피우려고 불렀을 때?”


이번에는 J가 바로 반문했다.


“아니. 테이블에 앉아서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그녀는 잠시 웃다가 말했다.


“비슷하네. 나도 처음 본 순간부터 네가 인상에 남았거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세상에 이런 병x이! 싶었지.”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었다. 이 미운 친구여.


“그때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 나는 처음 본 순간부터 대략 느낌이 왔어.”




J가 다시 의외의 말을 꺼냈다. 나는 말을 잃고 있다가 J에게로 몸을 돌렸다. 밤과 색과 가로등 빛에 잠긴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너무 자주 봐서 잊고 있었지만 그녀의 머리가 어깨너머로 많이 길었다. 이제 고등학생 티는 나지 않는다.




“...나 너를 만나면서 즐거웠어. 힘들 때 의지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너도 나를 의지했던 적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많은 도움이 됐는지를 몰라서 항상 걱정이었지만. 너는 꽤 나에게 특별한 의미였지.”


J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하면서.


“그런데 그게 친구로서 그것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더라. 처음부터 다른 쪽...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걸 버릴 수가 없는 거야. 알고 있었니?”



“.....어느 정도. 사실 빤히 보였지.”




그녀가 말하는 속도가 살짝 느려졌다. 잠시 서로 침묵에 잠겼다. 그녀는 그 이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절망 비슷한 감정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두 손으로 그녀의 한 손을 잡았다. 차갑고 하얗고 가는 손이 내 손 가득 들어왔다.




“항상 험담만 하던 사람이잖아? 갑자기 그렇게 된 게 이해가 안 가.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냐.”


그녀는 잠시 웃었다.


“이렇게 손잡고 다니고 싶기도 하고.”




그녀는 계속 그저 나를 보고만 있다. 왜 밀어내지 않지? 왜 끌어당기지도 않으면서 나를 밀어내지도 않을까? 기도하는 심정으로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끌어당기며 살짝 입술을 맞췄다. 검은색 향을 머금은 입술을 느꼈다. 여전히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감정에 솔직하고 표현하는 그녀가 나를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나는 무력해진다.




“앞으로 좀 더... 가까이.”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무엇보다 조금 늦었잖아?”


그렇게 단호히 말하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숨을 쉬는 듯한 템포였다.


“나도 너와 있으면서 즐겁고 괜찮았어. 지금도 네가 이렇게 말해 주니까 고맙고 놀라워. 하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점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내 마음을 곧이곧대로 그녀에게 말했을까? 내 고민과 걱정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던 그녀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를 향한 내 마음까지 토해내듯 보여주고 만 것이다. 내 경험, 느낌, 애타는 마음, 질투, 그녀를 향한 관심과 애정을 하나하나 나열했을 뿐이다.




그녀가 내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했다. 그게 무너질까봐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녀에게 칼자루를 줬었고 나는 그녀가 요리하는 대로 요리되었다. 그녀가 바라는 내 모습과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달랐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였겠지.




그야말로 그녀의 도마에 스스로 뛰어 들어갔던 생선이었다. 나를 요리해줘요. 제 등뼈도 발랐고 내장은 제거했어요. 부위별로 나누어 놓았답니다. 드시고 싶은 부위를 드시면 된답니다. 물론 제 살을 맛있게 구워 주면 가장 좋겠지만 편한대로 드세요.




어이없게도 생각이 그쯤 흘렀을 때 눈물이 나왔다. 삼키려고 할수록 더 커졌다.




이번에는 그녀가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동안 눌러놨던 말도 막 나오기 시작했다.




“울어 버릴꺼야.”


“이미 울고 있잖아.”


“내가 너무 싫어.”


“너는 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은 애야.”


“그럼 사귀어 주던가.”


“조금 늦었지.”


“그 남자 널 힘들게 할걸? 네가 그동안 한 이야기만 봐도 각이 나오던데.”


“...동의.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쭉 좋아했어.”


“고마워.”


“그거는 확실하게 써야 한다?”


“짜식. 아무렴.”


“이상한 거나 알려주고 말이야.”


“그건 미안해. 그렇지만 너도 특이해. 그렇게 군소리 없이 따라오고.”




마지막으로 말했을 때 나는 담배 한 까치를 손에 쥐고 있었다. 말없이 담배를 폈다. 그녀는 다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가치를 다 태울 즈음에 그녀가 그네에서 일어났다.




“간다. 택시 타는 것까지만 봐 줘.”




시계를 보니 어느덧 2시가 가까워져간다. 손이나 얼굴이 많이 식었다. 나도 따라서 그네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팁.”


그녀는 나를 세워놓고 어깨를 두들겼다.


“너 곁눈질 하는 버릇 있는 거 아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선이 가는 곳에 고개를 돌려. 당당해져.”


고개를 들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괜히 긴장이 되고 더 어색하다.


“표정관리.”


그녀의 말에 쉼호흡을 했다. 차분해 지면서 얼굴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묘했다. 내 시선이 그녀의 눈과 마주친 게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웃었다.


“잘할 수 있잖아.”


나도 웃었다.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밀려왔다. 이렇게 끝이구나.




-    -    -    -    -



“아~ 그래서 네가 항상 그렇게 눈을 부라리는 거구만.”


“시끄러워요.”


이제 가물가물한 기억을 겨우 정리하며 말했더니 나오는 소리가 저거다. 형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술병을 내밀었다. 한 잔 받고 나도 술병을 내밀었다. 서로 잔을 비웠다. 얼큰한 게 넘어간다.


괜히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자라고 있는 구렛나루가 아직도 가끔은 낯설다.


“너도 참~ 징하다. 그렇게 되면서도 결국 완전히 연락을 끊지는 못했잖아.”


“어차피 군대를 갈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때 되면 천천히 멀어지게 될 거라 생각했지요.”


“어휴~ 이제 말하지만 그때 네가 얼마나 보기 싫었는지 아냐? 한 대 치고 싶었어.”


“언제는 J 옆에 좋은 친구가 있는 것 같다면서 좋다면서요?”


“다시 J랑 사귀면 너 만나는 것부터 막아버릴 거다.”


“그냥 서로 멀어져 갑시다요. 이제는 형 인연도 아닌 것 같아요.”


“남의 일이 되니까 사리분별이 아주 정확해 지는구먼? 지가 핵폭탄 급 펀치를 맞을 때에는 J에게 ‘고생했다’느니 개드립을 날리더니.”


마시던 술을 뿜을 뻔 했다.


“헐. 그것도 J한테서 들었었어요?”


“내가 네 존재를 알고부터 캐냈지. 너만 J에게 특별했냐? 네가 내 얘기 듣던 것 이상으로 나도 네 이야기 듣고 있었어.”


“...하긴. 저만 특별했던 건 아니었죠.”


“어쭈? 왜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가.”


다시 술잔을 내미는 형 과일향이 나는 이 소주는 뭔가 부드럽게 넘어갔다. 생각해보면 xxx 술도 결국 망했구나.


“형이 저를 업 시켜 주는 건 고맙지만요. 아무리 제가 제 매력이 있다고 해봤자 형과 J, 저와 J의 관계는 결국 달랐잖아요.”


품에 안을 수 있었냐 없었냐.


“사람을 만나서 어떤 의미로건 잘 사귀는 데에 중요한 게 뭐가 있는 줄 아냐?”


“성격이 큰 것 아닌가요? 형과 제 차이처럼요.”


“성격도 중요하지.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는 데에 때가 있다고도 할 거고. 누구는 노력을 하면 어떻게든 된다고도 하지.”


형은 말을 하다가 닭갈비를 하나 입에 집어넣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소주만 홀짝였다.


“이걸 성격, 시기, 노력이라고 하자. 사람을 만날 때는 셋 다 중요하지. 그런데 내 생각에 가장 큰 건 시기의 문제야. 누구에게나 긴장이 풀리고 자신감이 붙으면서 사회성이 좋아지는 그런 상황이 오거든. 다만 성격에 따라서 그런 상황이 얼마나 자주 오는지가 바뀔 뿐이지. 노력은 그런 상황이 조금 더 자주 올 수 있도록 만들지만 올바른 노력을 쏟지 않으면 어색해지고 애쓰는 느낌이 들어서 마이너스일 때가 많지. 그런데 혼자서 헤매다보면 올바른 노력이 뭔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던 거지.”


술을 스스로 따라서 한 잔 더 마셨다. 안주는 형의 말이었다.


“결국 이런 거 저런 거 다 종합해보면 시기, 성격, 노력순인거야. 너는 시기가 맞지 않았던 거고 나는 점점 시기가 멀어진 거고.”


그 말에 내 마음속이 조금 가벼워졌던 건 왜일까? 이야기는 어느새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이 형과 J 이야기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 건 언제부터였지? 묘한 기분이 흘렀다.


술과 닭갈비를 다 먹고서 둘이서 잠시 담배를 피웠다. 형은 하얀색 곽, 나는 검은색 곽.


시간은 흘렀고 이제 나에게 담배를 권하던 그녀는 나와 멀다. 내 생각, 경험, 느낌, 소유물, 인간관계에 많은 흔적을 남겼지만 본인은 없다.


연기가 깊게 들어오고 검은 맛이 입을 가득 채웠다.


하늘을 본다. 어지러운 간판 사이로 달이 하나가 보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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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캐리어
15/09/05 20:52
수정 아이콘
제 이야기 같아요 허허...

비록 전 '형'의 입장이었지만...
15/09/05 21:14
수정 아이콘
제 인생에서 저 '형' 포지션에 있던 형의 마음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죠. 그저 서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잭윌셔
15/09/05 20:58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먹먹하네요. 저랑 같은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르게 정감도 가구요 흐흐 글 자주 써주세요~
15/09/05 21:16
수정 아이콘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자주 써 달라고 하시니 힘이 나네요 흐흐
아라리
15/09/05 21:20
수정 아이콘
아휴휴 잘읽었습니다~
15/09/06 08:35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히 받겠습니다!
포포탄
15/09/05 21:29
수정 아이콘
담배.. 태우고 와야겠습니다.
15/09/06 08:36
수정 아이콘
같이 한 대 태우시겠습니까? 크크크
바위처럼
15/09/05 21:51
수정 아이콘
이거 읽는데 도중에 부활-생각이나 가 폰에서 딱 트랙이 넘어가더군요. 신기했네요..
15/09/06 08:33
수정 아이콘
그 노래랑 엮이는 것만해도 영광입니다!
기억속에만 남아
15/09/05 22:30
수정 아이콘
담배 한 대 태우러 갑니다. 예전의 제 모습이 생각나서 조금은 쓰게 웃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15/09/06 08:37
수정 아이콘
예전에 어떤 일이 있으셨던건지 궁금해지네요. -_) y - ~
15/09/05 23:24
수정 아이콘
마지막으로 갈수록 표현력이 굉장하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15/09/06 08:40
수정 아이콘
표현력을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정이입 잔뜩해서 그런가 마지막이 부분에서는 조금만 써도 남주의 마음이 막 흘러나오더라구요. 넘치지 않도록 깎고 깎느라 고생했습니다. 저에게도 신기한 경험이었네요
15/09/06 00:25
수정 아이콘
시작부터 이런 결말을 예상하긴 했는데.. 제 예상보다는 해피엔딩(?)이네요. 크크...
그나마 남주는 껴안아보고, 뽀뽀라도 해봤지(...)
15/09/06 08:30
수정 아이콘
저는 무엇보다 결국 남주가 J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해피엔딩이라 생각합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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