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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1 17:39
당시 기전 스타일상 타이틀을 따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대국수가 엄청많죠. 그러니 아무래도 이동거리며 준비며 이런게 많이 필요한 세계대회에선 집중하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주 일요일에 조훈현이 런닝맨에 나와서 응씨배 트로피를 보여주는데 진짜 '우와...' 소리가 나오더라구요. 그 많은 트로피도 트로피지만 '저게 아마 응창기배일 거예요'하는데 와...
15/08/01 18:00
첫 전관왕 달성이 80년입니다.
압도적이냐, 혹은 그냥 단독1인자일 뿐이냐는 갈릴 수 있지만, 위의 이창호가 국내기전을 쓸어담을 때까지 본좌였다고 봐야죠.
15/08/01 19:21
국내 한정 본좌라면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 정도입니다. 이창호 이후에는 그만한 다관왕은 안나오고 있죠. 타이틀 횟수 3휘인 이세돌의 통산 타이틀이 40회 언저리니까요.
단, 국제기전을 기준으로 볼때, 세계바둑계로 가면 강함의 차이는 있어도, 시기별 최강자는 조훈현(94)-마샤오춘(95)-이창호(96~05)-이세돌(05~08)-구리(09)-쿵제(10) 정도일겁니다. 사실 조훈현, 마샤오춘, 구리, 쿵제는 1년 남짓한 시절에 세계대회 최다관왕이라서 세계최강으로 불린것이고 절대강자로 10년간 이견없이 인정받은건 이창호,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세돌 정도밖에 없습니다. 바둑의 세계화, 그러니까 국제기전이 본격적으로 창설된게 88년 응씨배와 후지쯔배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스타로치면 양대리그가 정립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전에는 80년대까지는 일본바둑계가 세계최고로 불리던 시절이었고, 그러다보니 80년부터 교통사고 전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조치훈과 그 이후에 최강자로 군림한 고바야시 고이치가 세계 최고수 셋을 꼽으라면 첫번째와 두번째를 놓고 앞다투어 언급되었었죠. 그리고 80년대 중반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녜웨이핑이 11연승을 달성하고 일본 최고수를 연파하면서 중-일 양강체제가 되었구요. 당시 전관왕(9관왕)을 두번이나 달성하며 한국을 지배하던 조훈현의 실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긴 했지만 그래봤자 일본 기계에서는 조훈현 말고는 한국을 업신여겼고 그런 일본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준 중국도 마찬가지였죠. 응씨배가 창설된 목적도 결국 세계바둑최강자는 누구냐는 그 사나이의 물음...에서 시작된거나 다름없고, 본문에 적었듯이 녜웨이핑, 나아가서 중화권의 바둑황제 대관식을 위한 부커...크크...였습니다. 근데 그 판을 조훈현이 엎으면서 대세가 서서히 한국으로 기울기 시작했던거죠. 그리고 본문에도 언급한 93년 2회 응씨배마저 순국산 바둑, 된장바둑으로 불리는 낭인기사이자 조훈현에 가장 거세게 저항한 라이벌 서봉수가 극적으로 우승하고 일본이 88년 이래로 우승을 독점하던 후지쯔배마저 조훈현, 유창혁 두 기사가 결승전을 치르고, 이창호가 동양증권배에서 조치훈을 3 대 0으로 꺾고, 국가 대항 단체전인 진로배까지 제패하면서 완벽하게 한국바둑이 세계 최강인 것을 확정짓게 됩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타고, 그 중심에 있었던 기사가 바로 이창호구요. 20c 초중반의 최고의 기사는 50년대 전후로 일본 기계에서 활동한 기성 오청원이고 20c 후반~21c초반의 최고의 기사는 이창호. 이 둘이 굳이 말하자면 대등한 정도의 부동의 투톱입니다.
15/08/01 17:49
잘 읽었습니다.
바둑을 모르는데도 조훈현이나 이창호 이야기만 나오면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마샤오춘이란 기사는 정말 불쌍할 정도네요-_-;
15/08/01 18:29
사제간에 새대교체가 이렇게 완벽하게 이루어진 경우가 있을까요? 10년을 치고박고 했으니까요. 희생자는 조훈현 9단 이었지만...
그 시기는 새대교체뿐만 아니라 신구조화도 완벽했다고 생각합니다. 조훈현, 서봉수에 이은 이창호 유창혁. 유창혁 9단은 정말 신기한게 아마추어 바둑기사로 시작해서 국제기전 성적에 비하면 국내기전 성적은 초라하다고까지 느낄정도지만 또 국내기전도 규모가 큰 대회에서는 곧 잘 우승도 하고 상금 사냥꾼 느낌이 물씬 납니다. 본문만 보면 이창호에게 희생 된 또 한명의 기사 같지만 국제대회 번기대결에서 이창호 9단에게 가장 많이 패배를 안겨 준 기사이기도 하지요.
15/08/01 19:49
유창혁 9단은 국제대회 결승에서 이창호 9단에게 이긴적이 없던걸로... 그리고 국제대회 번기 승부에서는 저 10년간은 전반적으로 이창호에게 강한 선수가 없었.... 오히려 전성기 시절 이창호 9단에게 그나마 가장 저항했던건 조훈현 9단이었습니다. 초대 춘란배 결승에서 제자의 국제대회 전관왕을 막은것도 조훈현 9단이었죠.
오히려 국내대회에서 이창호의 전관왕을 결사적으로 막은 것이나 이창호 전성기에도 자기 영역을 확보한 것이나 오히려 국내무대에서 이창호 9단 상대로 더 강했다고 보는게 맞겠죠. 유창혁 9단은 국제대회에서도 메이저 6회 우승으로 역대 5위에 랭크되어있는 만큼 국제대회 성적도 뛰어났습니다만 그 공격력과 경쾌함 만큼 안정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었죠. 그래서 4천왕 시절에도 중국이나 일본 기사들에게 세계대회 결승에서 진적도 여러번이구요. 이창호 9단이 최강에서 내려온 2005년 이후에는 뭐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15/08/01 19:30
2013년에는 중국이 처음으로 국제기전을 모두 휩쓸었죠. 이런건 한국의 전유물이었는데 중국의 신예들의 물량공세 앞에서 서서히 밀리다가 결국... 그래도 요즘 다시 한국의 최강이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박정환과 그에 못지 않은 김지석을 필두로 반격의 태세를 갖춰가는 모양새입니다. 이세돌-구리의 라이벌전도 한시대를 흘러간 느낌이라 이제 차기들의 시대가 도래하겠죠. 박정환이 최근 3년새 난립한 한-중 신예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세계대회 2회째 우승을 얼마전에 거뒀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김지석 역시 삼성화재배를 쟁취해내면서 국내 바둑계에도 활로가 생기고 있습니다.
중국의 집단연구 시스템으로 인해 그 인해장막에 시달리던 한국도 얼마전부터 바둑 선수촌 개념을 도입해서 국가대표 기사들을 좀더 강화된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유창혁 기사가 고생해주시는 듯.... 앞으로 한국 선수들의 선전은 물론 한중간의 치열한 대권 다툼, 그리고 일본의 희망 이야마 유타를 비롯한 일본 기계의 분전까지도 겹쳐서 흥미진진해질 것 같습니다.
15/08/01 19:29
진짜 바둑의 신이 있다면 그 신과 가장 가깝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전성기때 이창호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바둑이 수천년전에 생긴 이래로 역사상 최고라고 생각됨... 내 목숨을 걸고 한명한테 바둑을 두게 하려면 이창호.. 다른사람은 생각이 안남.
15/08/01 19:50
사실 농심배 5연승 이전에도 중국바둑계나 바둑팬들은 이창호를 신처럼 취급(?)했습니다. 그게 2005년 농심배 신화를 통해서 절정에 달했던 것이죠. 중국이 무협의 본산인 만큼 바둑기사들이나 표현도 무협지를 보는 듯한게 많은데 그들의 눈에 이창호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절대고수였으니...
15/08/01 19:55
사실 세계기전으로 위상이 가장 달라진 사람은 서봉수겠죠. 변방인 한국바둑, 일본에서 최고를 기대받다 돌아갔던 조훈현을 제외하고는 무시당했던 한국바둑이었는데요. 하지만 그 조훈현과 단 둘이 두다시피했던 것이 무려 10년... 조훈현의 응씨배 제패만해도 '조훈현'이 잘났었다고 볼 수 있었는데, 서봉수의 응씨배 제패는 정말 '한국바둑'의 지배를 선언하는 사건이었죠. 그것도 이미 괴물 이창호가 시야에 들어온 시기였는데.
저도 바둑은 전혀 못 두는데도, 이 시기의 바둑사를 읽는 것만으로 얼마나 재밌는지 모릅니다. 장르소설같아요.
15/08/01 20:12
이창호 선수의 마지막 불꽃은 응씨배 4강 vs 박정환 이었다고 봅니다. 1국 다 잡아놓고 박정환 선수의 신들린 흔들기에 미친듯이 흔들려서 내주고...2국 완패 ㅠㅠ
그때 응씨배 우승을 못한 박정환 선수가 얄밉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언제 또 이창호 선수에게 이런 기회가 올까하는 마음이 제일 아쉬웠는데 결국 그 후부터는 시드가 아니고서는 세계기전 본선무대를 밟지 못하네요. 국내기전은 매해 한개정도는 4강에 안착하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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