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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2/11 01:19:06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덕 있는 자의 땅 ③ 익양의 불길은 껐으나
장사군 익양.



관우가 손권이 장사,영릉,계양에 보낸 관리들을 쫓아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몽을 비롯한 장수들에게 군사 3만을 주어 보내자, 유비 역시 관우에게 1만의 정예군을 추가로 파견하고, 유비 자신이 공안으로 옵니다. 만일 직접 충돌이 일어났을 경우, 관우의 뒤를 후원하면서 북방을 직접 지키기로 한 것이죠.

그리고 선봉군인 관우는 장사군 익양에서 군사를 이끌고 온 노숙,여몽과 대치합니다. 어느 한쪽이 군사를 움직여 공격할 경우, 촉오동맹은 말 그대로 박살이 나는 것이죠. 그렇다고 조조가 세력이 약화되었느냐? 전혀요.

형주영유권 문제가 발생하기 전인 214년 7월에 1차 유수구 전투가 벌어지고 서로 군을 돌린 이후, 조조는 농서의 송건을 정벌합니다. 송건은 양주 농서군 포한현에서 연호를 고치고 백관등을 정하고 자신을 하수평한왕을 자칭하면서 세력을 넓혀왔죠. 조조는 하후연을 보내서 10월에 포한을 함락하고 송건을 목벱니다. 거기다 11월엔 복황후가 부친인 복완에게 예전에 보낸 서신을 적발해서 외척세력까지 확실하게 정리했고, 215년 정월에는 딸을 황후로 세웠죠. 거기다 장로를 정벌하기 위해서 저족의 군사를 격파했고, 5월에는 마초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양주 서평군으로 도망갔던 한수가 국연,장석등의 장수들에게 목이 베어져 그 수급이 조조에게 도착함으로서 옹양주 평정마저 끝나게 됩니다.

조조의 세력이 강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촉오동맹의 결렬과 그로 인한 형주 분쟁은 양쪽의 힘을 깎아먹기엔 충분했습니다. 특히 장제가 지키던 합비에서의 패배와 1차 유수구 전투로 인해 오의 국력은 상당히 소모된 상황이었고, 유비의 경우 촉 병합과 함께 혹여 있을지 모르는 반유비파 세력을 통합시키기 위해 오와의 전쟁을 이용할수도 있었죠.

오군이 촉군과 수상전으로 싸운다고 해서 무조건 이긴다고 할수도 없는 것이, 위가 흡수한 형주 수군은 규모는 컸지만 그 수군의 질에 있어서는 오 수군과는 비교할수 없었지만, 형주 수군의 주력은 황조, 그리고 죽은 황조 아래에 있던 황조 수군의 잔여병력을 수습해 다시 수군을 창설한 유기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기가 죽은 이후, 이 형주 수군은 자연스레 유비 밑으로 편입되었구요. 잘아시겠지만 황조의 수군은 오 수군을 애먹이기도 할 정도로 오군에 뒤지지 않은 강군이었습니다. 거기다 적벽처럼 상하류의 불리함이 없었지만, 강하군이 유비의 세력권이었다는 점은 오군으로서는 큰 위험이었습니다. 거기다 만일 형주를 통해 육상전으로 양동을 걸어온다면? 촉군의 주축인 유비군은 전투경험 하나는 조조의 최정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죠. 만일 이대로 전투가 벌어진다면 오는 말 그대로 개발살 날 뿐이죠. 손권은 이러한 계산도 없이 형주 영유권 문제로 유비에게 시비를 걸어버린 것이죠.

노숙은 골치가 아팠을 겁니다. 주유가 평소에 유비의 세력을 흡수하려한 이유도, 그에게 되도록이면 힘을 키울 근거지도 주지 않으려 한 이유도, 그들이 근거지를 얻자 최대한 저자세를 취한 것도 이것때문이었습니다. 노숙은 결국 이것을 대화로서 풀려고 합니다. 노숙을 문약한 선비로 알지만, 그는 문무에 모두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주유의 추천을 받아 오의 대도독이 된 것이구요.



물론 문무에 모두 뛰어났다고 해서 그를 후계자로 삼은 주유가 아니었죠. 노숙은 냉철한 판단력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숙의 적벽 결전론, 유비에 대한 영토 대여 등은 그가 대국을 보고 풀어나가는 눈이 정확하다는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 줍니다.

말이 샜네요.

노숙은 익양 인근에 진을 쳤고, 관우 역시 3만 병사중 정예 5천을 뽑아 상수 상류에 도하지점에 배치합니다. 시점을 보다가 바로 도하해 오군을 치겠다는 의미였죠. 노숙은 감녕과 상의해 감녕에게 군사 천명을 더해 1천3백명을 이끌고 예상 도하지점을 지키도록 합니다. 관우는 이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영채를 세우죠. 그리고 일단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노숙은 관우에게 회담을 요청합니다. 노숙과 관우는 익양에서 회담하되, 군사를 백보 뒤로 물리고 회담에 참석하는 장군들은 호신용으로 단도만 지니도록 하도록 회담조건을 내겁니다. 그리고 자리를 정해 앉는 순간, 노숙은 관우에게 따지죠.

노숙 : 오가 유비님에게 땅을 빌려준건 유비님이 곤궁해서 빌려준거임. 그런데 익주를 드시고도 형주를 내놓지도 않고 우리는 그냥 장사,영릉,계양 세군만 되돌려 받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힘드심?

관우 : 오림의 육상전에서 좌장군은 직접 군을 움직이셨기 때문에 협력해서 위군을 깨부쉈음. 근데 우리가 고생한거도 없이 형주를 먹었다고?

뭐 이런식으로 원론에만 도는 논의가 이루어지자, 관우를 수행해 따라왔던 이가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수행인 : 땅이란 덕있는 사람이 가지는 거지, 어찌 벽에 X칠 할때까지 가지려 하는가!

노숙 : 뭐 임마?

저 수행인은 병사라고 할수 있지만, 아마도 관우 아래에 편장 또는 부장이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연의에서는 저 발언을 할사람은 주창이라고 적어놓죠. 이렇게 또 서로 언쟁이 벌어지자, 관우는 칼을 잡고 벌컥 화를 냅니다.

관우 : 이는 국가의 일일뿐! 한낱 장수인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버립니다.

오서에서는 노숙은 아예 관우를 거의 깔아뭉개는 수준으로 말했습니다. 뭐 대충 요약하면 니네들은 우리가 도와줬는데 그거 잊고 탐욕때문에 형주 안내놓으니 천벌받을 거고, 니네 군은 약하고 아군은 강한데 싸울수나 있을거 같아...이런 식이구요.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바로 관우의 성격이죠. 정사에서는 관우를 평할때 만명을 당해낼 무예를 지닌 자이나 그는 자부심이 높고 오만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우에게 이렇게 면박을 준 사람 치고, 살아난 사람은 거의 없죠. 그렇게 면박 준 사람도 없지만요.



이후에도 관우나 유비가 군사를 움직여 오군을 공격하거나 견제하려했다는 기록은 전무합니다. 개인적인 추측이긴 하지만, 노숙이 공격하자는 여몽등의 과격파들을 달래거나 직위로서 눌러버렸고, 유비나 관우 역시 오 수군이 강하고 도하지점이 없다는 핑계를 들어 진을 쳐놓고 서로 관망만 했을 가능성이 컸을 겁니다. 그리고 앞서 정사에서 언급된 말들은 거의 형주 안내놓으면 전쟁 이라는 식의 언급이긴 한데, 아마도 이러한 익양대치와 이은 회담은 일방적인 형주 반환요구였다기 보다는 이후 상수를 기점으로 동쪽의 강하,장사,계양은 오가 차지하고 대신 상수 서쪽은 유비가 차지하되, 대여로 되어있던 남군은 대여가 아닌 영유권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보면 상호간에 의견조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숙은 촉쪽에서도 말이 통하는 인사로 평가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익양대치와 그에 이은 회담이 상수를 기점으로 해서 그 영유권이 재조정된데에는 215년 7월 위가 한중의 장로를 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같은 해 8월, 손권이 직접 출병하여 합비에서 장료에게 박살 난 점을 본다면, 익양 대치는 215년 5~6월 사이의 일인듯 합니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이러한 익양대치로 인해 촉오 상호간의 신뢰관계가 붕괴가 되었다고 유비를 간접적으로 깝니다만...글쎄요.

손권이 손을 뻗친 장사,영릉,계양은 엄연히 유비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 평정한 후, 영지로 편입한 지역입니다. 따라서 이곳을 내놓으라면서 관리를 임명해 보낸 손권의 행동은 엄연히 영토침입이고, 관우 역시 이러한 영토 침입에 대응해야했죠. 그리고 상호간의 군사력이 비등비등하다고 하더라도, 유비는 촉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병력손실이 다소 발생했지만, 마초를 합류시키고 이후 유장에게 무혈항복을 받아냄과 동시에 익주 평정이 거의 완료되는 상황이라 전력손실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손권의 경우 1차 합비전투의 패배와 1차 유수구 전투에서 발생한 동습의 익사와 수군 함선 7척과 수군의 손실, 그리고 서성군의 괴멸등으로 전력 손실이 발생한 상황이었죠. 거기다 손권이 요구한 형주 전체의 반환은 유비 입장에서는 받아들일수 없는 일입니다. 엄연히 손권이 대여해준 것은 남군일 뿐이고 형남 4군과 강하군도 내놓으라는 것은 거의 강도나 다름없는 짓이죠.

상수를 기점으로 영토를 분할하면서 양쪽의 분쟁은 거시적으로는 일단락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형주 문제가 외견상으로는 해결되자, 손권은 합비와 여강군, 그리고 양주로 나아갈 태세를 갖췄고, 이후 장료에게 처절하게 두들겨 맞았고, 2차 유수구 전투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217년, 촉오동맹을 실무자로서 체결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노숙이 사망합니다. 45세의 장년의 나이였죠.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사람은 여몽이었습니다. 하지만 손권이 원래 노숙의 후임으로 앉히려고 했던 사람은 여몽이 아닌 엄준이었습니다.



엄준은 서주 팽성사람으로 난을 피해 강동으로 왔다가 제갈근, 보즐과 친했고 같은 서주사람인 장소에게 추천을 받아서 기도위 종사중랑으로 관직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손권은 엄준을 노숙 후임으로 앉히려 하지만, 엄준은 이를 사양하죠. 엄준은 자신이 문사이며 군사적 능력은 없다고 말하며 이를 사양했지만, 군부에서의 위치는 여몽의 위치가 높았죠. 따라서 엄준 입장에서 군부의 주류파인 여몽을 제어할 수는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여몽은 손책때 병사로서 시작해 각지의 전장을 다니면서 공을 세워 한창태수 좌호군 호위장군으로서 서부전선의 책임자이기도 했죠. 결국 노숙의 후임은 여몽이 됩니다.

여몽은 노숙의 군사 1만명을 모두 자신의 군에 귀속시킵니다. 그리고 전임자인 노숙과는 반대되는 생각을 하죠. 형주를 모두 오에 귀속시키는 것이었죠.

마지막으로 동영상 하나와 링크 하나를 첨부할까 합니다.



http://blog.naver.com/smap789?Redirect=Log&logNo=10149526397&jumpingVid=75C19C1204313C395C8B3E18CECAAE499F65

재해석이라고는 하나...저는 재해석이 아닌 정사의 노숙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몇년만 더 살았다면...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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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11 01:31
수정 아이콘
삼국지 게임만 열심히 했더니 남군이 어딘지 모르겠네요 ㅠㅠ 남군이 강릉인가요?
근데 양양이나 신야는 유비가 병합하지 못했었나요? 형주의 중심이 양양 아니었나 -_-;;
12/12/11 02:15
수정 아이콘
남군은 강릉과 공안입니다. 게임상이라면 그냥 강릉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유비군은 형주에서 유기가 있던 강하만을 소유하고 있었고 손권군에게서 남군을 대여, 그리고 형남 4군을 차례로 병합했습니다.
본문에서의 익양대치로 강하, 장사, 계양을 양도하는 대신 남군의 영유권을 지켰고
그 후 유명한 관우의 북진으로 형북을 정벌하며 번성까지 때려부수며 올라갔죠.
그 다음은 누구나 아는대로 여몽의 뒷치기...
12/12/11 02:18
수정 아이콘
남군, 임강이라고도 하고 강릉이라고 읽는 곳입니다.
촉-오 사이에 걸려있는 지역에서는 남군이 중요한 요충지였죠... 형주의 중심.. 이라기에는 약간 애매하지만요.
12/12/11 07:45
수정 아이콘
두 분 답변 감사합니다~
후추통
12/12/11 09:09
수정 아이콘
글 쓰고 쓰러져서 자느라 피드백을 지금 올리네요... 형주는 크게 남양군(양양),남군(강릉),강하군(강하),장사군(장사),계양군(계양),무릉군(무릉),영릉군(영릉)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조조가 차지한 남양군은 형북으로 양양과 신야가 이에 속해있죠. 남군은 강릉과 공안(유강구)이 속해있는데, 남군의 영역은 장강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12/12/11 12:33
수정 아이콘
답변 감사합니다. 재밌게 봤던 부분이라 이번편은 몹시 기대가 크네용 흐흐
애패는 엄마
12/12/11 01:36
수정 아이콘
노숙님이 고생이 참 많으셨군요. 주변에 그리 속을 썪여대서 그렇게 일찍 돌아가신건지...
사티레브
12/12/11 01:55
수정 아이콘
딱 사년 조조의 자연사 그때까지 촉오관계가 긴장상태로 유지만 됐다면 정말 큰변화가 있었을텐데...
Marionette
12/12/11 08:53
수정 아이콘
다시 달리시는 군요 항상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본문에 11번이나 등장한 손제리는 일단 까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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