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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28 11:09:54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황장엽과 북한 민주화?
블로그 글을 정리하다가 황장엽씨가 죽은지 하루정도 뒤에 쓴 글이 있더군요; 부끄럽게나마 한번 올려보고 피지알러 여러분의 고견을 구합니다.

황장엽씨의 망명은 북한 고위공직자에, 거기다 당시 1994년 사망한 김일성의 뒤를 이은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발판을 마련한 주체사상의 이론적 주창자였기 때문에 황장엽씨의 망명은 꽤 큰 파장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성급한 보수 언론들은 북한의 내부 혼란이 극심해 곧 북한 정권이 붕괴할것이라는 기사와 논설을 마구 쏟아내기도 했지요.

특히 황장엽씨는 망명 이후, 가볍게 그가 수십년간에 걸쳐 세웠던 주체사상과 북한에 대한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김정일 정권을 직접 타도하여야 한다는 등의 과격적 발언을 하였고, 실제로도 미국 보수인사들과도 회합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남한으로 망명한 동기가 북한체제에 의분을 느껴 망명했다고 그의 수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만, 도대체 왜 1965년 김일성대 총장직을 맡은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고위직으로서 북한 권력의 단물을 빨아 먹던 그가 단지 하루아침에 '북한 체제에 가진 의분'만으로 97년 망명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 북한 체제는 황장엽씨 자신이 초안과 청사진을 제공한 주체사상 하의 북한인데 말입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황장엽씨 본인이 직접적 공격 목표를 삼은 사람은 다름아닌 김정일과 그의 후계자 김정은이라는 점입니다. 그 선대인 김일성에 대한 비난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김정일의 독재체제가 김일성보다 10배 더 심하다고 한적은 있지만, 황장엽씨는 여전히 김일성을 '존경한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김일성 시대 북한 최고학부의 총장, 북한 정치체제의 최고권위자, 노동당 대외정책비서까지 지냈고, 김일성 사망시 장의위원 명단 서열 26위에 오른 황장엽씨는 김일성이 사망한지 불과 3년만에 '북한 체제에 의분'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황장엽 씨는 '북한체제'에 의분을 느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제공한 거름과 토양에서 자란 북한 권력을 오로지 한 김정일 체제'에 대해 의분을 느낀게 아닐까요.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는 북한 지도층에게 큰 타격이었고, 탈북자의 증가와 내부 체제비판에 황장엽씨의 주체사상은 사상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주체사상 대신에 우리식 사회주의와 제한적 개방정책으로 북한의 경제난국을 타개하려고 합니다. 황장엽씨가 맹신했던 김일성 우상화와 주체사상의 한계점이었습니다.

이러한 황장엽씨의 실패는 1994년 김일성의 급사로 황장엽씨는 위치에 타격을 입습니다. 황장엽씨는 북한 내 정치계파 중 백두산 줄기라고 하는 김일성과 항일빨치산 유격대 계파, 만경대 줄기라는 김일성 부모의 친척 계파, 회령 줄기의 김일성 부인이자 김정일의 친모 김정숙 친척, 지리산 줄기라고 부르는 남한 공산당 인사들 출신도, 낙동강줄기라 하는 6.25 전쟁중 공훈자도 아니었습니다. 황장엽씨는 강원도 삼척 탄광에서 징용된 이후 해방을 맞이했고, 1949년 김일성대학 재학중 모스크바 대학으로 유학, 1954년 귀국해 김일성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습니다. 황장엽씨는 이른바 북한 내에서 어떠한 계파에 동승할수가 없었고, 단지 김일성의 후광에 의지해 북한 권력에 편승했습니다. 따라서, 김일성의 존재 유무에 따라서 황장엽씨의 권력향배가 결정되 있었습니다. 따라서 김일성에 대한 그의 충성은 확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정일의 북한 1인자 등극은 황장엽씨에 있어서 큰 위협이었습니다.

특히 황장엽은 1991년 조평통 위원장 허담이 91년 사망한 이후, 이 직위가 공석이 됩니다. 물론 북한의 1인 권력체제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행정공백을 피하기 위해 부위원장이던 황장엽을 위원장으로 올리지 않습니다. 김정일 은 197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이 된 이후, 노동당의 곁조직인 조평통을 관리했을 가능성이 높은 김정일이 위원장 공석상태를 봐두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위원장 자리를 공석으로 놔두게 됩니다. 조평통은 북한에서 대남통일문제에 관련된 일을 하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방북을 주도한 기관입니다.  노동당의 통일.대남 정책을 대변하며 주로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창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황장엽씨의 망명 이후, 황장엽씨가 맡은 대부분의 직위는 모두 양형섭이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형섭은 최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김정은 후계자설을 확인해주기도 했습니다. 주체사상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황장엽과 양형섭은 친 김일성 반 김정일 노선을 탄 황장엽과, 김정일의 후계 계승을 지지한 양형섭의 이후 일생은 황장엽이 권력에서 점차 밀려난 반면, 양형섭은  김정일의 측근세력으로서 김정은 후계자 추대에도 큰 공을 세웠을 거라 짐작됩니다. 즉, 김일성 사후에 기존 김일성 주체사상에 기여했던 인물들 중 반 김정일 노선 인사들은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와 경제정책 실패를 들어 숙청 또는 처벌하려 했을 겁니다. 거기다 황장엽과 김일성 측근세력들은 김정일의 권력 승계과정에서 이에 크게 반발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권력승계에 딴지를 걸었던 이들을 가만 놔둘 김정일은 아니었겠지요.

황장엽씨가 망명한 이후, 김정일은 황장엽씨의 망명을 두고 굉장히 격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97년 2월 12일 중국에서 한국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한 이후, 5일만인 2월 17일, 김정일은 배반자는 갈테면 가라고 발언했고, 망명직후 황장엽씨의 직계 가족과 황장엽씨와 관련된 인사등 2천여명을 숙청했다고 합니다. 97년 3월 5일 김정일은 황장엽씨가 가족을 버리고 망명한 것에 대해 크게 반응하지 말라고 한 발언이 있었습니다. 자, 2월 12일 망명 신청, 97년 4월 20일 한국 입국 2월 12일을 기준으로 잡더라도 단 한달도 안되는 시점에서 황장엽씨와 관련된 사람들 2천여명을 모두 숙청할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이미 숙청시킬 만반의 준비를 했다가 황장엽씨의 과거행적 중 문제점을 삼아 숙청하려 했을 것입니다.

거기다 왜 하필이면 망명이었을까요? 정치적으로 탄압받는 인물로서 그 탄압을 피하기 위해 타국이나 제 3국으로 피신하여 보호를 요청하는 것을 망명이라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북한 간첩이나 무장공비들은 귀순했지요. 귀순은 적대적 국가의 국민이나 적대적 인물이 귀화하는 것을 귀순이라 합니다. 즉 황장엽씨는 주체사상과 김일성 우상화의 사상을 가지고 온 정치적 망명자였습니다. 황장엽씨는 단지 자신을 권력층에서 밀어낸 '김정일 치하'의 북한체제를 공격한 것이지, 자신이 세웠던 '김일성 우상화와 주체사상'의 북한 체제를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의문점이 듭니다. 황장엽 같은 고위급 인사가 망명했는데 황장엽씨는 굳이 미국이 아닌 한국을 망명국으로 택했을까요? 작고한 이연길 북한 민주화협의회 회장은 인터뷰에서 '북한도 내 조국, 한국도 내 조국 미국엔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국대신 왜 위험한 한국으로 온 것일까요? 자신이 그렇게 위협을 느껴 망명할 정도였다면 미국으로 망명하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입니다. 당시 97년 미국은 대선중이었습니다. 당시 연임을 노리던 클린턴은 황장엽을 받아들여 선거전에서 우위에 설 확률이 높을 수 있는데도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 망명 제스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습니다.

황장엽씨는 일견 노동당 고위직 인물이긴 하나, 주로 황장엽씨가 역임했던 직위는 최고인민회의 의장, 사회과학협회 위원장,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주체사상연구소장, 조평통 부의장을 역임했습니다.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한국의 국회의장, 사회과학협회 위원장은 사회과학연구소의 소장,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이 직위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조평통 부의장은 노동당 아래의 통일분과위원회 부회장입니다. 하지만 이 직위들은 사실 단지 허울만 좋은 직위일 뿐입니다. 최고인민회의는 결과적으로 국정 전반상황을 노동당이 결정하면 이를 추인하는 기관에 불과하며, 사회과학자들은 단지 학자들이기 때문에 정치적 현안에 대한 발언권이 없으며, 조평통은 대남 선전정책을 노동당의 결정을 조평통 명의로 외부에 대변하는 기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황장엽씨는 이른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습니다.

황장엽씨가 북한의 정치 정세에 어두웠던 가장 단적인 예는 바로 김정일의 후계구도에 대한 발언때 김정일 유고시 김정남이 장성택과 중국의 도움을 얻어 권력을 승계할것이라고 2008년 9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헌데, 황장엽씨는 2003년에 김정일의 후계자로 2남 김정철을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한된 북한에 대한 정보 부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장성택과 김경애가 김정남을 지지할것이라는 주장은 일견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북한 정세에 대해 초보자 수준에 불과한 제가 봐도 말입니다. 김정남의 출생과정이 그다지 당당한 것이 아니었고, 김정남은 주로 외국으로 나돌아 다녀-설령 이것이 위장이더라도-북한 내부에서도 평이 좋질 못했습니다. 거기다 장성택은 많은 독직사건과 방탕한 생활로 김정일의 분노를 사서 일선 산업현장감독으로 자주 좌천된 상황에서, 그가 끝까지 김정남을 지지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몇가지 이유 아래, 황장엽씨가 북한 내부 최고위층 권력향배와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가졌을 정도의 실권을 가지지도 못했다는 것을 미국 정보부가 파악했고, 미국 정부는 이 정보를 기반으로 황장엽 망명 수용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을 했었고, 황장엽씨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황장엽씨는 미국의 북한인권에 관련한 수전 숄티의 NGO 디펜스 포럼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보수 언론들은 이것을 미 하원의 초청이라고 했으나 미 하원은 이것을 부인했습니다. 거기다 한국과 미국의 과격활동가들은 황장엽씨를 수반으로 하는 북한망명정부 수립을 선언하려 하였지만 아직까지도 그것이 성립되지 못했습니다.

황장엽씨는 한국으로 망명하면서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외쳤지만, 결국에는 그의 활동은 한국의 보수과격파가 중도와 중도보수, 그리고 경제적 좌파들을 친북용공세력으로 낙인찍는 전가의 보도로 이용되었고, 북한정권의 해체를 주장했지만 그에 따른 어떠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내놓지 않고 대안없이 김정일 독재에 대한 공격으로 일관했고, 탈북자들을 관변 노선으로 이끌었습니다.

도대체 황장엽씨가 북한 인권개선과 평화통일에 어떠한 공로와 업적이 있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탈북자 단체들을 관변단체로 만들어 버린 것(북민회)은 황장엽씨가 비판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적어도, 황장엽씨가 국립 현충원에 묻히기 위해서는 황장엽씨가 단지 '고위직 인물'로서 탈북한 '공'이 국가 유공자로서 현충원에 묻힐수 있는 충분한 이유인지, 아니면 황장엽씨가 북한의 실정과 남북한의 화합과 평화적 통일에 기준점과 판단 근거를 확립하고 정당한 방법을 통해 이 기준점으로 남북한의 평화통일에 기여했는지 현 정부가 공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단지 김정일을 '디스'했다고 현충원에 묻힌다면, 그리고 고위직으로서 탈북, 망명함으로서 국가유공자가 된다면 이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고 다쳐가며 국가와 국민을 지키다 가신 호국영령들께 저승에서 부끄럽고, 우리의 아이들과 후손들이 조상들의 추태를 어처구니 없는 일로 말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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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BBbr
12/11/28 11:14
수정 아이콘
한국판 최덕신이죠 뭐 -_-a
cadenza79
12/11/28 17:43
수정 아이콘
딱이네요.
최홍희 : 혁명렬사릉
최덕신 : 애국렬사릉
황장엽 : 국립묘지
루크레티아
12/11/28 11:28
수정 아이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것 뿐이죠.
고위층이 왔으니 남한 상부에선 선전용으로 써 먹기 좋아서 이용했고, 황장엽 본인으로서도 잘 먹고 잘 사는 셈이니 괜찮은 거래였고요. 다만 현충원에 묻힌 참전용사들의 넋이 그를 곱게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입니다.
구밀복검
12/11/28 11:36
수정 아이콘
뭐 결과적으로는 줄을 잘 선 셈이 되었죠. 장군님 줄보다 수령님 줄보다 더 튼튼한 줄...
12/11/28 11:37
수정 아이콘
말씀처럼 황장엽과 같이 특정 계파나 세력을 등에 업지 않은 실무형 상위층에게
김정일 체제는 지옥과도 같았겠죠.

김일성도 독재자였지만,
어쨌건 최소한의 시스템은 돌아갔습니다.

당대회.. 는 김일성 죽기 오래 전부터 끊긴지 꽤 됐지만
당중앙위원회는 김일성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유지돼 왔죠.

역사로 치면 육조직계제가 아니라 의정부 서사제에 가깝다고 할까요?

물론 최종 결정권자와 최고 권력자는 김일성이었지만
적어도 당이 결정하고 국가가 이를 따르는 당-국가 관계는 형식상으로나마 지켜지고 있었죠.

그렇지만 김정일이 최고 권력자에 오르고 난 뒤 김정일 죽을 때 까지 단 한 번도 당중앙위원회 전체 회의가 열린 적이 없습니다.
(죽기 직전에 열린 적 있나..? 김정일 말미에는 좀 아리까리하긴 하네요)
덕분에 당중앙위원회 위원들이 죽어도 위원직을 몰수하거나 교체하는 것 없이 그냥 위원직이 유지되죠.
한마디로 개판인겁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상관없었죠. 왜냐면 당중앙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을거니까 -_-
시스템이 사라진겁니다.
김정일이 정하고, 아래는 따르는 겁니다.
(김정일 죽기 직전인가 죽은 직후인가 당중앙위원회 위원을 싹 한 번 물갈이 하긴 했죠. 시스템으로 김정은을 받쳐주려고.
그렇지만 여전히 당중앙위원회 전체 회의는 개최되지 않고 있다는 건 함정..)

이런 상황에서 빨치산 활동을 같이 한 빨치산 유격대 계파(그 후손들)도 아니고,
김씨 일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김씨 일가의 가신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황장엽 같은 사람은 밀릴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봅니다.

* * *

그리고 김정남 재산이 싹 다 몰수됐는데 김정남이 지금 저렇게 해외에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장성택이 지원해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뭐..
카더라 수준의 신뢰성을 가진 이야기인데
장성택이 김정남을 후계 구도에서 지원해 줬을 수도 있겠죠..

* * *

육조직계제가 맞나요
육조 직계제가 맞나요?
(띄어쓰기 하는게 맞을까요..?)
루크레티아
12/11/28 11:42
수정 아이콘
육조 직계제가 맞습니다.
한문으로는 다섯 글자를 죄다 붙이는데 한글 맞춤법으로는 띄어서 쓰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예전 국사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김익호
12/11/28 11:40
수정 아이콘
정말 이 사람이 왜 현충원에 묻혔는지 의아합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어버이 연합 같은 수꼴단체들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도 의아합니다.

저런 빨갱이가 어찌 현충원에 묻힐 수가 있는 것인지.
이 사례롤 볼때 수구 세력들은 정말 북한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맛에 맞게 북한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2/11/28 11:47
수정 아이콘
12 / 19 = 63% 의 단락 첫 혹은 둘째 단어가 '황장엽' 이네요. 나는 왜 이런데 신경을 쓰는 것일까요.
후루꾸
12/11/29 02:39
수정 아이콘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반복을 피하는게 글을 좀 더 '보기좋고 이쁘게' 쓰는 스킬 맞습니다. 특히 서양애들은 그런 데에 환장하죠.

(저는 이런 글을 쓸 식견도 없고 필력도 안되지만) 그런 부분을 부드럽게 바꾸면 좋은 글이 더 좋은 글로 바뀌겠지요.
타테시
12/11/28 11:58
수정 아이콘
김정일 체제가 황장엽 같은 인사들에게는 지옥이었겠죠.
대표적인 당 인사였는데 김정일은 당 우선이 아니라 군 우선의 체제를 강조했으니까요.
그로 인해서 자주 왔다갔다 거리기도 하고 무리수도 무진장 던져댔고...
그래서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에는 중심이 다시금 당으로 가고 있죠.
가만히 손을 잡으
12/11/28 11:59
수정 아이콘
진성 빨갱이를 국립묘지에 묻어줬죠. 이거 추진하는거 보고 이 사람들은 보수가 아니고 그냥 자기이익만 쫓는 사람들인걸 알았습니다. 황장엽에게 속된 말로 김일성 욕이라도 한 번 시켜보던가!
히히멘붕이
12/11/28 13:41
수정 아이콘
자신이 제공한 거름과 토양에서 자란 북한 권력을 오로지 한 김정일 체제 -- 이 말 뜻이 이해가 가지 않아요. 뭔가 중간에 빠트리신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12/11/28 14:44
수정 아이콘
황장엽씨는 확실히 그냥 정치적 망명자란 느낌이 들고, 그에 걸맞게 남한에서는 보수당에 맞는 발언을 많이했죠.
뭐 예비군 훈련만 해도 툭하면.. 황장엽씨의 발언이 정신교육시 단골 멘트인으로 언급됩니다.
저도 아무리 생각해도 현충원에 묻힐 사람은 아니라 봅니다. 옆에 묻힌 625 전사자분들이 우습게 되지요.
애패는 엄마
12/11/28 16:2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어서 추천하려고 하는데 추천이 안되네요
확고한신념
12/11/29 18:56
수정 아이콘
황장엽씨가 국립묘지에 묻힌것은 근데.. 정치적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요?
북한의 고위 간부가 충분이 한국에서 대접 받는다는것을 보여줘서,
북한의 고위층을 흔들라는 고도의 전략으로 봤는데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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