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의식의 흐름과 치료
의식의 흐름을 글쓰기치료에 적용하여 생각과 느낌이 떠오를 때 그것들을 그대로 좇아 종이 위에 써 내려가는 기법
분야 문학치료(글쓰기치료)
[의식의 흐름 글쓰기는 반자동글쓰기처럼 글쓰기를 어렵게 하는 내면의 검열관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도움을 주는 글쓰기치료 또는 저널치료기법이다.]
즉,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의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느끼고, 듣고, 인지하고, 감각하는 대로 글을 쓰는 것이다.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의식의 연속성을 강조한 용어인 ‘의식의 흐름’은 심리학 분야에서 제임스(W. James)가 『Principle of Psychology』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심리치료와 관계를 맺었다.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74653&cid=62841&categoryId=62841
#2
소설을 공부할 때 가끔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생각한다’는 말인 것 같은데, 결국 모든
소설은 작가의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쓰이는 것이니 모두 이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의식과 무의식의 연상작용을 서술하다
‘의식의 흐름’은 모더니즘 소설에서 주로 사용하는 소설의 기법 중 하나입니다.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기억, 자유 연상, 마음에 스치는 느낌을 그대로 적는 기법으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 세계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눠서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정신작용을 연구한 학자이지요.
그는 연구를 진행할 때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게 했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평소에 자기 스스로 억눌러 온 감정이나 기억을 자연스럽게 꺼내 놓게 됩니다].
모더니즘 소설에서 의식의 흐름은 프로이트의 이러한 연구 방법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기억, 느낌 들은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나타나지 않습니다.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80635&cid=47319&categoryId=47319
...
먼저 위 내용은 제가 찾아볼 생각 해보지 못하고 검색도 해본적이 없는데 우연하게/뜬금없이 잘못터치(조작)되었는지 페이지가 열리고 내용을 확인하게 되었던 내용이네요. 의식의 흐름이라 단지 온라인에서 나온 말인 줄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더는 이게 치료에도 활용하고 신선했었네요.
그리고 저장용(보관)으로 쓰는 개인 sns에 저장했고 그래서 날짜를 보니 07월 28일이어서 지금 놀랍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왜냐면 저의 복귀 하루 전날이었으니
전에 생각했던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이라 저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왜냐하면 부정적으로 표현된 것 같아서요.
저라면 글쓰기의 무거움이란 표현보다는 글쓰기의 배려버튼? 이 좋아보이는데요. 다만 초기에 전 배려를 하지 않았다고 저도 생각하죠. 그러나 먼저 작성자가 혹시 청자/독자들에게 가독성있게 읽혔을지 고민하니까 배려로 봐도 좋을 것 같고 글쓰기의 무거움보다는 어렵지 않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PGR에선 너무나 예의을 갖추신 분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아마도 너무 많은 고민을 한다는 게 함정이겠구요?
글쓰기 버튼은 게시글과 댓글 작성란에도 있다는 진실(사실). 그런데 게시글만 보고 생각하는 착각이 있지 않나 싶네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바라는 건 한 점에서 모이지 않나요? 그것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것은 행복이란 관점에서 공유되는 점이 아닌가 생각돼요. 그런데 왜 나는 행복하길 바라면서 또 다른 자신에게 상처 주고 불행하게 만들까 생각해봅니다.
한 번 모두 '내면의 검열관이란 빗장을 풀고 때때로 스스로를 돌보았으면 바랍니다'.
또 다른 자신이 행복하다면 나 자신도 행복합니다^^
*2016년도에 자각하게 된 저의 깨달음인데요.
아팠어요. 타인의 아픔과 슬픔에 저도 공감을 하게되니 나도 슬프구나. 아 타인도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구나 생각을 해봤었네요.
아마도 PGR 여러분들도 그러했을 거라 생각을 해봅니다.
* 이번에 새삼 생각해 본 게 있는데요.
한강에 대해서 젊음?이라고 현재의 제게 떠오르네요 감성적으로 만드는 물(강)도 있고, 막연히 내 마음에 품었지 않나 싶네요. 물론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대학생 때 동성 친구따라 단둘이 갔었던 곳이었나 기억해보고 한강을 지나는 전철에서는 언제나 넋놓고 잔 물결이 햇볕에 반짝반짝 찰랑이는 한강을 바라보는 게 그렇게 좋았네요. 그랬던 제 마음에 장소(한강)이었으나...누군가는 한강에 자신을 버리기도 하거나 누군가에게는 아픔과 슬픔의 장소(한강)일 수 있었구나. 생각해보며 막연한 동경의 마음은 거두게 되었네요. 그리고 마음으로나마 공감하면 좋겠다 생각을 해봤네요.
그럼 이제 6시간 남은 오늘 하루 편안하게 보내세요^^
추가08051835 헐...
음 뭔가 이상해서...긴가민가 2014로 검색하니
2016이 아니었네요..이러면서 뭘...또 다른 자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둥... 또 부끄럽네요;
추가08061401
의식의 흐름은 내적 고백과는 다릅니다. 내적 고백은 의식적으로 통제된 생각이어서 문법과 일관성과 논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의식의 흐름은 의식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문법에 어긋나거나 일관성도 논리성도 없는 문장들이 줄 잇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 나타난 이상의 「날개」
의식의 흐름 기법이 나타난 소설들은 읽기가 불편합니다. 일관성도 없고 우연적인 데다가 의미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는 것 같아서 이해하기가 어렵지요.
...
주인공이 자본주의 사회에 녹아들지 못한 채 그것에 억압되어 정신적인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자본주의에 저항할 힘도 없고 그렇다고 돈만 중요하게 여기는,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주인공의 정신적인 혼란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분열증적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기에는 의미와 맥락이 잘 통하거나 문법을 잘 갖춘 표현보다 오히려 비문법적이고 뜻을 파악하기 힘든 표현들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의식의 흐름은 바로 이런 점에서 인물의 내면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80635&cid=47319&categoryId=47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