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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7 15:17
언제나 잘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날인 5월이 2주도 안남았습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진심으로 왜 그때 산에 올라갔냐고 물어보고싶네요...크크크
18/04/17 17:51
제가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다면 세 가지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주라기로 돌아가서 공룡들을 직접 보는 것. 둘째는 가정 전투로 돌아가서 망할 놈의 마속을 암살하는 것. 셋째는 반 년 전으로 돌아가서 전재산을 잡코인에 몰빵한 후 금년 1월에 현금화하는 것......ㅠㅠ
18/04/17 15:22
강동의 쥐 손권의 비상은 다 유비세력의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에도 언급된 유비세력의 황금기인 [촉 입성 / 한중왕 등극 / 형주군단 관우]의 정립은 적벽 이후 손유 연합군의 전리품인 형주 문제에 대해 유비세력측의 유보와 억지 손권세력측의 양보와 인정으로 이루어졌는데 유비세력의 처리가 없었지요 익양대치로도 못푼게(익양대치의 결과가 형주소유권에 대한 해소였다고 보는건 또 억지일테고) 화근으로 돌아온것이라봅니다
18/04/17 15:49
뭐 그런 것도 분명 있긴 한데 그 이전에 합비에 설치된 쥐덫만 제대로 터트렸어도 대국의 흐름이 상당히 달라졌을 듯...
덫을 못 넘으니 형주 쪽으로 셀프외통수 걸려버려서 ㅠ
18/04/17 16:00
적어도 익양대치 후에 형주 분할 이후에는 형주에 대한 소유권 분쟁은 끝났다고 보는게 옳습니다. 유비가 무턱대고 형주를 강제 점령/조차한 것도 아니고, 동오가 어거지로 형주를 내놓으라 한 것도 아니라서 서로 명분이 있었기에 그 정도에서 절충한 거거든요. 적어도 그 이후에 동오가 "원래 형주가 우리껀데 유비놈이 뺏어갔다!" 라는 식으로 프로파간다는 안 했습니다. 관우는 그냥 통수를 친 거에요.
18/04/17 17:50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형주분할이 유비의 일방적인 억지와 손권의 일방적 양보도 아닐뿐더러, 명분이라면 양쪽 모두 차고 넘칠 정도로 있었죠. 오히려 익양대치를 통해 형주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심지어 그 때는 유비가 더 불리한 상황이었어요. 여몽에게 이미 형남 세 군을 점령당했을 뿐만 아니라, 조조가 한중으로 온 통에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맺은 협약인데 그걸 어기고 뒤통수친 건 손제리죠.
18/04/17 17:53
지난 글에 출처를 적어두었습니다. 주니의 삼국지 세상(http://blog.naver.com/sjkim2090)에 beermania님이 올리신 것이며 여러 가지 색깔로 된 글자와 붉은 화살표는 제가 덧붙인 것입니다.
18/04/17 16:07
삼국지 처음 봤을때 저기까지 읽고선 이제 해피엔딩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죠...근데 거기서 왜 쥐가 나오는 거냐.
여몽의 관우 뒤치기는 형주 땅을 먹는 전력으로는 성공했지만, 결국 위(진)에게 먹히는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 버렸죠. 그 점에서 치명적인 실수라고 봅니다.
18/04/17 16:27
그렇죠.
다만 이 옆에 보좌해줄 머리가 있어야 했는데 촉정발과 동벌기간의 10년간 방통 법정이 차례차례 죽은게 너무 컸습니다. 둘다 요절하기도 했고... 머리가 아니더라도 좀 이 성질머리를 제어해줄 양반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18/04/17 17:55
거의 사십 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전장을 누비면서도 살아남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해 줄 만하죠.
(이릉 전투요? 인간적으로 그건 뺍시다. ㅠㅠ)
18/04/17 17:57
현실은 촉나라 몰살....
219년 관우 사망 220년 황충 법정 사망 221년 장비 사망 222년 마초 사망 223년 유비 사망 심지어 이중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은 한사람 뿐이죠. 어떻게 이런 몰살이 있을 수가 있나요.
18/04/17 16:21
참 위에서 이야기 못했는데
최훈아재의 삼국전투기에서 이 대목의 유비의 반전에 정말 전율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늘 조조를 잡는다...! 해당 부분만 10번은 다시 본거같아요.
18/04/17 16:22
오나라가 뒤통수만 안쳤으면 초한지 한번 더 쓰는건데 말이죠.
아니면 꼭 유비가 이기지 못해도 세력권 2분할한뒤 총력전이라 이야기가 더 재밌었을듯
18/04/17 16:27
옹양주만 먹었어도 레알 개꿀잼 한타각인대 손가놈 때문에 삼국지 흥행망하고 남은건 승상님 똥꼬쇼뿐 ㅠㅠ 저때 옹양먹었으면 마속이 등산했어도 귀싸대기로 퉁칠수있었을것을 ㅠㅠ
18/04/17 16:56
손권이 뒤통수만 안쳤어도, 관중은 먹었을 가능성이 있건만.
관중만 먹었으면, 그뒤는 사마가와 조가의 내부싸움이라 버틸수도 있었건만..... 희망이 보인 순간에 뒤통수 후려치는 바람에 스노우 볼링이 끝도 없이 굴러서 결국 5호 16국시대가 와버렸으니, 역사를 아는 촉빠는 손권한테 욕해도 인정합니다.
18/04/18 09:47
5호16국은 진나라 바보황제 가 원인이지요. 유비가 촉한으로 삼국통일 했더라도 제갈승상 사후 유선이 정무를 수행했다면 5호16국이 재현되었을거라고 봅니다
18/04/17 23:43
제갈량이 더 오래 살았고, 더 보여준 것이 많기 때문에 클래스가 비슷한지를 논하기가 쉽지 않기는 합니다만...
정사에서 입촉 당시 방통과 제갈량은 같은 벼슬인 군사중랑장이었습니다. 인재 보는 눈이 탁월했다는 유비의 안목을 기대서 생각해보면... 정사에서도 유비가 자신과 수어지교라 일컬은 제갈량과 같은 벼슬을 줬다는건, 사실상 동급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되지요. 그리고 정사에서 방통이 고집피는 유비를 유려하게 설득하는 장면이 꽤 나옵니다. 유명한 상중하책 드립이라든가(상중하라고 했지만 결국 중책밖에 고를게 없는 답정너 설득) 부성 차지하고 노니는 유비를 우회해서 질책한다던가 하는 등, 유비보다 한참 어린데도 마치 선생님같이 유비를 다루는걸 볼 수 있지요.
18/04/17 19:54
어렸을 때 코에이 삼국지하면 유비빠였던 전 신야시절부터 한중왕 즉위시절 시나리오까지만 주구장창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관우가 뒤통수만 당하지 않았어도 통일왕조가 훨씬 늦게 등장했거나 5호16국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가 열렸을지도 모를 것 같아요.
삼국지정사는 흥미롭고 재밌으면서 한편으로 부럽습니다. 수백년을 이어온 우리 삼국의 기록은 삼국사기를 합쳐서 주변 국가의 사료를 합쳐 책으로 엮어봐야 3권이나 될까요...
18/04/17 19:56
궁금한게 관우가 형주 북부 진격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촉에게 장안으로 진격할 여력이 있었을까요? 창천항로를 보면 한중공방전이 촉 입장에선 영혼까지 끌어모은 한타 러쉬로 묘사됐었죠.
18/04/17 20:00
관우의 형주 북부 진격의 성공을 전제로 하면 장안 진격 여력이야 넘치지요 위국은 관우의 진격에 천도를 했을테고 연서주면 몰라도 옹양주 장안은 그에 비해 방어선이 얇아졌을 겁니다
18/04/17 20:33
물론 진령산맥을 넘어 위수를 건너 바로 장안 진공 이러면야 대평원에서 위군의 밥이 됐겠지만
옹주 양주 쪽으로 진격해서 장안의 주변을 메꾸는 식으로 갔다면 좀 더 유리하게 다음 세대를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기대해보는거죠.
18/04/17 21:04
글곰님이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해준 몬스터와퍼 차냥해!!
팁으로... 와퍼에다가 패티 추가해서 드시면 꿀맛입니다? 혈관에겐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18/04/17 22:41
글곰님의 전개속도를 보니
다가오는 가정의 달에는 어떤 연재를 하게 될지 보이는것 같습니다. 가정의 달 특집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8/04/18 00:43
개인적으로 유비의 최전성기라고 생각하는 한중왕 시절이네요. 저 이후로 법정이 너무 일찍 요졸한게 매우 큰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당시 내부적인 정치는 제갈량이 담당하고, 외부적인 영토확장이나 군사적인 부분은 법정이 담당했는데 법정이 죽은 후로 제갈량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너무 할일이 많아졌죠. 유비의 익주 입성 이후의 행보를 보면 방통이나 법정 둘 중에 한명이라도 남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항상 남네요.
18/04/18 02:20
기본적으로 조조가 악역이었던게 유비 승천의 큰 원인이었지요.
사실 후세에 재평가되었다지만 유능함을 제외하고 조조가 저지른 학살이 동탁과 크게 다를 바 없으니 민중의 입장에서도 조조가 달가울 리 없고, 지배층 입장에서는 툭하면 죽이는데다 이데올로기도 안맞으니 이건 동탁보다 더한놈이고. 그런데 유비는 '착한놈'이네? 내면이야 어떻든 유비의 포지션은 선과 악에서 선의 포지션이니까요. 만약 유비가 승리했더라면 진짜 잔혹한 군주 중에 한명으로 기록됬을 겁니다.
18/04/18 02:46
그러게요 크크. 그나마 위나라(를 이어받은 사마씨)가 이겼기때문에 망정이지 정말 위나라가 멸망당하는 상황이였으면 조조는 희대의 살인마로 기록됬었겠군요. 그건 또 생각을 못해봤었네요
18/04/18 02:45
삼국지, 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삼국지를 보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게 보통 반동탁연합군부터 군웅할거 시기인데, 실질적으로 삼국이 대립하는 순간 중 가장 치열했던 순간이 바로 이 시기가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촉나라가 위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기도 했구요. 사실 전 개인적으로 마초가 가장 궁금한데요, 물론 연의를 통해서 처음 삼국지를 접했기때문에 마초의 장비와의 일기토 장면, 금마초라는 별명등은 연의의 창작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나름 무력도 있고 통솔력도 뛰어났던 인물이 촉나라로 가고 난뒤 거의 사라지다 싶은게 참 의외라면 의외였습니다. 오호대장군이 아무리 명예직이라지만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 이렇게 다섯명이 뽑힌 이유는 이유가 있을 것같았는데 조용히 사라져버린.... 아니면 활약을 못했던 건지. 어렸을때는 서량에서 뛰어놀다가 촉(산지)로 가서 맥을 못춘건가 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말이죠 크크
18/04/18 07:18
오호대장군은 소설에만 나오는 개념이고, 실제로 전좌우후 사방장군에 각기 관우 마초 장비 황충이 임명되었죠. 이후 본문에도 나온 하변의 양동작전을 이끌었습니다. 유비의 즉위 이후 무려 표기장군으로 승진하는데 실권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지위로는 승상 바로 아래고 거기장군 장비와 동렬 혹은 약간 위입니다. 다만 더 이상의 전공은 없고 222년에 사망하네요. 스트레스로 인한 분사라고 추측합니다. 고작 마흔일곱살이었으니까요.
마초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건 전장에서의 활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초가 일찍 죽어버린 탓에 활약할 기회를 잃었다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요. 마초가 받은 대우를 볼 때 오래 살았더라면 분명 활약이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18/04/18 08:51
유비와 동렬의 제후급인데다 그 명성만으로도 아직 체제가 완비되지 않은 유비에겐 너무 부담스러운 존재였죠. 어디까지나 지형에 의존한 수비전이었던 한중공방전의 유비 평가를 감안하면 조조와 정면으로 맞상대해서 한때 수세로 몰아넣었던 군사적 역량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인물이 허울뿐인 명예직만 전전하며 정작 제대로 된 전장 한 번 못나갔으니.... 마초의 죽음은 분사라고 봐야겠죠.
18/04/18 08:13
역사를 이렇게 재미있게 전달해주시는 분들 항상 부럽습니다. 저는 공부하면 할수록 더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 같거든요.
좋은 글 감사드리고,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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