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무현이 좋다. 그동안 일상 속에서 이 한마디를 하기가 참 어려웠다. 부끄럽거나 창피한 건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좀.. 그냥 "너 친노냐?", "너 노빠였냐?"라는 말 속에 담긴 섣부른 시선과 재단이 싫었다. 나는 그냥 노무현이 좋은데. 친노가 죄도 아니고 노빠가 흉도 아닌데. 이 사회의 누군가는 그 마음을 너무 함부로 대하고 쉽게 곡해하는 것 같아, 그게 나는 싫었다. 나의 소중한 것을 함부로 대하는 이 앞에서 그것을 내놓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서 숨기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으로 노무현을 좋아했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이명박을 미워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꾸밈없고 씩씩한 남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꾸밈 많고 비열한 사람의 정권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게 그의 서거 이후 7년 만에 극장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우리 동네 극장에서는 상영을 하지 않아 옆 동네인 산본 롯데시네마까지 홀로 찾아가야했다. 퇴근길에 영화를 보러간다는 내 얘기에 무슨 영화냐며 직장 동료들이 호기심 가득 물었다. "노무현 다큐 영화예요." 라는 짤막한 대답에 뭐 그런 걸 보냐는 듯 시큰둥한 반응들이 이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노무현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에 나 혼자 설렜다. 극장 안에는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았다. 남자 관객 중에는 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해보였다. 나는 가장 선호하는 가운데 통로 쪽 끝 좌석에 몸을 깊숙이 묻고 그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영화는 노무현과 백무현, 두 무현의 이야기였다. 노무현이 출마한 2000년 제 16대 총선 부산과 지난 20대 총선 故 백무현 후보가 출마한 여수를 오고가는 두 도시의 이야기.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렇게 두명의 무현이 하나의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났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故 백무현 후보의 선거 이야기도 무척 인상 깊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부산 북 강서을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16년 전의 풋풋한(?) 노무현의 모습이 화면에 나올 때가 가장 반갑고 좋았다. 힘차게 연설을 하다가 할말을 까먹었다며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모습도, 다방에서 언몸을 녹인 후 나가는 길에 잠에서 깬 다방손님을 붙들고 푹 주무셨냐며 선거운동(?)을 하는 그의 엉뚱한 모습도, 동네 어린아이들을 붙들고 집에 가서 “아빠, 2번이 좋대요.”라고 하라며 시키던 그의 정겨운 모습도 다 좋았다. 그리고 지역감정 타파를 향한 자신의 정치철학을 소신있게 설명하는 그의 강직한 얼굴까지. 변함없이 꾸밈없고 소탈하며 씩씩한 영상 속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금껏 그를 좋아한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그래, 내가 이래서 노무현을 좋아했지. 괜시리 웃음이 났다.
그렇게 흐뭇한 표정으로 영화를 관람하던 나는 그를 추억하며 눈물짓는 이들의 회고를 들으며 마음이 슬퍼졌다. 그 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전담 사진사였던 정철영님은 정권이 바뀐 후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MB정권에 남았을 때, 주변에서 배신자라는 욕과 비난이 쏟아졌다고 했다. 그 일로 주변 100명 중에 99명이 자신을 비난을 할 때, 오직 한사람 노무현만이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는 말을 꺼내며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를 비난하지 말라며, 그는 기술직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며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두둔해주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 그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그를 바라보는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맞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지. 마음이 슬퍼졌다. 그냥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이어진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 영상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열하고 주저앉으며 펑펑 울고 있었다. 평생 노무현 대통령을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통곡하며 울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우는 마음이 너무 이해가 돼서, 너무 잘 알거 같아서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억지로 참아보려고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없이 펑펑 울고 말았다. 극장 안 여기저기서 관객들의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의 서거 이후 지금까지, 그를 맘속으로 그리워는 했어도 이렇게 대놓고 펑펑 울어보진 못했던 것 같다. 어디가서, 누구 앞에서 노무현이 보고싶다고, 그가 그립다며 맘 놓고 울 수 있었을까.
그래서였을까, 그 순간만큼은 마음껏 이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남들 눈치 볼 일 없이,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맘 편히 울 수 있어서 좋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가 흘러나왔다. 평소 같으면 자막이 올라가자마자 바로 극장문을 나섰을 텐데 이유 없이 그냥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야 <걱정말아요 그대>의 가사를 곱씹으며 그렇게 극장문을 나섰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그를 추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