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16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그리고 1년을 식물인간으로 계셨다. 기적적으로 일어나셨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앞서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셨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간호로 정신없어 챙겨 드셔야 했던 약을 안 챙겨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장남인 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모셨다. 2015년, 부활절 오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 당시 하프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해 워싱턴 디시 포토맥 강가를 뛰러 가는 중이었다. 아버지로부터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항공사에 전화했다. 워싱턴 디시에는 KE094편이 하루에 한 대씩 있었고 그 시간은 오후 1시였다. 비행기 좌석을 확인하고 비행기 표를 결재했다. 그리고 일단 뛰기로 했던 10km 포토맥 강 변을 1시간 뛰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 길이 막혔다.
오전 9시 막힐 시간이 아님에도 길이 막혔다. 마음은 조급했지만, 비행기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있어 주변의 친구들에게 한국에 급하게 들어간다고 알렸다. 미국 외에 있는 가족의 장례를 위해서 일주일의 유급휴가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처리를 위해 회사에도 HR과 같이 일하는 대표님에게 이메일을 부고 사실을 알리고 회장님에게 전화해 한국에 간다고 연락을 하였다.
이미 한 달 전부터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한국의 시간이 워싱턴 디시의 시간보다 14시간 빠르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시간에 따라 나는 서울과 워싱턴 디시의 시간 차이로 인해 한국에 간다 한들 장례가 다 끝나고 도착하게 된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한국에 올 생각이냐고 물어보았다. 인생의 한 번 있을 사건인데 효율이라는 이유로 선택하기 싫었다. 할머니는 내가 장례에 올 수 있게 가장 빠르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간까지 배려해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나왔을 때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공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혼자서 어딘가를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일단 나는 한국에서 쓸 수 있는 화폐가 없었다. 지갑에는 20불이 있었다. 20불을 환전하고 공항버스를 타는 곳에서 내가 탈 수 있는 버스를 찾았다. 다행히 할머니를 모신 성당 장례식장에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나는 맏손자였다. 도착하자마자 상복으로 갈아입고 조문객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무사히 잘 보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첫 번째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첫 번째 부활절이 찾아 왔다. 예수님의 육신은 이날 부활하셨다고 하지만,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으셨던 할머니의 육신은 오늘 부활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영원히 살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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