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믹스커피 입니다.
한글날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닉네임을 바꿀 예정이기도 하고 언젠가 한번 제 이직 경험기를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남겨 봅니다.
코믹하거나 감동적인 글은 아니기에 지루하다 싶으시면 바로 뒤로가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글은 제목 그대로 사회생활 이직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기 입니다.
글쓰기에 앞서 저는 96학번이며, 39살 남자, 건축공학과 졸업하였고 건설회사에 근무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해당업무는 상품개발(설계/인테리어) 업무 입니다.
[취업을 하다]
2002년 겨울.
대학 졸업을 앞두고 저 역시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다양한 진로가 있겠지만, 제가 희망하던 직종으로 면접도 봤습니다.
연봉협상에서 떨어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떨어진게 아니라 안 갔습니다.
진로는 구조설계사무소 쪽이였고, 희망연봉을 1500 요구하였는데 1400 이상은 안 된다 하더군요.
사회경험이 없던 당시 저의 단순한 계산상으로는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서 결국 안갔습니다.
어느날 평소 연락을 하지 않던 한 학번위의 선배(95학번)로부터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너 건설회사 가볼래? 연봉이 나쁘지 않다던데..사람 구한다고 하네."
일단 좀더 확인을 하기 위해서 의사를 밝히고
그 건설회사의 담당인 P대리님과 통화를 시작합니다.
연봉 약2000을 얘기합니다. 계약직 이지만, 공채가 아니라 특채 TO라 그런거고
일만 잘하면 1년뒤 정직이 되고, 정직되면 급여도 계속 오른답니다.
몇차례 전화를 하면서 느낀거지만 P대리라는 분이 정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반드시 '구조분야'에 얽매일 이유가 없었고,
설계쪽(건설사 설계팀)도 나름 관심이 있었기에 면접을 보기로 합니다.
결국 P대리님은 저의 사수가 되었고
저는 그렇게 건설회사에서 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전화를 주었던 95학번 선배는 1년전인 제가 3학년 시절에 졸업반 이였는데,
당시 다른 선배의 졸업작품을 도와주는 저를 좋게 봤답니다. 그래서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졸업작품 당사자인 4학년이 놀아도, 지원 부대로 참여한 제가 알아서 무엇가를 진행하고 있으니
좋게봤을 법도 합니다.
참고로, 당시 졸업작품 당사자인 선배라는 사람은 제 친형 입니다.
형제가 한 학번 차이로 같은학교 같은과에 있었던 거죠. 동생이기도 했고, 저도 졸업작품 연습?이 즐거웠습니다.
암튼, P대리는 저에게 전화한 95학번 선배와 설계사무소에서 잠깐 같이 근무를 했던 사이였고
P대리는 95학번 선배를, 95학번 선배는 저를 떠올린 거죠. 물론 95학번 선배와 제 친형은 마침 동기이기도 하니
그것도 일부 작용했겠지만
결론적으로 제 사회생활의 시작은
잡코리나, 건설워커 등 유명 웹싸이트가 아닌 '인맥'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첫번째 이직을 하다]
건설회사에 약5년 동안 근무를 했습니다.
사수인 P대리는 해병대 출신이였으며, 생활도 그렇고 사고방식도 완전 FM입니다.
저를 위해 OJT를 체계적으로 만들었으며, 현업에서도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팀장의 눈에도 들어 동기들 보다 빠르게 PJT(프로젝트)를 담당(PM)하며 일을 해나갔습니다.
정말 미친듯이 일했고, 일은 정말 잼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또래들이 경함할수 없는 PJT를 다양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바쁜나머지 저는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수많은 일처리를 효율적으로 해내야 했습니다. 야근을 줄이기 위해서요.
소위 잔머리?를 쓰거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짠밥이 딸리니 스케줄을 조정할 수 없던거죠.
물론, 저도 단순히 일만 처리하기 보다는 일의 효율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에 도전하는 타입이였습니다.
물론 젊으니까 가능했겠습니다.
짧은 예를 들면, 회사에서 사용한 경비에 대한 전표 처리업무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팀내에서 전표는 계속 발생을 합니다. 출장비, 식사비, 야근비, 구입비, 택비시 등등..
한데 이걸 생각없이 마구 사용하다 보면 그달의 예산에 초과가 되서
다음달이 되어서야 전표 처리가 가능한 시스템 입니다. 개인돈을 먼저쓰고 한달뒤 신청하면 2달을 늦게 받게 되니
밀리면 부담되는 돈들 이였죠.
당시 ERP(전산화)는 완전 초기 단계 였기 때문에 사용금액과, 잔여예산을 확인하기가 어려운 환경이였습니다.
증빙영수증을 날짜별로 구분해서 풀로 나란히 붙여서 제출했던 시기 이니까요.
모인 영수증을 예산 항목별로 구분하고, 날짜별로 구분하고, 예산에 초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영수증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계산기를 두들깁니다. 숙달이 되어도 분류를 마치는데 시간이 꽤나 걸립니다.
할 일이 태산인데 매주 마다 이일을 반복해야 하는게 불편했고, 출장이라도 있는 날에는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래서 잔머리를 굴립니다.
엑셀을 하나 만들어서 그날그날 사용내역을 입력 해두면 그 내역이 포함된 예산항목으로 편하게 분류가 되고
해당 예산항목의 잔여 예산이 얼마 남았는지 동시에 보이도록 되어있는 간단한 엑셀 폼 입니다.
설명이 부족해 이해하시기 어렵겠지만, 그냥 정말 간단한 4칙 연산을 기초로한 테이블 폼 입니다.
이 폼안에서 살짝살짝 항목만 조정하면 전표 따위에 할애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 듭니다.
예를 들며, 식당 전표를 식사비로 떨구느냐, 다른 항목(야근비, 접대비, 회식비)으로 떨구느냐에 따라 다른데,
이 폼을 이용해서 해당 예산들을 초과하지 않으면서 영수증들을 맞춰 정리하기가 손 쉽게 되었습니다.
훗날 후임에게 전표업무를 인수인계 해주면서 이 엑셀폼을 넘겼는데 이 폼이 사내의 전 여직원들이 애용하는 폼이 됩니다.
여직원들은 더이상 전표를 서로 바꿔가며 예산 맞추기를 한다거나, 짱박아 놓고 익월로 넘기는게 줄어든 거죠.
무엇보다 공짜이니 안쓸 이유도 없었죠.
얘기가 옆으로 세었는데, 아무튼 저는 업무에 잔머리?를 쓸수 밖에 없었고
결국 건들지 말았어야할 일을 벌리고 맙니다. 이게 제 발목을 잡을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회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마감자재의 내역 시스템을 엑셀로 만들었고 설계 초기단계부터 원가관리를 하기위한 기준폼으로 활용 했습니다.
그게 사장님까지 보고가 되버렸고, 이후에 생겨나는 모든 현장은 그 폼으로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없던일이 하나 더 생긴거고 그건 고스란히 저의 몫이 되었고 PJT하나마다 그 내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3일 가량을 꼬박 할애해야 하는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종일 그일에만 매달릴수도 없으니 실질적으로는 10일이상 걸렸습니다.
종전의 업무와 함께 그 일까지.. 저는 거의 철야에 가까운 생활을 지속해야만 했습니다.
스스로 무덤을 판거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쳤습니다. 결국 저는 이직이라는 걸 결심하게 됩니다.
저의 기대치를 스스로 무너트릴수 없었고, 다른 회사도 궁금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회사 경영에도 적신호가 들어옵니다. 지방에 있던 큰 현장이 미분양에 허덕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고 따르던 경험많던 K팀장님은 회사의 낙하산 인사에 밀려 현장으로 발령이 납니다.
새로온 팀장님은 분야가 전혀다른 사람이라, 아파트 발코니 면적에 대한 개념 자체도 없던 일반 사람이였습니다.
제가 이직을 알아보고 있던 어느날
K팀장님은 저를 당시 유명회사였던 P사 상품개발팀 팀장에게 소개를 시켜 줍니다.
P사 상품개발팀 팀장은 K팀장님과 오래된 건설회사 상품개발 멤버로 K팀장님을 신뢰하였고
K팀장님의 신뢰를 받고 있는 저를 고용하기로 합니다.
현장 발령까지 나신 K팀장님에게 거기까지 바라지 않았는데, 다리를 놔주신거죠.
P사 상품개발팀 팀장과 그 위에 임원과 함께, 무려 점심을 먹습니다. 물론 입사 전이고
고작 대리급 한명에 이런 대접이라뇨. 황송할 따름입니다.
사장면접을 앞두고 긴장 풀라며 식사에 약주까지 사주시며 앞으로 열심히 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기다려도 P사에서 연락이 없습니다. 일이 어긋났다는 느낌이 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임원이 다른곳으로 인사명령이 났고
TO가 없어졌답니다. 다음기회에 꼭 부르겠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합니다.
실망했지만, 서두를 이유도 없었기에 다시 취업싸이트를 뒤집니다.
그런데 어느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P사에 있었던 과장인데 자기가 지금은 S사에 인테리어 팀장으로 있고
P사에 있었을 때 팀장님한테 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답니다.
뜻하지 않게 무려 스카웃? 제의 입니다.
정말 기회는 우연하게 오나 봅니다.
결국 저는 생각도 안던 S사 상품기획실(사장 직속) 설계담당으로 이직을 합니다.
상품기획실에는 인테리어 팀도 따로 있어서 더이상 인테리어 업무(위에서 언급한 내역작업, 마감재내역)를 안해도 됩니다.
이렇게 저는 첫번째 이직에 성공을 합니다.
[두번째 이직을 하다]
S사 상품기획실에서의 생활은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건축, 구조, 기계, 조경, 인테리어 등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었고
자문을 구하기도 좋았고, 제 역량을 펼치기도 안성맞춤이였죠. 게다가 사장님 직속 실인 관계로
사내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그런 강한 팀 이였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퇴사한 지금도 S사의 OB모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형님 동생들 하면서요.
하지만, 유명 모델을 앞세우며 공격적인 경영을 하던 S사는
그리 오래지 않아 부도라는 폭탄을 맞게 됩니다. 건설회사라는게 수명이 정말 길지가 못합니다.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저의 좌절감은 극에 달합니다. 이거 무직으로 식장에 들어가야 할 판입니다.
회사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었고, 크게 할일이 없어진 우리팀 사람들은 '스타크레프트'에 몰두하게 됩니다.
회사에서 제일 잘한다는 전산담당 J군과 우리팀에서 제일 잘한다는 제가 맥주내기 맞짱을 뜨고
구경꾼만 10명에 달합니다. 이기긴 했지만, 얻어 먹는 맥주 맛이 영 씁쓸하기만 합니다.
회사의 모든 술자리는 위로주요, 퇴근길과 출근길이 외롭다 못해 고통입니다. 오늘은 뭐하며 떼울지 고민을 합니다.
결국 다시 이직을 결심하고, 열심히 이력서를 써봅니다.
하지만, 특정 보직(건설사/상품개발팀) TO가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온다 해도 SPEC이 뛰어난 것도 아니니 쉽게 입질이 올리가 없습니다.
한 1개월 가량 지났나 봅니다.
전화가 왔는데, 같이 있다가 부도나기 몇달전에 퇴사한 S과장님 입니다.
"이대리. 뭐하냐. 너 우리회사라도 올래? 팀장님이 사람 좀 추천하란다. 후임으로"
순간 멍 해집니다. 이력서를 이리저리 넣고, 1군 건설사 채용 페이지를 그렇게 클릭했건만
이렇게 또 다시 기회가 옵니다.
게다가 그 회사는 나쁘지 않은 1군 중견회사 입니다.
당시 S과장님은 저랑 6개월밖에 근무하지 않았는데
언젠가 한번 자기 PJT 분양 카다록 CG검토를 맞기신 적이 있는데
일처리 하는 거 보고 마음에 들었다 합니다.
물론 훗날에 들은 얘기이고
'너 복사,제본 잘하지? 우리회사 일 많어~' 이렇게 얘기하셨지만.
아무튼, 저는 이렇게 두번째 이직을 성공하게 됩니다.
더불어, 다행히도 결혼식때 건실한 직장에 총망받는 젊은이~ 라고 주례사분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흔하디 흔한 그 멘트와 묵묵히 지켜봐 주셨던 장인어른의 그날 얼굴을
저는 아직도 생생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이직을 하다]
S과장님과 그 회사에서 약 4년을 함께 합니다.
마음이 잘 맞아서 함께 야근을 하고 함께 퇴근을 합니다. 퇴근길에는 편의점 맥주를 하나씩 마시며
서로의 개인사들에 대해 편하게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팀내에서도 각별했습니다.
하지만, 4년뒤 또 다시 회사는 경영악화에 시달리며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됩니다.
1군(1위-100위권) 건설사중 25%에 달하는 회사가 법정관리 또는 워크아웃 상태인 시기 입니다.
그 과정에서 1차부도를 내기도 하고, 간신히 다음날 어음을 막아 넘기기도 했으니, 급여 역시 불안불안 합니다.
불안한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S과장님은 차장이 되었고 그 위에 팀장님은 경영악화에 따른 SPC라는 명분으로(실제로는 구조조정)
근무지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맙니다.
당시에 우리팀은 금방이라도 꺼질것 같은 바람앞에 촛불 같았습니다. 다른 팀 직원들도 하나 둘 이직을 하기 시작합니다.
S차장은 자기보다는 대리급인 제가 잘 팔릴 때이니 혹시 기회가 오면 주저말고 이직 하라고 조언을 합니다.
하지만, 이직에 대해 이제 지치기도 하고, 쉽지도 않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운 좋게 이직을 한다해도 또다시 이같은 사태가 오지 않으란 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좀 더 버텨보자.. 하면서 일에만 집중하려고 했지만, 집중이 잘 될리가 없지요.
어느날 S차장님이 불러냅니다.
"이대리, 오늘 저녁 약속있어? 나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
따라간 자리에서 만난분은 D그룹/건설계열의 설계팀장 이랍니다.
??
자기와 예전에 함께 근무하던 형님이랍니다. 셋이 술을 한잔하고 헤어졌습니다.
오래지 않아, 이 자리는 실질적으로 면접자리 였다는 걸 알게 됩니다.
D그룹의 그 팀장님은 사람이 필요해서 S차장에게 대리급을 알아봐달라고 했고
S차장은 자기가 좀 힘들어도 저를 데려가 쓰라고, 자기가 보장한다고 했다는군요.
D그룹. 제가 근무했던 종합건설회사는 전문 건설회사들이였고
그룹사는 없었는데 재계를 논할만한 D그룹의 계열사인 건설사 랍니다.
게다가 팀이 소수인원이라 추후 팀장급으로 여기서 퇴사를 할 수 있답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연봉도 오르고,
무엇보다 더 이상 망하거나, 경영악화의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덤으로, 건설계열은 그룹의 주력 계열이 아니라서 업무 스트레스도 크지 않고 준 공무원 급이랍니다.
그렇게
S차장님은 저를 2번 세이브 해준, 제 인생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그런 '형님'이 됩니다.
물론 저희 가족에게도요.
그렇게 저는 또다시 이직에 성공합니다.
이렇다할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기회는 제 예상을 빗겨가며 왔습니다.
[네번째 이직을 하다]
D그룹에서 저는 대리였습니다. 꽉찬 대리급이였습니다.
근무한지 8개월만에 저와 동갑내기들을 제치고 특진을 합니다.
이유는 정말 단순했습니다. 아무도 야근을 안하는데 늦은밤까지 도면검토를 하고 있던 저를
고참 부장님급인 건축팀장님이 보셨고, 기존 직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는
경력직은 보상을 해야한다며 샘플 케이스로, 남은 진급 TO자리 하나에 저를 지목하셨답니다.
전문건설회사에서 빡시게 일했던거 70%도 안했는데, D그룹에서는 마냥 좋게 보였나 봅니다.
팀장님은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옆팀 고참급 부장님이 판을 열어주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바로 몇마디 거드시고 저는 그렇게 생각도 못한 특진? 으로 과장을 달게 됩니다.
어딜가든 경력직 1년 미만은 원래 승진 불가인데 정말 얻어 걸린 케이스입니다.
사실, 그때 야근할때가 팀장님이 여름 휴가 중이라 1주일정도만 혼자 야근 한건데 그게 큰 몫을 한거죠.
하지만,
제 인생 마지막일줄 알았던 이직이
소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또 다시 발생하고 맙니다.
거짓말 처럼 절대 망하지 않을 꺼라는 D그룹은
탑뉴스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며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으며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고
계열사들은 뿔뿔히 흐터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거짓말 같았습니다. 이런일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팀장님인 P팀장님은 결국 구조조정이라는 칼바람에 스스로 퇴사를 결정 하셨으며
제가 속한 팀원은 전원 뿔뿔히 다른 팀으로 흐터져 흡수가 되었습니다. 팀이 해제가 된겁니다.
저 역시 소위 영업팀 쪽으로 배속이 되었습니다.
다행이 법정관리 이후에도 급여는 계속 나왔지만
더이상 미래를 보장받기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언제 일이 끊기고, 언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지 알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머지않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라 몇년 지나면 이직은 정말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는 수 없이 계획에 없던 이직 이력서를 또다시 다듬습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어디를 써야 할까. 뽑는 곳도 없지만, 쓸곳도 마땅지 않습니다.
그룹사도 무너지는 판에, 전문건설에 가면 또 이러지 않을까..
이제 건설계의 경영악화는 저에게 확실한 트라우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포기할수는 없었습니다. 가정이 있으니까요.
마음편하게, 월급나오는데 최대한 천천히 알아보자.
라는 마음으로 지내보지만 과장급 이다 보니 역시 뽑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젠장..
어느날 카톡이 하나 옵니다.
'과장님, 회사 괜찮아요? 지난번에 우리회사 안오신다고 했지만
이제는 오셔도 되는거 아닌가요?'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여자 대리 Y입니다.
자기 이직했다며, 저보고 함께 일 하자 하길래 장난인줄 알았고
이직할 이유도 없었기에 고사했었는데
수개월이 지난 지금 잊지 않고 연락이 온 겁니다.
그 회사를 좀 알아봅니다. 궁금한 것도 물어봅니다.
연봉은 조금 작지만 정말 작은 차이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회사입니다.
이 친구가 대리인데 저에게 연락을 두번이나 한 이유를 알고보니
그 쪽 팀장님이 저를 아시는 분이였더군요. 그분께서 Y를 통해서
다시한번 물어보라고 시키셨다네요.
그렇게 저는 제 계획에 없었던 네번째 이직에 성공하게 됩니다.
[맺음말] - 남기고 싶은말.
1. 직장생활은 내 예상보다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2. 사회의 바닥은 좁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좁고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화 몇통이면 당신이 어떠한 성향의 사람인지 어렵지 않게 알수 있을만큼 좁다.
3. 이직의 첫번째 조건은 스팩이 아니라 '인맥'이다.
사람들은 훌륭한 SPEC을 보유한 이력서의 사람보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인맥내에서 먼저 사람을 찾는다.
4. 이직을 위한 인맥을 얻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결국 자신의 일에 대한 태도와 열정이다.
사람들은 당신과 나누었던 즐거웠던 회식 자리는 기억을 못해도
당신이 일하던 모습은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