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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5/09/23 20:36:06 |
Name |
aura |
Subject |
[일반] [단편] 고문 - 1 |
1.
정신을 차렸을 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퀴퀴한 시궁창 냄새와 기분 나쁜 습도가 느껴질 뿐이다.
여긴 어디인가. 알 수 없다.
이렇게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아마 어딘가의 지하실일지도.
앞이 아무것도 안보이는 걸 봐선 눈이 뭔가에 가려져 있는 것 같다.
자세는... 의자같은 것에 앉아있고, 손과 발은 묶여있는 것 같다.
혹시나 풀릴까 싶어 손과 발을 움직여보지만, 밧줄 같은 것으로 단단히 묶어놓았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젠장.
왜인지 알 수 없지만,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납치당했고, 감금당했다.
어째서? 누가?
잘 모르겠다. 어딘가에 내가 원한을 샀적이 있던가.
아마 없는 것 같은데.
후우. 크게 숨을 고르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다.
주변에 장난으로라도 이런 일이 벌일만한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이건 실제 상황이다.
나는 납치 후 감금 당했고, 눈은 가려져 있으며 손과 발은 묶여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범인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나는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다.
씨발.
이거 참 개좆같군.
2.
으윽.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두통이 내 사고를 방해하지만, 이럴 수록 침착하고 차분하게 생각해야 한다.
첫 번째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스스로 잠든 기억이 없다.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머리의 통증.
아마도 나는 약품 따위를 통해 잠이 든 것 같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범인이 내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범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나를 살려두고 구금해둔 것은 뭔가 까닭이 있을 것이다.
후우.
생각을 정리하고 심호흡한다. 그나마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것 같다.
일단 이렇게 묶여 있는 상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기다릴 뿐.
3.
끼익. 뚜벅 뚜벅.
낡은 문 소리. 구두 소리.
드디어 왔다.
반갑군. 케이.
마치 헬륨가스를 마신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성변조까지 한 건가?
절대 우발적인 범행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철저한 계획범죄.
내... 내게 바라는 게 뭐지?
구태여 범인에게 침착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숨길 수 있는 패는 최대한 숨긴다.
크크크크.
케이. 나는 자네를 아주 잘 알고 있다네.
자네는 아주 소름끼치리만큼 차분하고, 침착한 녀석이지.
하지만, 연기는 아주 형편 없군! 어설픈 연기는 집어치워 주겠나?
조금 역겹군.
나를 잘 알고 있다라...
범인은 내 주변 사람들 중 하나 인건가.
그렇다면 툭 까놓고 물어보지.
내게 바라는 게 뭐지?
하하하하! 아주 재밌어. 역시 자네는 재밌단 말이야.
케이 자네에게 바라는 것? 그딴 건 없네!
단지, 같이 좀 놀자는 것 뿐이네.
4.
이보게 케이. 사람의 정신력은 고통에 얼마나 강할까?
...
놈이 바라는 대로 맞장구를 쳐줘야 하나.
썩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녀석과 대화를 해야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거저것 복잡하게 머리 굴릴 필요 없네.
단지 자네는 나와 충실하게 재밌게 놀면 돼.
...
사람마다 다르겠지.
하하하. 역시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다면 케이 자네의 정신력은 어떤가? 강한가?
...
이런 대답하지 않는군. 하지만 괜찮네!
이제부터 더 재밌어 질테니까 말이야.
말했다시피 난 자네를 아주 잘 알고 있네.
자네의 정신력은 보통 사람보다 꽤 강한 편이겠지.
보게.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한 자네를!
...
지금도 소리, 냄새, 내 말투 등을 분석하며
이 상황을 타개할 궁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항상 궁금했다네.
케이 자네의 정신력은 얼마나 강할까? 지금부터 시험해보도록 하지.
5.
주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 앉는다.
아주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후우.
깊은 심호흡에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어쩌면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두려운가? 견디기 힘들 것 같다면 언제든 말하게.
그리고 애원하게!
말하면?
난 그런 자네의 고통과 애원을 들으며 기뻐하도록 하지.
미친놈.
먼저 손톱이 좋겠군.
젠장.
차갑고 묵직한 쇠의 감촉이 손끝에 느껴진다.
그리고 곧 이어 그것은 내 손톱을 억척스럽게 앙물었다.
케이. 따끔할걸세!
팍!
끄아아아악
미친놈.
정말 뽑아버렸다. 그것도 한번에.
느껴진다. 손 끝이 마비되는 것 같은 통증이.
끅. 끅.
우악스럽게 입을 다물고 나도 모르게 나오려는 신음을 간신히 억누른다.
바로 하나 더 가지. 엄지는 조금 더 아플걸세.
팍!
아아악
고통스럽다. 지나칠 정도로 고통스럽다.
몸이 묶여 있어 고통의 몸부림 조차 할 수 없어 더 고통스럽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묶여 있는 손의 손가락을 오므리고 덜덜 떠는 것 뿐이다.
헉 헉.
마치 100미터 달리기라도 한 것 마냥 저절로 가뿐 숨이 몰아 쉬어진다.
눈에선 눈물이 나온다. 슬퍼서가 아니다. 단지 아파서, 고통스러우니까.
입과 코에서도 물이 나온다. 내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다.
대단하군. 보통 사람이라면 두 번째에서 기절을 하든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든 구차하기 마련인데,
단지 고통에 취할 뿐이라니. 대단하네. 아직도 자네의 기백은 살아있군.
개새끼. 미친새끼.
손톱 두 개를 뽑히고서야 깨닫는다.
범인은 정말 미친새끼다.
어쩌면 정말 바라는 것 없이, 그저 고통을 주며 즐기기 위해
나를 납치하고 고문하는 것일지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스물스물 가슴 속 깊이에서 두려움이 느껴진다.
6...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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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글의 생동감을 전달해드리고 싶어서 욕설은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문제가 된다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조금 잔인할수도 있는 묘사는 양해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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