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9/23 13:16:57
Name 글곰
Subject [일반] [1][우왕] 아내의 건강
  얼마 전에 아내가 건강검진을 받고 왔는데 작년에 비해 몸이 많이 나빠진 것 같습니다. 원래 있던 혹이 늘어났고, 갑상선에도 이상이 생겼습니다. 쓸개에 용종도 있다 합니다. 게다가 작년 이맘때 급성 디스크로 난생 처음 119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던 적이 있는데, 그 때 터졌던 디스크 말고 다른 디스크도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잖아도 직장에서 맡은 업무가 늘어나면서 요즘 부쩍 피로를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서 걱정이었습니다. 잠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는데도 저녁에 영 맥을 못 추고 쓰러지듯 잠들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진단결과가 나오니 더욱 망연합니다.

  아내는 은행에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두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은행입니다. 매일 아침 지점 문을 열자마자 번호표를 내미는 손님들의 업무를 차례차례 정신없이 처리합니다. 삼십 분짜리 점심시간을 쪼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면 다시 오후 네 시에 셔터를 내릴 때까지 일합니다. 그러고 나면 그날 쌓인 일들의 뒤처리를 시작합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는 침대 위에 쓰러지고, 다음날 아침 여섯 시 이십 분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생활의 반복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피로가 몸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몸이 나빠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언젠가부터 가끔씩 아내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언뜻 내비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은행에서 딸내미 대학등록금이 나오니 우리 딸이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버티라며 웃어넘기지만, 마음이 아파서 제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갑니다. 정말 얼마나 힘들면 저런 이야기를 할까 하고요. 그러면서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라고, 우리 가족쯤은 나 혼자서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 한심하기도 합니다. 은행에 다니는 아내의 수입은 저보다 훨씬 많습니다. 만일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 우리 가정의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겠지요. 빚이 아직 좀 남아 있긴 하지만 방이 셋 딸린 어엿한 집. 구입한 지 이 년쯤 된 중형차. 하나뿐인 딸내미에게 아낌없이 사 주는 옷, 장난감, 책, 음식....... 그중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내더러 당분간만이라도 휴직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볼까 싶습니다. 하필이면 슬슬 승진할 연차가 다가오고 있어 근무경력관리를 할 필요가 있지만, 그깟 승진보다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할 테니까요. 반년이나 일 년 정도라면 수입이 줄어도 큰 어려움 없이 그럭저럭 버텨 나갈 수 있을 것 같고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이라 저 혼자 말해서는 아무래도 먹히지 않을 것 같고, 장모님과 상의해 살짝 돌려서 조심스럽게 말해 볼까 합니다.  

  언젠가 아내와 다투고 나서 피지알에 징징대는 글을 올렸다가, 많은 피지알러들에게 아내 입장에서 좀 생각을 하라고 신나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아내가 댓글들 읽고는 거 보라면서 저를 타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제 역성을 들어 주더군요. 우리 남편이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사람은 아닌데 댓글 다는 사람들이 저를 너무 나쁜 놈으로 몰아붙인다고요. 그 때 참 짠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구나. 잔소리가 좀(심하게) 많고 욱하는 성격이 있고 자주 타박을 놓고 고집불통이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참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어차피 이 사람하고 같이 사는 거, 기왕이면 오래 같이 살고 싶다고요.

  뭔가 정신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들 앞에서 한숨도 쉴 겸, 또 괜히 격려나 응원도 구걸할 겸 해서 글쓰기 버튼을 눌러 보았습니다.  
  여하튼 피지알러 여러분. 건강 조심하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파란무테
15/09/23 13:23
수정 아이콘
힘내십시요.
아내의 건강이 우선이지요. 제목처럼.
사실, 맞벌이의 경우 한사람의 수입이 없으면, 가계가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지만..
정작 외벌이로 살아도 살아집니다. 마음가짐의 차이겠지요.
현실적인 부분을 보지 마시라는것이 아니라, 그 상상하는 현실이 의외로 또 잘 헤쳐나가게 되는 계기도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네요.
김기만
15/09/23 13:24
수정 아이콘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겁니다.
믹스커피
15/09/23 13:31
수정 아이콘
[추천] 글이 훈훈합니다.
15/09/23 13:32
수정 아이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일을 상대하는 일보다 사람을 더 많이 갉아먹더라고요. 제 친구 와이프가 국내 3대 은행 중 한곳에 다녔는데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뱃속의 아이를 셋 보내고 나서 결국 일을 그만두더라고요.

아내분의 쾌차를 빕니다. 더 잃기 전에 우선 잃지 않는 상태가 되는게 중요한것 같습니다.
15/09/23 13:59
수정 아이콘
[추천] 조금전에 자동이체 신청할 일이 있어서 은행 다녀왔는데...

갑상선에 이상이 생기면 유난히 피로를 더 느낀다고 하던데 부인님의 건강이 큰 걱정입니다.
그래도 병원에서 검진 받으셨다니... 상태를 알고 계실테니 모르고 있는 것 보다는...
재래시장에 가보니 가물치,자라,엄청나게 굵은 장어,논 고동, 그 외... 와 스물몇가지 한약재 넣어서 짓는 보약이 있더라구요. 한재에 40만원 하던데 이 거 한재 해 먹이니 골골하던 마눌님 레슬링 선수처럼 힘이 좋아지던데,

집안 일, 자녀 돌보는 일 더 많이 도와주세요. 가능하면 곰님이 힘드시더라도 집안 일 전부 맡아서 해보도록 해 보세요. 집안청소, 식사준비, 세탁 등...
우리 마눌님은 자신의 몸이 아플 때 아무 말없이 헌신적으로 챙겨 준 걸 제일 고마워 하(는 것 같)더군요. 그 바람에 황혼이혼 안 당하고 사는지도...
글곰님 화이팅! 입니다.
음악세계
15/09/23 14:04
수정 아이콘
얼마전에 종합검진을 처음해봤는데, 세상에 위에 용종도 있고 궤양도 있고 갑상선 결절도 있고 지방간도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다행히 조직검사결과가 나쁘진 않게 나와서 약 먹으면서 지내고느 있는데, 건강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각설하고 저는 휴직을 추천합니다. 승진보다 중요한 게 건강이니까요.
대복아빠
15/09/23 14:13
수정 아이콘
저도 와이프가 출산후에 몸이 너무 안좋아져서 잉어, 흑염소 ,한약등 안먹인게 없고 병원도 여러병원안 다닌적이 없네요.. 당사자도 힘들겠지만 남편속도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근데 어느날 홈런볼에 맥주를 꾸역꾸역 마시고 살이찌면서 50kg쯤 되니 낫더라구요..여튼 힘내시고 아내분 건강 잘챙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5/09/23 14:18
수정 아이콘
아내가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는 경우 말은 못해도, 요즘 세상에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해도, 남자는 한켠에 이런 생각을 쌓아두죠.
'내가 충분히 벌지 못하고 있구나....'
맞벌이가 자연스러운 세상이 왔는데도 제 마음에 이런 봉건적인 사고가 남아 있나 봅니다.
아....이따 퇴근할때 좋아하는 고기나 한 근 사가야 겠네요.
좋은 명절 보내세요..
김제피
15/09/23 14:59
수정 아이콘
[추천]진짜,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대니얼
15/09/23 15:04
수정 아이콘
보약 해주세요
몸 많이 상하신거 같네요
승진좀 안하면 어떤가요 꼭 휴직하시길
tannenbaum
15/09/23 15:13
수정 아이콘
[추천]
행복하세요
홧팅!!!!
15/09/23 15:18
수정 아이콘
[추천] 모든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시나브로
15/09/23 15:19
수정 아이콘
[추천] [추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글ㅠㅠ
스테비아
15/09/23 15:22
수정 아이콘
[추천]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세요~!
질럿퍼레이드
15/09/23 15:23
수정 아이콘
[추천] 저희 와이프는 그래서 퇴사했습니다 ㅠ_ㅠ..... 건강이 최고입니다
15/09/23 15:36
수정 아이콘
[추천]승진이 늦으면 정년까지 다닐 확률이 높아집니다?!
공허의지팡이
15/09/23 15:46
수정 아이콘
[추천] 몸조리 잘하세요. ㅜㅜ
한방안티인 pgr에서 이야기 하려니 어렵지만, 주변 한의원에서 진단도 받아보시고 치료도 받아보세요.
약이 아니라, 침으로도 저런 증상에 많은 호전반응을 가져옵니다.
8월의고양이
15/09/23 16:00
수정 아이콘
[추천] 솔직히 건강한게 최고더라구요.
15/09/23 16:17
수정 아이콘
[추천] 꼭 쾌처하셔서, 오래오래 같이 사셔요.
15/09/23 16:41
수정 아이콘
[추천] 아내분께서 어서 빨리 건강해져서 글곰님이 아내한테 혼나서 시무룩하는 글 봤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올리겠습니다.
언뜻 유재석
15/09/23 17:46
수정 아이콘
[추천] 이글을 읽으신 모든분들 건강하시기를..
민간인
15/09/23 17:56
수정 아이콘
건강이 최고입니다.
건강해야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건강부터 챙기셨으면 합니다.
스웨트
15/09/23 20:30
수정 아이콘
[추천] 꼭 아내분이 다시 건강해지셔서 글곰님이 또 혼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많이 아파봐서 그런가..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ㅠ
데오늬
15/09/24 00:42
수정 아이콘
추측이지만 운동을 거의 안...아니 못 하시는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저녁에 잠깐이라도 십분만이라도 짬 내서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게 너무 피곤하니까 운동할 시간에 차라리 안 움직이고 조금이라도 자고 싶고 몸 힘들게 움직이기 싫고 그런 건데
억지로라도 조금씩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악순환이 됩니다. 체력이 점점 후달리니까요.
워킹맘이 운동까지 챙겨 하는거 정말 쉽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 낼 수 있게 많이 도와주세요. 처음엔 꼭 옆에서 누가 등을 떠밀어야 되더라고요.
사악군
15/09/24 00:46
수정 아이콘
[추천] 건강처럼 중요한게 없죠.. 꼭 건강해지실겁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1128 [일반] [1][우왕] 개인이 음원을 발매하기까지의 과정 -1부- [8] bongfka5618 15/09/23 5618 8
61127 [일반] 폭스바겐 사태 주식 2일동안 약 34% 폭락 [53] D.TASADAR10888 15/09/23 10888 1
61126 [일반] [단편] 고문 - 1 [5] aura3901 15/09/23 3901 2
61125 [일반] [1][우왕] 신은 모태솔로에게 무엇을 준것인가 (1) [12] 삭제됨3647 15/09/23 3647 10
61124 [일반] 자동차 접촉 사고 이야기 [14] 이쥴레이4253 15/09/23 4253 3
61123 [일반] [MLB] 또 하나의 전설이 별이 되었습니다... [24] 세인6542 15/09/23 6542 1
61122 [일반] [야구] 23일 남부 3경기 우천취소 변수_KBO순위경쟁 [23] 이홍기5429 15/09/23 5429 1
61121 [일반] 언론사 기자가 제보자의 제보 내용을 메갈리아에 올려서 조롱한 사건 [179] 지포스212957 15/09/23 12957 7
61120 [일반] 나의 출근길 급X 극복기 실전편 - 느림의 미학 [20] RnR3493 15/09/23 3493 4
61119 [일반] Apink "Mr. Chu" [13] 표절작곡가5309 15/09/23 5309 20
61118 [일반] 여자친구는 이제 생각조차 나질 않아!! [16] 실론티매니아5269 15/09/23 5269 10
61115 [일반] [TIP] 카카오톡 추석이벤트 베스킨라빈스 1+1 무료쿠폰 (종료) [25] 여자친구9401 15/09/23 9401 2
61114 [일반] [1][우왕] 아내의 건강 [25] 글곰5935 15/09/23 5935 41
61112 [일반]  규정작업 위원 추가 모집 [32] 항즐이3409 15/09/22 3409 0
61111 [일반] 임창정 컴백 기념으로 쓰는 알려지지 않은 곡들 [30] 교리교리4505 15/09/23 4505 0
61110 [일반] 혐오해봅시다. [15] 프뤼륑뤼륑6203 15/09/23 6203 5
61109 [일반] 미래전쟁의 양상을 바꿀 하이테크 무기 Top10 [7] 김치찌개6203 15/09/23 6203 0
61108 [일반] 노명절러가 멀리서 대강 보는 명절 문화 [59] 만트리안5875 15/09/23 5875 2
61107 [일반] [야구] 로저스 2군행 `그날`, 한화 덕아웃의 전말 [220] 톰가죽침대13426 15/09/23 13426 1
61106 [일반] 헬조선의 축복받은 아이들 [40] 秀峨7194 15/09/23 7194 3
61105 [일반] 임창정/이승환/소유x권정열/박진영x버나드박x박지민의 MV와 러블리즈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16] 효연광팬세우실4063 15/09/23 4063 0
61102 [일반] [1][우왕] 危路 [4] 시라노2938 15/09/23 2938 3
61101 [일반] 전 세계에서 금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 Top10 [3] 김치찌개4168 15/09/23 416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