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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18 06:53
자유의지에 관계된 말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었던 말은, 자유의지가 있든 없든간에 사람들은 그게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지 않는 건 당신이 원하더라도 할 수 없어요.
그와 별개로 오트밀의 만화는 불교에서 말하는 유명한 일화와 비슷한 느낌이네요. http://seoggy.net/hb/archives/4212 이 일화는 만족할 수 없는 인생임을 깨닫지 못하고 단순히 욕구를 쫓는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괴로움 속에서도 한 순간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듯 합니다. http://ntwo.tistory.com/503
15/09/18 06:59
[추천] 비슷한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산속에 들어갔다 온 대학생(이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하아..오늘도 이불킥 1회 적립해봅니다;;
15/09/18 08:53
[추천] 아직도 전 니체나 까뮈같은 간지나는 책들은 아직도 이해못하고 있습니다.
제경우 사유를 통한 혹은 이성의 차원에서라면 좀 특이하게도 수학을통해 허무주의에서 벗어났습니다. 특히 괴델정리를 이해하면서부터 불가지론을 깊게 받아들이게 된것이 결정적이었죠. 근원적인 질문들은 대답하기 어려운데 거기에도 더 나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으니 오히려 역설적으로 삶을 편안한 눈으로 볼수있게되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출출할때에 치킨과맥주면 이렇게 즐거운데 말이죠
15/09/18 09:25
드라이한 책을 원하시면 시지프의 신화입니다. 첫 문장이 아마 '진실로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이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 이것이야말로 철학이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일 거에요.
소설을 원하시면 페스트를 추천합니다. 간지 대폭발 그 자체죠!!
15/09/18 09:25
[추천] 니체가 동네형이라는 비유 적절하네요 크크크. 전 그렌라간의 카미나 같은 캐릭터가 떠오르네요. 니체는 중2병 시기에 참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죠.
근데 저는 니체로 촉발된 허무주의에서 상당히 금방 빠져 나왔는데요. 비결은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참 행복하고 경외로운 일이더라고요. 뭐 사랑도 끝이 있긴 하지만 어떤 순간만큼은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랑하는 자신을 보기도 합니다. 일부 신비주의에서 오르가즘을 명상의 수단으로 썼던 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삶이란 살아있다는 것이죠. 내가 숨쉬고 똥싸는 것에 대한 의미를 '내가' 부여한다는 것은 얼핏 모순 같기도 합니다. 자의적이라면 삶의 본질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죠. 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면 허무주의와 낙천주의를 하루에도 몇번씩 오갈겁니다. 결국 내가 살아있는 것의 의미를 내가 만드는 것은 의미없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타인에 의해서는 정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저 같은 백수야 하루하루 똥 만드는 것이 '환경 오염', '정화조 채우기'에 불과하겠지만 미국 대통령이 하루하루 똥 만드는 것은 세계 경제와 평화를 위해 힘쓰는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실존이 본질을 구축한다는 사르트르의 철학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인간관계라는 네트워크 속에서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네트워크에서 어떤 허브가 되느냐가 죽어서 가죽만 남기게 될지 이름을 남기게 될지도 결정하겠죠. 사랑이라는 소통의 궁극을 중요시 했던 저에게 삶이란 이런 의미로 남았습니다.
15/09/18 10:57
음 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게, 저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나'도 남들만큼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나의 가치가 오로지 타인에 의해서만 부여될 수 있다면, 사람 하나하나가 원래 지닌 가치는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0 끼리 아무리 더하고 곱해 봤자 0 이죠. 해서 '그다지 크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0 은 아닌 걸로.
15/09/18 11:15
삶의 의미를 관계속에서 찾을 뿐이지 그게 사람 하나하나가 원래 지닌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스스로가 스스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에요. 근데 이걸 자신의 테두리 속에서만 찾으려 하면 허무주의로 빠지기 쉽다고 생각되요. 저도 그러기도 했고요.
15/09/18 09:37
[추천] 뭔지 몰라도 간지납니다.
저는 철알못이지만, 에리히프롬을 중딩때 읽고 나름 결론을 내렸습니다. I have money(X) I make money(O) 인간이 중시해야 할 것은 현재자산이 아닌, 자산창출 능력인것을... ㅡㅡ;;
15/09/18 09:46
[추천] 제 삶은 세상에서 적어도 저에게는 가장 지적이고, 따뜻하고, 정의로우며, 자애로운 사람인 '나'와 함께 하는 동거, 협업같은 느낌입니다. 이 '나' 가 나 스스로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건 정말로 제 기준에는 좋은 사람 이기 때문에 그냥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가 하고 싶은것은 작게는 치사하게 살지 말기, 크게는 Make it better place for you and for me 이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구요. 이 얘길 들은 친구들은 대체로 확실한 예비범죄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하더라구요 : (
15/09/18 09:54
음 비슷한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삶이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고싶은 사람' 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15/09/18 09:48
고등학생~대학생 시기에 삶의 의미에 관한 문제에 빠지게 되는 거 같습니다.
저는 어느 블로그에서 '삶의 의미에 관한 물음은 순수한 질문이라기보다는 너의 문제 상황의 우회적 표출인 경우가 많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불멸에 대한 소망처럼 벗어나거나 도달할 수 없는 감정 또는 욕망의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에서 비롯되는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철학적 질문의 형태로 바뀌어 나타난 것이다' 라는 글을 보고 뭔가 깨달음(?)을 얻은 뒤 나름 충실하게 살다보니 더 이상 저런 문제가 머리를 괴롭히지 않더군요. 재미있는건 그걸 해소(극복이든 회피이든?)하는 방식이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초중고 친구들의 중2병을(..)을 벗어나는 방식이 그 사람의 삶의 모토가 된 것처럼 보이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너 자신에게 무관심해져라고 말씀하신 러셀옹은 대단하신 분인거 같습니다...
15/09/18 09:52
러셀옹의 '소시지 머신은 소시지 만들 때 제일 행복한 거지 자기가 왜
소시지를 만드는 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불행해진다' 는 진짜 크크크크
15/09/18 10:10
종교인이건 비종교인이건, 유신론자건 무신론자건, 과학자건 철학자건, 누구의 책을 읽건 간에 이들 모두가 공감하고 꼭 껴넣는 문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답다"이죠.
15/09/18 10:12
"언젠가 자유 의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언급한 실험인데,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주체가 우리의 의식이 아니라 뇌의 화학 작용임을 증명하는 유명한 실험입니다."
이 부분이 좀 잘 이해가 안가는데 뇌의 화학작용이 곧 우리의 의식 아닌가요?
15/09/18 10:17
이미 그렇게 보는 분이라면 본문의 실험은 너무 당연한 거라서.... 그렇지 않다고 보는 분들한테 경악인 거죠.
다만 물리주의자 입장에서도 약간은 놀라울 수 있는 부분이라면, 본인이 느끼는 '1 인칭의 내가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는 기분'이 환상이라는 부분입니다. 결정은 내가 그것을 인지하기 전에 이미 내려졌다는 거니까요.
15/09/18 10:53
저에겐 카뮈와 만화가가 없었지만 나머지 테크는 정말 비슷하네요. 사람은 다들 비슷한 의문을 품고 살아가나봐요.
다만 저는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허무주의를 극복하기가 더 어려웠지요. 지금도 경도의 우울증은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서 완전히 행복한 삶을 살고있지는 않네요
15/09/18 11:38
우울증이 그냥 우울한 정도가 아니라 질병 수준이 되면 의지력으로 이겨내기가 극도로 어렵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정도로 힘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런 사람들은 조금 봤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은 없고, 힘드신 것은 짐작이 갑니다.
15/09/18 12:07
[추천] 뭐 어차피 인간이란 하루하루 똥 만드는 기계에 불과하니까요.
하지만, 똥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행복의 순간이죠.
15/09/18 13:43
[추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나는 도대체 왜 사는 걸까' 하면서 징징거릴 때마다(20대 중반이 되어서도 10대 때와 똑같은 질문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저희 아버지는 '그 질문은 의사(pseudo) 질문이라고 몇 번을 말하냐. 그런 생각 안 하고 그냥 사는 것이 너의 행복에 더 좋을 것이다'라고 일갈하시죠. 뭐 맞는 말씀인 건 알겠는데, 진심으로 긍정은 못하겠어요. 그렇다면 제 나름대로 어려운 책이라도 읽고 진득하게 생각해서 삶에 대한 제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텐데, 기본적으로 우울하기도 하고 게으르기도 하니까 그것도 힘에 부치고... 그저 '명탐정 코난의 완결을 보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정도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넘기는 것이 지금의 제 한계네요. 그럼에도 삶은 아름다운 거겠죠?
15/09/18 23:49
오호 의사 질문이라는 표현 좋네요. 저도 제 아이가 '아빠 사람이란건 무의미한 존재인 것 같아' 라고 하길래 'XXXX의 (제 아이가 존경하는 사람)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니?' 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건 아니래요. 해서 '그럼 처음의 네 얘기는 뭔가 다른 문제를 가리려고 하는 말 아닐까?' 라고 대답한 기억이 납니다. 뭔가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삶이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15/09/18 14:28
아는 후배한테 꼭 보여줘야겠어요. 지금 되게 힘들어하고 있는데 제가 말로 다독이고 조언해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딱 맞는 상황인거 같아요 ^^;
15/09/18 14:38
[추천]제가 그.. 슬램덩크보면 북산 산왕전에서 강백호가 경기초반 앨리웁을 하잖아요?? 그걸보고 시전자들끼리 서로 놀라고 해남에서는 다시하라고 하면 못할꺼다.. 라고 평가하고 그랬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곱씹어볼수록 Libet실험이 떠오른다는거죠 의식이 몸을 이케이케 움직여서 공을받아 그대로 쳐넣는다(...)라는게 아닌 그냥 무아지경속에서 몸가는대로 움직여서 하는 플레이에서요..비단 만화라서 그런건 아닌거같고 저도 학창시절 마음만은 메시로 빙의해서 축구하다보면 가끔 제가생각해도 "어떻게 거기서 그렇게 찼지?"할때가 있어요
스스로의 플레이에 도취된게 아니라(.....)곰곰히 생각하면 분명 의식에 기반한 움직임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운동하신 분들이면 다들 이런 기억이 있을것 같습니다 여차저차해서 저도 지금은 제 이성과 행동,감정이 단순화학반응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쪽에 가깝지만(책임지세요 순전히 작성자님의 글들로만 바뀐거라구요) 아직은 동일한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아직도 "죽으면 더이상 내몸안의 화학반응도 없을테고 그러면 내 자아라고 믿는것도 멈출텐데 너무 무섭당..차라리 일부러 사이비종교에 빠지면 죽을때 걱정은 없을텐데"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으면 우리가 알지못하는 복합적인 미지의 요소로 내 정신만은 잃고싶지 않은데(그게 무의미한 화학반응일지라도요..내가 나라는데!) 말이죠.. 저는아마 죽기전에 종교를 꼭 가지지 싶습니다 크크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15/09/18 23:52
[책임지세요 순전히 작성자님의 글들로만 바뀐거라구요]
어억 죄송합니다. 그래도 두 번째 문단에서 말씀하신 고민은 아이를 낳으면 99% 해결됩니다. 죽음 그까이꺼 별로 상관 없어요. 다음 타자가 나타났으니 말이죠. 그 해결책이 마음이 들지 않으신다면 두 번째 대안도 있어요. 태어나기 전에는 150억년동안 죽어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억울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마찬가지로 죽음 이후에는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 뿐이니, 삶을 잠깐이라도 즐길 수 있음을 고마워하자구요!
15/09/18 14:46
[추천] 이건 뭐... 대회 개최자가 이런 글을 써내면 어쩌자는 건지... 크 아무튼, Orbef님께서 거쳐온 힘겨운 여정은 결국 평화와 간지를 동시에 간직한 땅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아놔 개허무! 삶의 의미좀! ㅠ 하고 징징대는 꼬꼬마랑 그런 절박한(철학적으로) 문제들 앞에서 조용히 웃으며 주변의 존재들을 사랑하며 사는 인간이랑 비교하면 어느쪽이 간지나는지는 자명하지 않습니까? 크. 이제는고전 (?)이 되어버린 Orbef의 자유의지 관련 옛 글에서 인상적이었던 글귀가, [인간이 자유의지가 없는정도는 인간이 아메바와 같은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인간이 설탕과 같다는 수준이다] 였습니다. 언뜻 보면 충격적인 선고 같지만 저는 그 문구를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쓴건 이해하겠지만, 무려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려는 글에서 아메바와 설탕의 차이를 부각시키다니...' 아메바와 설탕을 그렇게 차별화시키면 그때까지 무얼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인간의 자유의지 없음을 증명해 왔단 말입니까... 크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 = 아메바 = 설탕 이어야 하는데 그걸 설명하려고 아메바 > 설탕임을 제시하다니요. 아무튼 Orbef님께서는 그동안 끊임없이 부수고 다시 짓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PGRER들이 그 상반되는 글들에 양쪽 모두 찬사를 보내 왔지만 저는 다시 짓고 다시 꿈을 꾸게 해주는 글들에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부수고 무너뜨리는 글을 읽을때면... 이분 또 츤츤거리고 있구면... 결국은 다시 힘차게 달려나갈 거면서... 이런 생각밖에는... 크
15/09/18 15:11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개최자가 상을 차지할 불미스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말머리는 안 답니다 ^^
이건 저의 의지가 아닌 뇌의 화학작용이라능
15/09/18 15:33
[추천] 중2병과 철학의 시발점은 같은게 아닐까요
고등학교 자습시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판타지소설만 들입다 읽으면서 중2(?)코드를 접했었습니다 쿨내나는 악당들은 항상 죽으면 끝인데 뭐하러 아둥바둥 사냐는 투의 대사를 뱉어냈죠 읽은 책이라고는 판무밖에 없던 일개 급식X인 저로써는 반박할수 없는 인생의 진리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판소에서 필멸자는 불멸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대사를 들었는데.. 어디서 나왔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와 x나 멋있네! 라고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어느날 대학 교양시간에 강사님이 우리 한번 다같이 눈을감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며 수련회 등지에서 흔히 하는 임사체험을 소개하고 이제부터 새생명을 얻어 열심히 살아라! 는 진부한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그때 죽음은 끝이라는 표현은 본질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끝인 죽음뒤의 허무는 시작이 없으니 끝도 없는,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인간으로서는 느끼지 못하고 관념적으로 어렴풋이 이해할 뿐인 개념이며 이를 판단과 행동에 준거로 사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 같은데? 생명은 삶과 죽음은 서로 closed set이라고 해야 할까요 영화제목은 색즉시공으로 끝이지만 원래 그 다음엔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이 이어지죠. 결국 모든 것은 허무일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허무가 곧 진실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러한 깨달음은 스님이 방중술을 배움과 같이 아무짝에 쓸데없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해서 지금 제 인생의 모토는 차라투스트라도 뫼르소도 아닌 그리스인 조르바가 되었네요 인간속에 갇혀있는(closed) 존재로서 맛있는거 먹고, 땀흘리며 운동하고, 생각없이 잠에 들고, 구애하고 께임하는 것에 열중하고 있습죠.. 물론 언젠가는 또 바뀌겠지만요 그것또한 인간의 속성이니까 진지는 오뎅탕 먹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진정한 간지폭팔 짱짱맨은 러셀옹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으로 노벨문학상을 타는 간지란..
15/09/18 19:15
제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는 행복한 시지프스라는게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좀 더 우리의 현실에 가까운 예를 들면 아무리 아껴써도 100만원 벌어서 방세, 식비, 세금을 내고나면 정확히 0원이 남아 저축도 하지 못하고, 아프면 그대로 빚이 되어(누가 빌려주는 것만도 감지덕지) 쌓이고, 시간도 없어 일하고, 잠자고, 일하기 위해 쉬는 시간을 제하면 30분도 다른 것을 하지 못하는, 간신히 연명에 가까운 삶을 살면서도 과연 지금 팔다리 멀쩡히 움직일 수 있다고 감사할 수 있는가...만약 감사할 수 있다면 감사할 수 있는 인간과 없는 인간은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건 꽤 고민을 오래 해왔는데 답이 안나오더군요.
15/09/18 23:56
말씀하신 그런 부분은 냉혹한 현실이죠. 그래서 버트런드 러셀이 '행복의 정복' 이라는 책을 썼을 때에도 글 서두에서 '물론 행복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다. 돈이 너무 없다든지, 인종 차별을 받는다든지, 기타 등등 외적 요인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렇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하고, 다만 이 책은 그런 문제가 없으면서도 불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 라는 식으로 선을 긋습니다.
저도 내적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사회 구조 관련해서 투쟁하는 것은 동시에 행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15/09/19 02:39
[추천] 지금보단 더 어렸을 적에는 혼자서도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었고, 데카르트를 만나면서 나도 머지않아 정리해낼 수 있었던 것을 선점한 사람이라고 폄하하며 시기했고 프로이트부터는 열등감 폭발의 연속이었던 지라 니체니 뭐니는 심취해서 볼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어디의 누군가가 비슷한 고민을 했고 앞으로 또 누군가는 해나갈 것이란 생각에 위안 아닌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이 흥미롭고 어쩌면 오히려 그 과정이 재밌어진 것 같습니다. 역시 책 좀 많이 읽어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15/09/19 12:34
[추천] 까라마조프를 요즘 읽고 있는데 이성적인 무신론자 이반 까라마조프에게는 극단적인 염세주의자 스메르자코프가 가장 두려운 대상이더군요. 이성주의자가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으려고 어쩌면 신이라는 가장 쉬운 답을 두고 어려운 답을 찾고 있는게 진성 이과인 답기도 합니다.
15/11/18 01:23
자유의지를 이성과 선택으로 말하는 대니얼 데닛의 관점이, 인과에 따르는 맹목적 의지를 바라보는 이성과 반성하는 선택으로 보는 제 관점과 겹치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독서 리스트에 올려두겠습니다.
잘 쉬었네요, 그럼 허무주의와 우울증과 마주하는 그 전선으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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