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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8/23 22:56:02
Name 바위처럼
Subject [일반] 영화 심야식당을 보고


심야식당이 드라마로 방영되었을 당시, 드물게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는 드라마였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일본드라마의 인기란 일본에서 한국드라마의 인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마이너한 영역인데도 말이다. 당시에는 지금에 비해 푸드 버라이어티를 비롯한 먹방이나 요리 등이 붐을 타기도 전이었으니 더욱 신기한 일이다. 인상 더러운 아저씨와 여러 조연급 배우들이 등장해서 20분간 식당에서 밥먹고 이야기하는 드라마가 말이다.


영화 심야식당은 이런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되었고, 그 흥행이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흥행과 별개로 나는 이 영화에서 아주 독특하고 편안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옆사람과 공동체를 맺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이 공동체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이는 사람이 나빠서라기보단,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가 뜬 시간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따지고, 재고, 갈등하며 합리적이 되려 애쓴다. 나 자신 부터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하려는, 그러나 '이치에 합하는' 것이 아닌 '이익에 합하는' 합리주의자로서 산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점점 옆 사람들이 두렵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는 휴전선을 찾는다. 심야식당은 밤 12시부터 약속된 비무장지대처럼 느껴졌다.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서, 이유 없는 오지랖을 부리지만, 동시에 서로를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그러나 누구도 서로의 삶을 쥐고 재려 하지 않는 그런 장소와 시간. 마스터가 재료가 있다면 원하는 것을 만들어 준다는 규칙이 이를 더욱 극대화 하는 느낌이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먹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내일의 전장에서 마주치겠지만 지금만큼은 서로 공동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생판 남인데도.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꼈던 갈증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사이좋고싶다. 나도 저 식당의 자리 한켠에서, 서로의 삶이 다르고 서로의 싸움이 다르다 한들 서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삶을 긍정할 저 공간이 정말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저 자리에서 생겨나는 생판 모르는 남들 사이의 동질감이 우리를 인간이라는 명사로 묶어주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어설픈 위로 한 마디 하거나 참견 한 마디 하는 요령없이, 뭐라도 만들어 주겠다는 중년의 아저씨의 호의가 가장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자주 사람들을 상처주고 살아간다. 어쩌면 사람은 그런 모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영화 심야식당은 내게 정말 부러운 영화였다. 세상 어딘가에 남아있는 듯한, 사람간의 공동체가. 우리는 생판 모르는 남이더라도 서로의 삶을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인간성'이 여전히 보편적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정말 적절히 표현해주는 듯한 그런 영화였다.


어쩌면 세상을 변하지 못하게 하는 건 내가 갖는 두려움과 불신, 그리고 합리성이 아닐까 하며 타인에 대한 시선을 좀 더 평화롭게 다듬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월요일을 앞둔 지금, 아주 좋은 영화 선택이었다는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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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15/08/23 23:10
수정 아이콘
개인적인 올해의 영화입니다.
너무 따뜻해요.
마스터충달
15/08/23 23:11
수정 아이콘
다른 이를 위해 요리하는 모습만큼 따뜻한 것은 세상에 별로 없지요.
라니안
15/08/23 23:33
수정 아이콘
오옷 별생각없이 읽다가 뭉클했네요
닭이아니라독수리
15/08/23 23:13
수정 아이콘
극장에서 봤는데 일본영화의 장점과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토프레
15/08/23 23:27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15/08/23 23:40
수정 아이콘
일드 회원으로 일드를 자주 관람하지만 먹방은 취향이 아니라 심야식당은 못봤습니다.
올해 영화 나왔다는 뉴스봤고 특히 좋아하는 오다기리 죠의 경찰복장 이미지도 봤길래 보러 갈까? 했지만... 관뒀습니다.
예전에는 혼자 영화관을 거뜬히 드나들었는데 이젠 영 쪽 팔려서... 라기 보다는 엔간한 영화는 시시해서 몰입이 안되어 중간에 나와버리는 상황이 몇번 발생하면서 영화보러 가는 게 좀 망설여지더라 고나 할까 요. 극장을 점점 안가게 되더라는...

심야식당 한국에서 드라마로 리멬하지 않았나요? 김승우가 주연이라는 글도 봤었는데...
역시 짐작대로 망했다고 하던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누릅니다.
종이사진
15/08/24 06:48
수정 아이콘
김승우가 아닌 김영호가 거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뭐...망했겠죠.
네오크로우
15/08/24 09:49
수정 아이콘
30분짜리라 그냥 간단하게 보기는 좋아서 pooq 다시보기로 빠짐없이 보는데 이 드라마가 마력(매력x)이 있습니다.
매회 메인이 되는 주인공 (손님)들이 바뀌는데 꽤나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지진희, 심혜진, 오지호 등등.
그런데 다들 연기가 어색해 죽을 지경입니다. 예전 아이돌이라고 연기 이상해서 막 화제가 됐던 그런 장면마냥
다른 기존 배우들도 뭐지?? 왜지?? 하는 연기가 쭈욱 이어 나오니 그거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어색의 미학을 잘 표현한 드라마입니다. ;;;
15/08/24 07:08
수정 아이콘
일드 좋아했고 영화도 개봉하자마자 찾아봤습니다. 만족스럽더군요. 스토리가 잘 빠졌느니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느니 이런 게 중요해지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약속된 비무장지대 라는 표현 참 좋네요.
리리릭하
15/08/24 09:43
수정 아이콘
다들 가볍고 빠른것을 원하는 세태 중에, 일어의 渋い 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다른 젊은 여 배우 말고 타베 미카코를 써준것도 좋았어요.
포도씨
15/08/24 15:41
수정 아이콘
일드 심야식당은 안봤지만 우리나라 드라마는 뭔가 우리 정서랑은 안맞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게 원작에 충실하려해서 생기는건지 연출력 부족인지를 모르겠어요.
그리고 배우들이 연기를 해요....크크
진짜 말장난같은데... 몰입이 안되고 배우들 연기하는걸 보고있게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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