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의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알렉산더 3세에게는, 과거 사망한 전부인으로부터 얻은 2남 1녀가 있었다. 다만, 이들은 모두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르는 탓에, 살아있는 후계자는 한 명도 없었던 것이었다.
대신,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알렉산더 3세가 그렇게 보고 싶어 미칠듯이 찾아가다가 사망하게 된 그 둘째 부인, 요렌테가 임신 상태였던 것이다.
"후계자를 어찌해야 할까요?"
"일단 왕비께서 임신 중이라고 하시지 않소? 자식이 태어나면 그때 결정해보는 것이……"
이 불안정한 '미래의 후계자' 를 놓고, 스코틀랜드의 정치는 두 패로 갈려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갤러웨이의 존 벨리올(John Balliol of Galloway)이라는 인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 the competitor)였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 나온 인물이자 훗날의 로버트 1세인 그 로버트 브루스는 아니다. 이 때의 로버트 브루스는 로버트 브루스 5세로, 우리가 아는 '그 로버트 브루스의 할아버지' 였다. 나이도 80살의 영감님이었던 것이다.
이 두 패로 나뉜 스코틀랜드의 야심가들은, 훗날 태어날 아기씨를 놓고 자기들끼리 격렬한 정치적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들 하는 일이 그렇듯, 이들은 끊임없이 싸워대며 눈치대결을 펼쳐왔다.
"이 놈 이거, 영 싹수가 노랐네? 못되겠네 이놈?"
"이 놈 말하는 꼬라지 좀 보소...."
"저, 저기요."
"아이고, 왕비님! 무슨 일이십니까? 저 불충한 놈들이 괴롭히셔서 그러십니까?"
"어허, 이런 천박한 놈들이 날뛰니 왕비님이 언짢으신게 아닌가! 왕비님, 저희가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저, 그게. 사실 저 임신 아닌 것 같은데요."
"예???"
"그, 의사가 그러는데...상상 임신이라고..."
"!!!!"
유일한 대안으로 보였던 둘째부인 요렌테의 뱃 속에 있는 건 성스러운 왕가의 아기씨가 아니라, 그저 성인 여성의 숙변이었을 뿐이다. 있지도 않은 핏줄을 가지고 난리통을 벌이던 두 패거리는, 결국 뻘쭘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저... 이제 어떡하나?"
"어떻게든 왕위는 채워야겠고... 왕가의 핏줄 이어받은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나? 정 안되면 여자라도 왕위에 올려아지."
"아, 생각해보니 한 명 있기는 있더라고."
노르웨이 처녀 마가렛(Margaret, Maid of Norway)
생존해 있는 왕의 가장 가까운 핏줄은, 바로 외손녀인 '노르웨이 처녀 마가렛' 이었다. 알렉산더 3세의 전대왕인 알렉산더 2세의 딸, 마가렛이 노르웨이의 왕이었던 에릭 2세와 결혼해서 낳은 자식으로, 당시 나이는 고작 3살이었고 살고 있는 곳은 노르웨이의 궁전이었다.
그러나, 왕가의 핏줄이 더 없으니 어찌하겠나...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그런 3살짜리 어린이라도 노르웨이에서 데려오려고 안간힘이었다.
그리고, 이런 꼬일대로 꼬인 후계자 문제와, 이로인한 정치적 분쟁을 원만히 해결해줄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우리끼리만 이렇게 해봐야, 맨날 싸움만 벌어지니 소용도 없다. 차라리 좀 쎈 사람에게 중재 좀 해달라고 할까?"
"선왕도 사망했는데 그런 사람이 또 어디에 있다고?"
"왜 없기는! 저 아래에 있잖아. 잉글랜드에."
그렇다.
잉글랜드에는 에드워드 1세가 있었다.
에드워드 1세(1272 ~ 1307)
당시의 영국왕 에드워드 1세는, 틀림없이 중세 서유럽을 통틀어 손에 꼽힐만한 위대한 군주였다.
이미 선왕인 헨리 3세의 시대부터 사실상 대리 통치를 해온 에드워드는 잘생긴 용모와 그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Edward the Longshanks) 큰 키를 가진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중세의 군주답게 마상시합을 즐기고 또 여기에 능했다. 그러나, 동시에 높은 지성을 가진 문화인이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의 소유자로 끊임없이 업무에 매달렸으며, 음식을 많이 먹지도 않았고 (술을 포함한) 음료수는 물 외엔 거의 마시지도 않았다. 그는 가족에 대한 강한 애정과 친구에 대한 성실성, 용기, 뛰어난 군사적 능력, 지도력을 골고루 갖춘 걸물 줄의 걸물이었다.
허나, 동시에 왕은 강한 복수심과 난폭함,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선대왕인 헨리 3세 시절, 왕자 에드워드는 헨리 3세에게 맞서는 귀족 시몽 드 몽포르(Simon de Montfort)를 상대로 이브셤 전투(battle of Evesham)에서 대승을 거두고, 전사한 시몽의 육체를 갈가리 찢어 놓았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적에게는 일말의 동정도 베풀지 않는 냉혹한이었다.
잘나가던 헨리 2세 시절의 잉글랜드. 이때는 잉글랜드보다 대륙쪽 영토가 오히려 알짜였다.
아무튼 에드워드 1세는 잉글랜드의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I)로 불릴만한 행정가인 동시에, 브리튼 통일전쟁을 수행할만한 군사적 사령관이기도 했다.
어째서 잉글랜드의 군주가 웨일즈 등의 지역에 관심을 보였느냐면, 선대왕인 존 왕과 헨리 3세 시절을 거치며 영국의 대륙쪽 영토가 모조리 날아가버렸기에, 잉글랜드 왕은 예전이라면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을 잉글랜드 지역에 절대적인 관심을 보일 수 밖에 없었고, 그 떄문에 역시 평소라면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을 이웃들에게 더 관심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웨일즈나 스코틀랜드 입장에선, 이웃인 잉글랜드가 대륙에서 승리를 거두고 잘나가면 잘나갈수록 안심이었으나, 반대로 패전하고 약화되자 오히려 위험해진 묘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아무튼 웨일즈와의 전쟁에서 에드워드 1세는 한계는 있었지만 뛰어난 전과를 거두곤 했다. 문제는 스코틀랜드였는데...
바로 그 스코틀랜드 쪽에서, 먼저 에드워드에게 연락을 보낸 것이었다.
"저기, 전하. 성가시게 해서 죄송하지만, 저희 나라의 정치적 문제를 좀 해결해주지 않으시렵니까?"
"응? 뭐... 안될 건 없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스코틀랜드에서 자신들의 내정 문제를 잉글랜드 쪽에 의뢰한것이 이상스러워 보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이 무렵까지만 해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그닥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고, 두 왕족들 사이에 통혼도 빈번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가까으면서도 먼 친척이 다른 친척집 일에 관여하는건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에드워드의 야심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일 테다.
"안될건 없지만 말이지, 대신 너희들이 날 '스코틀랜드의 상왕' 으로 인정하면,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지."
"네? 그건 좀..."
"싫음 말고."
"음..."
여지껏 스코틀랜드의 군주들은 잉글랜드의 군주에게 신서를 하였다.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왕들이 잉글랜드에 보유하고 있는 봉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잉글랜드 영토 내의 봉토의 주인으로서 신서를 한 것이다.
헌데, 지금 에드워드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스코틀랜드의 군주가 스코틀랜드 왕국 내 소유한 모든 토지의 소유자라는 명목으로서도 봉신을 해야 한다는 것' 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에드워드 1세는 자신의 교활한 야심을 얼핏 내보인 것이지만...
"전하. 죄송하지만 그렇게까진 안하렵니다."
"진짜?"
"레알."
알렉산더 3세의 사망 이후에 뒤따르는 여러 진통 속에서도 스코틀랜드인들은 에드워드 1세의 상왕권 요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끝났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만,
"어... 그렇다면 말이지. 우리 그냥 회의 한번 하자고."
"회의요?"
"그래. 스코틀랜드에서 대표단을 보내. 나도 잉글랜드의 대표단을 뽑을테니까. 아참, 노르웨이에서도 대표단 보내라고 해."
1289년 여름, 에드워드 1세는 노르웨이에 있는 3살 짜리 마가렛의 귀환 문제를 상의하는 명목으로, 각국의 대표단을 모아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 솔즈베리 조약(Treaty of Salisbury)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노르웨이는 마가렛을 스코틀랜드로 보낸다.
→ 나이 어린 마가렛은 에드워드가 보호해줌.
→ 만약 스코틀랜드나 노르웨이 사이에서 또 이 문제로 분쟁이 벌어지면, 에드워드가 이를 중재함.
좀 이상해보인다. 잉글랜드 왕인 에드워드가 무슨 명목으로 스코틀랜드의 군주가 될 마가렛의 보호자를 자처한단 말인가?
여기서 에드워드의 권모술수가 펼쳐지는데, 에드워드 1세는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 와 3살 짜리 마가렛을 결혼시키려 했다. '스코틀랜드의 여군주' 가 잉글랜드 왕의 며느리라면, 그것도 고작 3살 짜리 아청법 철컹철컹한 며느리라면, 사실상 스코틀랜드의 지배권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나 에드워드의 첫번째 계략은 시도조차 못하고 실패했는데, 1290년 9월 26일 노르웨이 처녀 마가렛이 어린 나이로 사망 했던 것이다.
"아, 아깝다.... 왜 그 얘기는 하필 이런 타이밍에 사망하누? 쩝쩝"
에드워드 1세는 입맛을 다셨겠지만, 허나 사태는 또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싸우자!
유일한 대안으로 보였던 마가렛 마저 사망하자, 스코틀랜드의 야심가들은 또다시 치열하게 대결하기 시작했다. 마가렛이 사망한 즉시 80세의 로버트 브루스가 군사를 이끌고 움직였고, 그 적수였던 존 벨리올 역시 "나야말로 진정한 스코틀랜드의 상속권자임!" 하고 주장했다.
이 두 유력한 세력이 왕위에 노골적으로 욕심을 보이는 한편, 쩌리에 가까웠던 10명의 다른 인물들도 온갖 가계를 통해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순식간에 스코틀랜드는 12명의 왕위 계승자가 있는 난세에 접어들게 되었다.
사태가 이런판이니, 평화를 바라던 다른 귀족들이나 성직자들은 난리가 났다.
"아이고, 뭔 얼불노도 아니고 12명이 지지리 볶고 하면 스코틀랜드 다 죽는다 이놈들아!"
"얘들이 철없어서 자기들끼리 싸우네. 그럼 어른 데려와서 힘으로라도 화해 시켜야지!"
그리고, 브리튼 섬 내에서 이것이 가능한 군사적 세력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 인들은, 다시 한번 에드워드를 찾아가게 되었다.
"혼인 작전도 실패했고, 영 방법이 없는건가. 스코틀랜드,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쩝쩝."
"전하~~ 속히 전하께서 우리 스코틀랜드 정치에 무력 개입하셔야 합니다! 행동을 촉구합니다!"
"뭐야?"
이게 왠 떡이냐 싶었을 에드워드는, 아주 당당하게 "오냐. 얼라들이 싸우는데 내가 문제 해결해주지!" 하며 다시 스코틀랜드 문제에 개입하게 된다.
훗날 증명이 되지만, 이는 결국 순진무구한 양의 무리들이 탐욕스러운 늑대를 끌어들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양들의 환상과는 달리 늑대는, 웨일즈에 대해 그랬던것처럼 스코틀랜드에 대해서도 탐욕스러운 침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