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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22 14:20
어디까지나 추측들 뿐이겠지만, 할아버님이 북한쪽에 설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고,
일제시대에도 일제에 부역하였던 친일들이 다시 새로운 주도 세력에게 협조해 보전했듯이, 전쟁이 기울어지자 약삭빠르게 변절해 국군이나 미군 세력에 빌붙어 살아남은게 아닐까요?
15/08/22 14:22
6.25 전사 연구하는 사람들이 쓴 책이 있지 않을까요? 진지하게 의문에 대해서 답변을 얻고 싶으시다면 민간인 학살에 대해 다룬 책을 읽어보시거나 그 작가에게 연락해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저야 알지 못하지만 양측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서 연구하신 분이 분명히 있을거 같네요.
15/08/22 14:30
박정희처럼 남로당 출신의 군인이었으나, 조직원들을 모두 고발하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사면-복권 처리된 경우도 있으니
할머님께서 본 사람도 그런 게 아닐까요? 극렬 공산당원이었다가 큰 공을 세운 우익 협력자요. 경찰 공무원 신분이셨다면 박정희 건처럼 숨어 있는 공산당원이라는 특이한 경우보다는 아무래도 이 편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15/08/22 14:37
1. 각 마을에서 저런 일들 많지 않았을까요? 조직의 윗대가리면 몰라도 그냥 행동대원 A 같은 경우에는 전쟁통에서 안 죽었으면 뭐 옆마을 같은데로만 가도 다들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살았을듯요.
15/08/22 14:55
북한군에 붙어서 학살했다는 증거도 없고 알기도 힘드니 그냥 전쟁이 끝난뒤에는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지냈겠지요. 할머니가 신고라도 하셨으면 잡혀가지 않았을까요.
15/08/22 15:00
1. 저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런 일 더러 있습니다.
2~5. 당사자가 아니라면 여기 있는 누구뿐 아니라 E.H. 카가 살아서 돌아와도 대답을 못할 겁니다. 커다란 흐름이 아닌 개별 사건에서는 얼마든지 특별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당사자들 찾아다니면서 확인하는 겁니다. 그게 어렵다면, 지방에는 각 군, 면 역사를 연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네요.
15/08/22 15:10
미스테리이긴 하네요
저도 어릴적 6 25때 인민군 국군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살해 이야기를 한다리 건너 이따금씩 듣기는 했는데 인민군은 고의로 국군과 미군은 오해에 의해서 결과에 이르렀다는 식의 표현이 함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자기검열이라고 볼 근거는 군사독재 시절이란 점이고 아니라고 볼 근거는 창작이라고 보기엔 아주 정황이 구체적이란 점이었습니다. 저는 후자쪽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대체로 전쟁 초반 3개월동안 북한군은 오만했고 인민재판을 통해 민심을 사려했으나 도리어 민중재판을 통한 피해자의 양산으로 공포를 불러일으켜 민심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대화에서 할머니가 직접 빨갱이라고 하신 구절이 없어 불분명하지만 아버지에게 말씀하실때 김가놈(또는 박가놈 anyway) 빨갱이놈을 혼용하셨다면 적어도 아버지 말씀이 거짓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
15/08/22 15:20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당시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의심으로 국군에게 일주일간 취조를 받았습니다
결국 사실무근으로 풀려나긴 했으나 당시 받은 고문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다시 일주일 뒤에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구요 외할머니 이야기로는 일본에서 보일러 기술자였다고 하고 광복직전엔 직원이 열몇이되는 자기 공장까지 차렸다고 하시던데 조국의 해방소식을 듣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모국으로 귀국선을 탔었답니다 공산주의나 이념등은 전혀 모르시는 무지렁이였답니다 당연히 북한국에게 협조하거나 앞잡이 노릇할만한 깜냥조차도 없었답니다 지금와서 그런걸 거짓으로 손자에게 전할리없다는걸 고려하면 외할머니 말씀이 신빙성이 있지요 일본에 있을당시 한국인이라 모진 차별과 설움이 있어 결국 귀국했던걸 생각하면 결국 외할아버지는 철저한 한국 근대사 비극의 희생양인거지요 본문의 할아버님 경우도 특정한 맥락 보다는 그냥 시대에 휩쓸린 피해자였을겁니다
15/08/22 15:32
경찰 공무원이시고 재산이 얼마나 있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대표적인 타겟이 이른바 유산계급과 그에 동조하는 세력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봅니다. 그리고 협력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라고 생각해본다면...뭐 말 그대로 박쥐같이 살아남았다라고 밖에...
15/08/22 16:05
노무현 장인이 인민군 앞잡이로 활동하면서 양민학살에 가담한 후 이 때문에 옥사했다 그래서 전 이런 케이스가 보편전인줄 알았는데 아닌 경우도 있었군요...
15/08/22 16:13
구전일뿐이지만 들으셨다는게 모두다 사실일거라고 가정했을때.
죽음에 한몫을 한 소위 앞잡이가 살아있는게 이상하고, 살아있는 이유가 정부편이라면 조부께서 반대로 몰려서 사망하신게 아니냐란 의문을 가지시는거 같습니다. 일단 조모되시는분의 증언도 있는걸 볼때, 빨갱이로 몰았냐 빨갱이가 몰았냐를 착각하셨을거 같진 않고, 앞잡이었던 인간이 간쓸개같이 이리저리 잘 붙어서 살아있는게 아닐까요.
15/08/22 16:29
운빨이지만, 전향한 경우 봐 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급박할 때야 마구 죽였지만 이후엔 유화적으로 나갔구요. 적극적으로 우익으로 돌아섰다면 더 그렇고, 빽이 있다거나 하면 더 그렇죠. 할머니께서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분노하셨겠지만, 살아만 있다 뿐 편히 살지 못 하고 있었을 수도 있구요.
그리고... 만약 보도연맹과 관련이 있다면 피해자 쪽은 아닐 거 같습니다
15/08/22 22:12
저도 미스테리한 가정사(?)가 있는데...
외 할아버지가 일제시대때 부터 6.25 전쟁 후 돌아가실때 까지 그 당시 서울근교(지금은 서울)에 자리잡은 집성촌의 수장(?)이지 지주 였습니다. (조선왕조 내내 그 동내에 자리잡은 집안입니다. ). 전쟁때 마을의 씨족들은 아무도 피난 가지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내려왔을때도 남한이 수복했을때도... 중공군이 몰려왔을때도 씨족들은 큰 피해를 당한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제가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할수 없는 뭔가 미스테리하다고 생각 합니다.
15/08/23 15:30
송기원의 '배소의 꽃'도 그런 류의 내용인데.... 정말 수많은 경우가 있죠.
사실 실제로는 그게 대부분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만큼, 수복한 다음에 부역자들 봐준 케이스가 정말 많습니다. 옛날 할아버지 얘기 들어보면 저희 시골에도 완장차던 사람이 있었는데 마을안에서는 못살고 3-4분 정도 떨어진 마을 초입에서 혼자 밭일하고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는 오가는 사람들 상대로 가게 차려서 먹고 살았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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