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이야기는 1286년 3월 18일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3세(Alexander III of Scotland 1241 – 1286)
이 모든 난리는 바로 이 아저씨 때문에 벌어졌다.
이 무렵 스코틀랜드 국왕인 알렉산더 3세는, 고작 8살에 즉위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제위 기간 중에 특별히 커다란 실책이 있지도 않은 무탈한 평화의 통치를 했다. 알렉산더 3세도 문제없이 세월을 먹고 40대의 나이에 이르고, 이대로라면 큰 문제없는 통치 기간을 거칠 듯 보였다.
그런데....
문제의 1286년 3월 18일.
알렉산더 3세는 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에서 봉신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다. 성가신 회의가 끝나자, 모두는 즐거운 화합의 자리를 가지게 된다.
"위하여!"
알렉산더 3세와 봉신들은 모두 포도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알려지기로는, 이때 마신 포도주는 가스코뉴 산 포도주였다고 한다.
아무튼, 이 날 알렉산더 3세는 평소 주량보다도 좀 무리를 한 모양이다. 한참을 마신 왕은, 갑자기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놔! 나 둘째 마누라한테 갈끄야! 지금 당잘 갈란다!"
알렉산더 3세의 둘째 부인인 요란데(Yolande of Dreux)가 있는 킹혼(Kinghorn)은 에딘버러 성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다. 더구나 날이 저물어 밖은 어둡고, 더구나 날씨는 사나워 비바람이 치고 있었다.
"전하. 가지 말라고 안할테니까, 그냥 기다렸다가 날 좀 밝아지면 가시죠?"
하지만 술 취한 사람이 언제 말 제대로 듣는 법이 있던가, 알렉산더 3세 역시 이런 말들은 쿨하게 무시했다.
"갈끄야! 갈끄야! 갈끄야! 나 갈끄야!"
(아놔....)
결국 잔뜩 술에 취한 알렉산더는, 봉신들의 모든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거지로 세 사람의 길잡이만을 데리고 폭풍우 속으로, 길을 떠났다.
술 잘 못 마시면 이렇게 되는 것을....
아무튼 꽐라가 된 알렉산더는 달메니(Dalmeny) 나루터라는 곳에 도착했다. 마누라를 만나러 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여먄 했었다.
"야! 뱃사공 나와!"
"헉! 전하, 이런 시간에 갑자기 무슨..."
"야, 나 작은 마누라 보러 갈란다! 배 띄어!"
"네에?"
나루터의 뱃사공은 비바람이 치는 날씨에 강을 건너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왕을 설득 하기 위해 손짓 발짓 온갖 성의를 다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묵묵히 그 말을 들은 알렉산더가 대꾸하길,
"야, 너 나랑 같이 죽는 게 무섭냐?"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이다. 결국 뱃사공은 비바람이 부는 날에 겨우겨우 배를 몰아 강을 건널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어거지로 강을 건너는데 알렉산더가 성공하자, 현지의 염전 관리인은 야밤중에 이게 뭔 일이냐 싶게 비 맞으면서 왕을 맞이해야만 했다.
"아이고, 전하! 이게 다 무슨 일이랍니까?"
"나, 꺼윽. 마누라 보러 갈란다! 준비해라!"
"이렇게 날씨가 안 좋은데, 위험하십니다! 그냥 제 집으로 가시죠. 날 밝으면 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시끄라! 거 지금 갈란다는데 뭔 말이 많아.... 정 그러면, 길 안내할 사람 2명만 붙여주라. 내가 알아서 갈끄야!!!"
때를 쓰는 게 어린아이여도 통제하기 힘든데, 하물며 일국의 왕이 떼를 쓰는데 무슨 방법이 있나... 결국 알렉산더는 2명의 안내자와 함께 기어코 길을 떠났다.
그러나, 이것이 비극이 될 줄이야.
그런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폭풍우에 비바람에 어두운 날씨에, 술까지 마시고 가는 음주운전. 온갖 난간 끝에 일행이 겨우 2마일 정도를 지났다 싶을 무렵, 결국 모두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말의 본능만에 의존하여 이동하던 일행은 잠시 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고, 안내자 마저 잃어버린 알렉산더는 대체 그 놈의 작은 마누라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 놨는지, 기어코 기어코 말을 몰아 움직이려 했다.
"아이고, 이 놈의 멍청한 말아! 얼른 안 가고 뭐하냐.... 으허어억!"
결국 음주운전을 시도하던 알렉산더는 말에서 떨어져 고꾸라지고 말았고,
하필이면 떨어진 그 곳이 벼랑이었으며,
또 하필이면 떨어지며 부러진 곳이 '목' 이었다.
그렇다. 알렉산더 3세는 말에서 떨여저 목이 부러지고 죽어버린 것이다. 왕의 시체는 다음 날 발견되었다.
알렉산더 3세는 명군 축에 들어갈법한 군주였지만 어처구니 없는 사망 하나로 모든 문제를 망쳤다.
알렉산더 3세는 노르웨이의 침공을 물리치고 오히려 역공을 펼쳐 맨섬 등을 점유한, 지난 세기의 영웅이었다. 그런 국왕의 사망은 그 자체로도 큰 비극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적법한 남성 후계자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는 것이다.
1057년 말콤 캔모어(Malcolm Canmore)의 통치로부터 알렉산더 3세까지 이어진 스코틀랜드의 단일 왕조는,
가스코뉴 산 포도주 하나로 말끔하게 종결되었다.
전대의 왕이 후계자도 없이 사망한 이 상황, 대번에 국내 정치가 혼란해질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연대기 작가 앤드루 윈토운은, 스코틀랜드의 운명을 바꾼 이 운명의 밤에 대하여 "우리의 황금 시기는, 역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변화하였다." 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진정한 문제는, 국내보다는 바로 국외에서 다가오고 있었으니.....
"거 스코틀랜드 놈들이 왕위 계승자가 없다는데요."
"뭐시라? 잠깐, 그것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
스코틀랜드에 있어서 내부의 불운이 알렉산더 3세의 사망이라면, 외부의 불행은 바로 잉글랜드의 군주였다.
중세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만큼 교활하고 무시무시한 강철의 군주가, 바로 그들의 이웃에 있었던 것이었다. 이 잉글랜드 왕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남자인지, 곧 모든 스코틀랜드 인들은 뼈저릴만큼 매섭게 느끼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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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바로 그 무렵 배경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내용은 좀 많이 다르긴 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