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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2/20 03:50:01
Name 랩교
Subject [일반] 정치 초보의 이번 대선을 통해 느낀 고민과 잡감
사실 이번 대선에선 하루 전까지만 해도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 현재 성향은 굳이 따지자면 민족주의 보수우파에 가깝습니다. 시각에 따라 극우로까지 보여질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 이쪽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은 한독당 사건 이후 씨가 말라버렸고 현재는 그러한 이념을 드러내는 정치인조차 거의 찾기 힘들더군요.

전 기본적으로 아직 우리나라는 복지 또는 분배를 생각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국가주의에 기반한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와 대기업 중심 발전이 여전히 유효하며 아직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새누리당은 꽤나 좌클릭해버렸고 무엇보다 새누리당은 제 대북관과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대북관으로 따지면 문재인 후보가 훨씬 제게 가깝죠. 전 햇볕정책의 강력한 지지자입니다. 오히려 전 당시의 햇볕정책이 과감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표를 누구에게 줘야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무소속 후보에게 표를 던지자고 잠정적으로 결정했지만 결정적으로 대북관만 제외하면 제 성향과 유사한 이회창 전 총재가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감안, 결국 투표일엔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대구 출신이다보니 지역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도 있습니다. 이겨도 가족, 또는 주변 사람들과 같이 웃고 싶고 져도 같이 실망하고 싶었습니다.

전 우리나라에 좀 더 다양한 정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투표를 하려다보면 사표를 던지고 싶지 않은 유권자로선 선택의 여지가 너무 제한돼 있습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은 여전히 매우 불안정한 기반을 가지고 있고 전체적으로 한국 정당들의 이념이 다양하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일본만 봐도 새누리당과 비교를 불허하는 극우 정당이 버젓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고 극좌파인 공산당이나 좌파인 사민당,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미래의 당 등 우리나라처럼 보수 일색인 건 맞지만 그 외에도 많은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죠. 항상 그렇지만 제 성향에 맞는 후보를 고르기가 참 힘듭니다.

이번 대선의 단일화 과정이나 보수 vs 진보 프레임을 보면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솔직히 전 심상정 전 후보나 이정희 전 후보가 그대로 출마를 했다면 찍어줄 요량도 있었습니다. 비록 제 성향과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진보 정당이 좀 더 세를 불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사상만이 우월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보다는 여러 이념이 어울리고 서로 견제하고 각자의 장점을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정치 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선을 치르면서 알게 모르게 다 사퇴하고 결국 남은 건 박근혜냐 문재인이냐 양자택일이더군요. 물론 대선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과도한 단일화가 유권자 선택의 폭을 줄이고 민심을 다소 왜곡한다는 점에서 과연 옳으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런 현상은 현 선거의 승자독식 구조가 나은 폐해라고 봅니다. 적어도 문재인 후보처럼 과반에 육박하는 표를 얻은 정당이나 인물은 차기 정권에서도 일정 이상 발언권을 가지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패자에게도 어느 정도 지분권을 배분하는 그런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민주주의의 고도화가 거기까진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 정치 초보입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지도 얼마되지 않았고 이번 대선의 모든 과정을 온전히 지켜본 것도 아니라 PGR의 많은 분들에 비하면 정치에 대해 아는 것도 극히 적을 겁니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많은 점을 느낄 수 있었고 아직도 더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이번 대선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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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20 03:56
수정 아이콘
저와 사상적 지향은 반대시지만 정치에 대한 비전은 완전히 똑같네요.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진정 훌륭한 보수주의자이신 듯 합니다. 반갑습니다.
12/12/20 04:4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단빵~♡
12/12/20 03:58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봤습니다 새누리당을 지지하시는 강력한 햇볕정책지지자시라니 많이 특이하시네요 보통 햇볕정책에 반대해서 새누리당 지지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전 진보정당 지지자이고 이번에 제가 지지하는 분이 사퇴를 하면서 문재인후보를 지지하였는데 .결선투표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심의원의 사퇴의 변처럼 심상정의원이 단일화때문에 사퇴하는 마지막후보가 되셨으면 좋겠고. 새누리당과 민주당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힘을 합해서 선거법 개정을 바랍니다 ㅠ 보수던 진보던 단일화나 표갈림으로 손해를 많이 봤으니 서로 명분과 실리를 다 챙길수있다고 생각합니다.
12/12/20 04:45
수정 아이콘
음.. 결선투표도 한 방법이긴 한데 득과 실을 따졌을 때 득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선거를 두 번 한다는 것도 꽤 부담이구요. 만약 도입한다면 치밀한 검토 끝에 신중히 도입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론 단일화 룰의 일부 법정화 등 협상 과정의 개선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안-문 단일화 과정에서 부작용을 심각하게 드러낸 만큼 일단 변화가 필요하다는 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을 겁니다.
yangjyess
12/12/20 04:04
수정 아이콘
저도 성장중심의 경제관에 대북 햇볕정책 지지자인데 성향이 같으시군요. 다만 이번 야권 단일화 과정은 진보vs보수 프레임보다는 유신독재와 5공의 잔재를 이유 막론하고 무너뜨려야 한다는 대의가 더 컸던것 같습니다.
yangjyess
12/12/20 04:07
수정 아이콘
그리고 개인적으로 박근혜후보가 당선되도 크게 걱정 안하는것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많은분들의 걱정과는 달리 꽤 건강하게 성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박정희가 되살아돌아와 대통령이 된다 해도 예전같은 독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12/12/20 04:46
수정 아이콘
박근혜 후보의 성향상 개인적으론 큰 다사다난 없이 대한민국이 굴러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워낙 현 정권에서 문제가 많았던 만큼 오히려 체감상으로는 개선되는 면도 많을 테고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노무현 정권 시절 느꼈던 변화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피로감도 많았을 것 같은데 박근혜 당선자에게선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조금 밋밋하기도 하지만 이런 게 보수계열 후보의 장점이기도 하겠죠.
몽키.D.루피
12/12/20 04:51
수정 아이콘
독재자의 딸이라도 민주주의 제도 내에서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엄청난 똘레랑스를 보여줬죠.. 이젠 그 정권이 국민들에게 똘레랑스를 보여줄 차례인데 제발 염려하던 상황만 안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프리템포
12/12/20 06:4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승자 독식의 측면에 관해 짤막하게 언급해보면 고 김대중 대통령이 주장했던 정부통령제 도입도 하나의 방법이 될듯 합니다. 한 명이 보수면 다른 하나는 진보진영이 되서 균형도 맞추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권한대행도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구요. 4년중임제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권력을 가지는 기간이 줄고 재신임시 장기적으로 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요. 현정부엔 힘들더라도 언젠가 이런 개헌 논의가 꼭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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