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평수였지만 우리 식구가 살기에 나쁘지 않았던 아담한 빌라에서 가게 딸린 방 두 칸 월세로 이사를 왔는데, 나는 그 집이 처음부터 너무나도 싫었다.
처음엔 그 가게 전체를 쓰던 아빠는 이후 돈이 아쉬웠는지, 공간을 합판으로 나누어 벽을 치고 한 귀퉁이에 사무실을 만들어 세를 받았다.
그나마 넓었던 가게가 절반으로 줄었던 건 내게 큰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중요한 건 세입자들이었다.
절반으로 나뉜 그 사무실이 정확히 언니와 내가 쓰는 방 벽과 맞닿아 있어, 저녁내내 소음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는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아저씨들은 오후 경부터 새벽까지 그곳에서 노름을 했다.
노름만 했냐 하면.. 욕도 하고 싸움도 하고, 매일같이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시켜 배달 온 여자들을 희롱하기도 했다. 그 소리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들려 하교 후 내 방에 들어가면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걸 며칠 반복하다 보니 나도 꾀가 생겨, 음악을 틀어 그 소음을 조금이라도 잠재워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음악을 주로 카세트 플레이어로 들었는데, 길거리 짝퉁 음반을 주로 사서 가요를 듣기도 하고 라디오를 듣기도 하다가.. 그마저도 너무 지겨워져 엄마가 사주신 슈베르트의 송어를 어느 날 틀어보았다.
엄마도 나도 클래식이란 걸 거의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TV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엄마가 사 오신 거였다. (그것도 아마 좌판에서 산 카세트였을 것이다.)
당연히 대중가요를 더 좋아하던 나였지만, 하교 후 잠들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반복하기엔 가요보다 클래식이 나았다. 그래서 하교 후 매일같이 슈베르트의 송어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볼륨을 최대로 키우고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그 속에 있노라면 세상에 나 혼자만 고요히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만의 돌파구를 찾은 것 같아 기뻤지만, 이후엔 오히려 노름판 아저씨들이 나에게 소리 좀 줄여달라며 사정을 했다. 나는 중2답게 부루퉁한 얼굴로 아저씨들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숙제를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들은 생각 외로 순순히 돌아가며, 그러면 조금만이라도 줄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중 아저씨 한둘은 내게 율무차나 유자차 등을 종이컵에 타서 가져다주기도 했다.
약일 년 이상 매일 듣던 그 음악은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사한 후 곧 내게서 잊혀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한가하게 음악을 들으며 숙제할 여유가 없어져서 이기도 했을 것이다. 소음으로부터 나를 도피시켜주었던 그 음악, 틀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할 수 있었던 그 음악을..
아이가 태어난 후,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CD 플레이어를 사고, 아이 감성에 좋다는 클래식, 영어 동요나 구연동화가 들어있는 -아이가 관심도 없을-CD 들을 욕심껏 주문하던 중, 내 기억 속에서 잊혔던 송어가 문득 떠올랐다.
아이도 나처럼 그 음악을 좋아하게 될까? CD를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송어부터 찾아 재생해 보았다. 아기는 틀어줘도 아무 반응이 없다. 낯선 소리가 나자 잠깐 흥미를 가지다 곧 제 장난감에 몰두할 뿐. 하지만..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그때의 감정이 다시 생생히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슴 한구석이 간지러운듯하다 이내 무언가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울림을 느낀다. CD 플레이어 앞에 우두커니 서서 송어를 듣는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함께 피아노 연주를 따라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콧가가 시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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