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오사카 오인중, 로닌, 그리고 토요토미 가신들
( 게임 '신장의 야망14'에 나오는 오사카의 진 시나리오. 토요토미는 오사카성 하나밖에 없고 나머진 모두 적이라고 봐도 된다.)
( 토요토미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네임드 로닌은 많았다. 그중 중심이 되는 다섯명을 '오사카 오인중'이라 불렀다.)
로닌들이 모여들게된 이유는 크게 잃어버린 영지를 되찾거나 무사의 직위를, 토요토미가 취업(...), 특이하게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다.
로닌들 중에서는 크리스챤 무사도 다수가 있었는데 이들을 이끄는것이 바로 아카시 카몬 테루즈미였다.
당시 일본은 게임 대항해시대 시리즈에 나온것처럼, 남만인(유럽인)들과의 무역이 활성화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가 전파되게 되었다.
아카시 테루즈미또한 본래 주군이였던 우키타 히데이에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참패당하고 유배당한점,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남만상들과의 교역으로 지방의 다이묘가 부,무기를 쌓는것을 우려하여 철저하게 무역을 통제하면서 크리스챤을 금지시킨것등의 이유로
토요토미측에 합류하게 되었다.
고토 마타베에의 경우에는 히데요시를 일본의 천하인으로 만들어준 군사 '쿠로다 칸베에'의 가신이였으나, 세키가하라전투 후에 쿠로다 가문을
칸베에의 아들인 나가마사가 잇자, 빈번하게 의견이 충돌하고 이후에 모반혐의까지 쓰게 생기자 쿨하게 사직서를 때리고 낭인이 되었다.
이런 전력이 있다보니 재취업도 안되고 있었던찰나, 이름을 날려 무사의 긍지를 되찾을 기회가 온것.
(초소카베가문이 전성기였을 당시의 영지, 세키가하라에서 서군에게 트롤링당하여 싸우지도 못한채 영지를 몰수당한다.)
쵸소카베 모리치카의 경우에는 특이하게 '다이묘 출신'이라는 점인데 보통 가문도 아니고 시코쿠의 실질적 지배자였다.
세키가하라에서도 도쿠가와의 동군에 붙을려 했으나 길목을 서군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서군의 편에 서게되었고,
심지어 전장에서는 동군으로 모반한 서군의 킷가와 히로이에가 모리군과 쵸소카베군의 길목을 막아서서 싸우지도 못하고 개역되었다.
토사는 드라마 '공명의 갈림길'로 유명한 야마우치 가문이 들어가버리고(...) 쵸소카베는 이를 되찾기위해 오사카로 오게된다.
모리 카츠나가의 경우 마찬가지로 세키가하라에 서군으로 참여했다가 망한 케이스로 위의 쵸소카베가문이 망한뒤 들어온
야마우치 가문에 몸을 의탁하여 후하게 대접받았으나 오사카에서 전쟁이 날 기미가 보이자 자신의 딸과 아들을 담보로 야마우치를
안심시킨뒤, 처자식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오사카로 향한다. 토사에서 오사카로 헤엄쳐갔다는 설때문인지 수영으로도 알려져있다(...)
그외에도 '반다에몬 나오유키', '스스키다 카네스게'등을 비롯한 쟁쟁한 로닌들이 모여들었고 키이의 쿠도산에서 사나다 노부시게가 합류하며
세키가하라 패장 올스타(...)가 완성되었다.
( 당시 히데요시의 측실이자, 히데요리의 어머니인 요도기미를 비롯하여 토요토미 가문의 중심이되는 기존 가신들도 있었다.)
로닌들이 모여들어 전력은 형성되었지만, 토요토미 전력의 큰 문제는 수뇌부였다.
첫번째로 토요토미 히데요리는 22살, 제대로 전투도 해보지 못한 소년가장이였고 오오노 하루나가를 비롯한 주요 중신들이
지휘를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히데요리의 어머니 요도기미측의 간섭도 엄청났기 때문에 '베테랑이지만 결집력이 없는' 로닌들을
제대로 지휘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여졌다.
심지어 오다 노부나가의 12살 아래동생인 오다 오라쿠(나가마스)는 도쿠가와측과 내통했다는 설 까지 있을정도이니
오사카, 토요토미 수뇌부측의 지휘력이 얼마나 개차반이였는지 알수가 있다..
(요도기미는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 오이치 히메의 딸로, 오다 노부나가와 오다 오라쿠에게는 조카인셈.)
전투가 다가오자 로닌들은 공격적인 전략을 채택하고자 하였다.
결집력은 없더라도 전투경험에서 우세한 로닌들은 전투경험이 전무한 막부군이 오사카에 집결하기전에, 후시미성과 이조성에 있는
이에야스를 공격해 죽이거나 오미 지역 밖으로 쫒아내버리고, 오미-세타지역에서 적들을 포위하여 야전에서 결착을 보고자 하였다.
(사나다 노부시게를 비롯한 로닌들이 이야기했던 오미지역. 이조성과 그 밑의 후시미성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었다.)
그러나 오사카 수뇌부는 이 작전에서 히데요리의 출진을 거부하는것은 물론, 애초에 로닌들의 이러한 의견들을 모두 묵살해버리고
한사코 오사카에서 농성하는 전술만을 고집한다. 결정력 없는 22세 당주 히데요리와 간섭심한 엄마 요도기미까지 더해지니
결국 할수없이 오사카 성 주변부터 적을 맞이하여 농성하는 작전을 택 하게 된다.
사실 오사카성 농성전략 자체는 나쁜선택은 아니였다. 오사카성은 당대 최고의 맷집을 보유한 철옹성이였다.
서쪽에는 바다가 있고 북쪽과 동쪽에는 강으로 둘러쌓인 천해의 요새였으며, 남쪽만이 유일하게 넓은 평지와 계곡으로 펼쳐져 있었다.
성의 방어력자체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지은만큼 쉽게 함락할수 없는 구조였고, 히데요시가 쌓은 부 덕분에 10만에 달하는 로닌을
데리고 온것은 물론, 그들을 몇년동안 먹여살릴 식량도 시세보다 비싼가격으로 쟁여놓아 버틸 수 있는 구조였기 떄문이다.
(당시 오사카성의 구조, 서쪽은 바다가 펼쳐져있고 동쪽과 북쪽은 강, 엄청난 해자와 몇단의 내성(마루)까지 완벽한 방어구조)
<4> 겨울의 진 , 그리고 사나다 마루
할수없이 농성전을 해야했던 로닌들은 남쪽의 방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위해 사나다 노부시게가 성의 남쪽 입구에
외성을 짓고 방어하는 전략을 건의하며, 일본 전국시대의 끝을 맞기위해 최후의 보루가 세워진다.
사나다의 이름을 딴 '사나다 마루'가 바로 그것.
(현재의 오사카위성지도를 당시에 맞게 해자와 사나다마루의 위치를 합성한 모습. 지금 남아있는 오사카성은 당시의 1/5크기이다.)
남쪽에 외성을 지어 넓은 성벽으로 향하는 적들은 사나다 마루에서 협공, 사나다 마루로 몰려드는 적은 성벽에서 협공하며
적들은 어느방향으로 가든 일단 쳐맞고 생각하는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버렸다. 언덕위에 시즈탱크가 있는데 입구에 벙커까지 있으니
저글링 10부대를 쥐어줘도 한쪽에 올인해야 하는 판...
그리고 이 전투를 준비하며 사나다 노부시게는 토요토미가문에게 받은 돈으로 후대에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무구를 준비한다.
자신의 사나다군세를 아카조나에(적비, 붉은갑옷)로 꾸미고 자신또한 붉은갑옷에 사슴뿔투구를 장착하여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사나다의 주가인 다케다가의 가신이였던 야마카타가문이 이끈 아카조나에가 유명했었고
이 다케다가 오래전 미카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개박살 내버렸기 떄문에 붉은갑옷으로 통일하게 된것이 아닐까 한다.
사슴뿔투구에 대해서는 자신의 고향이였던 시나노또는 유배지였던 쿠도산에서 이미지를 받았다는 설도 있는데 확실한건 없다.
(도쿠가와가문을 멸망직전까지 몰고갔던 다케다의 '미카타하라 전투' 그림, 이에야스는 이날 말위에서 똥을 바지에 지리며 도망갔고
후대에 스스로에게 교훈을 삼기위해 그 초라한 행색을 그림으로 남긴다. 똥싼모습을 남기다니. 가장 PGRer스러운 이에야스.)
1614년 11월 겨울, '오사카 겨울의 진'이 그 막을 연다.변절자인 카타키리 카츠모토와 명량에서 이순신장군에게 털린(...) 도도 다카도라가
선봉으로 나섰으며 에다가사키 성을 시작으로 시기노, 이마부쿠에서 막부군이 승리를 거두는 등, 점점 오사카성으로 포위망을 좁혀온다.
(겨울의 진, 첫 야전인 시기노-이마부쿠 전투. 키무라 시게나리, 고토 마타베가 원군으로 갔으나 결국 막부군이 승리한다.)
(왜 그랬는진 모르겠으나, '요괴를 죽인 전설의 검사'로 유명한 스스키다 카네스게는 유곽에서 기생들과 놀다가 성을 뺏긴다)
야전에서 토요토미는 한번을 이기지못하고 오사카성까지 밀리게 되는데 시기노-이마부쿠 전투에서는 창의 명수 와타나베 타다쓰가
우에스기군의 조총공격에 놀라 우세한 전력에도 퇴각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심지어 바쿠로부치 요새를 지키던, 요괴퇴치로 유명한
전설의 검사 스스키다 카네스게는 유곽에서 기생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바람에 성을 도쿠가와군에게 넘겨주게 된다.
결국 토요토미군은 오사카성을 제외한 모든 외성을 포기하고 오카사 본성까지 후퇴하게 된다.
(오사카 성까지 밀린 토요토미군과 막부군의 배치도. 남쪽으로 돌출된 사나다 노부시게의 진이 돋보인다.
한글판이 있었다니 대체 어느책의 부분일까 궁금하다.happy)
12월 4일, 사나다 사에몬노스케 노부시게의 이름을 마사유키 이상으로 떨치는 전투가 다가왔다.
노부시게는 적들을 사나다마루로 유인하여 섬멸하기 위해 평원에서 광역 도발기를 시전하였고 (결혼식때 불러주는 노래로 도발을 하다니.. )
막부군의 마츠다이라 타다나오, 마에다 도시츠네군이 보기좋게 걸려버렸다. 사나다 마루로 후퇴하는 노부시게의 군세를 따라 공격을
감행하게 되었고, 내부의 화약고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를 내분으로 오해한 막부군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유인책속으로 말려든다.
(드라마 '사나다마루'의 사나다마루 모습.)
(드라마 '사나다마루'의 사나다마루 전투. )
사나다마루는 2층구조로 이루어진 외성이였으며, 해자로 들어간 적들은 2층 성벽에서 쏘는 조총에 맞아 죽고, 해자를 오르기위해 몸을
일으키면, 1층의 총구에서 쏜 조총탄에 맞기때문에 해자에 빠져 죽을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해자 사이사이에 적들을 유인하기위한 평탄한 길은 집중공격으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하였으며 앞으로는 사나다군의 총탄이, 뒤로는
성을 공격하려는 막부군으로 후퇴조차 제대로 할수가 없었다.
(게임 '신장의 야망14'의 사나다마루 전투장면, 처음에는 마츠다이라와 마에다군만 있었지만 이내 이이군까지 섞이면서 사상자가 증가했다)
심지어 사나다마루 함락이라는 공훈에 눈이 먼 막부군은 너도나도 달려들기 시작하였으며 이이 나오카츠의 군세마저 말려드는 바람에
노부시게가 지키던 5000명의 사나다마루 군세는 10000명의 사상자를 내며 첫 공성전에서 막부군에게 참패를 안겨준다.
홍진호에게 뭐라고 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천하인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사나다에게 똑같은 수법을 3번당했다. 심지어 이쪽은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 농락당한셈.
정공법으로 오사카성을 함락하지 못하자 도쿠가와군은 심리전으로 방법을 바꾸게된다.
밤낮으로 공격하는 신호를 보내어 농성하는 입장의 피곤도를 증폭시켰고, 위협사격으로 당시 남만에서 들여온 최신무기인(...) 캘버린포로
오사카성의 천수각에 위협사격을 개시한다.
( 드라마가 욕먹게 했던 뜬금없는 (...) 요도기미와 노부시게의 포옹씬중 하나, 드라마상에서는 노부시게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봐왔던 타 작품의 요도기미에 비해 예쁘면서 청순하고 정신병(...)앓는 이미지라 좀 당황스럽긴 했었다.)
그 중 한발이 천수각에 맞게되는데, 재수없게 요도기미가 있던 주변에 포탄이 명중하였고 이 과정에서 요도기미의 옆에있던 시녀가
사망하는등, 오사카성의 수뇌부를 멘붕으로 빠뜨리는데에 성공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틈을 놓치지않고 오사카측에 화의를 제의하고, 토요토미측은 전투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멘붕에 빠진
요도기미가 강행하는 바람에 화의를 하게된다. 로닌들 입장에선 다 이긴 게임을 주군도 아닌 주군의 엄마가 리셋시킨셈.
화의자체보다 문제는 화의의 내용이였는데, 형식상으로 도쿠가와는 토요토미에 어떠한 죄를 묻지않고 군대를 퇴병시킨다.
단 쇼군이 그냥 물러서는건 모습이 안나오니 이겼을떄 처럼, 외곽의 해자를 도쿠가와군이 매우게 해달라는 것 이였다.
토요토미측은 '이 해자 다 매울때쯤이면 댁은 저승에 있을것이다'라고 판단한건지 승낙하게 되는데, 이는 큰 오산이였다.
8만에 달하는 도쿠가와군세는 일주일도 안되어 오사카성의 해자를 매워버리는데, 이 과정에서 사나다마루를 부셔버리는건 기본이고
이에야스의 지시에 의해 니노마루, 산노마루(2단계-3단계 성곽)까지 모두 매워버렸다.
(드라마 사나다마루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풍림화산'에서 주인공인 다케다가의 군사 야마모토 간스케역의 배우가 맡았다.
덕분에 사나다마루 드라마 초기에 다케다가문을 멸망시킬때 찝찝하다며 말하는 개그코드가 숨어있다(...))
토요토미측은 거세게 반발했으나 도쿠가와군은 그쪽 공사가 너무 오래걸릴거 같아서 좀 거들어줬다는 식, 또는 상부에 물어본다는
전형적인 돌려막기 전술로 한달만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철군하게 된다.
오사카내에는 아직 5만에 달하는 낭인들이 남아있었고, 이들은 이러한 도쿠가와의 행동에 분명히 재침의도가 있을것이라 판단,
겨울의 진 당시 이에야스가 본진을 친 차우스산을 중심으로 해자를 다시 파기 시작한다.
이에야스는 옳다구나 하며, '다시 막부에 반역을 꾸미고 있는것아니냐'며 책임을 물었고, 오오노 하루나가가 해명을 위해 슨푸로 달려갔으나
이에야스는 '히데요리가 성을 나와 딴 지역으로 전봉가던지, 아니면 오사카 성 내의 로닌들을 쫒아내던지 해라.' 라는 대답을 할뿐이였다.
오사카를 떠나 전봉가는것은 사실 상 싸울수 없는 지역으로 가서 중,소국의 다이묘로 살아가는것, 항복이나 다름없는것이고
낭인들을 쫒아내는것은 싸울수있는 전력을 버리라는것, 마찬가지로 항복한다는 뜻이여다. 토요토미는 어떠한 선택도 할 수가 없었고
마침내 1615년 4월, 도쿠가와가 토요토미 정벌을 위한 군사를 다시 모으며 '오사카 여름의 진'이 펼쳐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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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마무리는 여름의 진으로 짧게 써야할거 같군요. 분량조절의 실패..
덕분에 전국입지전 시나리오도 다시한번 깨고있는데 역사와 달리 아무도 죽지않게 하기가 참 어렵네요.
사실상 '이 전투에서 죽는사람'을 미리 알아서 전투시 괴멸당하기 전에 후방으로 뺴놔야하는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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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소설, 드라마, 게임 등에서 차용되는 전국시대 인물들의 캐릭터는, 대부분 에도 막부 시대에 유행했던 군기물(군담소설)을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민들에게 주로 읽히는 그런 소설들의 경향상, 지배층이자 기득권 세력인 에도 막부가 타파해야할 '악'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에도 막부에 대항했던 세력이 '저항의 아이콘'으로 그려지게 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