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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1/15 20:43:19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우리나라 역사상 유례없는 폭력의 시대 - 몽골의 고려 침입 전쟁





종종 이런 말을 봅니다. 고려 때 몽골의 침입과 조선 시대 임진왜란 중, 어느쪽이 더 참혹하고 피해가 컸을까?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병력이 20만에 육박하는 대군이었고 몽골의 침입 당시에는 3만 정도의 병력이었기 때문에 임진왜란의 피해가 더 크지 않느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경우는 국가인 조선이 일본과 싸울 의지를 버리지 않았고 초창기 쭉쭉 밀려나던 시기를 제외하면 7년간의 전쟁 중 상당수를 서로의 군대가 전선을 형성하고 대치했습니다. 중간 중간 외교적 절차가 진행되면서 전쟁 자체가 소강 상태에 이른 경우도 있었구요. 김덕령 등이 그 무렵에 이름을 떨쳐서 별로 전공이 없죠. 싸움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즉 7년 간 실제로 교전한 상황은 그보다는 훨씬 적고, 교전을 하지 않을때도 아군이 지키고 있는 지역의 전선을 유지하면서 그 안쪽의 백성은 보호 받았습니다. 좀 더 단적으로 말하자면, 임진왜란 7년 동안 일본군이 한반도 내륙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 적은 개전 첫 해 1년 뿐입니다.




고려 시기 몽골의 침입은 1231년부터 1259년까지 30년 간 이어집니다. 몽골 군은 한번 고려를 침입하면 대략 6개월에서 7개월 정도 휩쓸고 다녔는데, 이렇게 몽골군이 직접적으로 고려 내부를 휩쓴 기간은 11년 정도 됩니다. 




그런데 당시 고려와 몽골은 전선을 형성하고 싸운게 아닙니다. 그냥 몽골군이 고려 땅을 짓밞고 돌아다녔을 뿐이죠.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임진왜란은, 단발마 비명을 내지르게 하는 불벼락이었습니다. 몽골의 침입은, 폭력의 시대에 펼쳐진 내 삶의 일부분이었고.




고려와 몽골이 싸워서 고려가 승리를 거둔 전투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투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게, 그런 전투들의 거의 전부가 산성에서 고려군이 수성하며 몽골군을 막아낸 전투들입니다. 고려 조정에서 백성들에게 지시했던 안전책은 딱 하나 뿐입니다. 몽골군이 오면 섬이나 산성으로 알아서 피난해서 피해라.




그나마 군대가 저항같은 저항을 좀 했던 1차 침입 이후로 2차 침입부터는 아예 '전쟁' 이 사라집니다. 분명 몽골군이 쳐들어와 있는데, 정부군도 없고, 전선도 없고, 조직적인 유격 전술도 없습니다. 이 전쟁은 그냥 전술 자체가 없습니다. 그냥 간헐적인 전투만 있죠. 유일한 승리들은, 산성으로 꾸역꾸역 피난 온 현지의 백성들이 찌꺼기 정도 남은 지방군인들과 힘을 합쳐 겨우겨우 적을 막은 승리들 뿐입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근처 병력의 소집이나 합동 지원 따위도 없습니다.




그럼 분명히 '전쟁' 이 벌어지고 있는데 '전투' 로 기록되지 않는, 다른 순간들은 뭐가 벌어지고 있느냐? 그냥 무주공산으로 한반도 전역을 휩쓸고 다니는 몽골군의 활보만 있을 뿐입니다. 




1256년에 신안 압해도에서 현지의 '백성' 들이 몽골군을 물리친 전투가 있습니다. '군인' 이 아니라 '백성' 들 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하고.... 저 압록강 너머 북쪽에서 내려온 몽골군이 저 남쪽 신안에서 싸우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십니까? 그 몽골군이 신안까지 내려오는 무주공산 동안 그 통행로에 있었던 곳들이 어찌되었을지, 그리고 그렇게 활보하던 몽골군이 '보급' 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을지... 기록된 전투가 다가 아니라는 건 이럴때 쓸 말입니다.




이게 산성을 중심으로 방위라인을 설정하고 흩어진 병력들이 서로 연락을 취해 공조하며 적의 수비를 막는다면 모를까, 그저 살기 위해 백성들이 산성에 들어가서 웅크리고만 있을 뿐이기에 몽골군은 그냥 그런 산성들을 지나쳐 다른 곳을 약탈하면 됩니다. 모든 백성들이 산성이나 섬으로 도망칠수는 없으니까요. 



몽골군의 평균 기동 속도는 50km고, 최대로 급할시엔 하루 100km도 너끈히 이동합니다. 아침만 해도 평화롭게 지내다가 갑자기 나타난 몽골군이 가족 친지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삶의 터전을 박살내는데,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최소한 일본의 20만 대군이 온다고 하면 소문을 듣고 피난이라도 가지, 50km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 습격해오는 적을 상대로 일반 백성이 어떻게 대비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몽골군의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蒙人 漬薪人膏厚積 縱火攻城 灌水救之 其火愈熾
몽고 군사가 또 나무에 사람 기름을 적시어 두껍게 쌓고 불을 놓아 성을 공격하므로 물을 부어 그것을 구하려 하였더니, 그 불이 더욱 성하였다.




귀주성 전투 당시의 기록인데, 당시 기록에 따르면 몽골군은 나무에 '사람 기름' 을 적셔놓고 불을 지르며 공격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 기름' 을 어디에서 쥐어짰겠습니까? 고려 백성을 죽여서 그 고려 백성으로 기름을 짜서 자신들의 병장기 용으로 사용했던 겁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모르도르 군이 곤도르 병사 죽여서 투석기로 그 머리 던지는 장면은 차라리 여기에 비하면 인도적인 장면이죠.




합단(哈丹, 카단)의 병사 수만 명이 화주(和州)·등주(登州) 두 주를 함락시킨 뒤 사람을 죽여 양식으로 삼았으며 부녀를 잡으면 윤간한 후에 포를 떴다. 만호(萬戶) 인후(印侯)를 보내어 이들을 막았다.




몽골 원정 침입보다는 좀 뒤인 1290년 무렵에 카다안의 침입 당시의 기록인데, 몽골군의 병사들이 고려군의 주를 함락시킨 후에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고, 여자는 강간을 한 다음 포를 떠버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사람 잡아서 강간하고 포를 뜨는 부대가 11년간이나 고려 내부를 무주공산으로 활보하고 다닌 겁니다.





“몽병이 춘주를 함락할 때 항()이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부모의 죽은 곳을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성 아래 쌓인 시체가 산과 같은데 모양이 비슷한 자는 모두 거두어 묻기를 3백여 인에 이르렀다.” (<고려사> 106, 박항전)



1253년, 몽골군은 춘주성을 포위합니다. 겹겹으로 포위당한 성은 우물도 모두 말라버렸고, 양식 따위도 없어서 소와 말을 죽여 그 피로 목을 축이면서 버텼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절망에 빠져 처자식과 함께 불을 향해 뛰어들어 자살했고, 성안에 있던 쥐꼬리만한 숫자의 병력들은 어떻게든 포위를 풀어보려 성을 나서 돌파를 시도하다 지휘관 포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섬멸 당했습니다. 그리고, 빈 성으로 몽골군이 들이닥쳤습니다.




당시 수도로 떠나 있었던 춘주 출신 박항은 이 소식을 듣고, 춘주에 남았던 어머니가 걱정되어 부리나케 고향으로 달려왔습니다. 돌아온 박항의 눈에 보인 것은, 산처럼 쌓인 시체의 언덕 뿐. 상상 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당하며 훼손 당한 시신들은 도저히 형체의 구분이 어려웠기에 박항은 모양이 비슷한 자는 모조리 거두었고, 이 모두를 묻어서 그 중 안에 자신의 어머니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 300명 모두를 장사 지냈습니다.





문제는, 그런 몽골군을 피해 섬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점이죠.




○ 장군 송길유(宋吉儒)를 보내어 청주(淸州)의 백성을 섬으로 옮기게 하였다. 길유는 백성들이 재물을 아껴 옮기기를 싫어할까 염려하여 공사(公私)의 재물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 일보다 먼저 최항이 사신을 여러 도에 보내어 주민들을 모두 몰아서 섬 안으로 들어가는데, 명령을 좇지 않는 자는 집과 전곡을 불태워서 굶어 죽은 자가 열에 여덟ㆍ아홉은 되었다. ─ 고려사절요 1256년

○ 송길유가 경상주도 수로 방호별감이 되어 각 고을의 인물을 검찰(檢察)하여 섬으로 들여보내는데, 영을 좇지 않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때려 죽이고, 혹은 긴 새.끼로 사람의 목을 잇달아 엮은 다음 별초를 시켜 양 끝을 잡고 끌어서 깊은 물 속에 던져 거의 죽게 되면 꺼내고 조금 깨어나면 다시 그와 같이 하였다. ─ 고려사절요 1258년

○ 고주(高州)ㆍ화주(和州)ㆍ정주(定州)ㆍ장주(長州)ㆍ의주(宜州)ㆍ문주(文州) 등 15주의 사람들이 저도(猪島)에 옮겨가 사는데, 동북면병마사 신집평이 저도는 성이 크고 사람이 적어서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 하여, 드디어 15주의 사람을 옮기어 죽도(竹島)를 지키게 하였다. 섬이 좁고 우물과 샘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옮기려 하지 않으니, 집평이 강제로 몰아서 들여 보냈다. 사람들이 많이 도망하여 흩어져서, 옮긴 자는 10명 중에서 2, 3명뿐이었다. ─ 고려사절요 1258년



고려 조정은 몽골의 침입에 대비해서 고려 백성을 섬으로 소개하는 작전을 자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런 작전은 '백성을 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여 생명을 지키는' 인도주의적 의도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는 점입니다. 고려 조정은 백성들이 내지에서 몽골군에게 무저항으로 죽어나가면서 그들에게 약탈거리가 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따라서 섬으로 '몰아넣고' 거기서 살기 위해 발악을 하며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주는 '인간 방패' 역할을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면모는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 최씨 정권의 실력자 중 최항이 이 정책에 열심이었는데, 장군 송길유를 이런 작전에 주로 투입시켰습니다. 송길유는 백성들을 개나 돼지처럼 몰아서 섬으로 몰아갔는데, 지금보다 훨씬 배타적이던 그 시대에 고향에서 평생을 살며 가업을 이룬 백성들이 쉽게 떠나려고 할리 만무했습니다.




따라서 송길유는 그런 백성들이 평생을 거쳐 일궈놓은 전답과 집을 모조리 불태워버렸습니다. 나름대로 살림을 가진 일반 백성들마저도 한 순간 사이에 (몽골군도 아닌 고려군의 손에 의해) '거지' 가 되어버렸고, 빈민이 된 상태로 섬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타지로 끌려온 백성들에게 고려 조정은 최소한의 지원 정책도 시행하지 않았고, 그렇게 끌려온 백성들 중 10명 중에 7,8 명은 모조리 굻어 죽었습니다. 고려의 손에 의해!




만일 그렇게 섬에서 비참하게 굶어죽지 않기 위해 도망을 치려 한다면? 잡아서 매타작을 해서 때려죽였습니다. 혹은 반죽음이 되도록 두드려 패고는 목을 줄로 묶어, 개처럼 질질 끌고 다니고 물속에 집어넣고 물고문을 하였습니다.




도망칠 섬이나 산성도 없습니다. 여기는 몽골군이 쳐들어왔다는 소문도 없으니 괜찮겠지 하는 순간에, 어느새 몽골군이 전조도 없이 밀어닥쳐 나를 죽여서 기름으로 짜고 내 딸과 부인은 강간하고 죽인 후 회포를 따서 잡아먹고 있습니다. 나를 지켜줄 병사들도 없고, 어쩌다 마주친 고려군은 지켜주기는 커녕 겨울을 나기 위한 마지막 양식 마저 강제로 빼앗아 강화로 가져가고, 내 집과 전답을 모조리 불태워 알아서 끌고 간 뒤 알아서 하라고 천리 밖에 내던져 버립니다.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1231년. 몽골의 살리타이가 이끄는 병력이 충주성을 공격해왔습니다. 충주성의 지휘관인 우종주와 유홍익, 두 사람은 적군이 쳐들어오기직전까지 서로 "내 작전이 맞다." "아니다, 내 작전이 옳다." 며 입씨름만 하면서 대책을 세우지 않다가 정작 적이 오자 가장 먼저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의 주된 방어병력이었던, 양반들로 구성된 양반별초(兩班別抄) 역시 그 뒤를 따라 부리나케 달아나버립니다. 이제 성에 남은 것은, 백정(白丁) 이하의 하층민으로 구성된 잡류별초(雜類別抄) 뿐이었습니다.



돈 있는 그들은 도망쳐도 갈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잡류별초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지금 충주성에서 가진 이 쥐꼬리만한 터전이라도 없다면, 객사해서 죽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출신도 알 수 없는 인물인 지광수(池光守)와 승려 우본(牛本)의 지휘 아래 세계 최강의 몽골군과 '살아남기 위해' 맞서 싸웠고, 기적처럼 몽골군을 격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도망갔던 양반별초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도망갔던 이들은 남아서 싸운 이들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칭찬은 커녕, 전투의 혼란 중에 관청과 민가의 은기(銀器)가 몇개 사라지자, 잡료별초가 이를 훔쳐간 것이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면서 잡류별초의 대장을 죽이려 했습니다. 도망친 이들이 남아서 싸운 이들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잡류별초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모든 삶의 현장이 생생하게 내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안, 강화도에선 풍악소리만이 가득합니다.




瑀營私第(우영사제) : 우가 제 집을 짓는데,

皆役都房及四領軍(개역도방급사령군) : 도방(都房)과 사령군(四領軍)을 모두 부역시켜

船輸舊京材木(선수구경재목) : 배로 옛 서울 송도의 재목을 실어 오고,

又取松柏(우취송백) : 또 소나무ㆍ잣나무들을 실어다

多植家園(다식가원) : 집의 동산에 심은 것이 매우 많았다.

人多溺死(인다닉사) : 때문에 사람이 많이 빠져 죽었다.

其園林廣?(기원림광무) : 그 원림이 넓기가

無慮數十里(무려수십리) : 무려 수십 리였다.




내륙에선 수많은 가옥이 불타오르지만, 강화도에선 전국 각지에서 끌고 온 배들로 만들어진 호화로운 원림이 있습니다.



十二月(십이월) : 12월에

崔怡(최이) : 최이가

於西山私伐氷藏之(어서산사벌빙장지) : 사사로이 얼음을 캐어 서산(西山)의 빙고(氷庫)에 저장하려고

發民輸氷(발민수빙) : 백성을 풀어서 얼음을 실어 나르니

民甚苦之(민심고지) : 그들이 매우 괴로워하였다.

又移安養山柏樹(우이안양산백수) : 또 안양산(安養山)의 잣나무를 옮기어

植家園(식가원) : 집의 후원에 심었다.

安養山(안양산) : 안양산은

去江都(거강도) : 강도(江都)에서

數日程(수일정) : 여러 날 걸리는 거리인데

使門客(사문객) : 문객인

將軍朴承賁等督之(장군박승분등독지) : 장군 박승분(朴承賁) 등으로 감독하게 하였다.

時方?寒(시방호한) : 때는 추위가 한창이어서,

役徒有凍死者(역도유동사자) : 일꾼들 가운데 얼어 죽는 자도 있어

沿路郡縣棄家登山(연로군현기가등산) : 연로에 있는 군현(郡縣)의 사람들이 집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 그

以避其擾(이피기요) : 소요를 피하였다.



섬에 갇힌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얼어죽고 굶어죽고 있는데, 강화도의 빙고에는 시원한 얼음이 가득하고, 마지막 한톨 남은 양식 마저 수탈 당하는데, 최씨네 집 후원에는 저 멀리서 가져온 잣나무가 위풍 당당하게 풍채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五月(오월) : 5월에

崔怡(최이) : 최이가

宴宗室(연종실) : 종실의

司空已上(사공이상) : 사공(司空) 이상과

及宰樞於其第(급재추어기제) : 재ㆍ추들을 위해 그 집에서 잔치하였다.

置彩帛山(치채백산) : 이 때 채색 비단으로 산을 만들어

張羅?(장라위) : 비단 장막을 두르고

中結?韆(중결추천) : 가운데 그네를 매었는데,

飾以文繡綵花(식이문수채화) : 문수(文繡)ㆍ채화(綵花)로 장식하였다.

以八面銀?貝鈿(이팔면은구패전) : 또 팔면(八面)을 은단추와 자개로 꾸민

四大盆(사대분) : 4개의 큰 분(盆)에

各盛氷峯(각성빙봉) : 각각 얼음 봉우리가 담겨 있고,

又四大樽(우사대준) : 또 4개의 큰 물통에

滿揷紅紫芍藥(만삽홍자작약) : 붉은 작약과 자줏빛 작약

十餘品(십여품) : 10여 품(品)을 가득히 꽂았는데,

氷花交映(빙화교영) : 빙화(氷花)가 서로 비치어

表裏燦爛(표리찬란) : 겉과 속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였다.

陳伎樂百?(진기악백희) : 기악과 온갖 잡희를 베풀고,

八坊廂工人(팔방상공인) : 팔방상(八坊廂)의 공인(工人)

一千三百五十餘人(일천삼백오십여인) : 1천 3백 50여 명이

皆盛飾(개성식) : 모두 호화롭게 단장하고

入庭奏樂(입정주악) : 뜰에 들어와 풍악을 연주하니,

絃歌館鼓(현가관고) : 거문고와 노래와 북과 피리의 소리들이

轟震天地(굉진천지) : 천지를 진동하였다.

八坊廂(팔방상) : 팔방상에게는

各給白銀三斤(각급백은삼근) : 각각 백은(白銀) 3근씩을 주고,

伶官(령관) : 영관(伶官)과

兩部伎女(량부기녀) : 양부(兩部)의 기녀(伎女)와

才人(재인) : 광대에게도

皆給金帛(개급금백) : 각각 금과 비단을 주니,

其費鉅萬(기비거만) : 그 비용이 거만(鉅萬)에 달하였다.




내륙에서는 내 딸과 내 마누라가 몽골군에게 강간 당하고 포를 떠지고 그 시체마저 기름이 쥐어짜지고 있는데, 강화도의 최씨 집의 축제에서는 미녀와 광대와 악공이 1300명이나 모여 중국 천자도 부럽지 않은 무릉도원의 잔치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구월 육일 오랑캐 군대가 강 건너에 와서 주둔한다는 말을 듣고 나라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으므로 시를 지어 해명하다 九月六日。聞虜兵來屯江外。國人不能無驚。以詩解之。



오랑캐 종족이 완악하다지만 어떻게 물을 뛰어건너랴

저들도 건널 수 없음을 알기에 와서 진치고 시위만 한다오

누가 물에 들어가라 명령하겠느냐 물에 들어가면 곧 다 죽을 텐데

어리석은 백성들아 놀라지 말고 안심하고 단잠이나 자거라

그들은 응당 저절로 물러가리니 

나라가 어찌 갑자기 무너지겠는가 ─ 동국이상국후집 권 5 고율시 89수





몽골 오랑캐들이 아무리 새까맣게 몰려든들, 어찌 물을 건너 강화도로 올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백성들아. 놀라지 마라. 저 놈들은 물을 건너지도 못한다. 뭐 나라가 무너지기야 하겠는가. 무슨 소란이냐."





맞습니다. 어떻게 물을 건너기야 하겠습니까? 



그저 물 하나를 사이로 두고, 한 쪽에는 1300명의 기인이 벌이는 축제의 환호 소리가, 



다른 한 쪽은 약탈과 강간, 고통과 비명의 신음소리만 펼쳐졌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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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ThanYesterday
16/11/15 20:48
수정 아이콘
지금의 몽골은 참 평화로운 나라인데 말이죠,,,,
16/11/15 20:54
수정 아이콘
글로 읽기만 해도 끔찍하네요.
-안군-
16/11/15 20:55
수정 아이콘
무신정권 시대야말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비참한 암흑기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진짜로 끔찍하네요.
고려 역사상 가장 크게 인구가 줄어들은 시대라고 들었기도 하고요.
예전에 티비에서 무인시대를 할 때, 엄청 비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시대를 드라마상으로 아무리 나쁘게 표현해도, 역사를 미화하는 거라고...

게다가, 몽골은, 중국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주변국들을 정벌해서 자신들의 속국으로 삼아 조공을 받는 것보다,
약탈하고 불태우는... 전형적인 유목민족 스타일의 전쟁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걸 감안하면, 저런 기록으로 남은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전자수도승
16/11/15 20:55
수정 아이콘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저런 걸 아직도 교과서에서는 '대몽항쟁'이라고 해서 자랑스러운 역사로 포장한단 말이죠
삼별초가 사실상 최씨 정권의 '사병'으로써 주구 노릇을 톡톡히 했는데 삼별초의 항쟁을 미화하는 꼬라지 보고 있자면 참 나 원......
보통블빠
16/11/15 21:10
수정 아이콘
삼별초들도 자기들 기득권 때문에 항쟁한거지 충성이고 애국이고 뭐고 없었지 않았습니까...
무신집정들은 다 숙청당하고 자신들에게 칼자루 날아오니 그냥 발악하다가 죽은걸 위대한 항쟁마냥 포장하니 좀 슬픕니다.
Jannaphile
16/11/15 21:18
수정 아이콘
이게 벌써 20년 정도 됐는데... 아버지께서 삼별초를 대상으로 한 책을 펴내신 적이 있습니다.
책을 쓰기 위해 당시 진도로 답사를 몽골 대사와 함께 가셨다는데,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맞을 겁니다. 대사인지 뭐 다른 직급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차 안에서 몽골 대사가 이랬다는군요.

"내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사과드리지만, 우리나라(몽골) 역사책에는 고려가 당시 식민지로 기록되어 있다."

너무나 맞는 얘기여서 뭐 할 말이 없지만, 우리의 역사책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단 말이죠.
물론 '부마국'이긴 했으니 아예 형체가 없어진 나라들에 비해서야 상황이 좀 낫긴 했지만,
이건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들의 대우는 중국인들보다 좀 낫지 않았냐?랑 별반 차이가 없어서. -_-;;
Been & hive
16/11/15 22:33
수정 아이콘
최하 공민왕 시기 이전까지는 보호국(=을사늑약당시 일본에게 당했던 것) 취급이였죠.
변발까지 강요당했을 정도면 뭐..
8년째도피중
16/11/16 00:24
수정 아이콘
강의도중 어느 강사가 특히 이 내용에 대해 분개해서 설명했고 일부 학생들은 이후 이 부분을 수업시간에 따지게 됩니다.
한소리 들을 줄 알았지만 도리어 선생님으로부터 너희가 나름 생각이 있어 좋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받아냈고 아이들은 기세가 등등해지지요.
하지만 그 중 한 아이가 육사에 지원하였고 육사생도가 됩니다.
거기서 역사수업중 삼별초와 관련된 발표를 하라는 말에 아직 분위기파악을 못했던 이 생도는 목소리를 높여 이 주제를 성토하는데....
...(이하 생략)
16/11/15 21:00
수정 아이콘
괜히 고려시대에 삼국부흥운동은 일어나는데 조선시대와서 고려부흥운동이 없는건 다 이토록 끔찍했던 사실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공부하면서도 사병이 무슨 항쟁으로 포장 될만한 가치가 있나? 싶었는데...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16/11/15 21:07
수정 아이콘
정신이 번쩍 드는 글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접할 수 있는 책 한 권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군-
16/11/15 21:19
수정 아이콘
예전에 눈시님이 쓰신 장편의 글이 있지요...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page=3&select_arrange=headnum&desc=asc&category=&sn=on&ss=on&sc=on&keyword=%EB%8C%80%EB%AA%BD%ED%95%AD%EC%9F%81&sn1=&divpage=6

그리고, 자유게시판에서 '무신정권'이나 '대몽항쟁'으로 검색해보시면, 영양가가 풍부한(!)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라고 쓰고 났더니 바로 위에 원조께서... 후덜덜;;
16/11/15 21:21
수정 아이콘
괜히 부끄러벘는데 감사히 지울게요~~~~~
아 책은 임용한교수의 전쟁과 역사 3권이구요
16/11/15 21:25
수정 아이콘
무엇을 지우셨는지 모르겠지만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책도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16/11/15 21:26
수정 아이콘
그냥 자기글 추천이요 크크
-안군-
16/11/15 21:27
수정 아이콘
자기가 자기 자랑하는 것 만큼 오그라드는 일이 없지요.. 크크크...
16/11/1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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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16/11/15 21:23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잘 챙겨서 읽어봐야겠네요.
보통블빠
16/11/15 21:09
수정 아이콘
진짜 고려 무신정권이야 말로 근대 이전 한반도 역사상 가장 최악의 정권이었습니다.
국력은 쇠퇴하고 민란은 연례 행사에 외침을 당해도 백성들을 방패로 삼아서 기득권만 유지하는...
조선이 일제강점기랑 유교 똥군기에 너무 욕을 먹어서 그렇지 고려에 비하면 혜자왕조였지요...
16/11/15 21:09
수정 아이콘
도대체 몽골민족은 피지컬적으로 뭐 얼마나 우월했길래 저시대 전 세계를 작살내버린걸까요..

기술이 엄청나게 한두스텦 이상 앞선 문명은 아니었을텐데
16/11/15 21:23
수정 아이콘
걍 유목민족 종특자체가...아무리 보병으로 기병잡는 전술이 없던건 아니고 기병이 만능은 아니었다지만
쟤들은 성인남성이면 대부분이 말위에서 정주민족기준으로는 '묘기'에 가까운 짓을 기본으로 하는 정예기병이었으니.
유목민족은 맨날 지들끼리 싸우고, 그리고 권력을 집중할 제도자체가 없고 그저 인물에 기댈뿐이다 보니 걸출한 지도자가 나와서 좀 정비되나 싶으면 1세대 지도자 죽고 혈육에게도 권력승계가 안 되고 또 분열해서 지리멸렬, 거기에 농사짓고 사는게 아니라서 땅넓이에 비하면 인구수도 적고 그래서 힘을 외부로 투사하는 시기가 적은거지 먼치킨 지도자 하나 나오면 저기 중국쪽도 다 털어버리던 놈들이라 중국에 비하면 정규군이라고 할게 없다시피한 한반도쪽으로 오면 걍 프리패스인거죠.

아 그리고 피지컬면에서도 고기를 더 먹을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덩치도 더 크긴 했을겁니다. 쌀이나 밀먹고 사는 민족에 비하면
카서스
16/11/15 21:23
수정 아이콘
냉병기 시대에 최강병과는 기병이고 유목민들은 성인남성은 전부다 정예기병이라 봐도 됩니다. 송이였던가요? 몇천의 보병을 20기가 안되는 기병이 농락한 기록도 있습니다(...)
게다가 칭기스칸의 부대는 혈통 배제하고 능력에 따라 지위를 분배함으로써 원균같은 지휘관이 없습니다. 죄다 네임드급 지휘관들이죠.
보통블빠
16/11/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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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조선도 청나라에 침략 받을때 300기의 기병대에 수만 군사를 날려먹은 아름다운 기록이 있습니다.
https://namu.wiki/w/%EC%8C%8D%EB%A0%B9%20%EC%A0%84%ED%88%AC?from=%EC%8C%8D%EB%A0%B9%EC%A0%84%ED%88%AC
유목민족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유브 왕조의 시조 살라딘도 십자군 기사대 수백여기의 돌격에 거의 전 병력 날려먹고 죽을뻔한적도 있지요...
카서스
16/11/15 21:50
수정 아이콘
"기병이 왜 무서워요?"

"소형차 스파크알지? 그게 과속해서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

.... 아이들이 경악하더군요.
Been & hive
16/11/15 22:35
수정 아이콘
???:대전차총검술 쓰면 된다
적토마
16/11/15 23:41
수정 아이콘
송 보병 2000이 금 17기병한테 털렸지요
으와하르
16/11/16 00:16
수정 아이콘
거 먼저 진 치고 싸움을 건게 보병 2000쪽이라는 게 레알....
서울우유
16/11/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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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이죠 뭐
Agnus Dei
16/11/15 21:33
수정 아이콘
몽골 자체는 여타 유목민족들에 비해 그닥 특출나다 싶은건 없었습니다.
역사를 뒤져보면 몽골만큼은 아니어도 떵떵거리면서 대제국을 건설한 유목민족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요.
기병? 유목민 특유의 전술? 이런건 몽골의 선배 유목민들도 다 갖추고 있었던 장점들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몽골이 최대의 성공을 거뒀느냐 하면, 전 그 당시 국제정세가 몽골에게 너무나도 웃어줬다고 봅니다.
몽골을 압박하긴 커녕 통일을 도와준거나 다름없는 금나라, 지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없었던 남송의 삽질, 이제 막 나라 기틀 잡을 시기에 멍청하게 도발한 호라즘, 분열되어 있던 동유럽과 이슬람 등등....몽골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국가들이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상황었죠.

시대가 그들의 성공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11/15 21:12
수정 아이콘
고대나 중세나 현대나 전쟁은 참으로 끔찍합니다... 이 말밖에 할 수 없네요.
16/11/15 21:16
수정 아이콘
포스트 아포칼립스네요 정말...
잉크부스
16/11/15 21:18
수정 아이콘
헬조선은 전통이었군요
16/11/15 21:19
수정 아이콘
양란, 일제강점기, 6.25...
이것들과 비교해도 그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때죠
와인하우스
16/11/15 21:21
수정 아이콘
아무리 까여도 조선이 고려보단 나은거 같은데(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조선은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신나게 까이는 반면에 고려에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다는게 잘 이해가 안갑니다. 뭐 조선에 비해 고려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겠지만요.
16/11/15 21:23
수정 아이콘
간단히, 전시대니까요
와인하우스
16/11/15 21:24
수정 아이콘
그걸 감안해도 조선은 좀 너무 까이는 경향이 있는거 같습니다.
16/11/15 21:26
수정 아이콘
신라, 조선 = 사대
고구려, 고려 = 자주
이런 프레임도 크구요. 실상은 아닌데
보통블빠
16/11/15 21:33
수정 아이콘
고려야 말로 사대의 표본 아닙니까?? 크크...
송나라 형님 조공 무역 플리즈..
카서스
16/11/15 21:25
수정 아이콘
일제시대의 탓을 조선시대에 찾는 경향이 강해서 그렇습니다.
식민사관 영향으로 부정적인 연구가 활발했기도 했구요
보통블빠
16/11/15 21:25
수정 아이콘
조선이 한반도 역대 전제군주국중에서 가장 민생 안정에 신경썼다는것도 잘 안알려져서 슬픕니다.
동시대에 일본은 조총 한자루에 자국민을 노예로 거래하는 막장짓을 서슴치않았습니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도 노예로 끌려간 조선인들을 조선정부가 가만히 보고 있었다라고 날조 서술하는등 조선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욕을먹습니다..
cluefake
16/11/15 21:29
수정 아이콘
뭐 이미지가 조선보다 상업이 발달했던 시대라고 박혔기때문 아닐지..
보통블빠
16/11/15 21:31
수정 아이콘
현실은 딱히 조선보다 잘 살지도 못한나라라서...(물론 귀족 기득권의 부유함은 조선보다 많았겠지만요...)
cluefake
16/11/15 21:33
수정 아이콘
뭐 그렇죠.
일반사람 이미지가 그렇다는겁니다.
-안군-
16/11/15 21:34
수정 아이콘
오히려 귀족과 지방호족이 판치던 고려시대보다 중앙집권도 잘 됐고,
신분상승의 기회도 많았고, 노비나 천민들의 인권도 훨씬 많이 보장되던 시대가 조선시대죠;;
저도 고려시대가 미화되는건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이것도 식민사관의 영향인건지...
Liberalist
16/11/15 22:16
수정 아이콘
고려는 문종 전후가 살만 하지, 나머지 시대는 왠만해서는 거의 인세의 지옥 아니었나요.(...)
조금만 찾아봐도 고려가 조선보다 낫다고 말하기는 힘들텐데요 허허;;
루크레티아
16/11/15 22:23
수정 아이콘
고려까지만 해도 중국 왕조들과 싸우면서 은근히 맞먹으려 들던 시대였으니까요.
Been & hive
16/11/15 22:38
수정 아이콘
중국이 통일왕조가 아니라 맞먹으려 하는게 가능했다는 것도...
사실 지금도 공산주의 특유의 병크가 중국을 억제하고 있지 중국이 민주주의 테크까지 올리면 주변국가는 어찌될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품아키
16/11/16 12:56
수정 아이콘
더 잘 알수록 깔 거리도 많죠
푸른음속
16/11/15 21:26
수정 아이콘
정말 끔찍했네요...
조선 임진왜란 시절이 훨씬 나았군요..
larrabee
16/11/15 21:26
수정 아이콘
정말 끔찍하네요........ 잘봤습니다
보통블빠
16/11/15 21:33
수정 아이콘
사족이지만 슈토헬이라는 만화에서 저 잔혹한 몽골군의 묘사가 살벌하게 나옵니다..
신불해
16/11/15 21:37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그 만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 반달리즘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유목민이 문명 세계를 휩쓸어버리는데 마지막까지 기록을 작성하는 학자가 있고, 이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죽어가는데 주인공이 글을 알게 되서 죽어간 친구들 이름 쓰면서 감개무량 하는 장면도 있었던것 같고.

보통 유목민을 이야기할때 초원문명의 막연한 로망 이런 점을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문명세계를 휩쓸어버리고 그들이 그동안 쌓아올린 그것을 한순간에 먼지처럼 사라져버리게 하는 폭력성에 대한...그런 느낌이 있더라구요.
보통블빠
16/11/15 21:40
수정 아이콘
정말 최악의 폭력은 기록말살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어도 기록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완전 부정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花樣年華
16/11/15 21:33
수정 아이콘
문득 한 이백년쯤 뒤에 지금 이 시대를 두고 무어라 기술할지 궁금해졌네요.
물론 제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기술은 아니겠지만 말이죠.
뭔가 역사상 유례없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은하소녀
16/11/15 21:38
수정 아이콘
교과서로 배운 내용하곤 판이하네요;; 참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16/11/15 21:39
수정 아이콘
최씨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하여 북방병력을 무력화 시킨게 크죠
망고스퀘어
16/11/15 21:39
수정 아이콘
제가 배운 역사시간엔 몽고가 우리나라는 점령하지 못한 걸로 나오던데.. 맞나요?
보통블빠
16/11/15 21:42
수정 아이콘
정확히는 강화도 제외하고 고려에서 쓸만한 땅들 초토화전술 이후 말뚝박기로 장기전을 했습니다.
그걸 못버티고 고려가 항복한겁니다. 더 버텼으면 정말 남아나는게 없었을 것입니다.
카서스
16/11/15 21:47
수정 아이콘
교과서에서 원간섭기라 불리는 시대구분은 사실 원 속국기라고 해야합니다.

몽골은 국가간 외교를 나라대 나라가아닌 가문사이의 결합으로 봤는데, 고려왕실을 부마로 편입시켰고 이는 몽골울루스에 고려가 편입됬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원 부마+세조구제 때문에 아주 끗발날리긴 했지요.
포장한다면 고려국왕이 투하된 영지+정동행성의 승상자격으로 계속 고려를 다스렸기 때문에 독립국가였다고 우길수는 있겠죠(...)
-안군-
16/11/15 21:48
수정 아이콘
몽골은 원래 점령 자체를 안했습니다(...)
애초부터 "전투를 이긴 후에 약탈과 학살을 하고, 도시를 불태우고 이동~"이 몽골군의 전술인지라...;;
이렇게 하면, 지방관을 파견하거나, 점령지에 대한 지배행위... 를 안 해도 돼서 경제적이라는 이점(...)이 있지요. 워낙 나라가 넓다보니...
보통블빠
16/11/15 21:55
수정 아이콘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말뚝박기 전술도중 부원배라고하는 친원세력을 양성해서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였죠
실제로 홍복원이 몽골군 길안내를 하면서 매국노짓을 했고 이성계의 조상뻘 되는 이안사도 이 시기에 몽골에 항복합니다.
강화도에서 타워 디펜스하는동안 몽골은 부원배세력으로 왕씨 듣보잡 왕족 이용해서 허수아비 정권만들고 강화도를 말려죽이면 그만이었습니다.
카카오닙스
16/11/15 21:44
수정 아이콘
저기 제가 잘 몰라서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이런걸 당하면서 팔만대장경을 만든게 맞습니까?
보통블빠
16/11/15 21:44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불심으로 몽골군을 이기기 위해서..
신불해
16/11/15 21:48
수정 아이콘
나중에 왜구가 한참 극심할때는 지맥을 막아 왜구를 막는다고 수미사라는 절에서 액막이를 하기도 하더군요.
-안군-
16/11/15 21:49
수정 아이콘
네;; 백성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불경을 깎고 있었던거 맞습니다;;
울트라면이야
16/11/15 23:01
수정 아이콘
휴.... 참 티비에선 이래저래 조상님들의 지혜 어쩌고 포장질하는데 실상은 대비도 없이 아몰랑 빼애애액!!! 부처님이 도와주실거거든요!!!??!!
시전이라니...
바람이불어오는곳
16/11/15 22:05
수정 아이콘
괜히 몽골인과 한국인이 똑같이 생긴게 아니겠죠
혈통만 따지면 절반은 몽골후손 아닐까요
16/11/15 22:05
수정 아이콘
말타고 몰려온 오랑캐가 물러가니깐 이번엔 바다에서 오랑캐들이 떼로.....13세기 중반부터 14세기 말엽까지의 약 150년간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민중에게 가혹한 시기였다고 봐도 무방하죠 몽골에 홍건적에 왜구에
Finding Joe
16/11/15 22:22
수정 아이콘
제가 학창시절 배운 바에 따르면
"고려는 그래도 저항을 격렬히 했기 때문에 완전 속국이 아닌 부마국으로 남은 것이었다" 였는데...

댓글들을 보니 격렬한 저항 때문이 아니라 몽골이 딱히 지배 자체를 안하는 거였군요 허헣.
보통블빠
16/11/15 22:25
수정 아이콘
부마국+내정간섭 완화도 쿠빌라이칸이 후계자 경합할때 뇌물을 잘 받쳐서 얻은 보상입니다.
Finding Joe
16/11/15 22:29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그나마 그 쪽 정국을 보고 줄을 잘 탄건 다행이네요.
보통블빠
16/11/15 22:31
수정 아이콘
뭐 개국초부터 고려가 잘하는게 줄타기입니다.
견훤이랑 싸울때도 호족들이랑 줄타기 잘해서 포섭해서 후삼국 경쟁에서 승리
송나라랑 요나라랑 경쟁할때도 줄타서 이익을 쟁취
금나라가 한참 잘나갈때도 줄을 잘타서 금나라의 침략 명분을 없앴지요.
Finding Joe
16/11/15 22:34
수정 아이콘
좋은 지식 배워갑니다.
그래도 고려가 고래 싸움에 낀 새우로서 나름 생존전략을 잘 구사했네요.

그나마 그것도 못한 조선 인조는....
보통블빠
16/11/15 22:36
수정 아이콘
뭐 병자호란 자체도 청나라의 전쟁물자 확보를 위한 계획된 전쟁이라고하니 잘 대처했어도 반드시 일어날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비 못하고 개털린게 문제였지만요...(아니 인조 양반 오랑캐랑 싸우겠다면서 식량조달은 어디에... 강화도에는 원균 2호기 같은 놈을 배치하고..)
Agnus Dei
16/11/15 22:39
수정 아이콘
인조의 경우는 좀 억울한게, 줄타기를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뭔짓을 하건 전쟁은 일어났을 상황이었으니까요.
카서스
16/11/16 00:12
수정 아이콘
격렬한저항하던 고려가 쿠빌라이에 항복하니 이게 명분으로 작용해 아릭뵈케와의 전쟁에 도움 많이 됬습니다.
그러므로 틀린 설명은 아니지요
다리기
16/11/15 22:38
수정 아이콘
진짜 동막골마냥 산골오지 말고는 다 털렸겠네요.....덜덜.
16/11/15 22:45
수정 아이콘
흔한 대한민국의 고려 버전이군요. 글 감사합니다.
16/11/15 22:53
수정 아이콘
당시 세계 최강국인 몽고에게 안 당한 나라가 어디있었겠습니까마는.. 윗분 말씀대로 글로 읽는데도 끔찍하네요

중국 대륙 뿐만 아니라 유럽 근처까지도 피바다로 물들었을텐데, 당시 고려의 대응은 진짜 할 말 없네요
그아탱
16/11/15 23:13
수정 아이콘
와 진짜 글을 읽는데 막 힘드네요.
정신적 충격 어마한데요.
탱구와댄스
16/11/15 23:33
수정 아이콘
그냥 원나라가 지배 자체를 안한다 하면서 낮게 볼 이유는 없습니다. 실제로 저렇게 인접해 있고 저 정도로 침공을 받았는데도 나라꼴이라도 유지한 채로 부마국으로라도 남은 것 만으로도 고려 국민들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한거긴 합니다. 라인 잘 타서 외교한 것도 어느 정도 뻐기기라도 했으니까 가능했던 거지 그냥 쳐들어온 순간 으아아아앙 하고 밀리고 저항도 못할 정도로 끝났으면 부마국으로 남긴 커녕 다른 나라들처럼 나라의 형태조차 유지 못했어요. 그게 지배층이 잘해서 된게 아니고 철저하게 백성들을 희생 시켜서 얻은 거라는게 영 아닌 거지만요. 요새 보면 그냥 무조건 비판적으로만 보려고 하는 문화가 기저에 깔려 있는데(특히 한식이나 역사나 유독 우리나라의 전통과 관련된 거는 이런 시각이 심하던데) 이것도 바른 접근법은 아닙니다. 세상에 잘한 것만 있는게 거의 없듯이 순도 100%의 깔 거리로만 이루어진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최소 이번에 siri 게이트 정도는 되어야 후자쪽이.....

그리고 몽골의 폭력성이야 뭐...송나라 인구 감소 추정치만 봐도 몽골이 얼마나 죽이고 다녔는지는 바로 견적이 나오죠. 사실 우리나라가 당한게 당시 몽골쪽 입장에선 스탠다드한 규범이나 마찬가지니...유럽쪽 역사에서 몽골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만 그림이 딱 나옵니다. 진짜 그냥 재앙 그 자체.
송하나
16/11/15 23:44
수정 아이콘
저놈들이 황룡사 9층 목탑 부신 놈들이죠?
진짜 미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런 놈들한테 손도 못 쓰고 당한 고려가 오히려 더 미개하군요.
탱구와댄스
16/11/15 23:47
수정 아이콘
당시에 몽골한테 안당한 나라가 없습니다.;;;;;;; 유럽이든 중국이든 전부 털리고 학살당했어요.
16/11/16 18:21
수정 아이콘
미개한거랑 싸움못하는거랑 뭔상관입니까
16/11/16 00:18
수정 아이콘
삭제, 욕설입니다(벌점 4점)
16/11/16 06:11
수정 아이콘
위나 아래나 인성이 똑같죠.
-안군-
16/11/16 11:13
수정 아이콘
댓글들을 보다가.. 한마디 보태자면, 본문에 나온 끔찍한 일들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던 게 저 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딱히 우리나라만 그랬던건 아니긴 해요. 세계 어느 나라도 몽골을 상대로 싸워서 버텼던 나라가 없습니다...;;
아, 신께서 바람을 보내셔서 재앙을 막아주신 일본 빼고요.

오죽하면...세계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막고, 지구의 이산화탄소 증가를 잠시 늦춘 시대가 바로 저 때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겠습니까...
그냥 전 지구적 재앙이었어요. 전 세계 인구의 유의미한 감소가 일어났던 시기죠.
MVP포에버
16/11/16 21:24
수정 아이콘
하, 이러니 정도전과 이성계가 고려를 뒤엎은 것도 이해가 갑니다.
고등학교땐 고려가 조선보다 더 나은 나라처럼 배워서 조선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었는데
요샌 계속 반대의 사실을 알게 되니 당황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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