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가에 한 각하가 살았다. 이 각하는 주색을 좋아하여, 매양 새로운 여자 연예인이 나오면 으레 몸소 안가를 찾아가 로얄샬루트를 따라드리며 인사를 드려야 했다. 그런데 이 각하는 해마다 사람들을 붙잡아다 고문하고 해코지한 것이 쌓여 그 수가 천 명에 이르렀다. 각하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민들을 다 쓸어버리겠다하자 중정부장은 야수의 심정으로,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외치고, 곧 총으로 그 각하를 쏴 버리고 말았다. 전땅끄는 그 각하가 남긴 그네가 부모가 없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 6억원을 주었지만, 딱히 그네에게 무언가 더 해 줄 도리는 없었다.
그네 역시 읍읍재단에 틀어박혀만 있을 뿐, 어찌할 바를 찾지 못하자 그 동생들이 역정을 냈다.
"언니는 평생 대한구국선교단만 좋아하고, 아저씨랑 방안에 틀어박혀 헛짓거리만 하더니. 쯧쯧 각하, 각하란 죽고나면 한 푼어치도 안 되는 걸."
그 나라에 사는 한 무당이 가족들과 의논하기를,
"각하는 아무리 멍청해도 늘 존귀하게 대접받고 나는 아무리 똑똑해도 항상 비천(卑賤)하지 않느냐. 말도 못하고, 각하만 보면 굽신굽신 두려워해야 하고, 엉금엉금 가서 정하배(庭下拜)를 하는데, 코를 땅에 대고 무릎으로 기는 등 우리는 노상 이런 수모를 받는단 말이다. 이제 그네가 아버지를 잃고 시방 아주 난처한 판이니 우리가 가서 그네를 도와줘 각하로 만들면, 다음 각하는 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장차 그네의 각하를 사서 가져보겠다."
무당은 곧 그네를 찾아가 보고 자기가 대신 그네를 각하로 만들어 주겠다고 청했다. 그네는 크게 기뻐하며 승낙했다. 그래서 무당은 즉시 연설문을 대필하고, 십알단을 동원하여, 그네를 각하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네가 각하가 된 것을 놀랍게 생각했다. 석희는 그네를 찾아가 대체 어떻게 각하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사정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네가 2만원 짜리 누추한 옷을 껴입고는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만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며 헛소리만 하고 있지 않은가. 석희가 깜짝 놀라 그네에게
"각하는 어찌 이다지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여 욕되게 하시는가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네가 반쯤 풀린 눈으로 멍하니 양파즙을 짜내며 말한다.
"황송하오이다. 소인이 감히 욕됨을 자청하는 것이 아니오라, 이미 제 연설문은 순실이라는 무당에게 모두 맡겼사옵니다. 그 무당이 각하이옵니다. 소인이 이제 다시 어떻게 전의 각하를 모칭(冒稱)해서 각하 행세를 하겠습니까?"
석희는 감탄해서 말했다.
"각하로구나 순실이여! 실세로구나 순실이여! 무당이면서도 나라의 모든 연설문을 작성했으니 각하의 입이요, 나라의 모든 정책을 결정했으니 각하의 머리요, 누가 좋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결정하였으니 각하의 마음이로다. 이야말로 진짜 각하로구나. 그러나 사사로이 각하라는 것을 넘기고 증서를 해 두지 않으면 민중항쟁의 꼬투리가 될 수 있다. 내가 너와 약속을 해서 국민(國民)으로 증인을 삼고 증서를 만들어 미덥게 하되 본관이 마땅히 거기에 서명할 것이다."
그리고 석희는 제투비시(諸鬪非是)로 돌아가서 나라 안에 언론 및 국민들을 모두 불러 광화문(光化門)에 모았다. 무당은 구치소(拘置所)에 서고, 그네는 청와대(靑瓦臺)에 섰다.
그리고 증서를 만들었다.
[ 2016년 11월 12일 ]
“그네는 순실에게 사사로이 각하를 팔아서 예전 힘든시절 순실이 도와준 정을 갚았다.
오직 이 각하는 여러 가지로 일컬어지나니, 군대를 지휘하면 국군통수권자라 하고, 국무회의를 주재하면 국무회의의 의장이 되며, 행정부를 다스릴 때는 정부의 수반이 되고, 외국에 나갈때는 국가의 원수가 된다. 권위없는 일반명칭은 대통령이고, 높은 사람에 대한 존칭으로 불릴 때는 각하라 하니, 너 좋을 대로 따를 것이다.
각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각하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하여야 한다.
각하는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 불철주야로 국가가 주권적으로 독립하고 계속적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직무를 수행하여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진다. 각하는 헌법과 기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몸이 아프거나 잠이 부족하여도 직무 수행을 하여야 하며, 사사로이 집무시간에 관저에 들어가 약을 맞으며 쉬어서는 아니된다. 각하는 각하의 임무에만 집중하여야 하므로 다른 돈 버는 일은 같이 해서는 아니되며, 법률이 정하는 공사의 직 역시 겸할수 없느니라.
또한 각하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지며, 말로만 통일이 대박이라고 외쳐도 아니되느니라. 각하는 제대로 된 사람들을 뽑아 자신의 일을 돕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각하가 헌법이나 법률을 준수하지 못한다면 탄핵이 된다고 하더라도 얌전히 그 탄핵을 받아들여야 한다.
해외에 회의가 있다면 위험하고 피곤하더라도 나가야 하지만,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이라도 국내의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되며, 남을 시켜 대신 결재하게 해서는 아니된다. 국민들의 의견을 수시로 수렴하고,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질문에도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대답하여야 한다. 국회에서 연설을 하거나 대국민 연설을 할 일이 생기면,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더라도 연설문을 직접 고쳐서 앞뒤에 맞는 연설을 하여야 하느니라. 혹 각하자리를 물러난 이후 터럭만큼이라도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다면, 여기저기 불러다니며 수사를 받고 곤혹을 치러야하며, 자기 친족들이 감옥에 가는 것은 감수하여야 한다."
[ 대한민국(大韓民國) 국민(國民) 일동 ]
이에 승택이 탁탁 국새를 찍어 그 소리가 웰컴투 평창 소리와 마주치매 미르가 종으로, K가 횡으로 찍혀졌다.
무당은 종범이 증서를 읽는 것을 쭉 듣고 한참 머엉하니 있다가 말했다.
"각하라는 게 이것뿐입니까? 나는 각하가 신선같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는 걸요. 원하옵건대 무어 이익이 있도록 문서를 바꾸어 주옵소서."
그래서 문서를 다시 작성했다.
"하늘이 사람을 낳을 때도 부모 잘 만난 것을 능력으로 구분했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대통령이니 이것이 곧 각하이다. 각하의 이익은 막대하니 노동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고 사무도 보지 않고 해외순방과 재벌들을 겁박하는것만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일해재단이요, 작게는 미르재단이 되는 것이다. 각하의 임명장은 사이즈는 A4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자루이자 권력자루인 것이다.
각하가 생각이 없고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어도 오히려 국민들이 안타까워해주고, 잘 되면 퇴임후에도 수천억의 재산을 남겨 테니스나 치고 다니고, 사람들을 탱크로 밀어버렸어도 무료로 경호를 받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연봉의 수십배나 되는 돈이 자기 주변으로 굴러들어오며, 정책 한 번 바꿔주면 재벌들이 돈다발을 싸들고 온다, 원한다면 안가에는 연예인을 불러들일 수도, 무단으로 약물을 반입할 수도 있고, 집무시간에 관저에서 잠이 보약이라며 늦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한다.
궁한 각하가 서민들의 담배세를 끌어다 자기 재산을 불리고, 재벌들을 불러 조인트를 까며 기금을 내라고 한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설렁탕 국물을 들이붓고, 머리를 탁하고 쳐 억하게 죽게 만들고, 마티즈에 가둬 놓고 연탄을 피운다 하더라도 누구 감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무당은 증서를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맹랑하구먼. 나를 장차 국민들에게 맞아 죽게 할 작정인가."
하고 머리를 흔들고 구치소로 다시 도망가버렸다.
무당은 평생 다시 각하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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