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경오일, 혜제가 현양전에서 죽었다. 그 나이 48세로 태양릉에서 장사를 지냈다.
무제는 자식을 태자로 삼았다. 그러나 조정은 모두 그가 정사를 돌보지 못할 것을 알았으며, 무제 역시 태자의 능력을 의심하여 문제를 내었다.
그러나 상서의 사령이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므로 무제는 태자의 능력을 대조해볼 길이 없었다. 가비(가순실: 혜제의 비)가 좌우의 측근들에게 문제의 답을 맞추어보게 하니, 대부분이 옛뜻을 인용한 글이었다. 이에 급사 장홍이 말하기를,
“
태자께서 배움이 깊지 않다는 사실은 폐하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따라서 태자께서 문제를 풀 때 옛글을 인용한다는 것은 불가한 일일 것입니다”하니 가비가 이를 따랐다.
이에 장홍이 초안을 잡고 태자가 답을 작성하여 황제에게 올리니, 무제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태자는 마침내 자리를 보전하게 되었다.
즉위 후, 큰 지위에 있으면서도 정사는 아랫것들에게서 나오고 기강은 크게 무너졌다. 뇌물을 주고받음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세력가에는 귀한 물건이 넘쳐났다.
충성스럽고 어진 자들의 길이 끊어지고, 참소와 아첨을 일삼는 자들이 득세하여 서로를 번갈아가며 천거하니, 천하인들은 조정 알기를 시장판으로 알았다.
고평왕 사마침이 <석시론>을 짓고, 남양의 노포가 <전신론>을 지었으며 또, 여강의 두숭이 <임자춘추>를 지었는데, 모두 이들을 질타하기 위해 쓴 것이었다.
혜제는 또 일찍이 화림원에 있으면서 청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좌우에 묻기를,
“이 청개구리가 우는 것은 관을 위해서인가 사를 위해서인가?” 어떤 이가 대답하기를, “관에 있을 때에는 관을 위해서이고 사에 있을 때에는 사를 위해섭니다”라 하였다.
천하에 기근과 난리로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자 혜제가 이르기를,
"어찌하여 고기죽을 먹지 않는가?“라 하였다.
그의 감추어진 어리석음이 모두 이런 종류였다. 후에 떡 속에 든 독 때문에 죽었는데, 혹자는 이르길 사마월의 독살이라고도 한다.
사신은 말한다. 재주도 없는 자식이 천자에 즉위하여 크게 칭송받았으나 권세는 황제에게서 나오지 않고 정사는 소인들로부터 나왔다.
포사와 숙대가 같이 흥함에 양후와 견융이 함께 움직였다. 그 옛날 주왕은 어리석었으며 난왕은 도주하여 서로 흉덕을 입었다.
일에 관해서는 허물을 아름답게 여기니 이는 가히 흙으로 만든 인형이 아닌가?
무황제는 그 자식을 알지 못하였다. ...
<진서> 제기 -
근혜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