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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27 19:52
인조 정권의 긍정과 부정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광해군 대의 실정은 '인조 정권의 선택지' 자체를 줄여버리는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즉 막연히 "x 같은 선조" 와 'x 같은 인조' 사이에 놓인 '불쌍한 광해군' 같은 식이 아니라, 오히려 광해군 정권 무렵에 쌓인 폐단과 문제를 인조 정권이 떠맡아서 해결해야 하느라 진땀을 빼는 입장이기도 했었쬬.
16/10/27 22:25
말씀하신 경기부양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화폐경제와 생산품을 저장할 수 있는 제조업이라는 두가지 조건이 갖춰졌을 때 경기변동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 경기변동이 안 좋은 때를 가리켜서 불경기, 경기침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경기부양은 이러한 경기침체 상황에서 하는 대응책입니다. 경기침체는 사회전체적으로 수요가 부족하고 공급이 과잉인 상황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수요(토목사업 등등)를 창출해서 대응하는 방법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화폐경제도 없었고(화폐사용이 있었도 매우 약했음), 제조업 경제도 아니었기 때문에 경기변동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두통과 치질에는 그 치료약이 각각 다르듯이 산업경제 하의 경기침체에 대한 처방과 전통경제 하의 공급감소에 대한 처방도 달렀어야 할 것입니다.
16/10/27 19:55
영화 등의 매체 덕을 보고 거품이 심하게 낀 임금이죠. 경제 관련해서는 조선 역사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암군이 바로 광해군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재위한 시기가 전쟁 직후라는걸 생각하면 막장 원탑 소리 들어도 할말없고요.
16/10/27 21:00
네. 그러니까 임팩트를 강조한 거죠. 누적 war가 비슷해도 포스트 시즌 병살타, 한국시리즈 최종전 9회말 1점차 투아웃 만루상황 병살타 같은 게 있는 쪽이 주목도가 높을 수 밖에요.
16/10/27 23:18
음 광해군이 너무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선 공감하지만 반대로 부흥같은데에서는 너무 저평가를 받는것같아요 필자 분이 써주신 대목에서 (역대 조선왕조중에 이렇게 짧은시간때 궁궐공사를 집중적으로 한 왕조는 없었다) 라고 표현을 하는데 저는 어쩌고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란 후기에 궁궐들이 박살났는데요.. 물런 지나친면이 있지만 토목공사에 집중한 부분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광해군은 그것이 왜란이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리고 중립외교정책이나 이항복등 초기에 서인남인들도 등용시킨거나 대동법 얘기를 받아드려서 시행 (물런 주체는 아닙니다 ) 한거를볼때 저는 최소한 뭔가를 할려고는 한 왕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아쉽게도 실패했지만요
16/10/28 01:01
광해군 대의 토목공사는 단순히 궁궐이 부서졌기에 이걸 수습하려고 한걸 문제 삼는게 아니라, 그 궁궐을 짓기 위해 국가의 재정 전반 전부를 파탄내고 다시 그걸 매우기 위해 지방에 백여명이 넘는 조도사를 파견해서 백성을 수탈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 부분입니다. 전후에 궁궐을 짓는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궁궐을 짓기 위해 왕이 어명을 앞세워 지방관의 질서마저 어지럽히는 관리를 파견해서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 수탈하고, 심지어 그들의 비행마저 묵인하며 옹호하는 행위가 '당연' 한 행위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동법 관련 논의가 나온 게 신하들 중심으로 '재정 상태가 이렇게 되다간 방법이 없다' 는 문제 의식이 컸고, 여기에 대해 계속해서 반대 의견을 보낸 광해군이 대동법이 아닌 다른 여러 방식을 통해 수탈을 자행해서 궁궐 공사 비용 마련에 전념했다는건 재밌는 부분이죠.
16/10/27 23:26
역사적으로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일으키는 경우 궁궐 공사는 엄청난 인력과 돈, 그리고 힘이 집중되는 대공사 입니다.
이럴 경우 진행 과정에서 전권을 쥔 왕의 권한이 강해 집니다 지금 최순실이 미르등을 통해서 국가 예산 사업을 진행 하는등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것과 비슷 합니다.
16/10/28 00:52
궁궐공사를 왕권강화라는 명목으로 옹호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실제로 광해군이 왕위를 지키지 못해서 쫓겨난 군주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이건 재미있는 이야기죠. 결국 완전히 실패했다는 셈이니까요.
더 웃기는건 광해군이 실제로 도성 내의 병사들은 계속 외부로 보내 실제 자신의 호위병 숫자 마저도 줄였다는 점이죠. 왕권 강화를 이유로 광해군의 행적을 옹호하는 경우가 있지만 오히려 이렇게 자신의 왕권의 안정화를 위협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을뿐더러 결과적으로 쫓겨나게 된 왕이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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