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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0/27 19:44:39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전후복구' 를 과연 했었는가




조선의 국왕들 중에서 가장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는 왕이 광해군 입니다. 광해군의 치적에 관한 여러 평가야 워낙 분분하고 말들도 많아서 한번에 소개하기도 점 성가실 정도기도 하고, 광해군의 가장 대표적인 중립외교에 관해서도 여러 의견들이 있는 편입니다.




다만, 여러 매체에서 광해군을 언급할 때 기본적으로 나오는 말이 '임진왜란의 전후복구를 하고' '왜란의 피폐함을 수습하고...' 등 입니다. 전후수습과 관련된 부분은 광해군을 이야기할때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언급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문제는 이 부분이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전후수습이라는 점이 정확히 무엇을 말함이냐 함은 약간 모호한 부분이 될 수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전쟁이라는 중대사를 겪으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경제' '재정' 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광해군 시기 조선의 재정은 사실상 '파탄' 에 가까웠습니다.















'....광해군 대 조선은 연이은 두 차례 왜란의 영향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기 전결 상태와 이를 기반으로 한 국가재정은 이러한 상황을 뚜렷이 보여준다. 호조 판서 황신에 따르면 국가의 세입은 전쟁 전에 비해 2/10, 3/10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지출은 어느덧 전쟁 전의 규모를 회복하고 있었다. 한 해에 받아들이는 공물로는 당년의 용도를 지탱하기에 크게 부족했다.



또 임진왜란 이전 삼남지역의 총 전결수 113만 결은 계묘양전(선조 36년, 1603년)에서 29만 결로 줄었다가, 갑술양전(인조 12년, 1634년)에서야 89만 5,000여 결로 회복되었다. 광해군대에 중앙전부가 운용한 전결의 규모는 전쟁 전의 26%, 갑술양전의 32% 수준에 불과했다.



광해군 시기는 피폐된 국가 운영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차분히 제도적 재정비에 힘써야 할 때였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이것들 대부분은 중앙정부의 대규모 재정수요을 직접적으로 발생시켰다. 5,6개에 이르는 궁궐 공사가 한 예다. 선조 40년(1607)에 시작해서 광해군대에 완료된 창덕궁을 비롯하여 창경궁, 경덕궁, 경운궁, 인경궁, 자수궁 등의 공사가 진행되었다.




역대 조선왕조 전체를 살펴도, 이렇듯 짦은 기간에 궁궐 공사가 집중된 때가 없었다. 공사비는 대부분 전결에 부과하는 결미, 결포로 충당되었다. 납속책도 확대되었다.




인조는 반정한 바로 그날에 영건, 나례, 화기 등 12개 도감을 폐지하고, 조도사 6명과 제주 목사의 처형을 명했다. 이러한 조치는 어느 정도 정치적 과장이 있기는 하겠지만, 민의 고통에 대한 반정세력의 응답이라는 성격을 띠었다. 극심한 흉년으로 재정난이 예측되는 시점에 광해군의 조도성책을 불살랐던 것, 조도관이 민간에 흩어져 비축해둔 미, 포를 백성들에게 나눠주도록 지시했던 것도 그 연속선에 있는 조치였다.



또한 인조는 즉위 후 6개월 만에 민에게서 거둘 예정이었던 원곡 11만 수천 석을 삭감했다. 이 원곡은 진헌, 제향, 어공에 쓰일 예정이었는데, 광해군 13년 이전의 미납 공물이었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인조 말년 공식적인 공물가 원곡의 총량이 5만 석이었던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때 삭감된 양은 대단히 많은 것이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급한 대로 이런 조치를 통해서나마 광해군대의 '일탈' 을 '정상화' 해야 했다.'




- 이정철,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中


 

 

 

광해군 시기 재정 파탄에 관련해서는, 실록에서도 당대 신하들이 '이대로면 위험하다' 고 권고하는 부분들이 수차례 언급됩니다.

 

 


 


광해 114권, 9년(1617 정사 / 명 만력(萬曆) 45년) 4월 18일(임자) 4번째기사

호조가 궁궐의 건축으로 인한 재정의 부족에 대해 아뢰다

호조가 아뢰기를,

“조정에 이미 궁궐을 짓는 큰 역사가 있으니 백성들이 포목을 내는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묵은 곡식이 다 떨어져서 백성들은 곤궁하고 재물은 고갈되어 조석조차도 급급합니다. 



광해 111권, 9년(1617 정사 / 명 만력(萬曆) 45년) 1월 3일(기사) 6번째기사

호조에서 재정이 탕진되 선혜청의 방법으로 운영하기를 청하다

호조가 아뢰기를,【호조 참의 장세철(張世哲)의 상소를 지난 병진년 4월 4일에 특별 전교를 인하여 입계하였었는데, 정사년 1월 3일에 비로소 내리면서 점련(粘連)하여 비변사에 계하해서 대신에게 의논하라고 판하(判下)하였다. 】

“영의정은 의논드리기를 ‘나라의 재정이 이때보다 더 심하게 탕진된 적이 없는데, 선혜청이 이미 성과가 있었으니, 이 상소의 내용 역시 선혜청과 마찬가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광해 44권, 3년(1611 신해 / 명 만력(萬曆) 39년) 8월 8일(을해) 1번째기사

호조 판서 황신이 재정의 고갈을 아뢰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대비할 것을 청하다

호조 판서 황신(黃愼)이 아뢰기를,

“신이 얼마 전의 계사에서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어 보니 ‘구임(久任)시켜 성취를 책임지운다.’는 뜻으로 유시하셨기에, 신은 진실로 황공하고 감격스러워 죽을 곳을 모르겠습니다. 신이 삼가 나름대로 생각건대, 임명을 받은 이래 벌써 3년이 되었는데도 재주와 국량이 부족하고 일을 처리함이 생소한 까닭에 제대로 조획(措劃)하여 구원(久遠)한 규모를 마련해내지 못하고, 전후로 힘을 들인 바라고는 소소하게 보철(補綴)하여 목전의 급한 상황을 구제하는 정도에 불과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는 국가의 재정이 점차 탕갈되어 관아에 저축해 둔 것이 없고 해관(該官)은 실직(失職)한 채 단지 허명(虛名)만 남았습니다. 이미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지 못한 데다, 또 지출을 헤아려 거둬들이지도 못하므로, 비유하자면 원천이 없는 물이 당장 말라 버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물며 이미 말라 버린 것이야 어련하겠습니까. 진실로 지금 당장 변통을 하여 국가의 큰 규모를 세우지 아니하면, 몇 년 가지 않아서 공사(公私)간에 모두 바닥이 나서 제아무리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또한 능히 그 뒤를 선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광해군 시기 국가 재정은 안정화 되기는 커녕 사실상 파탄난 상태였습니다. 예산은 완전히 바닥이 난 상태고, 전쟁을 겪은 후였던 만큼 정상적인 세수는 전쟁 이전보다 큰 폭으로 줄었는데(광해군이 백성을 가엾게 여게 적게 거두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 예산이 사용되는 액수는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수입은 줄었는데, 예산은 수입이 줄기 전과 비슷하던가 혹은 더 증가했습니다. 그러면 이 예산을 어떻게 채우는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함으로, 비정상적인 방법이 수행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광해군 대 지방에 파견되었던 조도사(調度使)가 해냈던 몫입니다.

 

 

 

 

조도사라는게 무엇이냐고 하면,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국왕이 직접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갈취하라고 보낸 관리들 입니다. 광해군의 명령을 받고 파견된 조도사들은 영건도감에 바쳐야 할 '할당량' 을 '어떤 방식' 으로든 긁어모아 중앙에 올려보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그 와중에서 할달량 이상으로 뜯어내며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최대 100배' 까지 뜯어낸 조도사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조도사들은 광해군의 '어명' 을 앞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관들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당연히 조도사들의 폐단에 대한 지적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왔지만, 광해군은 여기에 대해 "조도사가 취한 건 별비(別備)지 백성들에게 취한게 아니다" 라며 그들을 비호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어쨌거나 광해군의 입장에서는 조도사들이 할달량만 채워서 자신에게 보내면 그만이었으니, 그 외에 더 해먹건 말건 관심사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물론, 이러한 조세를 많이 거두는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조선 같은 경우에는 역으로 정부가 백성들로부터 세수를 잘 걷지 못해서 늘 빈곤했다는 지적이(그리고 그렇게 적게 거두어도 실제적으로는 백성들이 다른 명목으로 중간에서 뜯기기 때문에, 백성들도 괴롭고 정부의 재정도 괴로운) 늘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거두어내서 채운 재정들이 어떠한 창조적인 투자 행위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전부 궁궐 공사에 사용 되었다는 점입니다. 국가의 재정이 비축분도 없을 정도로 마르고, 지방에서 수없이 뜯어낸 여타 자금들은 광해군의 궁궐 공사에 모조리 투입되어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졌고, 다시 이걸 메꾸기 위해 또 수탈이 자행되었습니다. 세수를 많이 거두었으니 그걸로 다른 무언가는 최소한 해결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냥 당장 시급하지도 않은 궁궐만 한없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광해군과 인조의 비교에선, 최소한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인조가 광해군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인조가 대단한 경제정책을 시행했다기 보단, 광해군 대의 실정이 워낙 극심해서 그 '일탈' 을 어느정도 정상화 시키는것만으로도 인조가 광해군보단 잘했던 겁니다. 

 

 


인조는 즉위하고 나서 광해군이 조도사를 통해 거두었던 온갖 물자를 풀어 다시 민간에 나눠주고, 거두려던 공물도 이전에 비해 삭감해서 전체적으로 큰 사업을 자제하고 '휴양' 에 가까운 경제정책을 펼쳤습니다. 전쟁이나 큰 천재지변이 있었던 이후라면 전통적으로 국가에서 자주 행하던 방식이기도 하구요. 



즉 임진왜란 이후의 피폐화된 정부나 민간의 경제가 전쟁의 참상에서 벗어나 '휴지기' 를 가진건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광해군의 치세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나 이루어졌던 셈입니다. 전쟁 20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전후 복구책이 중앙정부에서 수립된 셈이죠.

 

 

 

숙종 - 영조 - 정조로 이어지는, 그래도 '조선 중후반기의 부흥' 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시기의 기반은 인조 정권 시대부터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엄청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때가 되서야 그럭저럭 겨우 전쟁으로 인한 참상을 아물게 하기 위해 휴지기가 시작되었고, 전쟁은 물론이고 지난 광해군 정권 시기까지 이어진 재정 파탄 에서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을 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광해군 시기의 선혜청을 통해 시작된 '대동법' 의 논의가, 다름아닌 '완전히 파탄난 국가 재정 때문에 신하들이 이래선 큰일나겠다 싶어서 수립한' 대응책이라는 점이 참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2004년 버전 아틀라스 한국사

 

 

 

 

 


 

 

 

2014년 버전 고려대학교 "한국사"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최근의 담론에도 반영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학자들이 낸 개설서 등에서 광해군의 전형적인 레파토리인 "민생안전" "대동법 추진" 등이 자연스레 언급되었다면, 최근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들은 일절 사라지거나 혹은 거의 축소되고, 대신 무리한 궁궐공사에 대한 언급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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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스
16/10/27 19:48
수정 아이콘
역시 문제는 경제인건가요...
언어물리
16/10/27 19:50
수정 아이콘
인조도 딱히 못한 것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더군요. 하도 찌질한 짓을 많이 해서 그렇지..
신불해
16/10/27 19:52
수정 아이콘
인조 정권의 긍정과 부정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광해군 대의 실정은 '인조 정권의 선택지' 자체를 줄여버리는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즉 막연히 "x 같은 선조" 와 'x 같은 인조' 사이에 놓인 '불쌍한 광해군' 같은 식이 아니라, 오히려 광해군 정권 무렵에 쌓인 폐단과 문제를 인조 정권이 떠맡아서 해결해야 하느라 진땀을 빼는 입장이기도 했었쬬.
언어물리
16/10/27 19:55
수정 아이콘
광해군이 세자 시절에는 총명했는데, 선조에게 하도 시달려서 정신적으로 망가졌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16/10/27 19:52
수정 아이콘
외교와 경제정책이 치세의 핵심이자 필수라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도깽이
16/10/27 19:53
수정 아이콘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경기부양을 하는건 자본주의가 정착되고 근대가 되야지만 가능한거겠죠? 저때는 농업말고 없었을테니..
16/10/27 22:25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경기부양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화폐경제와 생산품을 저장할 수 있는 제조업이라는 두가지 조건이 갖춰졌을 때 경기변동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 경기변동이 안 좋은 때를 가리켜서 불경기, 경기침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경기부양은 이러한 경기침체 상황에서 하는 대응책입니다. 경기침체는 사회전체적으로 수요가 부족하고 공급이 과잉인 상황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수요(토목사업 등등)를 창출해서 대응하는 방법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화폐경제도 없었고(화폐사용이 있었도 매우 약했음), 제조업 경제도 아니었기 때문에 경기변동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두통과 치질에는 그 치료약이 각각 다르듯이 산업경제 하의 경기침체에 대한 처방과 전통경제 하의 공급감소에 대한 처방도 달렀어야 할 것입니다.
Agnus Dei
16/10/27 19:55
수정 아이콘
영화 등의 매체 덕을 보고 거품이 심하게 낀 임금이죠. 경제 관련해서는 조선 역사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암군이 바로 광해군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재위한 시기가 전쟁 직후라는걸 생각하면 막장 원탑 소리 들어도 할말없고요.
보통블빠
16/10/27 20:01
수정 아이콘
광해군은 선조 못지않은 암군인데 너무 고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크크..
허허실실
16/10/27 20:45
수정 아이콘
앞만 그러면 또 모르겠는데 뒤도 엄청난 임팩트를 가진 라인업(...)이라 중간에 끼면 어느 정도 묻힐 수 밖에 없죠.
Agnus Dei
16/10/27 20:47
수정 아이콘
종합적인 평가에서 광해군이 딱히 선조/인조보다 낫다고 보기도 뭐해서...
허허실실
16/10/27 21:00
수정 아이콘
네. 그러니까 임팩트를 강조한 거죠. 누적 war가 비슷해도 포스트 시즌 병살타, 한국시리즈 최종전 9회말 1점차 투아웃 만루상황 병살타 같은 게 있는 쪽이 주목도가 높을 수 밖에요.
16/10/28 08:47
수정 아이콘
근데 9회말 투아웃 만루에서 병살타는 타자가 주목을 받는게 아니라 심판이 주목을 받겠네요
허허실실
16/10/28 11:33
수정 아이콘
으앜... 원아웃으로 정정하겠습니다.
뻐꾸기둘
16/10/27 20:08
수정 아이콘
광해군은 한거 보면 요즘으로 치면 국정원장 정도가 깜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cluefake
16/10/27 21:11
수정 아이콘
궁궐공사가 너무 큰 실책이죠. 문제는 후임자가 쓰레기였던 외교는 괜찮아서 나아보이는거지.
16/10/27 22:32
수정 아이콘
대체 왜 그렇게 궁궐 공사에 집착을...
웅진프리
16/10/27 23:18
수정 아이콘
음 광해군이 너무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선 공감하지만 반대로 부흥같은데에서는 너무 저평가를 받는것같아요 필자 분이 써주신 대목에서 (역대 조선왕조중에 이렇게 짧은시간때 궁궐공사를 집중적으로 한 왕조는 없었다) 라고 표현을 하는데 저는 어쩌고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란 후기에 궁궐들이 박살났는데요.. 물런 지나친면이 있지만 토목공사에 집중한 부분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광해군은 그것이 왜란이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리고 중립외교정책이나 이항복등 초기에 서인남인들도 등용시킨거나 대동법 얘기를 받아드려서 시행 (물런 주체는 아닙니다 ) 한거를볼때 저는 최소한 뭔가를 할려고는 한 왕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아쉽게도 실패했지만요
신불해
16/10/28 01:01
수정 아이콘
광해군 대의 토목공사는 단순히 궁궐이 부서졌기에 이걸 수습하려고 한걸 문제 삼는게 아니라, 그 궁궐을 짓기 위해 국가의 재정 전반 전부를 파탄내고 다시 그걸 매우기 위해 지방에 백여명이 넘는 조도사를 파견해서 백성을 수탈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 부분입니다. 전후에 궁궐을 짓는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궁궐을 짓기 위해 왕이 어명을 앞세워 지방관의 질서마저 어지럽히는 관리를 파견해서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 수탈하고, 심지어 그들의 비행마저 묵인하며 옹호하는 행위가 '당연' 한 행위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동법 관련 논의가 나온 게 신하들 중심으로 '재정 상태가 이렇게 되다간 방법이 없다' 는 문제 의식이 컸고, 여기에 대해 계속해서 반대 의견을 보낸 광해군이 대동법이 아닌 다른 여러 방식을 통해 수탈을 자행해서 궁궐 공사 비용 마련에 전념했다는건 재밌는 부분이죠.
파인애플빵
16/10/27 23:26
수정 아이콘
역사적으로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일으키는 경우 궁궐 공사는 엄청난 인력과 돈, 그리고 힘이 집중되는 대공사 입니다.
이럴 경우 진행 과정에서 전권을 쥔 왕의 권한이 강해 집니다 지금 최순실이 미르등을 통해서 국가 예산 사업을 진행 하는등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것과 비슷 합니다.
신불해
16/10/28 00:52
수정 아이콘
궁궐공사를 왕권강화라는 명목으로 옹호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실제로 광해군이 왕위를 지키지 못해서 쫓겨난 군주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이건 재미있는 이야기죠. 결국 완전히 실패했다는 셈이니까요.


더 웃기는건 광해군이 실제로 도성 내의 병사들은 계속 외부로 보내 실제 자신의 호위병 숫자 마저도 줄였다는 점이죠. 왕권 강화를 이유로 광해군의 행적을 옹호하는 경우가 있지만 오히려 이렇게 자신의 왕권의 안정화를 위협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을뿐더러 결과적으로 쫓겨나게 된 왕이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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