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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9/04 15:45:54
Name 부끄러운줄알아야지
Subject [일반] 어느 역무원의 하루 ㅡ 땜빵맨
오늘은 주말이자 장날..어느정도 고생할건 미리 각오한 바이지만
출근하고보니 매표여직원이 친구 결혼식이라고 연차를 냈단다.
보통 연차는 최소 2~3일전에 사전신청을 통해 허락을 득하여야하건만
이 여직원 어제서야 연락을 받았다며 부역장님에게만 살포시 허락을 받았다니
뭐..남은 직원 세명이서(역무팀장 포함) 어떻게든 해봐야겠지.

내 담당업무는 안내요원.
말이 안내지 평소엔 역 수익금, 발매기, 정산기, 환급기,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수유실, 전철게이트, 국철출입구, 맞이방 등등을 모두 관리하다가도 매표나 로컬관제원 부제시엔
그 자리를 대신 들어가 업무를 수행해야하는 나는야 땜방맨.

의외로 오늘따라 예상했던것보다는 고객이 많지 않네?
(우리역 평균 유동인원은 평일은 2~3만, 주말엔 4만정도입니다.
물론 주말에 장날까지 겹치는 날은 5만이 훌쩍 넘길때도..)
아침 출근길에 부슬부슬 뿌렸던 봄비 덕분인가..

식곤증이 한창 내려앉는 오후 3시경.
졸린눈을 간신히 부릅떠가며 퇴근 후에 소주를 한잔 할까말까 고민하는 사이,
저 멀리 주출입구쪽에서부터 몰려드는 서늘한 저기압에 우디르급 태세변환을 통해
초롱초롱한 눈빛과 밝은 미소를 준비한다.

약 30대 중반즈음으로 보이는 남과여 고객님. 딱보니 부부인듯..
"어서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OO역 두장 주소"
"네, OO역 두장말씀이시죠? 발차시각이 이제 3분정도밖에 남지않아 승차가 힘드실거같은데
괜찮다면 다음 열차나 지하철을 이용하시겠습니까?"
"아 잔말말고 지금가는 표나 두장 달라고!!"
'아..역시나 그냥 넘어갈리가 없지' 라는 생각을 하며 발권을 서두른다.

그런데 이 씨 발라먹을 고객님보소..나이도 나보다 한참 어린거같은데 대놓고 반말이네.
아무리 내가 어려보이는 동안의 땜빵맨이라지만 슬슬 짜증이 치솟는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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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더욱 환한 미소로 응대해야지..;;
"네 고객님, 여기 OO역 두장입니다. 승차를 못하시면 반환시 수수료가 발생하니까
바로 입장하셔야합니다. 안녕히가세요~"
아..이 얼마나 완벽한 안내멘트인가!
이로서 오늘도 성질 잘 죽였다는 자뻑에 취해 저녁엔 소주 한잔을 필히 하리하는 다짐과 함께
그 부부를 바라보는데, 여자분은 정말 급한지 바로 달려가는데 남자고객은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처갓집엘 가는건가..아님 옷 쇼핑하러 백화점이라도 가는건가. 저러다간 열차 못탈텐데..'
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와서는 열차가 떠났다며 환불을 요청한다.

"네 고객님 여기 반환수수료 얼마를 제외한 금액 oo원입니다."
"아니 안그래도 기차 놓쳐서 열받는구만 뭔 수수료?"
"아까 발권하실때 반환수수료 미리 설명을.."
"내가 가고있으면 기차를 멈춰놓던가 못탈거같으면 아예 차표를 팔지를 말던가해야지 뭔 수수료냐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시작하는거보니 슬슬 3등급 진상파가 발휘될 모양이다.
1,2등급도 숯하게 겪는 내가 고작 3등급에 흔들리는건 웃기는 일이지..크크크

"네 죄송합니다 고객님. 여기 반환수수료입니다. 여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우리들 세금으로 먹고사는 주제에 수수료 띵까먹을라하지말고 일 똑바로 잘하소!"
' 그 수수료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거거든요~'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그저 죄송합니다 고객님을 연발하는 내 자신이 왜 이렇게 초라해지는지..

옆에있는 여자고객님은 어쩔줄 몰라하는데
수수료 800원을 의기양양하게 받아들고는 다시 주출입구쪽으로 사라져가는 고객을 바라보며
내일 출근할땐 반드시 소금을 한댓박 가져와야지 생각했다가 그냥 피식 웃고만다.

퇴근 후 마시는 소주는 진정 꿀맛이리라..

p.s)아래 간호사님 글을 읽고 갑자기 땡겨서 써보았습니다.
역에서 근무하다보면 겪는 수많은 일중에 소소한 에피이지만
나름 이 고객과 연관된 에피가 몇 번 더 있는터라..
반응 괜찮으면 나중에 다음 에피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바일로 작성하기 힘드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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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가방
16/09/04 15:51
수정 아이콘
글인데 뭔가 동영상이 재생되는 기분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tannenbaum
16/09/04 16: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Artificial
16/09/04 16:00
수정 아이콘
노고 많으십니다...
저도 대민접점업무인지라
가끔 나이를 어디로 드신지 모를것 같은 인간이
너네 부모한테도 넌 그럴꺼야! 라면서 진상부릴때
우리부모님은 그렇게 살지 않으시는데요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부긓부긓부글 .
16/09/04 16:04
수정 아이콘
매표실 발권기를 빨리 없애버려야 합니다. 기계 사용할 줄 모르면 못 타는 거죠.
달토끼
16/09/04 16:07
수정 아이콘
저도 지하철 공익이었는데 진상들 썰 한번 풀어보고 싶네요.
모짜렐라치즈
16/09/04 16:19
수정 아이콘
수고 많으십니다
전 다른분야인데.. 역무쪽보면 있던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는 기분이더라구요..
전체적으로 직원들끼리도 빡빡한 분위기고...
"우리들 세금으로 먹고사는 주제에 수수료 띵까먹을라하지말고 일 똑바로 잘하소!"
공감되는 말입니다. 어이가 없죠..난 세금 안내고 사는줄 알고있나..
금빛구름
16/09/04 18:05
수정 아이콘
코레일 소속은 아니지만 같은 역무원 일을하는 입장에서 공감이 많이 되는 글이네요
진짜 별일이 다있죠....
16/09/04 18:18
수정 아이콘
발매기, 정산기, 환급기,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맞이방, 게이트 관리를 모두 공익에게 시키는
1호선 xx역으로 오시면 조금 편하실텐데 안타깝네요.
우리나라에 역무원만 보면 못잡아먹어서 안달인분들이 참 많죠
그중에서도 기차 발권쪽 진상은 정말 엄청난데 ...
고생이 많으십니다.
달토끼
16/09/04 20:55
수정 아이콘
그건 그것대로 세금 도둑이군요..
16/09/04 21:52
수정 아이콘
네 제가 근무했던 역의 역무원들은 정말로 세금도둑이 맞습니다.

하루 업무 일과가, 정산시간에 발매기, 환급기에서 돈 꺼내오면
무작위로 섞여있는 지폐들을 공익들이 일일이 분류해주고,
직원은 분류된 지폐들 가져다가 지폐계수기로 금액 맞춰보고 정산 보고서 작성하고 밤 10시되면 자러갑니다.
막차시간 끝까지 객차정리, 승강장정리, 맞이방정리, 화장실청소, 역 폐쇄까지 공익이 하죠.
(해당시간에 역장이나 부역장이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실제 업무는 가능하면 전부 공익이 합니다.)
직원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문만 열어주고 6시 30분까지 버티면 다시 공익이 일어나서 업무를 보죠.
주간직원은 사실상 하루 일과가 정산 보고서 작성하는게 끝이구요.

야간 역무원이 19시 출근인데
낮까지 술퍼마시고 거의 만취상태로 조금 일찍 출근해서 21시 정도까지 잠만 자다가
잠깐 깨워주면 정산만 하고 다시 들어가서 아침까지 자는 역무원도 있었는데, 이분은 상습범 ...

물론 기차역은 이럴수가 없어서 정말 생고생 하시는분들이 많습니다.
달토끼
16/09/04 22:59
수정 아이콘
저는 부산 지하철 공익이었는데 무슨 역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막장이군요. 허허... 2년 동안 억울해서 어찌 버티셨을지....
16/09/04 23:26
수정 아이콘
1호선 공익이었는데, 오죽 역무원들이 일을 안했으면
모니터링때 전화응대 점수가 0점이 나와서
그 이유를 들어보니 '모니터링 기간동안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역무원이 받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였죠.
지금이야 같이 일했던 동생들하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
방과후티타임
16/09/04 18:31
수정 아이콘
수고가 많으십니다...
신동엽
16/09/04 19:05
수정 아이콘
이 고객과 관련되었다면 동일인이 여러번 했다는 건가요? 하...

그놈의 세금 부심.
뭐 얼마나 내시나 물어보고 싶네요.

많이 내시면 친하게 지내려구요
임전즉퇴
16/09/04 21:13
수정 아이콘
본인도 사실상 세금으로 차를 타고 있죠.
세금 내지 말고 대신 공공서비스를 실비로 이용하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겠죠. 물론 부유층은 이쪽에서 붙들겠습니다만.
어쨌든 나중에 회상할 때는 엉뚱하게 '공무원 xx들, 다 잘라야돼, 월급 깎아야돼, 연금 주지 말아야돼' 이럴 것이고...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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