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대답 없는 우주에 대답을 던지는 두 지성 간의 대화
이 책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이런 주제를 가지고 제도권 내의 인사가 주류 출판사를 통해 출간해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황당한 수준의 얼토당토않은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인상적인 대화 몇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감상을 대신하고자 한다.
지영해 – 인접생명권과 광역생명진화권 둘 다 제가 생각해낸 개념입니다. 외계인의 행태와 모습을 바탕으로 그들의 근원을 추정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도달한 개념이지요. 인접생명권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물고기들은 자기들의 물속 세계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의 세계 외에는 볼 수도 없고, 또 지능적으로도 그 이상의 세계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부에게 잡혀서 물 위의 세계를 짧은 순간 보고 온 물고기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물속이 아니라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순간에도 그 물고기는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보았을 것이고, 바다 위에 떠있는 수많은 배들을 보았을 것이고, 멀리 산과 들, 구름, 하늘, 그리고 백사장 뒤의 집들과 해변에서 뛰어노는 인간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를 쳐다보는 어부의 커다란 얼굴도 보았겠지요. 하지만 물속으로 돌아온 물고기는 자기가 본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물속에서 경험한 것에는 자기가 물 밖에서 순간적으로 본 것들을 이해하는 데 참조할 만한 준거틀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의 경험을 그저 한순간의 정신적 환상, 착란 정도로 취급하게 될 것입니다. 거꾸로 물고기들이 잠수복을 입거나 잠수정을 타고 물속으로 들어온 인간을 만났다고 가정합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물고기들의 경험과 지식에는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준거틀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한순간 직면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에게는 그저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기술이 있어서 잠수복을 입거나 잠수정을 탄 것뿐이지요. 잠시 들어갔다 다시 나온 것뿐입니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지능이 없어요. 지능이 따르지 않으면, 감각기관으로 아무리 많은 새로운 현상을 보아도, 그것들은 의미 있는 현상이 되지 못합니다. 실체가 없는 환상일 뿐이지요. 다시 말해, 이 물고기들은 인간이 거주하는 하나의 인접생명권의 존재로 인해 야기되는 현상들을 경험했는데, 그것을 이론화해줄 수 있는 틀이 없기 때문에 물고기들에게는 인간과 인간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그만큼 무엇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속한 생명권에 의해 철저히 지배되고 조건화되는 것입니다. (p. 158-159)
지영해 – 우선 예술이 주로 미, 즉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매체라는 교수님의 전제에 약간 의문이 듭니다. 저는 예술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매체가 아니라, 진선미 전체를 드러내는 매체로 이해합니다. 교수님도 미가 진과 선에 동시에 맞닿아 있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예술은 학문과 과학을 넘어서는 인간 최고의 존재양식이자 표현양식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우주가 작동하는 근본원리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과학으로 구구절절이 풀어내려고 하면 다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설명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아주 부분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술은 그것을 통시적으로, 통합적으로 순간에 이루어냅니다. 여기서 예술은 정보와 지식을 넘어 봄의 행위, 즉 조견(照見)의 차원으로, 우리의 살과 뼈를 순간적으로 들어 올려 깊은 감동 속에서 진실을 보게 하지요. 진실을 단순히 부분을 합한 산술적 합계가 아닌 원래의 하나 된 모습 전체로 보여주기 때문에 예술은 극치의 감동을 주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비전의 전체성 때문에 이 ‘봄’의 순간은 동시에 선하고도 아름다운 과정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p. 182-183)
최준식 – 외계인들의 인성에 대해서 말들이 많지요? 저는 일단 지 교수님이 인용한 철학자들의 의견에 동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포괄적인 이유로 동의합니다. 저는 앞에서 외계인들은 영적으로 인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뛰어난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차원을 초의시적인 차원이라고 했지요. 이 차원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초절정의 지혜와 인간계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자비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럼 지혜를 얻으려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엄청난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류 가운데 이곳에 간 사람은 지난 역사 동안 그야말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주의 이치에 눈을 떴을 뿐만 아니라 그 원리를 자기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니까 지상의 시공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글쎄요, 이런 사람을 두고 오로빈도가 ‘초인’이라고 한 것 아닐까요? 따라서 만일 이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외계인들은 이류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불교의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我相)을 완전히 버린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욕심이나 적개심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런 부정적인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들은 물질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은 아집과 욕심 등의 물질적인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가 목격하는 것처럼 그렇게 시공간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없습니다. 여전히 물질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들은 자비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아상을 극복하고 욕망을 초월했다는 것은 더 이상 이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p. 185-186)
지영해 – 이렇게 보면 애초에 환경 문제가 대두되게 된 데에는,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세계가 벼랑으로 몰려가는 데에는 세 개의 낯익은 주범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적 요인으로, 과생산·과소비를 지향하지 않으면 몰락하는 현재의 시장자본주의입니다. 둘째는 정치적 요인으로서, 민주주의 체제입니다. 정부가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으면 선거를 통해 정부를 바꿔버리는 체제지요. 셋째는 국제관계적인 요인으로,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 간 경쟁 체제 속에서 범국제적 기후 협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민족국가 체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신봉해오던 시장자본주의 체제, 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민족국가 체제가 환경 문제의 시초이자, 계속되는 문제의 주범이라는 겁니다. 나아가 우리가 그렇게도 목숨을 바쳐 지켜오고 후세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이 세 가지 가치가 인류 문명을 종말로 치닫게 만드는 주범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준식 – 지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까 한편으로는 후련한데 또 한편으로는 암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후련한 건,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환경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을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환경 문제가 인간의 한없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탐욕이 가장 큰 문제지만, 현실에서는 시장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 민족국가 체제의 한계라는 구체적인 상황이 문제라는 분석은 실로 탁월합니다. 그리고 이 세 체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고 갖은 애를 써온 것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분석 역시 뛰어납니다. 그런데 우리 인류는 이 세 체제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환경 문제의 해결은 물 건너간 것이라는 해석에 십분 동의하면서 동시에 아주 암울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관이 이제는 우리를 공멸로 가게끔 옥죄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 가치관이 바뀔 확률이 없다는 전망은 우리의 미래가 매우 비관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p. 220-221)
지영해 – 외계인과의 관계를 떠나서 인간의 자결권과 존엄성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인간에게 자결권과 존엄성이란 것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마치 독을 뿜어대며 상대를 찢고 찌르고 죽이고 있던 독사나 전갈이 갑자기 근엄한 표정으로 인간을 향해 돌아서서 ‘우리에게는 독사와 전갈로서 위대한 자결권과 숭고한 존엄성이 있다’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자결권과 존엄성이라는 개념은 13∼14세기경 서양 신학에서 태동해 18세기 정도에 완성된 한시적인 개념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결권과 존엄성이 없다는 말에 모욕감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지난 수백 년간 인간이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자아가 확장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자아가 자유와 인권, 자결권과 존엄성의 옷을 입고 무한정 부풀어 오르기 전까지 그 자리에는 신이 있었습니다. 신은 인간의 머리 위에 있어서 우리가 무릎을 꿇고 조아리며 ‘예’라고 함으로써 복종해야 하는 무한지고의 존재였습니다. 그 존재를 대신해서 인간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라는 존재의 수준이 영 말이 아닙니다. 존엄함을 외친 다음 존엄성과 권리와 자유라는 미명 아래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른 인간을 무한히 살상하고 지연을 파괴하는 인간이 독사나 전갈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입니까? 자결권과 존엄성은 그것이 주어졌을 때, 그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에게만 인정되는 것입니다. (p. 245-246)
인접생명권과 광역생명진화권의 개념은 매우 참신하고 멋진 개념이다. 예술의 정의에 대한 접근도 지금까지의 생각보다 훨씬 거시적이어서 인상 깊었다. 외계인의 인성에 대한 추론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인간의 바람 반, 논리적 당위성 반이 섞여 있다. 환경 문제의 원인에 대한 지영해 교수의 의견은 이 책의 백미이다. 널리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고민해야 한다. 인간의 ‘자결권’과 ‘존엄성’에 대한 논의를 읽으면서 나는 이 두 단어를 ‘사랑’과 바꾸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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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나사에서 발표하길 우주에서 지구가 "지구형 행성"으로는 우주적 관점에서 매우 초기에 생성된 행성이라고 한 거 같은데.. 이게 시사하는건 지구문명이 우주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져. 즉 지구인은 테란이 아니라 젤나가 내지는 프로토스라는 뜻... 인류가 식민 개척을 위해 우주로 진출 했을때 인류는 과연 본문대로 초인이 되어있을까 생각하면.. 크...
1. 뭐랄까... 제 입장에서는 병맛? 음... 무엇보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현학적인 말을 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 주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주제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은 그 주제를 알아야 할 수 있습니다.
2. 인접생명권과 광역생명진화권 어쩌구는 생물학에서 이전부터 하던 이야기 입니다.(해석은 다릅니다만) 인간의 한계 어쩌구는... 일단 양자역학은 그 한계를 초월했고, 역설적으로 그래서 어렵습니다. 인간의 상식에 반대되거든요.
3. 중간의 외계인은 인간을 초월 어쩌구는 무슨 사이비 종교 같이 들립니다.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부터 일단 보고 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새는 그것도 자뻑 심하다고 까이는 판인데...
4. 환경오염은 민주주의 어쩌구는 그냥 병맛입니다. 그러면 민주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가 아닌 인간은 환경오염을 안시켜야 겠죠? 일단 그거부터 확인을 안했네요.
5. 저는 이런류의 현학적인 글들을 정말 싫어합니다. 정말 그 분야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는 수 많은 사람에 대한 모욕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검색해 보니까 지영해 이 사람은 한국사 교수인거 같은데, 아직 한국사도 연구할 거 많으니까 그쪽에 집중하시고 외계인은 그냥 취미의 영역으로 남기셨으면 합니다. 아마도 제가 저 사람 앞에서 환단고기 운운하면 본인도 열 받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