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며칠 후에 입대한다고 말했다.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나는 제대한 남자들이 입대를 목전에 둔 남자들에게 던지곤 하는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농담들을 건넸다.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입대는 유쾌한 일이 아니겠지만 젊음이란 유쾌한 것이다. 나도 입대와 젊음을 거쳐 왔으니 잘 알고 있다. 물론 거쳐 왔다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겠지만.
여자가 웃었다. 눈에 익지 않은 얼굴이었다. 얘, 훈련소까지 데려다주기로 약속했는데 이거 어쩌죠, 얼마 전에 얘랑 헤어졌는데. 그날 얘 부모님 차를 얻어 타고 가게 되었네요. 갈 때는 그렇다 쳐도 올 때는 어쩐다? 올 때 혼자서 얘 부모님들이랑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려나요. 헤어졌다고 말하면 내리라고 하시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만약에 대비해서 올 때 차비를 들고 가세요.
나는 실없는 농담과 술잔을 건넸다. 모든 바텐더들이 실없는 농담을 건네지는 않지만, 나는 그러는 편을 선호한다. 할 말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게 우리는 진담과 농담을 섞었다.
‘사실 얼마 전에 댁의 아드님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댁의 아드님의 잘못으로. 이렇게 말할까요?’ 여자가 술을 마시며 이야기했다. 반 정도는 농담일 것이고 반 정도는 진담일 것이다. 진담이 반을 좀 넘을지도 모르고 농담이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 일인가. 그렇게 나는 술을 건넸고 그들은 술을 마셨다. 나는 잠시 다른 주문을 처리하고 바로 돌아왔다.
여기서 데이트를 해 보고 싶었다네요.
여자가 말했다.
‘얘, 저랑 사귈 때도 혼자 여기 자주 왔다는데. 저도 몇 번 따로 왔었고. 그러다가 얘가 여기서 데이트 한번 하자고 몇 번 말했는데. 어쩌다 보니 사귀고 있는 동안에는 같이 올 기회가 안 났네요. 그러다가 헤어져버렸고. 입대하면 언제 다시 볼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얘가 입대하기 전에 이렇게 같이 오게 되었답니다.’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것들을 좋게 받아들일 줄 아는 긍정적인 친구로군. 얼마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와 미뤄둔 데이트를 하는 것도, 그 헤어진 여자친구와 훈련소에 함께 가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래도 웃으며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다니. 사귐과 헤어짐의 경계와 상관없이 남아 있는 어떤 아름다운 감정들의 힘일까. 혹은 그저 입대를 앞두고 정신줄을 아예 놔 버린 걸까. 모르겠다. 구체적인 사정을 탐구하는 것은 바텐더의 일이 아닐 것이다.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바쁜 주말이로군. 나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주문을 처리했다. 한 차례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유쾌한 이야기로군요. 가끔씩 바에서 일어난 유쾌한 일들을 에세이 비슷하게 정리해서 여기저기 쓰기도 합니다. 혹시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여자는 웃으며 손으로 OK사인을 보였고,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동의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만 이런 제안을 한다. 아, 그들이 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 제안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유쾌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동의하리라 생각한 거지. 그래서 이렇게 지나간 이야기를 쓴다.
그들은 유쾌하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다가 적당한 시간에 나갔다. 물론 그들은 바에서 좀 더 유쾌하고 좋은 다른 일들도 했지만,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는 둘만을 위한 비밀로 남겨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