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여자친구입니다.
휴가철이 다가오자 어디로갈까 망설이면서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로 있다가 얼마 전, 자게에 네오바람님이 타이완에 다녀오신 후기(
https://pgr21.com/?b=8&n=59133 )가 문득 생각나서 부랴부랴 연차내고 책 한권, 왕복 비행기표, 첫 날의 호텔만 예약하고서 출발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어차피 중국어는 할 줄 모르고 타이완은 첫 방문이었기에, 노 차이니즈, 노 로밍,노 플랜 그리고 식후경이란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그 탓에 답답했던 점도 있었지만 나름 재밌었던 일들도 많아서 오랜만에 정말 여행한다라는 느낌이 충만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 쓸 내용은 타이완 여행 후기가 아니라 여행 중 접한 타이완의 새교과서 개편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타이페이에서 장제스기념관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아래와 같은 풍경을 보았습니다.
장소는 금색으로 적혀있는 글자를 봐서 알 수 있듯이, 타이완 교육부 앞 광장입니다. 실제로보면 주변에 십수대의 방송용 중계차량과 슬로건 및 팻말을 든 시위대들, 그리고 그들과 대치 중인 경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하여 관심을 기울여보니 8월1일부터 도입 될 새교육과정을 학생들이 철회요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새 역사·지리,사회 교과서들이 기존 타이완독립노선에서 ‘양안(대만·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친중사상을 반영하여
1. 중국을 중국대륙으로 표기
2. 중국사(史)와 타이완사(史)의 별도의 교과서 체계를 본국사(本國史)로 통합
3. 중국에서 가장 큰 섬을 하이난섬에서 타이완섬으로 변경하여 기술
4. 타이완인이란 표현을 삭제 후, 한족(漢族)으로 표기
5. 해방후, 타이완을 '중국에 주어졌다'라는 표현에서 '중국이 되찾다'로 기술변경
정도가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이번 교과과정개편은 국민당 소속이던 현 타이완 교육부장관인 우쓰화(呉思華)장관이 국민의 동의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한 건으로, 친중파인 같은 국민당 소속의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이 뒤에서 주문한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에 분개한 타이완의 고등학생 400여명이 7월5일 교육부 앞에서 타이완 독립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새교과서과정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며 '검은 음모'가 숨어있다는 의미로 검은 우산을 들고-타이완판 브이포벤데타!-교육부장관에게 쓴 편지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교육부 담너머로 날려보내는 시위를 전개합니다.
<보라(Voila)!>
그러나 이와같은 시위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측은 새교육과정이 타이완 헌법에 부합한다며 철회요구를 일축하고, 또한 아직 남아있는 ‘일제식민사관’을 청산하기 위해 교과서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현재 타이완 교과서에는 ‘위안부’의 경우 ‘자원해서 해외로 나가 위안 활동에 종사했다’는 설명이 있고, 일본의 타이완 식민통치 기간을 미화하는 부분이 많아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장기화되며 지지부진해지던 시위에 기폭제가 될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린관화 초상>
7월30일 아침, 린관화(林冠華)가 신베이시(新北市)에 위치한 자택에서 자살(경찰추정)한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린관화는 ‘반교과과정 북부지역 고교연맹’ 소속으로 시위의 주도급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생일 축하해. 8 5 12 16.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장관이 교과과정 개편을 철회하는 것이야” 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숫자는 알파벳으로 H,E,L,P를 의미하며 30일은 린관화의 스무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당일밤 100여명의 학생들이 촛불과 하얀장미, 그리고 우쓰화 교육부장관의 퇴진 촉구와 린관화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않겠다는 슬로건을 들고 입법원-타이완의 국회-을 기습 점거하였으나 새벽에 강제해산된 후, 다시 200여명의 학생들이 교육부 부지를 침입하여 점거했습닌다.
<교육부 광장침입 및 점거사진>
이와 관련해 타이완 정부 및 보수언론측은 지난해 3월 있었던 '해바라기 운동'처럼 되지않을까 예의주시하며 타개책을 고심합니다. 해바라기 운동이란 타이완의 대학생들이 중국과의 급격한 경제 협력 확대가 타이완 경제를 중국에 예속시키고 자신들의 미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며 20여일 동안 타이완 입법원을 점거한 사건을 말하며 당시 시위대 측의 상징물이 해바라기였습니다.
7월 31일, 우쓰화 장관은 린관화의 어머니를 찾아뵈어 유감과 위로의 뜻을 전하며 인터뷰를 통해 더 이상 제2의 린관화가 나와서는 안된다며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린관화의 어머니 역시 녹음파일을 통해 린관화 같은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달을 넘기면서 정치권의 공방도 이어집니다.
제1 야당인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이하 민진당)의 왕민성 대변인은 교과과정 개편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으나, 집권여당인 국민당은 민진당을 향해 “어린 학생들을 전면에 내새워 불법 행동을 하도록 조장하지 말라”고 비난합니다.
한편 바다 건너 불구경인 중국 역시 관영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 침략 식민사를 미화하는 일본의 우익 역사교과서가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대만의 일부 젊은 학생들이 식민지 통치사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위해 시위하고 있다
-이번 시위는 대만 젊은이들의 역사 인식이 혼란스럽다는 점을 보여준다
라며 무지(無知)하다고 비판-손안대고 코풀기-하며 자국내에는 영향이 튀지않도록 주의시킵니다.
<우쓰화(呉思華) 교육장관>
8월3일, 우쓰화 교육장관이 학생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화를 가졌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습니다. 이날 대화는 교육부 인사와 학생 대표 7명, 교사 대표 2명, 법률 자문가 1명이 참석해 2시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시위대는 친중국 기조의 교과서 개편을 철회하라는 당초 요구에서 한 발 물러나 '현행 교과서 잠정 유지'로 선회한 상태이며 새 교과서 개편 과정에서 권위있는 역사학자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며 검수자의 명단 공개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우쓰화 장관은 "교과서 표현 상에서 티가 있을 수 있지만 법에 저촉될만한 내용은 아니다"라면서 현행 방침을 고수할 뜻을 전하며 자신이 부임하기 전인 2013년에 결정된 사항으로 개편 철회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우쓰화 장관은 다양한 분야의 신뢰있는 전문가들이 교과서 검수에 참여 했다고 해명했으나 정작 검수자 명단 공개는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에 분노를 느낀 학생추천대표 2명은 우쓰화 장관의 발언 도중 자리를 박차고 회담장에서 나온뒤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타이완의 교육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정계에서는 국민당이 외부기관 설문조사 결과를 들어 응답자의 약 58%가 학생들의 교육부 청사 앞 시위를 반대하고 있으며 지지자는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주리룬 국민당 주석(左),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右)>
8월4일, 학생시위대와 교육부의 쟁점이 좁혀지지않은 채, 정치권에서는 민진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나선 차이잉원(蔡英文·58·여) 주석은 오전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교육부 청사 앞을 찾아 시위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눕니다. 이에 주리룬(朱立倫·54) 국민당 주석은 "교과개편 반대 시위에 정치권의 개입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면서 "차이 주석이 이날 학생 시위 현장을 방문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고 즉각 지적하며 나섭니다.
그리고 민진당은 전날 국민당의 설문조사발표를 의식한듯 4일 타이완 빈과일보의 설문 결과를 인용해 응답자의 약 60%가 새 교과서 개편에 반대한 반면 약 26%만이 교육부의 방침을 지지하고 있다고 맞섭니다.
<백랑 장안러(張安樂)>
8월5일, 중화통일촉진당 총재인 장안러(張安樂)와 당원 30여명은 이날 민진당 중앙당사에서 항의 시위를 벌입니다. 그는 타이완 최대범죄조직인 죽련방(竹聯幇)출신으로 정치깡패-별명이 흰늑대-입니다. 2014년 앞서 말한 해바라기운동 무력화에 일조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시위대를 노리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팽배한 가운데 민진당 당사 앞에서 "만약 학생 역할에 충실하지 못할 것 같으면 집으로 돌아가 응석받이나 되라"라고 원색적인 비판을 담은 인터뷰와 친중국 성향의 교과서를 반대하는 이들을 겨냥해 "즉시 중국어, 중국 글자 사용을 중단하고 중추절(추석), 단오를 지내지도 말고 월병 등도 먹지 말라"는 막말-최강논리주문-을 퍼부었습니다.
<타이페이 커원저(柯文哲)시장 >
한편 독립교과서 지지파인 타이페이 커원저(柯文哲)시장이 그날 밤에 시위대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13호 태풍 사우델로르가 북상 중인 관계로 안전을 위해 철수할 것을 촉구, 시위대도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점거개시일 첫날 500명까지 늘어났던 인원이 십수명으로 줄고 5일 저녁 남아있던 지도부 3명이 철수함으로써 7월31일부터 8월5일까지 진행된 7일간의 교육부 점거가 종료되었습니다.
일련의 타이완 사태를 보며 시비선악(是非善惡)을 가르치고 전반적인 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교육이 어째서 백년지대계이며 왜 시커먼 정치바람에 물든 권의지계(權宜之計)가 되어선 안되는지 느낍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되고있는 국내교육계 이슈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분노에 뒷맛의 씁쓸함을 느끼며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덧: 점거기간 중 시위대측에서 희대의 병크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시위하러 가는 것을 말리던 부모님을 때리는 남학생이 실황으로 여과없이 생중계되었고 전국구 패륜남으로 등극, 부모님에 대한 사죄또한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해야했습니다. 이는 시위대 지지율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물론, 타이완도 교육열이 높고 고학력 국가인만큼-오오,동북아 패미리-방학기간이라고는 하나 고등학생 시위대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주된 이유로 여겨집니다.
[참고 및 출처]
http://www.afpbb.com/articles/-/3056069?pid=16253602 -AFP,BB NEWS 관련기사
http://headlines.yahoo.co.jp/hl?a=20150806-00000569-san-cn -일본경제신문 관련기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622701&code=61131811&cp=nv -국민일보 관련기사
https://ja.wikipedia.org/wiki/%E6%B0%91%E4%B8%BB%E9%80%B2%E6%AD%A9%E5%85%9A -민진당,위키백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03/0200000000AKR20150803160800083.HTML?input=1195m -연합뉴스 관련기사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04/0200000000AKR20150804097000009.HTML?input=1195m -연합뉴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