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보는것을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면, 예쁜 여자를 보는것을 좋아한다. 남자니까 당연한 걸까? 가끔 남자도 뚫어져라 보기는 하지만, 그건 옷 스타일이나 부러움의 시선일 뿐이다.
오늘은 미용실을 갔다왔다. 자른 머리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자신감은 100배 상승한 상태였지만, 주위에 지나다니는 여자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차피 헌팅은 나에겐 거리가 먼 얘기니까 굳이 예쁜 여자를 봐봤자, 속만 쓰릴 뿐이겠지. 약국에 들러서 약을 사는데 약사가 내게 농담을 던진다. 이것은 머리의 효과인가? 갑자기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나는 자신감의 표시로 씨익 웃어준다.
집에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 너무나 더운 날씨였기 때문에 지친 나는 승객들 스캔도 안하고 내리는 문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재수가 좋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다. 앉자마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버스에 타는 사람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음...오늘은 남자도 여자도 별로구나. 재미있는 사람도 없네. 그렇게 한두정거장이 지나고 지루해질 쯔음에 어떤 여자가 나를 한번 쓰윽 쳐다보고 문 앞에 섰다. 뒷태가 굉장히 훌륭하다. 키도 크고 다리도 길다. 시선을 올려본다. 머리도 내가 좋아하는 굵은 웨이브. 흰티. 다시 시선을 내려보니 짧은 바지. 다리도 굉장히 예쁘다. 문득, 저 여자를 따라 내려서 번호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도 난 안될거야. 안되겠지. 안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 여자는 어디서 나온걸까. 나는 저런 여자가 타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이런 저런 생각하는 동안, 그 여자가 내릴때가 되었다. 그런데 어? 안 내린다. 뭐지? 그리고 다음 정거장에도 내리지 않는다.
버스는 내가 내릴 곳으로 출발하고 있었다. 제발, 나와 같이 내려줘. 그럼 내가 번호 물어볼게. 이번만큼은 후회 안할래. 기도하며 그 여자 옆에 섰다. 그 여자가 나를 다시 쓱 쳐다본다. 나도 쓱 봤지만, 오래 볼수는 없다. 화장이 굉장히 짙고, 꽤 예쁜 얼굴 같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여자가 벨을 누른다. 이게 웬일이지. 이건 번호를 물어봐야돼! 이건 굉장한 일이야! 헌팅각이 나오고 있으므로 나는 내려서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멘트는 뭘로하지? 어디선가 봤는데, 멘트는 기본멘트가 제일 좋다고 했다. 그래. 오늘의 나는 굉장히 멋지니까 기본 멘트로 가자. 맘에 들어서 그러는데 번호좀 주세요. 혹시 이 근처에 사세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거부당하는 것부터 머리속에 그려지지만, 그래도 흐뭇하다. 생각속의 행복이 이런것일까? 착각이든, 상상이든 지금 이 순간 나는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그 여자가 버스카드를 찍었다.
거리를 걸으면서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들을 몇차례 본적이 있다. 하지만, 번호를 물어본적은 별로 없다. 난 지금 너무 행색이 초라해. 나는 +5cm 아이템을 안차고 나왔어. 다음에 더 좋은 여자가 있겠지. 라는 변명만 늘어놓고선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리곤, 몇시간동안은 후회하곤 했었다. 어차피 안 볼 사람들인데 말이지.
다음엔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 해보고나서 후회하지. 안해보고 후회하진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던 나인데, 계속 주저하고 있다. 그녀는 먼저 버스를 내려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내리고 걷자 그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무슨 경우인가? 내 착각이겠지. 내 착각일거야. 라고 생각하며, 번호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계속 억누르고 있었다. 억눌러야만 한다. 나는 갑자기 방향을 틀었고, 그 여자는 잠시 놀란듯 하다가 가던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래. 내 착각이 맞네. 허탈한 마음에 나는 집으로 향했다.
너무나 아쉽다. 아까 왔던길을 다시 돌아갔다. 그녀를 찾고 싶었다. 그래선 안되는데 그녀를 찾고 싶었다. 분명, 1분도 채 안되는 시간 같은데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여름날의 신기루처럼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 어차피 잘된 일임에 분명하다. 이번만큼은 핑계를 댈수가 있다. 나의 착각이 분명할거다. +5cm 아이템도 없었다. 다음에 더 좋은 여자가 있을 것이다. 난 다시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집을 나서기전 이어폰을 가져올까 말까 고민하던 나를 원망한다. 차라리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 아무 생각없이 이번만큼은 들이댔을 테니까.
나의 버스카드 소리와 그녀의 버스카드 소리는 왜 다른걸까.
띡. 띠딕.
더운 여름날의 신기루가 사라짐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피어오르며, 나는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더 잘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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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이 더워서 시원하게 입고 나왔는데 버스에서 왠 여친 절대 없게 생긴 놈이 자꾸 뒤에서 흘끔대서 기분을 잡쳤다. 가끔씩 째려봐서 눈치를 주는데도 못알아먹는지 실실댄다. 심지어 그놈이랑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는데 이놈 먼저 가라고 잠깐 기다렸더니 갑자기 방향을 휙 꺽어 되돌아오는거다. 깜놀 ㅡㅡ^ 하여간 세상엔 별 놈이 다 있다. 어 오빠!! >.< 오늘은 뭐하고 놀까 자기양 히힛 (뒷부분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