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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5/08/06 19:30:39 |
Name |
aura |
Subject |
[일반] 연애의 사건은 봄날에 - 3 |
22.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장 설레는 순간을 꼽으라면 언제일까?
프로포즈를 했을 때? 아니.
함께 해돋이를 구경했을 때? 아니.
바로 밀당이라는 독버섯을 먹었을 때다!
썸남썸녀들의 사귀기 전 밀당이야 말로
가장 설레고 기대되는 순간이다.
다만, 이 밀당이라는 녀석은 우리에게 마냥
설레고 신나는 존재는 아니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것 처럼 밀당은 짜증과 분노를 수반하기도 한다.
바로 지금! 내가 그 밀당의 짜증을 몸소 겪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연락이 오는 걸까. 연락이 오긴 할까.
물론 그녀는 밀당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을 것이다.
이른 바 미필적 고의랄까.
23.
에휴 역시 지나친 무리수 였을까.
벌써 자정이 살짝 넘은 시간인데,
물이나 마시고 잠이나 자야겠다.
띠링
문자왔숑! 문자왔숑!
문자 왔다는 소리가 이렇게 설렐 수가 있을까.
이것에 필적하는 설레임은 오직 그것 밖에 없다.
택배!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 수령의 기쁨!
아니 지금은 그 이상이다.
'지금 당장 연락하세요 팀장 김미영.'
으아. 김미영 팀장님 저 돈 필요없다구요.
하필 이런 타이밍에 김미영 팀장이라니... 김미영 팀장이라니!
이보시오, 팀장 양반.
띠링
문자왔숑! 문자왔숑!
오우 지쟈스. 부처 핸썸!
이번엔 정말 와버린건가? 와버린거야!
'배달의 민족, 지금 별점을 체크해주시면 상품권이...'
부들부들.
배달의 민족을 삭제했다.
24.
띠링
문자왔숑! 문자왔숑!
아 안사요. 또 뭐 이상한 광고하나 왔겠지.
생각해보면 뭘 보내도 카톡을 보내겠지 문자를 하겠냐.
이미 내 마음속의 기대는 바닥이었다.
그래도 위에 딸린 문자표시가 거슬려 확인은 해준다.
'오빠 잘 들어가셨어요?
좀 늦었죠? 헤헤. 데이터 다 쓴지도 모르고 카톡보냈어요.
늦어서 주무시고 계시려나.'
사람이 바닥으로 가라앉음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햇님 달님 감사합니다. 지금 내려주신 이 동앗줄 잘 잡고 올라가겠습니다.
'아니, 안 자!'
25.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었나.
별 시덥잖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해도 재밌다.
결국 그녀와의 문자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달님은 부끄렁쟁이 우후훗. 어느새 햇님의 밝은 얼굴이 밖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늦게자도 돼? 내일 학교 가야지!'
'그러는 오빠는요? 헤헤.'
'난 공강이야.'
'엥? 으아. 저는 1교시란 말이에요. 벌써 여섯시네 어뜩해.'
후후후후.
후후후후후후후후.
아침 첫 수업이 있는데도 나와 밤새도록 문자를 했다 그 말이렸다.
쓸데 없이 가슴이 잔뜩 부풀어 오르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 썸. 승산이 있다.
'그냥 밤새고 가야겠어요 유유. 지금 자면 못 일어날 것 같아요.'
'괜찮겠어?'
'어차피 맨날 늦게 자긴 해요. 오늘 좀 특별히 더 늦게까지 안 잔거지만.'
'잠깐이라도 자고가.'
'음. 못 일어날 것 같아요.'
'전화해줄게.'
'음... 못 들을 것 같아요. 헤헤. 그냥 밤샐래요!'
'그래? 난 자야지 수고.'
'잉 너무해.'
'알았어. 학교 갈때까지 나도 안 잘게.'
'정말요? 헤헤.'
'대신 나중에 같이 벚꽃보러 갈래?'
'좋아요.'
나이스! 나이쑤!
올 해 봄은 벚꽃들과 함께 향기롭게 시작할 것 같다.
26.
밤새 문자를 한 이후로 급격하게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하루에도 계속 연락하고, 이따금씩 시간이 맞는 날에는 밥도 먹었다.
스스럼없이 연락하고, 만나는 정도의 친분을 쌓았을 무렵.
썸에 청신호가 켜진 지금이 사실은 가장 고비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남자들이 이 단계에서 썸이라는 알을
연애로 부화시키지 못하고 깨뜨리고 만다.
이 시기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의 조급함이다.
여자 쪽에선 이제 막 친분도 쌓고 호감도 쌓이고 있는데,
이 시기 남자 쪽에선 왠지 여자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고,
이쯤 뜸을 들였으면 됐다 싶어 밥이 채 되기도 전에 밥통을 까버린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니 상대도 나를 좋아하길 바라며 연애감정을
미리 땡겨오길 바란다. 하지만, 연애 감정이란 것이 대출이 될리가 있나.
당연히 그런 조급함은 악수가 되고, 비수가 되어 자신의 가슴에 되돌아 온다.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울게 해야하는가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내 답은 새가 울 것같은 타이밍에 울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27.
하지만 그 답을 알고 있다고해서 여유롭게 새가 울 타이밍을
기다리긴 힘든 법이었다.
원래 남의 연애는 쉽고 내 연애는 어려운 거니까.
나는 백퍼센트 성공하는 다이어트 비결을 알고 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 이 다이어트의 비밀(?)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별개의 영역인 것이다.
올해의 벚꽃은 유난히 늦게, 천천히 피는 것 같았다.
그게 정말로 올해 벚꽃이 늦게 피는 까닭인지, 아니면
그녀 때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28.
어쨌든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오면 꽃은 핀다.
잘 참았다. 잘 했어.
조급함에 깨방정 떨지 않고 참아낸 내 스스로를 칭찬했다.
마침내 벚꽃은 4월 초 무렵 펴 버렸다.
알러지가 있는 사람에겐 지옥 같은 시즌이 도래했지만,
내게는 가장 따사롭고 화려한 시즌의 막이 열린 것이다.
29.
'오빠! 여기에요.'
멀리서부터 손을 크게 흔드는 그녀의 모습이 굉장히 사랑스럽다.
따뜻한 봄, 꽃 피는 계절이 그녀에게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자마자 방긋 웃어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이 절로
그녀의 머리로 갔다.
쓰담쓰담.
'어? 뭐에요 이거? 헤헤.'
뭐긴 뭐야.
이 여우 같은 것!
내 애정이다.
'저도 할래요!'
'응?'
그녀는 살짝 까치발을 들어 역으로 내 머리를 쓰담거렸다.
이거... 뭐야... 기분이 나쁘지가 않어. 어? 안 나쁘잖아. 나쁘지 않아.
정지... 정지... 하지마.
흑흑 내 머리에서 떨어지는 그녀의 손이 아쉽다.
그래도 손 끝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애정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30.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영화필름처럼,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들 한다.
나는 이런 현상을 영사현상이라도 표현해보고 싶다.
영사현상은 비단 죽음의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고의 끝, 기쁨의 순간에도 영사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 나처럼.
이렇게 벚꽃 아래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지금껏 내가 그녀의 호감을 얻기 위해 쌓아온 행동들, 말들, 시간들이
짧게 스쳐지나갔다.
이제는 걱정하지도 않는다. 확신한다.
그녀도 나를 좋아해.
아직 봄이지만 내 연애의 과실은 비로소 무르익었다.
하자.
고백! 그까이꺼!
대충은 아니고, 진지하게!
31.
비록 꽤 여러 번 연애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백의 순간은 떨리기 마련이다.
막상 바로 '사귀자!' 하고 끝내버리기엔
뭔가 아쉬움이 그득하다.
응? 근데 지금 손 끝에 느껴지는 이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은 뭘까?
손? 손이다!
내 투박한 손 끝에 고운 그녀의 손이 살짝 닿아 있었다.
아. 아아.
저 깊은 곳부터 터져나오는 이 기쁨의 감정을 뭐라고 해야할까.
그래, 환희. 환희가 좋을 것 같다.
32.
'하아. 나 할 말 있어.'
'헤헤. 뭔데요?'
여우 같은 것! 알고 있잖아!
그래도 이런 사랑스러운 여우는 너밖에 없겠지만.
내게 있어 고백이란 특별히 어떤 수려한 미사여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담백하게. 진솔하게 내 감정을 전달하는 것.
'오늘, 이렇게 벚꽃 보면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이야.
못 참고 말해버리고 싶어서, 참느라 혼났는데.
나 정말 너 좋아해 나랑 사귀자. 잘해줄게.'
두근두근.
확신하지만 역시 고백은 떨려.
33.
벚꽃은 일년 내 대략 일이주를 펴기 위해
무더운 여름 날도 견디고, 쓸쓸한 가을을 지나
모진 겨울바람도 견뎌낸다.
그렇게 핀 봄날의 벚꽃은 정말 아름답다.
활짝 펴있는 모습도, 작별을 고하며 흩날리는 모습도.
하지만, 지금 내 옆에 활짝 웃어주는 그녀.
아니 여자친구만큼 아름다울까.
조금 느끼하지만, 너야말로 정말 요즘같은 봄에
벚꽃보다 더 어울리는 여자일거야.
끝.
번외.
'좋아요. 우리 사귀어요.'
'정말?'
'네.'
'정말 정말 정말?'
'네. 남자친구님. 오늘부터 1일이랍니다.'
예쓰!
정말 끝.
이 글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입니다. 픽션!
이야.. 이거 내가 큰 잘못을 했네. 큰 잘못을 했어.
우리 피지알러 분들 부들부들 거리시는데!
똑바로 들어... 호이가 계속되면... 그게 둘린줄 알아요!
전 사라집니다. 호이 호잇.
여담으로 뒷 내용을 더 추가해 쓸지 이렇게 완결할지 고민이네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랐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여러분들 전부 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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