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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22 23:07
삼국지 관련 중국 학자가 저술한 책에서 유비는 돗자리뿐만 아니라 신발 팔기의 달인이라고 하는 설명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차라리 대상인으로 삶을 마감했다면 어떤 평가를 들었을지 궁금합니다.
15/07/22 23:44
유비도 대단한 인물인데 촉나라를 제대로 통치 못했는데, 유방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감이 안 잡히네요.
시대가 달랐지만, 유비는 상인에 황제의 성씨라도 가졌는데, 유방은 백수건달이 황제가 되어버렸으니.
15/07/22 23:51
동네건달들 모아놓고 보니 중국대륙 올타임 레전드팀이더라...라는 느낌이랄까-_-). 수장의 능력은 능력있는 사람 잘뽑고, 관리 잘하는거라는걸 느끼게하죠.
15/07/23 07:39
야구로 치면 선동열, 이순철, 이강철, 김기태, 이종범, 박재홍, 이호준,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한기주, 강정호, 양현종, 나성범, 서건창 같은 선수들이 동 세대로 태어나 같은 팀에서 뛰는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15/07/23 00:01
유방 시절만 해도 직전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의 원천이 된 진나라 말기의 진승·오광의 난(陳勝吳廣-亂), 황제한번 해보고 싶었다던 경포같은 사례를 볼때 아마 한나라 수백년 동안 상당한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15/07/23 00:21
춘추전국시대에도 왕이나 제후들은 핏줄이 가장 중요했을 것인데
오히려 진시황이 황제라는 개념을 만들어 버리니, 동네건달도 한번 도전해 볼 수 있었나 싶기도 하네요.
15/07/23 00:33
유비 이전에는 한나라가 400여년간 이어지고 중앙귀족과 사족층이 성장했지만
유방 이전에는 진승,오광의난-진나라-전국-춘추 시대였다는걸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혈통이 아니라 실력자에게 모이는게 당연한 시대였죠.
15/07/23 01:38
그 건달들이 본래 포텐셜이 충만했던건지 아니면 유방이라는 걸물을 따라다니면서 경험치 쩔을 받아 레벨업해서 그런건지는 알수 없습니다?...
15/07/23 13:43
흠 진짜 어떤건가요? 유방이 반성도 잘하고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훌륭한 면모가 있던건 사실이지만 운이 좋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님의 말씀대로 "유방이라는 걸물을 따라다니면서 경험치 쩔을 받아 레벨업" 이런 요소도 있었을 수 있겠네요
15/07/23 09:33
아무래도 첫 통일직후 한세기도 안되서 멸망한 진나라와
전 200여년 후200여년 을 통치했던 한나라의 상황과는 조금 다를것 같네요 물론 유방이 모아놓은 인물이 장량 진평 소하 한신 등 말그대로 사기케릭.. 근데 더웃긴건 항우가 모셔왔던 범증이 저 대륙 레전드들을 탈탈털음..
15/07/23 09:50
하지만 결국 장량 진평 소하 한신의 말을 들은 유방이, 범증의 말을 듣지 않은 항우를 때려잡고...
아이고 제발 말 좀 들어라 항우야;;
15/07/23 09:57
그러게요..
그당시 항우는 빵빵한 인맥 혈연 다가지고 범증이라는 희대의 모사를 영입하고 장량 진평 소하 한신 조참등등을 거느린 유방을 상대로 영혼까지 털지만.. 범증이 없는 마지막전투에서 져서..
15/07/23 09:43
유방 개인의 능력도 출중했겠지만, 시대 버프 (꿀?) 도 받았겠죠?
임요환의 느낌이랄까? 절대적인 실력은 후대 사람들이 더 좋지만, 초기 빌드 (?) 확립에 기여했다고 봐야겠죠.
15/07/23 10:11
좀 공감이 안되는게, 천대받는 장사꾼출신이라고 하기에는 명망높은 수경선생의 제자이지 않았나요? 동문수학한 공손찬도 나름 세력이 컸었고... 유씨도 의미없다고 하기엔 크게 기반이 없을때 황제에게 밀서까지 받았는데, 이런 배경을 가진 유비를 한나라에 대한 충심이 있는 사족들이 장사꾼 출신이라고 무시하진 않았을것 같네요. 가문이나 출신성분 문제가 아니라 세력이 작아서 인재가 덜모였겠죠.
15/07/23 10:28
당대 명사인 노식의 문하긴 한데, 이게 묘사만 보면 시골 촌동네에에서 친척들이 그나마 쬐끔이라도 있는 돈을 이리저리 모아서 똘똘한 유망주 유학보낸 분위기라... 애초에 전한 황족은 후한에서 전혀 대접을 못받았습니다. 중산정왕 후손들은 개중에서도 특히나 더 그랬고. 한무제때 작위박탈까지 당했던 계열이던가...
15/07/23 10:51
스승 부분은 헷갈렸네요. ㅠ 여튼 어느정도 기반이 잡힐때까지 중산정왕의 후손이라는걸로 딱히 대접을 받지는 못한건 알고 있는데, 황제에게 밀서를 받은 이후로 보면 장사꾼 출신이라고 사족들한테 무시를 받거나 그 수하로 일하는게 굴욕으로 여겨질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15/07/23 11:07
당대 할거한 군웅 중 출신성분이 대단하다고 할 만한 사람이 의외로 적죠. 원씨네 원소와 원술 정도일까요. 조조는 물론 명문가지만 동시에 환관 집안이라는 명암을 함께 가지고 있었고, 강동 손씨네는 손자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진짜인지는 모를 뿐더러 설령 진짜라 해도 그냥 까마득히 먼 할아버지가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수준이고요. 공손찬 동탁이야 보잘것 없는 출신이었지만 군세을 앞세워 일세를 풍미했고요.
물론 같은 황족이라도 유비보다 출신성분으로는 윗길에 놓인 유언과 유표가 있긴 합니다. 유언은 익주의 호족을 짓밟은 쪽에 가깝고 유표는 형주의 호족을 다독인 쪽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이 둘이 딱히 유비보다 더 내부 집단을 잘 단속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2천년 전 사람들이 가진 신분에 대한 인식을 제가 어찌 잘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저는 유비의 출신이 아주 마이너스까지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15/07/23 11:28
제가 하고싶은 말이 그 맥락입니다. 어찌됐건 황제의 인증까지 받은 황실의 먼 친척+잠깐 장사를 했을망정 당대의 명사 밑에서 수학 했던 신분인데 과연 사족들이 신분문제때문에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섬기기를 꺼려했을까요.
15/07/23 12:38
일단 중산정왕 후손은 못잡아도 후한말에는 아마 수천에서 만단위까지 나와도 이상하질 않아서 도대체 대접이라는 걸 받을 수가 없고, 애초에 전한 황족이라... 유언, 유표는 후한 황족입니다. 당연히 대접받기에 충분하고도 넘치죠. 황실과 촌수도 가깝고 관직생활도 오래 했고. 전한 황족이라는 유비와는 조건 자체가 상당히 달라요. 유언, 유표 외에도 이 시대에 이름날린 황족인 유우아 유총 등등도 모두 후한 황족이고요.
그리고 출신성분의 비천함으로는 탁류(원가가 환관과 협력적인 가문이라 원소가 청류하고 같이 노는걸 집안에서 곱게 안봤죠)에 서자인 원소가 가장 비천할 수 있습니다. 원술 이놈은 아예 원소보고 애미가 노비라고 패드립을 날렸... 하지만 원소는 이걸 6년상을 치르는 것으로 뒤집었죠. 조조야 황제도 갈아치우는 환관 레전드 조등의 손자라 출신성분 따지면 우월한 축. 재력도 명성도 높습니다. 청류가 싫어하는 게 문제였는데, 그래서 조조는 청류의 대표인사 중 한명인 교현이 자기를 알아줬다고 무진장 고마워했습니다. 공손찬, 동탁이야 황건란 한참 이전부터 군공으로 끗발 날리던 양반들이고. 근데 유비는 가문에 뭐 있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문제였죠. 알아주는 사람 없으면 몸으로 굴러야 합니다. 당대 명사인 원술의 용병대장처럼 지내다가 죽은 손견이 유사케이스인데 그래도 이양반은 집안에 명성은 없어도 힘은 있었단 말이죠. 근데 유비는 집안에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대의 명사들이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죽어라 구를 수밖엔 없었죠.
15/07/23 12:52
유비가 황족이라 날로 먹었다는 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최하위 계층인 상인 출신으로서, 사족들이 그를 섬기는건 명예가 훼손되고 모욕감을 느끼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그에 대한 반박입니다. 본문에서는 계속해서 출신성분에 대한 거부감때문에 인재를 모으기 힘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어찌됐든 명사 밑에서 수학했고 얼마나 멀건 간에 황실의 친척이고 황제가 숙부라고 부르기도 한 사람에 대한 사족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미천한 장사꾼은 아니었을거란 말이죠.
15/07/23 13:22
사족들의 일반적인 인식... 이 어떠했는가는 결국 추론의 영역이지만, 실제로 나타나는 건 그닥 유비를 호의적으로 보질 않는 모습이었다는 게 문제지요. 애초에 삼국지시대는 중국 문벌귀족사회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파트인데, 이 문벌귀족사회라는 건 황제가문도 원탑으로 안처주고 상황에 따라서는 인정도 안하는 극단적인 것이였습니다. 외척과 환관에 휘둘린 후한 황실에 대한 사족층의 인식 자체가 그닥 좋질 못했고 그 청류파 사족의 대표격인 원소가 동탁 집권기에 공공연히 황제를 갈아치우려 들었다는 건 상징하는 바가 크죠. 즉 '황실의 친척이니까' 라고 한다면 이들의 대답은 '그래서? 그게 뭐 처줄 가치가 있나?' 로 나옵니다. 황실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처주질 않는다는 겁니다. 특히나 전한 황실이라면 더더욱 유표, 유언은 후한 황실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 자신이 사족층에게서 인정받는 명사이기 때문에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거고.
사실 사족들이 특정 인물을 '황족이니까 알아주는' 건 중국에서도 좀 근세의 일입니다. 중세에는 진짜 이게 황족인게 특별취급을 못받는 그런 수준이라.
15/07/23 16:35
유비는 그렇다 쳐도, 유비 주변인물들 중에 출신 좋은 인물이 없습니다.
유비가 압도적으로 출신이 좋았으면 모를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평민 출신(그 중에서도 대다수는 상인)이라는 점은 사대부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줬을 가능성이 높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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