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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10 22:42:23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화광, 적벽을 채우다 ⑥ 전초전
연의에서는 손권이 제갈량과 주유, 노숙의 권고를 받아들여 조조와 싸울 것을 결정했다고 나오지만, 정사에 나오는 기록들을 종합하여 판단했을 때 손권은 그 전에 조조와 싸울 생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연의에서처럼 손권이 조조의 제의에 KIN!을 때리는 서신을 보내진 않았지만, 손권의 행동은 이미 준비되었다는 듯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손권을 일단 조조의 본진을 직접 맞아 싸우는 좌우도독직에 각각 주유와 정보를 임명합니다. 좌우도독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오의 수군을 직접 통솔하는 사람은 좌도독 주유였고, 우도독인 정보는 오나라의 오래된 신하여서 주유 밑으로 넣기는 어려우니 주유와 명목상으로는 동급인 우도독에 임명해서 후방 보급 및 거점 지대의 수비를 맡겼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에게 각기 군사 1만씩을 줘서 강하의 유비군과 적벽에서 합류케 합니다.

정보전에는 각기 1만씩 총 2만의 군사가 주어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주유전과 오주전(손권전)에는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유비와 합류해서 적벽에 주둔했다고 나옵니다.

연의에서는 손권은 주유와 정보에게만 군사를 주고 시상에서 주둔하고 있었다고 나오지만, 손권은 시상에서 오군으로 돌아오는 즉시 다른 지역의 조조군의 남하를 방비하기 위해서 병력을 이끌고 장강을 건넙니다. 바로 손권 자신이 징그럽게 집착하던 여강군 합비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여강군 합비는 유복이 사망한 이후, 그 후계자인 장제가 합비의 통치를 이어받아 합비를 단단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장제는 손권군이 들이닥치자 높고 견고한 합비성을 거점으로 해서 손권군을 막아내기 시작합니다. 손권의 합비공격은 조조군이 합비를 거점으로 남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손권은 내부의 반란군과 산월족이 이 기회를 틈타서 반란이나 내부를 교란시키지 못하도록 장흠과 하제를 본국에 남겨서 산월과 반란군의 준동을 억제하도록 합니다.

손권이 이러한 항전태세를 취했다는 보고를 받은 조조는 강릉에서 군을 출진시켜 적벽의 맞은편인 파구에서 수군과 합류해 적벽의 주유군과 맞설 태세를 갖춥니다. 이때 이미 강하에 있던 유비군 병력 역시 주유가 이끄는 오의 수군과 적벽에서 합류해 있었죠.

여기서 의문을 가지실 분이 존재할 겁니다. 조조는 왜 강하의 유비를 놔두고 주유군을 공격했을까요?

강하가 오의 서부 사령부인 시상에서 적벽과 형주 일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항상 지나야 하는 지역임은 확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표와 황조가 생전에 강하를 주 거점으로 했던 이유는 강하를 지나야 양양 등의 형북을 직접 공격하거나 또는 남군과 형남 4군으로 진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하는 원래 육상으로 진군하기 어려운 지역이었고 따라서 이 지역은 수군 병력으로 직접 공격하지 않는 한 공격하기가 어려운 지역이었죠. 따라서 황조도 생전에 대규모 몽충함대로 강하로 진입하는 지역을 막아두고 있어서 감녕이 손권에게 항복하기 전까지는 공략이 어려웠던 겁니다.

강하의 공략은 결과적으로 수군 병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한 어려운 지역입니다. 안그래도 수군 전력이 약한 조조군 입장에서 강을 타고 내려가 강하를 직접적으로 공략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역시 강하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적벽 등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따라서 적벽의 오와 유비 연합군을 격파하면 조조의 수군은 강하 등을 우세한 위치에서 공략하기 쉬웠습니다.

연의에서 나온 조조군의 병력은 85만 속칭 백만에 달하는 대군으로 나오지만, 조조가 아무리 병력 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병력을 그렇게 긁어모으진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조조의 병력을 예상할때 최소 15만에서 최대 30만 정도로 보는 관점이 많습니다. 조조는 하북을 장악하고 오환을 격파했지만 여전히 적이 많았습니다. 마등의 경우 이미 조조의 회유에 따라서 그의 근거인 무위군은 장남 마초와 교위 방덕, 조카 마대에게 맡기고 업으로 이주한 상황이었지만 그 인근의 한수를 비롯한 양주의 대 호족들은 조조에게 중립적인 상황이었고, 한중에는 장로가 있었고, 손권이 침입한 합비군 일대는 장제가 있지만 직접적으로 경계를 맞댄 광릉과 서주, 북 양주(陽州) 역시 지켜야 하는 지역이었고, 이미 제압한 하북은 관도대전 당시 포로들을 그대로 생매장 한 탓에 병력을 놔둬서 원소의 잔당과 항복한 유신들의 불만을 눌러둬야 했습니다. 이쪽은 이미 장남 조비에게 군사를 주어서 동작대라는 누각을 빙자한 군사 요새 시설을 지으면서 이쪽을 제압하고 있도록 시켰습니다.  물론 오환이 격파되긴 했지만 오환 인근의 선비족은 조조에게 비교적 우호적이긴 했지만 선비가 점차 오환을 흡수하면서 이러한 우호가 오래가진 못했죠.

손권이 주유에게 준 병력은 기록에 따라서는 2만에서 3만으로 그 기록이 각각 다르지만, 적벽에서 조조와 맞서 싸운 병력은 유비군을 합해서 4~5만 가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권이 합비를 공격하는데 끌고 간 병력이 얼마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원군으로 파견된 장희의 군사가 1만 가량이고, 합비의 수비군이 군민을 합해 약 5천 가량이라고 적힌 기록이 있는 것을 봐서 2만 정도의 병력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국내 수비를 맡고 있던 하제와 장흠이 1만의 병력으로 회계군 이현의 반란군을 토평하면서 동시에 산월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오군이 전투에 동원한 병력은 아마도 5만 안팎이었던 모양입니다.

조조는 일단 전쟁을 오래 끌면 끌수록 그에게 좋을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강릉은 군량을 비롯한 형주의 모든 보급물자가 저장된 지역이어서 그나마 물자들을 확보하긴 했지만 당시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라서 추가적인 군량과 마초들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일단 그에게 복종을 약속한 익주의 유장에게서 군수물자를 확보하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이후 군마나 군량의 추가확보는 상당히 막막했죠. 형주를 지배했던 유표가 원소와 조조와 맞먹는 세력을 지닐수 있었던 것은 형주 자체의 생산력이 뛰어나서가 아니고 강릉과 남군 일대가 장강 수로의 주요 통과지점이라 상업의 중심지였던 덕분에 이러한 상업활동으로 모이는 재화의 힘을 바탕으로 유표가 형주를 발전시킬 수 있었죠. 조조가 남하하면서 오와 싸우게 되면 형주의 주요 산업인 장강을 통한 상업활동이 막히기 때문에 이는 형주 전체의 경제력 저하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러한 경제력 저하는 통치세력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불러오게 마련입니다. 반면 오의 경우는 어느정도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편이고, 기타 물산의 충당은 형남 지방이나 교지 지방을 통해서 수입해오는게 가능하긴 했습니다. 따라서 오는 물자부족이 비교적 약한 상황었죠.

수군 역시도 조조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었습니다. 형주 수군은 오의 수군에 버금갈 정도의 강력한 수군 세력이긴 했지만 조조가 손에 넣은 강릉에 주둔중인 형주 수군의 질은 낮은 편에 속해 있었습니다. 강릉이 형주 수군 기지라서 많은 수의 전선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군은 조조군의 간단한 수전 훈련을 거친 수군과 그다지 다를바 없었습니다.

유표는 각 지역을 방비할때 북방의 조조는 유비가 의탁하기 전부터 문빙과 장수에게 양성과 완성을 맡겨 방어하고 있었고, 오와 직접적으로 육상으로 맞대고 있던 해혼현과 장사군은 조카인 유반에게 장사군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오의 수군과 직접적으로 교전하는 지역인 강하군은 황조를 보내서 지키고 있었죠. 황조는 손책, 주유, 손권과의 장기간의 전투를 거치면서 휘하의 수군들이 상당히 강군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이후 방어적 체제로 개편하고 감녕이 투항해서 황조 수군의 약점을 오에 발설하는 통에 죽긴 했지만, 전투 초반에 동습과 능통의 오 수군 선진이 황조군의 몽충선단의 공격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정도로 오 수군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떨어지진 않았거든요.

황조가 죽은 이후 흩어진 강하군의 정예 수군을 수습하는 임무는 유기에게 맡겨져 있었고, 유기는 남은 잔병과 도망친 도망병을 모두 수습해 1만에 달하는 대군까지 복구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1만의 최정예 병력은 유비에게 그대로 승계되어 오군과 연합전선을 펼치게 됩니다. 그리고 유비는 그 이전에 흩어진 병력까지 모두 수습하는데 성공하면서 2~3만 정도의 병력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최정예 형주수군이 유비의 손에 있다는 점은 조조에게는 상당히 골치아픈 일이었습니다.

거기다 조조군 내부 역시 상당히 사정이 좋지 못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남정이 진행되면서 병력 손실이 그다지 없다는 점은 조조의 장점이긴 했습니다만 이 병력들이 유비의 형주 입성을 저지하기 위해서 강릉으로 그리고 유비를 잡기 위해서 한진까지 또 강행군을 했다는 점은 장졸들의 피로가 상당수준까지 올라가 있었고, 이러한 심한 피로 상태는 병사들의 면역력이 약화되서 강릉-화용도-파구로 이어지는 습지를 통과한 조조군 육군 사이에는 겨울임에도 전염병이 기승을 부려서 비전투 손실이 발생하고 있었던 점이였죠.

그러나 조조군이 불리한 점만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첫번째는 물자부족에 시달리긴 했지만 그나마 가장 중요한 군량 보급은 그 전의 관도전투 와중처럼 군량 부족으로 후퇴할 것 까지 고려할 정도까지 몰리진 않았습니다. 관도 전투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기록에 조조군은 상당한 군량 부족에 시달렸는데 적벽대전 당시에는 군량 부족 문제를 기록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조의 물자 징발 명령에 형주 인근의 익주와 조조를 지지한 형주의 호족들은 조조의 징발 명령을 충실히 따랐죠.

두번째는 관도대전 당시 후방의 예주 여남에서 벌어진 반란처럼 후방에서 조조를 괴롭힐만한 반란시도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조조를 두려워 해서 그런 점도 있지만, 조조가 하북 등 각 지역의 중요 지점을 껴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반란을 일으킬 수는 없었죠.

세번째는 손권군 육군의 병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탓에 수전의 문제만 어찌어찌 해결되면 남은 오의 육군을 분쇄하기는 쉬웠습니다. 장흠과 하제의 1만 병력이 회계등의 반란을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고, 손권 자신 역시 후방 견제를 위해서 합비로 출진한 상황인 만큼, 손권군의 육상병력이 분산되 있는 상황이라 현재 적벽에 있는 주유군이 오의 최고 정예군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군사들을 수전이 아닌 육상전으로 끌어내서 격파하면 나머지 병력은 조조가 많은 병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격파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거기다 주유군에는 유비군 주력이 합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1타 2피가 가능하기도 했죠.

오군 역시 우위에만 서있는 건 아니었죠. 먼저 일견 협력적으로 보이는 오의 수뇌부 쪽은 내부적으로는 상호간에 갈등이 심했습니다.

손견이 죽고 손책이 오를 장악한 이후, 손견을 모셨던 손가의 구신인 정보, 황개, 한당은 뒷방 늙은이 처럼 뒤로 밀려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손책이 임용한 주유와 여범, 주치, 주태, 장흠과 손권이 임용한 노숙, 제갈근 등이 오의 주요 인재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원하지 않는 세대교체를 당한 상황이었죠. 이러한 갈등은 정보전의 다음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황상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 없는 조조는 일단 서전으로 수전을 걸어봅니다. 그러나 현무지 처럼 잔잔한 호수에서 싸우는 것과 급격히 흐르는 강에서 싸우는 것은 차이가 크죠. 조조군은 거의 손도 못써보고 주유군에게 박살이 나버립니다.

조조는 일단 오의 상황을 면밀히 알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동시에 자기 수군의 약점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유 역시 이대로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생산력이 약한 오의 입장상 전쟁은 오래 끌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전의 시간은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뱀발1. 울산 현대 팬 여러분, ACL 우승 축하드립니다.
뱀발2. 검색어에 아이유가 뭐 이리 올라오나요?
뱀발3. 희한하게 겨울이 다가오는데 체력방전이 심하네요 ㅠㅠ 이걸 어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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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2/11/10 23:02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2/11/10 23:10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혹시 합비나 유복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나와있는 서적이 있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준바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정사 유복전이나 연의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네요 ㅠ
펠릭스
12/11/10 23:1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산적왕루피
12/11/10 23:34
수정 아이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수많은 떡밥을 가지고 있는 삼국지도 삼국지지만, 맛깔나게 글을 쓰는 후추통님도 참 멋지신 거 같아요. ^^;
사..사...사탕 드실레요!?
12/11/11 14:10
수정 아이콘
항상 합비는 생각할 때마다 약간 흐릿한데
합비 대충 위치가 수춘과 서주 사이 어딘가 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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