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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07 00:09:49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화광, 적벽을 채우다 ④ 형주의 개와 돼지의 시간
208년 7월 황조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유표는 점차 자신의 지병이 악화되어 갑니다. 이 와중 형주의 2대 호족인 채씨 가문과 괴씨 일족은 이후 대책을 논의합니다. 이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유기는 강하군에서 양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와 면대하기를 원했고, 아버지인 유표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채부인 일파는 유기의 면회를 거부하고 유표의 명이라면서 유기를 다시 강하군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표가 그 달에 죽고, 채모와 괴월은 유종을 형주목 성무후의 작위를 유종에게 계승케 합니다. 원래 유기와 유종은 어머니가 같은 형제였지만 채모는 자신의 조카딸을 유종에게 시집보냈고, 따라서 유종을 후계자로 지지했으며 같은 괴씨 가문의 괴월 등은 유종을 지지한 것이죠. 이윽고 조조의 군사가 남하하여 형주와 남양의 경계에 이르렀고, 형주는 조조에게 항복하느냐, 아니면 조조와 맞서 싸우느냐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때 유비는 남하해오는 조조를 피해서 번성에 있었고, 유종은 양양에서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죠. 차후의 상황에 대해서 격론이 벌어지게 되고, 이때 형주의 동조연으로 있던 부손과 괴월, 한숭은 유종에게 진언한다..라고는 하지만 거의 겁박에 가까운 발언을 합니다. 유종이 자신의 아버지의 기업을 함부로 넘겨주지 못하고 유비를 불러들여 조조를 막자 하지만, 유종을 형주목에 올리기 위해 유비와 유기를 내쫓아버렸던 그들 입장에서 유비를 불러들였다가는 자신들의 목이 남아나질 못했겠죠. 실제로도 이러한 유종을 내세운 대호족파와 장자인 유기를 지지하는 유기파의 정쟁에서 형주 북단을 방비하던 문빙이나 장사군을 지키던 유반은 관직을 버리고 지역에 칩거해버리기도 했습니다. 일단 조조에게 항복한 이후, 조조는 항복을 주장한 15명을 후작위를 주어서 우대했고, 특히 가장 주도적 입장을 취한 채씨와 괴씨 일족은 형주 내에서의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보장받으면서 그것을 최대한 조조의 형주장악에 협조했습니다. 이때 괴월은 광록훈, 한숭은 대홍려, 등희는 시중, 채모는 조조의 종사중랑, 사마, 장수교위 등의 조조의 심복직을 거칩니다. 조조는 형주를 접수한 이후, 유종을 청주자사로 보내고 이후 간의대부를 지냅니다.

그러나 채모의 조카딸을 부인으로 맞이한 후 형주를 장악하는데는 성공하지만, 형이었던 유기는 예전부터 형주군민들에게 인심을 얻고 평판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형주의 백성들과 선비들에게는 유종과 채씨 일족과 괴씨 일족은 큰 반발심을 가지게 되죠. 실제로 조비가 쓴 전론의 마지막은 채모를 평가하고 있었는데, 조비는 채모를 형제와 부자 사이를 이간질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해버립니다.

연의에서 채모는 반간계에 걸려들어 조조에게 목이 날아가지만, 채모는 이미 조조와 절친한 사이여서 형주가 조조에게 항복한 이후에 채모의 저택에 가 채모의 침실로 곧바로 들어가 채모와 그의 처자식을 면대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 기록에 나온 채모의 저택은 면수 위의 섬에 채모의 일족이 살았고, 채모의 집은 매우 좋고 네 담장에는 모두 푸른 돌로 꾸몄으며, 처첩이 수백명이며 별장이 4~50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조조가 적벽에서 패하고 난 뒤, 오와 유비가 형주를 분할하게 되면서 이 두 일족은 형주에서 도망갔고, 괴씨 일족의 가주인 괴기는 방릉태수로 있다가 유비가 한중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에 보낸 맹달에게 상용과 방릉에서 목이 베어집니다. 채씨 일족은 그들이 대대로 살던 채주라는 섬에서 계속 살게 되지만, 영가의 난이 발생하고 이후 유총이 보낸 왕여라는 도적출신의 장수에게 일가 전체가 몰살당해 멸족되고 맙니다.

일단 채씨와 괴씨 일족의 발호는 결과적으로 유기를 지지하던 인사들과 외부에서 유입된 인재들은 일단 조조의 통치를 거부합니다. 이러한 인사들은 유비의 강하 도피에 합류하게 되고, 유종 아래의 관원들 중에서도 유비의 도피행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양현에 이르자 유비를 따르는 인원이 10만이 넘고 짐수레가 수천 대라 하루에 10여리 밖에 나아갈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들 중 순수 전투원은 수천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만, 유비는 이 민간인들을 버리자는 주변의 주장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유비 : 대업을 이룰때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법인데, 지금 사람들이 나를 따르니 내가 어찌 저들을 버리고 가겠는가!

이후 유비는 조조 군대에게 쫓겨 가족이 결딴나기도 하는 고난을 겪지만 한진에 도착한 관우와 유기의 선단과 수군 만여명을 만나 겨우 강하로 도피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때, 손권 역시 형주와 유비의 상황을 심각하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조조의 진짜 목표는 형주 장악이었고, 형주의 수군을 손에 넣은 조조가 내친 김에 적벽에서 손권을 평정하고 강남을 장악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하시더군요. 그러나 하북과 오환이 전부 정리된 시점에서 업에 현무지라는 호수를 파고 수군을 훈련시켰다는 점을 본다면 조조는 단순히 형주만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나온 득롱망촉, 농우 땅을 얻으니 촉 땅을 탐낸다라는 말을 한 것은 그가 형주와 장강에서 심각할 정도의 대패를 당한 경험 때문에 나온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손권은 유비가 강하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유표를 조문한다는 핑계를 대고 노숙을 강하로 보내죠. 그러나 아버지의 원수였던 유표를 조문한다는 것은 사실 뜬금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손책과 손권 형제가 황조를 죽이려고 그렇게도 칼을 갈았다는 것을 본다면, 손가의 유표 조문은 정말 천지개벽이 아닐수가 없었습니다. 노숙이 유표를 조문한 후, 유비를 만나게 됩니다.

노숙 : 유예주(유비)께서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유비 : 창오태수인 오거는 나와 깊은 교분이 있으니 그에게 의탁하려 합니다.
노숙 : 오의 손권님께서는 여섯 군을 점거하고 군사는 정예군이며 군량이 많으니 족히 대사를 이룰만 합니다. 오거는 평범한 인물이니 오거에게 가기보다는 심복을 보내서 손권님과 결연하여 조조를 무찌름이 어떻습니까?

노숙의 설득에 유비는 강하군 악현으로 나아가고, 제갈량을 노숙에게 딸려보내 손권을 면대하게 합니다.

조조는 이 상황에서 강릉을 함락하고 형주의 수군과 장수들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손권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조조 : 요즘 죄상을 들어 죄인들을 토벌했고 군기가 남쪽으로 향하자 유종이 항복하였다. 이제 수군 80만을 단련하여 바야흐로 오 땅에서 그대와 자웅을 가려보려 한다.

이러한 편지에 오의 신하들은 조조와의 결전이냐, 항복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게 됩니다.

이때 와룡은 노숙과 적지라고 할 수 있는 오로 들어옵니다. 자칫 잘못했을 경우 그는 항복의 예물로서 산채로 조조에게 가거나 혹은 목이 베어져 조조에게 바쳐질수도 있는 위험한 곳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군인 유비의 처지는 지금 자신보다 나을 것이 없었죠.

이제 그에게 남은건 항복파들을 설복시키고, 손권과 동맹을 맺어 조조와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1차 관문은 군권을 제외한 오의 국내 현안을 처리하는 장소와 그에 동조하는 항복파들과 말로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조운이 수백의 군사를 데리고 당양의 수만 조조군을 뚫어냈던 일보다, 장비가 장판교 위에 혼자 서서 수만 조조군을 호통 하나로 쫓아내버린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와룡 제갈량이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관중과 악의가 했던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적벽대전은 그 전투가 가진 무게에 비해서 정사의 기록은 상당히 짤막한 편입니다. 정사에 초점을 두고 쓰려는 제 입장에서는 어쩔수 없더군요.

결국 적벽대전은 연의를 중심으로 하되 정사의 기록을 중점적으로 섞어서 전개해 나가겠습니다. 정사와 자치통감의 기록을 몽땅 합해봐도, 적벽대전은 10줄을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어쩔수 없이...연의를 중심으로 풀어나갈수 밖에 없네요 ㅠㅠ

그리고 다음편은 아마도 추측 가능하시겠지만 제갈량의 동오설전입니다. 정말 딱 봐도 그 상대들이 후덜덜 하죠. 사실 저도 제갈량의 동오설전은 상당히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납니다. 연의에서 제갈량은 왕랑을 분사시키기까지 하죠. 물론 정사에서 왕랑은 제 집에서 편히 죽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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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12/11/07 00:29
수정 아이콘
적벽의 기록은 주유전에 주로 기록되어 있지 않남여?
Je ne sais quoi
12/11/07 00:3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그리메
12/11/07 10:14
수정 아이콘
사실 정사에서의 적벽전은 배멀미에 시달리는 북병을 위해 조조가 배를 묶어놨다. 그런데 당시 전염병이 창궐하여 조조군이 복통에 고생하고 있었고 마침 바람 방향이 좋은 일시에 주유가 선단을 이끌고 불을 질러 들이 닥쳐서 조조가 배를 포기하고 병력과 함께 물러나면서 장료와 조인에게 합비 서주와 형남 방비를 맡기고 철수했다. 이게 다입니다.
방통의 연환계도, 제갈량의 동남풍 기도도, 노숙의 쪽지 전달자 역할도 전부 없었죠. 있는건 황개가 사항계쓰고 선봉에 서서 불화살을 날린 것 뿐...
후추통
12/11/07 11:07
수정 아이콘
날씨가 추워지면서 심리적으로나 건강상으로나 좀 좋지 않아서 글의 업로드나 피드백이 느린점은 피지알러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일단 다음편이나 다다음편쯤에 조조군과 오군의 병력상태나 상호간의 장단점 상황 그리고 자세한 전투 외부적 요인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사실 삼국지 관련한 글은 정사에 비해서 연의의 내용이 알려진 점이 압도적으로 높고, 심지어는 연의의 내용을 실제 역사로 생각해서 논지를 펴시는 분들도 좀 있더군요. 거기다가 재평가가 이뤄지는 와중에서 이학인씨의 창천항로 같은 것도 사실 뻥튀기 된 점도 많습니다만...

제 1원칙은 "정사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연의에서 빠진 부분이나 각색된 내용을 정사와 비교한다"입니다. 그러나 연의의 기록이나 역사적 의의로는 가장 상당히 중요한 적벽대전 같은 경우 정사의 기록은 각 개인의 열전에 나뉘어져 있고, 주석이 달린 것을 읽다보면 좀 어처구니 없는 구절도 몇몇 있거든요.(예를 들면 무제기나 오주전에 엄연히 형주 수군을 손에 넣었다고 나오는데 주유전 주석에는 배가 없어서 뗏목을 엮어서 장강을 건너려고 했다는 주석이 튀어나옵니다. 뭐 이건 나중에 언급하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눈시BB님이 조선이나 고려사 쪽을 다루시면 제가 글 하나 쓰고 비슷한 주제로 글하나 써달라고 중국과 한반도 국가의 후계와 권력 계승 문제를 써볼까 했습니다만...현대 전쟁사 쪽을 다루니 이건 당분간 쓰기 어려울 거 같네요.

다음편은 되도록이면 빨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읽으시는 분들입장에서는 글솜씨도 망...인 글을 봐주시는 많은 분들께..감사하다는 말을 드릴 뿐입니다
DarkSide
12/11/07 13:03
수정 아이콘
오오오 ~ !!!! 드디어 제갈량 공명의 동오 설전 !!!

손권과 주유, 노숙의 반응도 기대 기대 !!!



특히 제갈량 공명에게 연의에서 가장 크게 희생 당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오나라의 대도독 ( 총사령관 ) 주유 공근,

위나라의 군사 ( 군략가 ) 사마의 중달 이라고 보는 편이라서 ...


( 저 두명은 나중에 제갈량 공명에게 영혼까지 신나게 탈탈탈 털리는 수준까지 가버려서 ;; )
12/11/07 13:30
수정 아이콘
사마의는 나름 맞짱 대승 한 번이라도 있지 연의 전패에 빛나는 조진을 빼놓으면 섭하지 말입니다ㅠㅠ
현실은 제갈량이 조진만 만나면 뭐 제대로 해 본 게 없는데...
DarkSide
12/11/07 13:46
수정 아이콘
하긴 ... 조진과 장합이 제갈량 북벌전 상대로

기산 등지나 옹양주 쪽 격전지에서 피똥 제대로 싸고 고생 꽤나 많이 했죠 ....


근데 이상하게 저는 조진보다는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신나게 탈탈탈 털릴 때 더 희열을 느껴서 ....



특히 맨 마지막 10권에 "오장원의 지는 별" 편에서 제갈량 공명이 자신과 똑같은 목각 인형을 만들어서

사마의 중달이 그걸 보고 겁먹어서 오줌 지리게 하고 미친듯이 장안성으로 도망 가버리게 한 지략이 결정타 ...


오죽했으면 후세 사람들이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쫒아버리다" 라고 했을까 싶을 정도라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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