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 와인 속의 과학이야기를 전달드리는 시리즈를 연재중입니다.
저도 사실 공부를 하면서 적는 것이라 다소 연재주기가 길어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뭐 많은 분들이 기다리시진 않을테니...
철면피를 깔고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나가겠습니다.
1. 타닌이란 무엇일까?
와인을 공부하신 분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타닌이 어떤 느낌인지는 아실 것입니다. 그 특별한 떫은 느낌은 어떤 감각보다 빠르게 오니까요.
와인을 더 공부하신 분이라면 오크통, 혹은 포도의 껍질과 줄기에서 오는 물질이라는 정도의 내용과 와인의 떫음을 어느정도 즐기실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치만 다양한 와인을 마시다보면 자잘한 타닌감, 크고 거친 타닌감 등등 촉각으로 인지되는 타닌의 느낌이 다양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타닌이 단일한 특정 화학 성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타닌은 다양한 폴리페놀 집합체 중에서 과일이나 와인, 차에서의 떫은 맛을 나타내는 성분을 나타내기 위한 단어로 쓰여왔습니다.
2. 타닌의 종류
타닌은 구성성분의 따라 (C6-C3-C6 탄소 구조의 유/무)
- 플라보노이드 계열인 응축형(Condensed) 타닌과
- 비플라보노이드 계열인 수용성(Hydrolysable) 타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번엔 시작부터 좀 어렵나요...?
조금 쉽게 설명드리면, 응축형 타닌->포도에서 유래하는 성분 / 수용성 타닌 ->오크통 등 나무에서 유래하는 성분
으로 이해하시면 조금 쉬울 것입니다.
1) 응축형 타닌
와인을 단순히 즐기시는 수준을 넘어 공부해보신 분들은 아마 타닌감이 포도껍질과 줄기, 씨 등에서 많이 유래한다는 것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타닌은 과육(pulp)에는 거의 없으며, 껍질과 씨, 줄기에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와인을 양조하는 과정에서 '줄기의 제거 정도' '껍질과의 접촉(Skin contact)' 등의 여부에 따라 와인의 전체적인 타닌감이 결정되곤 합니다.
포도를 압착하고 난 뒤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포도 껍질은 양조 과정(침용단계, maceration)에서 과즙위로 뜨게 됩니다. 이때 사진처럼 긴 막대로 꾹꾹 눌러서 과즙에 타닌과 색소가 더 잘 우러 나올 수 있도록 해줍니다. 현대에 와서는 아래에 펌프를 연결해서 위로 쏘아 다시 섞는 방식도 사용합니다.
이때 많이 나오는 타닌이 바로 응축형 타닌입니다. Proanthocyanidins(PACs) 로도 불리우며, Polycyanidin 과 Profisetinidin으로 구분되며 특히 polycyanidin이 포도씨와 껍질, 그리고 녹차 등의 차류에서 많이 가지고있는 타닌 입니다. 폴리페놀이 풍부한 와인과 차가 건강에 좋다는 말들이 있는데 이 폴리페놀들이 항산화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포도에는 (+)-catechin, (-)-epicatechin, (-)-epigallocatechin(EGC), (-)-epicatechin gallate 등의 Polycyanidin이 함유되어있습니다.
이중 껍질에는 EGC의 구성이 더 많은데, 이 폴리페놀의 경우 서로 연결이 잘 되기 때문에(polymerization) 더 큰 입자로 구성되며, 포도씨에는 EGC의 구성이 더 적고 다른 성분이 더 많아 더 작은 입자로 타닌이 존재합니다. (mean degree of polymerization, mDP가 낮습니다)
(사족.영어로 써놔서 바로 눈치채지 못하셨을 수 있는데, 건강기능식품으로 많이 드시는 카테킨이 바로 위의 성분들입니다. )
포도씨와 포도 껍질 속 타닌의 양은 포도 품종마다 완전히 다릅니다. 카베르네쇼비뇽은 포도씨와 껍질 모두에 상당히 많은 타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한 타닌감을 보이곤 합니다. 시라나 무르베드르는 상대적으로 씨의 타닌이 적은 편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과육의 타닌이 형성되는 초여름과 껍질이 완숙하는 가을 초입까지 전 과정에서 기후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빈티지마다 차이가 클 수 있으며 양조책임자들은 이를 고려하여 양조하게 됩니다)
2) 수용성 타닌
수용성 타닌은 쉽게 말해 오크통 등 나무에서 유래하는 타닌으로, 오크 나무를 가열하는 과정에서 단당류와 결합한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포도에도 레스베라트롤 같은 비플라보노이드계가 존재하긴 합니다)
이런 타닌은 주로 와인의 숙성을 위한 오크통을 만드는 과정에서 통을 성형하면서 발생됩니다.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나무 종류 및 가열 정도에 따라 형성되는 에스터의 종류와 양, 그리고 타닌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오크통도 와인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오크통의 이런 성분들은 대부분 1회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일부 (사실 일부를 제외하고 많은)양조자들은 와인에 오크의 향과 타닌감을 더 주기 위하여 오크 칩, 오크스틱, 오크 에센스 등을 첨가하여 와인을 제조합니다.
(영상 참고 : )
이런 부가적인 행위가 좋고 나쁨으로만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양조자들에게는 좋은 맛과 향을 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테니까요. (혹은 한정된 생산비 내에서 최선의 선택이겠지요)
3. 타닌의 맛과 질감에 대한 인지(perception)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타닌은 기본적으로 와인의 맛(쓴맛)과 질감(떫은느낌)에 큰 영향을 줍니다.
1) 타닌은 왜 쓴맛이 날까?
혀의 감각세포중 쓴 맛을 감지하는 세포(Taste receptor cell)는 주로 TAS2R 그룹(TAS2R4, TAS2R5, TAS2R39)으로,
쓴 맛을 내는 성분이 결합하면 .......다 설명하자면 너무 기니까,
결론만 말씀드리면 타닌 성분들(EGC(Epigallocatechin, C(catechin), EC(Epicatechin), EGCG(Epigallocatechin Gallate), ECG(Epicatechin Gallate) 등등)이 이 TAS2R에 결합하여 쓴 맛을 내게 됩니다.
이때, 포도씨에는 앞서 설명드린대로 더 작은 타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더 쉽게 쓴 맛을 내는 리셉터에 결합할 수 있게 되어 껍질보다 씨에서 더 큰 쓴 맛을 느끼게 됩니다.
2) 타닌은 왜 떫은 맛을 느끼게 할까?
이 부분도 너무 기니까 요약해서 설명드리자면,
침속의 단백질 구강 점막에서 윤활작용을 하고 있는데, 타닌이 이 단백질에 결합하여 단백질의 유동성이 떨어지게 되고 불용성으로 응집되게 됩니다. 이 응집체로 인해 뻑뻑함과 건조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도 요약할 수 있을 만큼만 이해했습니다..)
4. 타닌의 역할은 또 뭐가 있을까?
사실 와인에서 타닌의 역할은 엄청납니다.
1) 양조과정에서 포도의 불필요한 단백질을 침전시켜 안정화를 돕고 투명도를 높입니다.
홈메이드한 술들이 불투명한 이유는 대부분 이런 단백질 부유물 때문입니다. 타닌, 특히 수용성 타닌은 단백질과 잘 결합하여 불필요한 부유물을 없애줍니다.
2) 색을 안정화 시켜줍니다.
응축형 타닌들은 일반적으로 안토시아닌과 결합하여 응집물을 만들고 침전되게 됩니다. 병입한 후에 오래 된 경우 보이는 침전물들이 바로 응축형 타닌들과 안토시아닌의 결합물입니다. 알콜이 미세산화(micro-oxydation)되면서 알데하이드가 형성되면 이 알데하이드가 안토시아닌과 타닌의 결합을 주도합니다 (Timberake and Bridle 1976). 이 과정에서 많은 안토시아닌으로 인해 보라색에 가까웠던 어린 와인들은 벽돌색(tawny)으로 색이 빠지게 됩니다.
수용성 타닌들은 응축형 타닌에 비해 산화과정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크기 때문에 알코올이 알데하이드가 되는 반응을 조절해주어 (항산화효과) 위의 침전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즉 생산년에 비해 많은 침전이 있는 와인은 응축형 타닌이 과하게 만들어진 것이며, 수용성 타닌이 부족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오크통 숙성이 고급 와인의 장기 보관 가능성을 증대시켜주는 것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3) 미생물로부터의 보호
포도에 존재하는 진균류인 Botrytis는 laccase와 폴리페놀 산화효소 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효소들의 활성을 낮춰주어 와인이 쉽게 산폐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5. 맺음말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재즈를 들으며 이 글을 쓰다보니 문득 와인에서 타닌은 베이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박자(구조감)과 멜로디(입체적인 맛) 모두에 기여를 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와인을 양조한 경험이 없어 잘 모르기도 하고, 나라마다 규제가 다르겠지만, 와인 첨가제로 이미 상품화된 타닌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고 저도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와인이 순수하게 포도만으로 이뤄져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와인킹님의 유튜브를 보면서 조작(Manipulation)된 와인이 많이 있다는 언급은 봤지만... 그래도 살짝 더 배신감이 느껴진달까요.
하지만, 기술을 통해 단점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이해를 하면 또 이해 못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와인 양조자들은 진정성을 유지하고, 또 다른 이들은 기술을 통한 혁신을 이뤄 내겠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와인을 즐기고 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6. 출처
(서적)
1. 맛있는 와인의 비밀, 최해욱, 2016 (강추 도서입니다)
(논문)
1. Ortega-Regules, Ana, et al. "Anthocyanins and tannins in four grape varieties (Vitis vinifera L.). Evolution of their content and extractability." OENO One 42.3 (2008): 147-156.
2. Versari, Andrea, W. Du Toit, and Giuseppina Paola Parpinello. "Oenological tannins: A review." Australian Journal of Grape and Wine Research 19.1 (2013): 1-10.
3. Ma, Wen, et al. "A review on astringency and bitterness perception of tannins in wine." Trends in Food Science & Technology 40.1 (2014): 6-19.
잘 보고 갑니다. 저는 와인은 잘 모르고 싱글 몰트를 좋아하는데, 이쪽은 기본이 다른 술을 한번 저장한거라 새 오크통의 날카로운 느낌은 대부분 없애고(글렌알라키 10년 cs 배치5 같이 버진오크 섞는 술도 물론 있지만) 20년 이상 장기숙성 하는 경우에는 세컨드 필 오크통을 사용해서 통과 술의 상호작용을 줄이는데, 와인은 무조건 버진 오크를 사용하는건가요?
오크통 안에 술이 머무는 시간이나, 오크통 성분의 용해도(abv 58도에서 가장 잘 우러나오는)를 고려하면 통 특징이 나오려면 무조건 버진오크여야 할거 같긴 한데 저 와인킹 유튜브 할아버지 보면 오크 숙성을 전반적으로 극혐하는 느낌이라서, 세컨필이나 서드필이라도 써서 오크 맛만 내야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해서요. 일단 위스키와 연관이 깊은 스페인 셰리는 소위 오래 묵어서 힘 빠진 아메리칸 오크 캐스크를 쓰는걸로 알긴 합니다만...
1) 무조건 새오크통을 쓰진 않습니다. 특히 일부 화이트와인 쪽에서는 오크캐릭터를 오히려 억누르기 위해 스테인레스/플라스틱 통에서 짧게 숙성시키기도 하고, 레드와인에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번 일부러 쪄내거나 다른걸 담아서 오크 향을 죽이고 사용하기도 합니다.
2) 와인킹 유튭에서 딱히 오크 숙성을 극혐하진 않습니다 (혹시 버번 배럴 숙성한 와인들을 대차게 깠던 에피소드 때문에 헷갈리신게 아니신지..) 많은 레드/화이트 와인들이 오크 숙성을 하고 있는데, 위에서 말씀드린 오크칩/오크스틱을 통한 인위적으로 오크향을 내는 작업을 극혐하는 편입니다. 오크향 이라는것도 사실 단일 화합물은 아니고 락톤과 에스터, 페놀류의 복합체입니다. (상세 구성성분은 여기... https://www.etslabs.com/library/15) 구성성분을 알기 때문에 요즘은 화학적 첨가만으로도 인위적으로 가향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고급스러운 밸런스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그 결과물이 좀 안좋은 편입니다. 따라서 저가 와인에 오크 향만 내려고 한 것은 전문가들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3) 아울러 스피릿류와 큰 차이로, 기본적으로 새 오크를 쓰더라도 와인 내 단백질과 결합하여 막을 형성해서 생각보다 오크의 강한 타닌과 성분들이 많이 전달되지 못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알코올 도수도 낮기 때문에 유기물의 용해도도 높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