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눈이 떠진 새벽, 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자유 게시판의 '하반신 마비 극복기'라는 제목의 글을 조금전에 읽었습니다. 제목을 봐서는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온 글쓴이가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인간승리의 과정이 적혀있을 거 같은데..약 3개월 전 제가 쓴 글입니다. 하하 극복이라니. 아이고야.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그래서 제목을 고쳐봅니다. 하반신 마비는 너무 심각해보이니까 정확한 병명인 마미증후군으로, 불굴의 의지나 인간승리 같은 건 없으니까 극복은 회복으로요.
지난 주 퇴원 했고, 내일부터 다시 회사에 출근합니다.
이제 움직이지 않는 근육은 없고, 발목 근력이 아직 약해 보행이 불안정할 뿐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닐 수 있을만큼 회복했습니다. 몇 개월간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겠지만, 이만큼 나아진게 어딘가요.
지난 번 글을 적을 당시의 저는 불안했습니다. 다시 걸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고 혼자서 밥벌이도 못할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지난 3개월을 되돌아 보면, 전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했다면 행복한 시간들이었던거 같아요.
그 이유를 꼽자면, 일단 통증이 없었습니다. 입원하면서 수술 후에도 통증이 없어지질 않아 자나깨나 고통스러워 하는 분들을 봤는데 전 다행히 수술하고 나서 통증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수술 전의 고통을 떠올려보면 참 다행이었어요. 두번째로, 실비 보험으로 병원비 부담이 없었습니다. 재활에 비급여 치료가 많아 병원비가 제 반년치 월급만큼 나왔는데, 보험이 있어서 걱정없이 치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진 불행하지 않았던 이유고 행복했었던 이유는, 역시 사람들 덕이었어요.
입원하고 많은 회사 동료들이 병문안을 왔고, 지금까지 종종 연락하면서 응원해주었습니다. 팀원들은 제 자리 그대로 복귀할 수 있게 지금까지 충원 없이 제 일을 나눠서 해주고 있구요. 입원을 알리지 않은 타지의 친구도 찾아와주었고, 모임에서 몇번 뵙지 않았던 분들도 걱정해 주시면서 선물까지 들고 병문안을 와주었습니다. 친척들도 먼 곳에서 와주시고 여러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피지알에서도 얼굴도 모르는 저를 위해서 많은 분들이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구요. 과연 이 분들이 나처럼 아팠어도, 내가 이 분들만큼 할 수 있었을까? 라고 반성하게 될 만큼 큰 도움들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저보다 더 고통스러워하고 회복에 저보다 더 기뻐하시는 분들과 입원기간 동안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음, 적고나니 마치 연말 시상식의 수상 소감 같네요. 왜 하나 같이 고마운 사람들 명단을 줄줄 읋는가 했었는데, 정말 감사드리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거였어요. 이제 고대하던 일상으로 돌아가니,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응원해주셨던 피지알의 많은 분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글에서 심각했던거에 비해 금방 회복이 되어서 민망하지만, 우울했던 시기에 응원해주시는 댓글 보고 힘을냈어요. 다음번엔 말짱해져서 다른 글로 뵙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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