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사생활이고, 정말 누구에게 말하기조차 부끄러웠던 기억.
당사자와 가족 중 누군가 한 명 정도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오래된 과거의 기억에 대하여
약간의 술기운을 빌어 한마디 적습니다.
이곳 피지알은 똥으로 흥하고, 똥으로 하여금 온 세상을 진실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을만큼,
단 한마디의 음절 "똥"으로 세상과 통하는 곳이 아닐까...
그리고 똥이 들어가야 조회수, 추천이 되는 사이트가 아닐까, 하여!
부끄럽지만 주절주절 서두 질질 끌다가, 적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똥 싼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십여년이 조금 못 된 아주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93학번이었는데, 뭐 초창기엔 그럭저럭 재미있게 대학생활을 즐기다가
96년 제대, 그 이듬해에 복학을 했습니다.
97년에 2학년으로 다시 복학후 1년 정도는 나름 재미있게,
제대후 알바로 모아돈 돈도 좀 있었기에 파릇 파릇 신입생들의 술자리를 챙겨가며
하루건너 학교 잔디밭에서 막걸리와 뒹굴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98년 하면 뭐니뭐니 해도 안타까운 월드컵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안타까운 IMF가 있었죠.
뭐, 형편상 학업을 지속하기엔 형편이 여의치 않았고,
막노동을 하는 나이든 홀어머니의 밑에서 저는 학업을 더 연장한다는게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 당시엔 학자금 대출 같은 것도 없었고, 국립대라서 지금 생각해 보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법도 한
그 돈이 당시에는 참 크게 다가왔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휴학을 하고 오락실이나, 전단지 알바등을 하면서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어슬렁거렸으나
무언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마침 저에게는 학과 특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재능과 성격으로
과에서도 아웃사이더 였던 처지여서 누구한테 도움을 청하기도 참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휴학하기 얼마 전 나름대로 공부한 전공시험에 군대를 면제받은 동기가(조교) 감독으로 들어왔고, 마지막 한 두 사람 남은 강의실에서
몇 문제를 풀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끝끝내 답안지의 공백을 메꾸고 있던 저와 그러한 저를 쳐다보며 기다리던 동기...
그 때의 그 쪽팔림의 기억은 지금도 아주 생생합니다.)
여차저차해서 자퇴아닌 자퇴를 하게 되었고
그 창피함을(이건 아마도 당시의 제 성격 탓일겁니다) 견디지 못한 저는 가끔씩 못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처음엔 팔목을 좀 그어보려 했는데...용기가 부족해서 몇 번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연탄 보일러를 때던 집에서 광에 있던 시꺼먼 연탄을 보게됩니다.
늙은 어머니가 막노동을 하러 일을 나가고,
잠시 후에 저는 일단 번개탄을 사왔습니다. 막걸리 두세병 정도 같이 사왔고, 그때부터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점심 때 쯤이나 되었을까, 술이 알딸딸해 진 저는 드디어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까만 연탄을 올려 놓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 당시를 표현하자면, 뭐 술 취해서 자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대신 몸이 아주 무기력해지더군요.
중간중간 잠깐 깼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오락가락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항문이 열리더군요, 그냥 똥이 나왔습니다.
똥을 싼다는, 힘준다는 그런 것도 없이 온 몸에 힘이 풀리면서 똥이 그냥 막 나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었던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평소보다 일찍 들어오셨습니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 어머니의 "니가 사람이냐!" 라는 한마디만 기억합니다.
그렇게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 후 기억력이 좀 나빠진건지...뭐 아무튼 저는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첫 회사에 13년 좀 넘게 다니게 되었고,
3년 전에 퇴직하고 개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후회스런 기억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죽고 싶을 때라도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들이 있습니다.
절대!라고는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그냥 참고 견디는데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회사를 퇴직하고 개인 사업을 하니 시간이 좀 됩니다.
3년전부터 매주 주말마다 홀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다녀옵니다.
어제는 모처럼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보신탕을 포장해 갔습니다.
곧 여든을 바라보시는데, 참 맛나게 드시니 제가 눈물겹습니다.
소주 한병 같이 가져갔는데, 그냥 냉장고에서 김치 하나 꺼내서 먹으려고 하니 어머니가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드룹나물을 데쳐서 가져오십니다.
2년전에 아파트로 옮겨드렸는데, 친구분들 많이 만나시고 매주 내려오는 아들 이야기를 다 아시니깐,
어머니 친구분께서 산에서 드룹나물 딴 거 아들오면 삶아주라고 주셨답니다.
저는 결혼을 못했습니다.
현재 여자친구도 없습니다.
탈모라서 가발 쓰고 다닙니다.
그리고 브론즈5입니다.
다들 힘내십쇼!!!!
아무리 똥으로 아름다워지는 사이트라지만, 제가 싼 똥 같은 건 세상에 누구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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