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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5 23:38
사실 고민하고 고민한 부제 중에서 자주 등장했다 사라진 녀석은 '의식의 흐름으로 쓴 현대의 역사'였답니다. 크크크크.... 주제가 좀 부드럽게 바뀌지 못한다는 점은 저의 글쓰기에 있어서 참 고민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8/04/06 00:20
어떤 변태같았던 진화의 압력에 의해 뇌용적만 미친듯이 늘리는 쪽으로 진화하던 호모 사피엔스라는 영장류는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분기해 나와 말을 쓰고, 불을 쓰고, 사물을 구분해 보기 시작하면서 끝간데 없이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광선내의 탁월한 색채 구분과 입체시로 수천만가지의 위협적이고, 유용하고, 혐오스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이름 붙혀가며 분별하는 과정에서 편견과 차별에 사로잡혔고, 제 1의 불로 어둠과 숲을 사르며 지구 모든 곳에 다다르고 제 2의 불로 도시에서 밤을 살해하고 잠을 죽여가며 노동하게 되었고 제 3의 불로 전쟁을 끝내고 자기 자신을 끝내려 하고 있습니다. 갓 터득한 언어로 없는 말을 만들어내며 경쟁자를 등 뒤에서 음해하고 되바라진 젊은 것들을 무리에서 몰아내거나 매머드떼에 달려들어 영웅적인 사냥꾼이 되라 선동했습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어떤 존재가 그들의 죽은 후를 돌봐준다면서요. 그렇게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는 젊은 수컷들이 창 한 자루 들고 날뛰다 상아에 꿰뚫리고 밟혀죽어가며 얻어낸 단백질을 '계약'이라는 언령으로 소환한 '권력'이란 괴물을 부려 전부 자신에게 -선심쓰듯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도- 분배하는 일들을, 올두바이 협곡에서 파타고니아까지 연속해 온 것이 우리, 인간이란 족속입니다. 제 나름의 결론이라면 구별하고, 불을 쓰고, 말하는 인간이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진화해 분기해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유전자의 기백만년에 걸친 변형보다 감마선이 인류 대부분의 유전자 자체를 핵물리적으로 분해해 버릴 확률이 더 높다고 봅니다.
18/04/06 00:37
흐흐흐... 제가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대역사와 비슷한 대역사를 생각하고 계셨군요. 저는 사실 군대에서 '호모 데우스'를 읽고, 야 이게 무슨 망상이 아니라 하나의 분석가능한 사회과학이구나! 라면서 놀라서 계속해서 이쪽 방향을 파보고 있습니다. 인문학이 위기라고요? 그런 당신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500RPM 근대성 담론! 뭐 이걸로 먹고 살지는 결코 못할 것 같지만요.
돌고래와 박쥐의 초음파, 개미의 페로몬, 벌의 자외선 시야가 현실인 것처럼, 인간의 언어와 상상 역시 현실일 것이고,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겠죠. 다만 저는 특이점을 매우 싫어합니다. 본문에서도 "죽는 것보다 많은 새끼를 치는 것이 목표인 짐승을 초월한 전능하신 인간이 지은 최고의 세계,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 최대한 효율적으로 세상을 갉아먹는 굶주린 쥐새끼가 가득한 세계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표현했듯이, 더 많은 열량의 사용을 통한 전능한 사물의 변형이 인간의 최종 목표라고 하면 그건 정말로 메트릭스를 운영하면서 인간 배터리 농장을 경영하는 기계나 할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인류가 곧 인간을 대체할 기계를 만들고 세대교체를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요즘엔 좀 진지하게 들기는 하지만요. 저는 인간이 온갖 사소한 물질적인 걱정에서 끝내 은퇴해서 자신의 의식과 두뇌를 무한으로 확장할 수 있는 유토피아가 인류가 추구해야하는 이상향이라고 생각해요. 고대 그리스인... 정확히는 그 중에서 철학자들이 망상했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요. 그러고보니 시드 마이어의 알파 센타우리에서 이미 제시한 미래상인데 저도 상상력이 부족하군요!
18/04/06 01:02
코인에 발목 담궜다가 위대한 물리학의 아버지 아이작 '템즈 리버' 뉴튼처럼 똥망한 똥멍청이인 제가 예견하는 미래는 대충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같은 가상현실에서 지지고보꼬 내키는대로 광란의 꼐임세계 대탐험하다가 출근하게 되면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에 올라타 필름 끊긴 상태로 로동 비스무리한거 깨작거리다가 다시 Oasis Theft Auto를 즐기러 가는, 현실과 가상이 기묘하게 뒤틀린 미래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18/04/06 00:36
이런 글은 때때로 저를 참 쓸쓸하게 만듭니다.
상호간에 있을 이해의 범주를 끝모르게 확장해서 세계시민에 걸어버린다면, 결국 우리는 당장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또한 이해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차라리 제겐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들려요. 제 모든 옷을 풍선에 매달아 저 높은 하늘로 날려버리는 느낌이 드네요. 날려버린 제 옷이요? 언젠가 찾을 수 있겠죠. 어어어언젠가는. 그렇게 비척거리며 우악스런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느니 그보다는 태양이 눈부신 사람을 찾아 그가 날 쏠 수 있게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을 거 같아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은 결국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을지니, 결국 저는 단자로서의 저만을 체감하는 도리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퍼뜩 듭니다.
18/04/06 00:52
상당히 거시적으로 쓴 글 맞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씁쓸하고 고집스러운 논리가 담겨있는 글도 맞고요. 정확히 보셨네요.
요즘 어떤 친구를 보는 맛에 저는 살고 있습니다. 생각이 안나면 가볍게 뜀박질을 하면서 산책을 하고, 일터에 출퇴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며, 야구장에서 열정적인 응원과 고함을 보여주고, 어떤 야구경기에 대해서 저에게 말할 기회가 오면 신이 나서 온갖 생생한 표현으로 저를 기쁘게 해주는 친구요. 그 친구에게 세상은 밝고 짜릿하고 새로우며, 자신의 머리 바깥에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 옆에서 어떤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중국어 방처럼(Chinese Room) 적절한 대답을 조합해내려고 매번 고심합니다. 이 곳에 있는 것도 비슷한 훈련이고요. 처음에는 매우 부적절한 반응만 보였지만 저는 기계학습(?) 끝에 그래도 나쁘지 않은 친구가 되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성공적인 접근법 중에는 많이 들어주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그 친구에게 저는 가장 친하거나 가장 잘 통하는 친구는 아닐 것이에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죠. 저는 그 친구 옆에서 가끔씩 제 최선과 성의를 다해서 저의 세상을 전달합니다. 제 머리 속에 있고, 어떤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결들이 서사에 따라서 물결치는 추상적이고 색이 없는 세상입니다. 서로 자신의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서 눈이 멀 것 같은 분야는 다른 사람에게 악몽같은 뒤틀린 세계이니 꺼내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그런 부분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 친구가 안되더라도 기회는 따로 있을테니까요. 한 때 저는 절망을 했었습니다. 아사하라 쇼코처럼요. 그 사람은 정말 선을 넘은 천재였지요. 어차피 세상에 어떤 즐거움도 얻지 못할 것, 철저히 창작된 머리 속의 망상을 통해 행복을 찾는 것으로 인류 전체를 구원한다는 참 대단한 사고를 했으니까요. 사이비 종교는 철저히 현대에서 답을 모르겠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기존 종교교단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국 세상을 품으려고 했던 일개 인간은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미치광이가 되었고. 그의 추종자들이 벌인 테러사건에 대한 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에서 까발려진 그들의 민낯은 결국 머리 속에 세상을 담으려는 시도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몰이해로 절망 속에서 끝나는 것이더라고요. 이 글은 제 머리 속의 세계가 끄트머리 문턱에 앉아서 머리 바깥의 세계를 어루만지면서 어쩌면 이해할지도 몰라... 어쩌면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라고 읖조리고있는 처량한 글이 맞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는 작년의 최저시급이 어제의 문제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형평사 운동이 오늘의 문제인 것 처럼. 결국 안경렌즈는 시력에 맞춰서 끼는 것이니까요. 초점이 좀 다를 수는 있다고 봅니다. 저에게 이 글은 세상에서 멀어지려고 쓴 글이 아니라, 무언가 느끼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 글이었어요.
18/04/06 10:56
중국어 방.. 생각도 않은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놀랐어요. 하긴 서로 불가해의 영역에 있다면 실질적 문맹을 들먹이며 타인을 깔아보는 지적 자위보다 이 쪽이 더 적확한 이야기겠지요..
인간은 해방되었으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유인이 되는 대신 예속됨을 자처하더라는 프롬의 일갈은 거창한 이야기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으레 찾아볼 수 있는 일들의 원인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믿게 해서 믿는 건지, 믿고 싶어서 믿는 건지 그것을 세밀하게 떼어내긴 어렵겠습니다마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돌아보는 자라면 누구든 나와 세계를 바라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연결어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어디에 두냐에 따라 그것은 무저갱으로 침잠하는 절망을 드러낼 수도, 절망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백마탄 초인의 의지를 드러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Farce님이나 저나 항상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덧. 항상 기저에 쌓아두고 있던 생각이 이 글로써 떠오른거지, Farce님이 나한테 극단적인 회의론을 주입한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니 혹여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18/04/06 11:18
신선한 통찰이네요.
인구압을 완화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죽여보고 그 다음에는 저멀리 있는 타자들을 죽여보고.. 그 다음에는 자기들 중에 조금이라도 타자적 요소가 있는 사람들을 죽여보고... 이제 더이상은 안되겠다 모두 애를 안 낳아서 천천히 자살하는 선택.. 결국 문명의 역사는 무한증식의 본능을 억제하기 위한 싸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8/04/06 18:11
'인구압'이라는 표현에는 신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단지 늘어나고 줄어들 뿐인 동물을 초월한지는 인간의 시간으로는 꽤나 긴 수천년이 지났으니까요. 다만 의식과 지능을 통해 무한한 욕망을 다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그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죠. 물론 인류의 문제라는 것은 인구의 증가, 재화의 낭비, 개개인의 파편화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만 이것을 단순히 '인구압'이라고 표현한다면 정말로 개미굴, 벌통, 돌고래나 사자 무리와 구분이 갈 수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의식이 없는 좀비 무리가 굶주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머리 속에 생각을 하나씩 달고 있는 사람이 직접 선택한 문제들이니까요.
결국 이것 역시 인간의 존엄성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진화의 생물학이 이끈 길이 아니냐, 결국 생물체가 더 먹으려고 달려드는 것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지않냐라고 볼 수도 있긴 합니다. 제가 읽어본 소설 중에서는 "학살기관"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골적으로 그런 주제를 가진 책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선택권이 있어요. 진화된 본능의 맹수 또는 간사한 악의의 머리털난 짐승만 인간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절제하고 본능을 다스리는 인간, 악의를 인식하며 선의를 지어내는 사회가 존재합니다. 역사적인 흐름을 읽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인류가 무슨 황금기에서 굴러 떨어진게 현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밑바닥에서 진짜 사람인가 짐승인가 싶다가 열심히 치열하게 올라온게 여기라도 되는 거죠. 이 쪽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도 앞으로 많이 찾아뵐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인간의 수명은 무한해지고, 후손의 숫자는 0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각 개인들의 자아와 영혼은 진정한 무한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이에요. 저는 그걸 특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계에 사는 우리가 무한한 물질을 얻는 법을 먼저 찾아야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저에게 있어서 의식으로 동물을 초월한 인류를 가장 발달한 동물로 다시 환원시키는 일입니다. 미래의 주류 담론이 어느 것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아직 특이점 이전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아마 전근대와 근대 사람이 생물적인 종만 같고 사고 방식이 전혀다르듯이, 저도 아주 틀리고 이해되지 못할 말을 미래로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무튼간에요 metaljet님. 제가 인식한 역사 속에서 인간은 '증식'따위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증식'하듯이 무한한 탐욕의 대가를 치르고 있지요. 그래도 결국 언젠가는 답을 찾아나서고 말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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