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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0 17:52
제 해석은, 주유 사후 유비가 남군 일부(강릉)를 할양받는 대가로 장사군 일부를 떼어 주었다(한창군)입니다.
나름대로 윈-윈인 셈인데 그 이유는 설명하려면 길어지니 넘어가겠습니다. 어차피 자체설정이라 근거가 명확한 것도 아니고...
17/01/10 21:33
상세한 내용은 출사 : 삼국지 촉지 제갈량전을 기대해 주세요!
...농담입니다. 마침 그 부분을 연재하고 있는 바람에. 각설하고, 동오의 군부 우두머리격이 주유에서 노숙으로 바뀌면서 동오의 대전략도 크게 변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주유는 익주 점령을 시도하려 했죠. 유비가 도움을 안 주니 아무 소용 없었지만요. 반면 노숙은 손유동맹을 최우선시하면서 대 조조 방어전선의 길이를 줄이고 방비를 튼튼히 하려 합니다. 주유의 강릉태수 시절, 강릉과 공안의 위치를 보면 양양방면에서 조조의 육군이 남하할 경우 동오가 유비를 지켜 줘야 합니다. 반면 강릉을 유비에게 주면 어떻게 될까요? 손권이 장사군에서 한창군을 분할한 게 210년인데 이후로도 장사는 여전히 유비의 세력하에 있습니다. 노숙은 처음에 강릉에 주둔했다가 육구로 옮겼고 이후 한창태수가 되죠. 전후경과를 보면 저는 장사군의 일부였던 한창군과 남군의 일부였던 강릉일대를 양 세력이 교환했다고 봅니다. 그 결과, 동오는 장강을 기반으로 하는 수군중심의 방어라인을 구축하게 됩니다. 강릉방면의 육로 방비는 대신 유비가 맡게 되죠. 한창군은 강릉 동남쪽입니다. 유비가 있는 강릉을 격파하지 않는 이상 조조의 군사는 육로로 한창군까지 내려올 수 없습니다. 주유시절과 비교해서 입장이 정반대가 된 거지요. 동오의 이득은 이 점입니다. 방어라인을 좁히고, 꽤 부유한 땅인 장사군 일부를 얻고, 자신없는 육지 지역의 방비를 유비에게 맡기게 됩니다. 잃은 것은? 군사적 요지 강릉을 잃은 건 결국 형주 방면에서 북쪽 양양이나 서쪽 익주로 진출하는 걸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강릉 없이는 대규모 원정부대를 뒷받침할 수 없으니까요. 결국 노숙은 주유의 공세적인 대전략을 수세적으로 고친 셈입니다. 물론 완전히 수비에만 전념한 건 아니죠. 아시다시피 형주 방면 대신 다른 방면의 공격로가 있으니까요. 합비.... 합비. 그리고 유비의 이득은 무엇인가? 제갈량의 융중대 계책을 실행하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말해 형주에서 필요한 곳은 두 곳입니다. 익주에서 형주로 나오는 통로인 의도군(남군 서쪽). 그리고 북진하는 대규모 원정대의 보급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군사적 거점인 강릉. 유비가 진정 천하를 꿈꿨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강릉을 얻고자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이상입니다. ps. 그리고 훗날, 그 중차대한 역할을 맡은 남군태수 미방은........
17/01/10 22:15
네. 상당히 일리있고 괜찮은 해석과 논리입니다.
그런데 글곰님의 주장에 따르면 주구장창 형주를 달라고 하는 손권의 행보가 걸리는데, 그건 어떤 해석을 갖고 계신지요?
17/01/10 19:15
핵심지역은 강릉이었다고 생각하는게 전국시대 초나라 수도였던 곳이기도 하고 형주 남북과 양자강을 따라 이동하는 동서 수로의 교차점같은 곳이라 군사적으로는 강릉의 중요성이 가장 컸다고 봅니다.
이곳을 지킨 장수의 면면만 봐도 위는 조인, 촉은 관우, 오는 주연...하나같이 자국 최고의 지휘관을 파견해서 지키고자 애쓰려 했던것을 보면 그당시 3국이 모두 하나같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봐야겠죠.
17/01/10 23:08
네. 실제로는 육손 사후 이후에까지 생존하면서 강릉을 수십년간 수성해낸 조운보다 더 업적이 많았으면 많았지 절대 꿀리지 않을 인물을 무려 20년이나 일찍 빨리 죽여버리는 바람에 유비, 조조 사후 삼국지연의 분량에 있어서 오나라 비중은 그야말로 안습이 되어버렸죠.
당장 이릉대전 이후 벌어진 위-오 전쟁만 보더라도 하이라이트는 조비가 지원하고 서황, 장합, 조진, 하후상 등 쟁쟁한 장수들이 파견되어 공격한 강릉전투였는데 여기서 주연이 이끄는 오군은 역병에 내란까지 터지는 악조건 속에서 싸울수 있는 병력이라고는 고작 5천명 수준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주연이 이끄는 군대는 위군을 막아내고 6개월동안 3만명의 병력으로 포위해 공격해도 이기지 못한 위군은 결국 패퇴하고 이로 인해 주연의 명성은 적국에까지 떨쳤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주연을 조기퇴갤 시켜버리는 바람에 이 내용이 다 짤려서 주환이 조인을 격퇴한 유수구 전투에 내용이 집중되어 버리는 안습한 상황이 벌어지죠... 실제로는 여몽이 임종 직전에 자기 후임으로 손권에게 추천한것도 주연이었고...뭐 많은 장수들의 연의의 피해자로 언급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삼국 통틀어서 최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17/01/10 20:39
그당시 유비와 손권 세력비가 어느정도였나요? 말씀하신것처럼 당당히 주요 군벌로서 신야 강릉 등에서는 패했지만 강하로 후퇴해서 손권과 연합해 조조의 후방을 위협할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연의에 나오는 것처럼 알거지였지만 제갈량이 포장을 잘해서 동맹을 맺고 어부지리로 형주를 탈취하듯 가져와서 손권과 형주문제로 전쟁까지 갔는지 궁금합니다
17/01/10 21:17
유비가 손권에 비해 세력이 작았던 건 사실입니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적벽 이후 손권을 좌장군보다 높은 거기장군에 추천한 것이죠. 대신 실속은 유비가 죄다 챙긴 느낌입니다만... 여튼 적벽에서의 싸움은 분명 유-손 연합군 대 조조의 대결이었고 이후 주유가 강릉을 탈환하는 데도 유비가 역할을 합니다. 심지어 형남 4군은 모두 유비가 점령했죠. 결코 알거지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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