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개(袁凱)
명태조 주원장의 시기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최소한 문인 관료들에게는 최악의 시기였다. 엽자기(葉子奇)의 『초목자(草木子)』에서 이르기를,
"조정의 관리는 아침에 입조할 때마다 반드시 처자와 작별을 고했다. 저녁에 무사히 집에 돌아오면, 다시 서로 기뻐하며 "오늘 또 간신히 살아났구나!" 하고 기뻐했다."
라고 할 정도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다면 사표를 하고 한가롭게 은거하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엔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실제로 그만두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주원장은 이런 사람들이 조정 일을 도우려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간악하고 복이 없는 소인배들이 고의로 조정을 비방하며, 조정의 관리를 해먹기 어렵다고 함부로 말한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대불경' 죄를 저지른 사람은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판국이었다.
하루는 주원장이 어사 원개를 불러 뜬금없이 죄인을 판결하는 심사서류를 줬다. 그리고 원개에게 말하길 그걸 가지고 황태자에게 가보라는 것이다. 원개로부터 심사서류를 받은 황태자는, 본시 마음이 온화한 편이라 서류를 처리함에 있어 관용을 중점에 두고 처리했다. 원개가 돌아와서 이를 보고하자, 주원장은 뜬금없이 원개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태자가 그리하였던가? 하지만 짐은 이들을 죽이려고 한다. 태자는 반대로 너그롭게 죄를 낮추도록 하자고 한다. 네가 보기에 둘 중에 누가 더 옳은가?"
원개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태자가 잘못했다.' 고 하면 감히 황태자의 너그러운 태도를 지적질했다는 핑계로 죽임을 면하기 어려웠다. 반대로 '황제가 잘못했다.' 고 하면 편하게 죽기는 틀린 셈이었다. 원개로서는 황제가 처음부터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민 끝에 원개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가 죽이고자 하는 것은 법을 지킴이요, 황태자가 사면하고자 하는 것은 자비심입니다.(陛下法之正,東宮心之慈)"
당시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지만, 이미 원개를 죽일 결심을 하고 있던 주원장은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 쓸모없는 것은 양쪽에 다 잘 보이려 드는 교활한 인간이니, 살려두면 안 될 것이다. 죽여야 한다!"
바햐으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살갗이 찍겨 죽게 될 판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원개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실성한 정신병자나 할 법한 이상행동을 하며 날뛴 것이었다.
정신병자의 말 한미디 한마디를 의미 있게 받아들여 죽인다고 해봐야 주원장 본인만 우스워질 뿐이다. 때문에 원개의 해괴망측한 행동을 보고 주원장은 바로 그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정말 미쳤는지는 의문스레 여기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기로 미치광이는 통증을 못 느낀다고 했다. 이 작자가 진짜로 미쳤는지 혹은 시늉하는지 한번 시험해봐야겠다."
그러면서 발광하는 원개를 잡아다가 나무 송곳으로 살갗을 마구 찔렀다. 하지만 원개는 아프다고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다. 주원장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원개를 풀어주었다.
집에 돌아온 원개는 스스로 철사줄을 꼬아 목에 감고서는, 머리는 산발을 한 채 씻지도 않아 때 묻은 얼굴로 오만가지 앞뒤도 안 맞는 미친 소리를 해댔다. 그 소문은 주원장도 들었겠지만, 황제는 아직도 원개를 믿지 못했다. 그래서 한번 시험해볼 요량으로 사자를 파견했다. 원개를 용서하고 벼슬을 줄 테니, 조정에 다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원개는 그 사자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저 먼 달을 노래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울타리 가를 기어다니며 심지어 바닥의 개똥을 주워 입에 집어넣고 먹어대는 것이 아닌가!
기겁한 사자가 돌아가서 이를 보고하자, 아무러한 주원장도 설마 맨정신에 개똥을 주워먹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원개에 대한 신경을 껐다.
하지만 이는 물론 속임수였다. 그리고 원개는 개똥을 먹은것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왔던 원개는 필시 황제가 다시 자신을 부르리라 간파하고는, 사람을 시켜 붉은 국수를 물엿에다 버무린 다음 한 무더기씩 일일히 자기집 울타리 밑 속에 넣어둔 것이었다. 때문에 원개가 먹은건 날짜 좀 지나고 흙이 좀 많이 묻은 '땅에 떨어진 음식' 이었으니, 좀 더럽고 비위생적이긴 해도 개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원개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곽덕성(郭德成)
외척 신분인 곽덕성은 누이가 주원장의 후궁에 봉해져 있던 사람이었다. 하루는 주원장이 곽덕성과 거나하게 술을 마시던 떄였다. 곽덕성은 술이 잔뜩 취하자 흥에 겨워 땅바닥을 흐느적거리다 관을 벗고 주원장에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은혜에 감사하다고 재롱을 부렸다. 자리가 편한 자리였는지 주원장도 그런 곽덕성의 주사를 탓하지 않고 웃고 넘겼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다. 관을 벗고 거듭 인사하는 곽덕성의 머리통을 주원장이 자세히 보니, 탈모가 있던 곽덕성의 머리는 이미 민둥산 가깝게 된지 오래였다. 다만 모조리 벗겨진 건 아닌지, 머리털이 몇가닥 남아있긴 했다.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던 주원장은 그런 곽덕성의 대머리를 가지고 농을 걸었다.
"이런 주정뱅이가 있나. 머리가 이렇게 벗겨지다니.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게 아닌가?"
그러자 곽덕성도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술김에 바로 대꾸를 했다.
"무슨 걱정입니까? 신은 이 몇 오라기의 머리카락도 많아서 싫습니다. 차라리 아예 박박 깎아버리면 편할 것 같더군요."
그런데 곽덕성이 그 말을 한 순간,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주원장은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분위기는 갑자기 썰렁해졌다. 아닌 즉슨, '차라리 머리털을 다 밀어버리겠다' 이런 말은 주원장의 행각승 시절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리가 끝나고 술이 깬 곽덕흥은 자기가 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황제가 이 일로 자신을 죽일 수도 있고, 바로 죽이지 않더라도 나중에 다른 사건을 만들어 죽일때 자신을 묶어 엮어버릴지도 몰랐다. 생각에 여기까지 미치자 곽덕승은 곧바로 움직였는데, 술김에 한 소리마냥 남은 머리털을 모조리 밀어버리고, 바로 중 옷을 입고서 하루 종일 집에서 염불만 외웠던 것이다.
외척이나 되는 곽덕승이 절에 들어가 몸을 바치지도 않았으니, 그 꼴은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하루 아침에 승복을 입고 자기 집에서 계속 목탁 두드리며 염불만 외는' 광경으로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곽덕승은 살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주원장은 이를 진짜로 믿고, 곽덕승의 누이인 자신의 후궁과 만나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 오라버니 말이야. 본래 평소에 이상한 농담을 잘 하는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그게 다 진담이었던 모양이군. 완전히 미쳐버렸어!"
결국 주원장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 탓에 곽덕승은 위기를 넘겼고, 훗날 여러 사건이 발생해서 다른 사람들이 줄줄히 엮여갈때도 '미친 사람이 무슨 흉악한 음모를 꾸미겠나.' 하는 이유로 번번히 연류를 피해갈 수 있었다.
모르긴 모르되, 먼저 죽어간 수 많은 사람들이나 혹은 살아도 언제 죽을지 몰랐던 대다수 많은 문인들은, 차라리 '정신병자' 취급을 받은 이들을 차라리 부러워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