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 출판사라는 곳에서 세계 각국의 역사를 통사류로 묶어서 내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석학이라 한들 동서양 고대중세근대현대의 지엽적인 부분을 달달 꿰고 있는 사람은 없을테니, 당연하게도 이 시리즈는 그때그때의 편마다 저자가 다릅니다. 그리고 그 저자의 경력 역시 천차만별인데, 실제 역사학 교수가 있는가 하면 정치학 교수도 있고, '그냥 한문 배운 사람' 도 있는 등 차이가 심합니다. 당연히 각 편마다 퀄리티가 들쭉 달쭉 한 편입니다.
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유명한 편은 '중국사' 편입니다. 김희영이라는 사람이 쓴 편으로, 1986년부터 초판이 나와 중국사에 관심이 있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으로 중국사에 입문했다는 역사 동호인도 꽤 많아서 모르긴 몰라도 이 책 팔아서 돈도 꽤 만졌을듯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완전히 표절이라는거죠.
중국사 등에 관심 있는 역사 동호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지금은 돌아가신분) '진순신' 이라는 분인데, 이 분은 전문적으로 역사를 전공한 분은 아닙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대만 국적의 작가로 주로 역사 소설이나 역사 관련 수필을 자주 쓰신 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한문, 힌두어, 페르시아 등 외국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역사서 원전을 섭렵하여 이 부분에 대해 전공자들도 인정할 정도의 인물입니다.
특히 이 분은 특유의 필력을 바탕으로 일반 대중을 위한 중국사 저서도 자주 발간했고, 게중에서 신화의 시대로 불리는 3황 5제의 시대로부터 중국 근현대의 전환점인 신해혁명 직후에 이르기까지 5,000여년에 달하는 역사를 저술한 것이 바로 '중국의 역사(中国の歴史)' 입니다. 이 책은 한국에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라는 이야기로 정식 발매가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해 개인적으로 평하자면 정말 대단한 명저로, 개인적으로 봤던 전문 연구서적이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한 중국사 통사류의 책 중에 이에 필적할 책을 본적이 없습니다. 앞서 진순신 씨가 역사소설가라고 말했지만 이 책의 내용 자체는 중국 24사와 각종 원사료를 작가가 직접 섭렵하여 철저하게 사실에 기반하고 있고, 소위 말하는 작가의 '성향' 이라는 측면에서도 크게 편견이나 편협한 시각에 치우친 것이 없이 전체적으로 담담합니다. 전체적으로 중후하면서도 과장되거나 크게 꾸밈 없는 문장도 유려하고, 특히 본래가 소설가로서 고전'문학'에 능숙한 작가의 지식 때문에 보통의 역사책과는 다르게 중간중간 그 시대의 문인들의 행적이나 작품으로 '시대정신' 을 설명할때는, 아름답기까지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국사 관련 책을 추천해주라고 하는 주변인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다만 신화 시대를 다루는 1권 무렵은 약간 내용이 난잡하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뒤로 갈수록 힘이 실리고, 문체도 내용도 어렵지 않지만 중국사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기보다는 여기저기서 조금이라도 얼기설기 아는 상태에서 보면 더욱 좋은 책입니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좀 더 주관을 사실인양 말하는 부분이 거의 없어지고' '보다 더 문학적이고 유려해진' 중국사 버전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책에서도 진순신이 자기 견해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없지만 않지만 통설과 확실하게 구분을 하고, 해석들도 석학들의 연구 성과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물론 이 책이 1980년대 초반에 나왔으니 시대의 흐름에 따른 주류 역사관의 변화와 새로운 해석들은 고려해야겠지만요.
그런데.... 이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의 한 단락을 먼저 보겠습니다.
상앙은 법치주의자로 법률을 특히 중시한데 비하여, 신불해의 학문은 제왕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 했다. 제왕학이란 군주 한 사람만의 학문이어야 할 터인데, 그것을 신하가 배웠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법률지상주의자였던 상앙은 법률을 강조하게 밀어붙이며 엄연한 자세를 취했다는 느낌이 든다. 신불해는 군주를 지나치게 의식하여 언제나 군주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신불해가 언제나 임기응변에 능했던 것은 군주의 의향에 따라서 자신을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중략)
내정, 외교 면에서 모두 실수가 없었으며 전국 시대의 한나라는 신불해를 제외하면 아무런 인상도 남지 않는 나라가 되어 버리니, 이 사람은 역시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신불해는 상앙보다 1년 늦게 세상을 떠났다.
2권, pp. 96
보셨습니까? 그러면 앞서 말한 청아 출판사에서 나온 김희영의 이야기 중국사를 보겠습니다.
상앙이 법치주의자인데 비해 신불해의 학문은 제왕학에 가까웠던 것으로 짐작된다. 제왕학이란 군주가 될 사람이 배워야 하는 것인데 이것을 신하가 배웠다는데 문제가 있다. 법률 지상주의자인 상앙은 법률을 내세워 의연한 자세를 취한 데 비하여 신불해는 지나치게 군주를 의식한 나머지 항시 군주의 눈치를 살피는 태도를 취하였다. 신불해가 임기응변에 능했던것은 아마도 군주의 의향에 따라 자기의 태도를 바꿔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략)
한나라에서 신불해를 빼버리면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보통 인물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신불해는 상앙보다 1년 늦게 세상을 떠났다.
1권, pp. 246
차이점을 알 수 있겠습니까?
문자 그대로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내용을 그대로 복불한 수준으로, 번역하면서 어투가 조금 달라지고 표현이 조금 생략된걸 빼면 그냥 완전히 똑같습니다. 이런 건 계속됩니다.
……과연 자초는 '기화' 임에 틀림 없었다. (생략) 여불위를 높여서 상국으로 삼고 중보라고 불렀다. 춘추 시대의 첫 번째 패자 제의 환공이 관중을 중보라고 부른 고사를 본받은 것으로 본래의 뜻은 아버지의 동생, 즉 숙부라는 뜻인데 여불위의 경우 '아버지와 같은 사람' 의 개념을 더 강하게 풍긴다. 여불위는 소중한 기화를 잃기는 했으나 기화의 아들이 엄연히 왕위를 이었고 왕위에 오른 그는 사실 자신의 아들이었으며 게다가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진나라에서는 여불위의 권세를 따를 자가 없었다.
1권 pp. 317
진순신의 책에도 똑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역시 "기화." 진귀한 물건이었다. (생략) 여불위는 소중한 기화를 잃었지만, 기화의 아들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사실은 자신의 아들이며 나이도 어렸기 때문에 다루기 쉬웠을 것이다. 그는 상국이라는 존칭으로 불렸다. 이는 평범한 승상보다 한 단계 위라 여겨지던 칭호였다. 그리고 그는 중부라고도 불렸다. 춘추 시대에 제나라의 환공이 관중을 중부라 불렀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의 뜻은 아버지의 동생, 즉 숙부를 말하는데 '아버지와 같은 사람' 이라는 늬앙스를 가지고 있다. 이제 여불위는 진나라에서는 그의 권세를 따를 자가 없는 인물이 되었다.
2권, pp.183
이 정도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노구천이 성을 내어 형가를 꾸짖자 형가는 묵묵히 그곳을 떠나버렸다. 형가의 생각으로는 그들과 다투어 봐야 아무런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연나라에 온 형가는 개백장과 축을 잘 타는 고점리와 사귀었다. 개백장이란 말할 것도 없이 개를 잡는 백장으로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형가는 의기가 상합하면 상대방의 신분 따위는 문제삼지 않는 인물이었다. 축이란 거문고와 비슷한 현악기의 일종으로 대나무로 그 줄을 타는 악기였다. 축의 명인 고점리가 축을 타면 형가는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감격하면 곁에 사람이 있든 없든 호탕하게 놀았다. 그러나 형가는 여느 주객들과는 달랐다. 글읽기를 좋아하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던 그곳 호걸들과도 교유하였다.
1권 pp. 332
노구천이 험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자 형가는 말없이 그 자리에서 떠나 버리고 말았다. 도망친 것이다. 검의 사용법이나 도박의 규칙 따위는 형가에게는 다툴 만한 가치도 없었다. 연나라로 들어간 그는 구도, 그리고 축을 연구하는 고점리 특히 이 두 사람과 마음이 맞아 날마다 연나라 수도의 시장에서 술을 마셨다. 구도란 개고기를 파는 사람을 말한다. 사회적으로는 그다지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이었지만, 형가는 마음이 맞으면 상대방의 지위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축이란 거문고와 비슷한 현악기인데 대나무로 줄을 뜯었다고 한다. 그 축을 잘 타는 고점리가 축을 뜯고 형가는 거기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다. 흥이 오르면 줄줄 눈물을 흘리며 방약무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형가는 단순한 술꾼이 아니었다. 독서를 즐기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pp.224
계속 이런 식이라 열거하는게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저게, 책에서 '표절이 된 부분' 만 따로 잡아낸게 아니라, 그냥 아무 단락이나 펴놓고 대충 골라서 읽은 부분 전부인 수준입니다. 표절도 그냥 표절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는 수준... 그래놓고 마지막에 참고문헌엔 중국 24사와 자치통감을 적어놓았는데, 아는 분은 아시다시피 저 저서들은 정말 상당한 수준의 내공을 가지지 않는 이상 평생 읽기도 벅차는게 사실입니다. 진순신 씨가 그걸 탐독하고 책을 쓰니 그걸 베끼고 본인이 그 저서들을 참조한 것처럼 한게 참...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이렇게 진순신의 책을 표절한 저자는 '이야기 일본사' 역시 지었습니다. 보통 아무리 내공이 깊은 사람이라고 해도 중국사와 일본사의 고대중세근대 모두를 다루는 식견은 가지기 힘들텐데... 다만 웃기게도 일본사를 다루면서는 진순신 수준의 내공을 가진 사람의 책을 베끼지 못했는지, 훌륭한 가독성에 더불어 깊은 내용을 지닌 중국사에 비해 일본사는 가독성이 좋지 않습니다. 한번 슥 살펴보면 금방 이해가 될듯...
개인적으로 이 일을 알고 부터는, 굳이 역사쪽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과거 80년대 ~ 90년대에 이런저런 '전문가' 행세를 하고 책을 쓰거나 해서 돈 좀 번 사람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표절을 했을까 싶더군요.
덧.
워낙 진순신의 글이 여러모로 모티브를 주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그 외에도 표절하는 사람 들이 있는데, 게중에서 유명한 무협 소설 작가인 '용대운' 도 있습니다. 용대운이 '독보건곤' 이라는 소설 책을 내면서 진순신의 '중국의협전'의 한 부분을 그대로 베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다시 재판하면서는 수정했다고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