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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1/08 23:08:48
Name 유유히
Subject [일반] 간략한 영화 소개-무현, 두 도시 이야기

최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으며,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절이었고, 불신의 시절이었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으며,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으며,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제가 그러하리라고 기대했던 것처럼, 노무현의 일생, 혹은 노무현의 정치역정, 혹은 노무현의 대통령 시절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주된 시대적 배경은, 2000년의 부산, 서울 종로의 초선 국회의원 노무현이, 지역주의를 깨겠다며 겁도 없이,(정말, 겁도 없이!) 민주당 간판을 달고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에게 도전했었던 바로 그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16년 전의 노무현은, 여지없이 순둥이 같습니다. 트럭 위에서 노래도 부르다 망신을 당하고(부산 갈매기 가사와 음정을 잘 몰랐습니다.), 부산 갈매기 가사를 잘 모르겠으니 선거사무소 직원들에게 "배아 달라(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꼬맹이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 주느라 보좌관에게 타박을 듣기도 하고, 아들딸(노건호, 노정연씨)과 고기를 구워 먹다가 보좌관 등쌀에 중간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란 것은 이 영상자료들이었습니다. 2000년 당시의 것이라 화질이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시시콜콜한 아파트 유세나 동네 다방 유세, 그리고 사무실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모습, 연설 원고를 다듬는 모습, 그리고 차 안에서의 짤막짤막한 인터뷰 등등. 다채롭고 인간미가 넘칩니다. 이 영상을 찍은 이가 누구일지 모르지만, 후대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남겨 준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는 또 한명의 무현이 등장합니다. 고 백무현 화백. "만화 노무현"을 그리기도 했던 시사만화가셨습니다. 노무현이 그리우면 백무현을 찍어 달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하던 2016년의 여수. 이 영화의 두 도시는 바로 2000년의 부산과 2016년의 여수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바보 노무현을 추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작가, 사진사, 시인, 팟캐스트 라디오 진행자, 아티스트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출연합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만의 방식대로 노무현을 추억합니다.

 제가 감명 깊게 본 소설인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 케이건 드라카라는 아저씨, 한 번 만나보고 싶어. 모든 사람들이 그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언제나 그 사람들이 평소에 보여주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야기한단 니름이야.] [다른 모습?] [그 점잖은 괄하이드는 케이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젊은 망나니가 된 것처럼 기운차게 이야기하지.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르는 라수는 케이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잘 모르겠다는 투로 이 야기하고. 그 정도만 해도 놀랍지만, 우수에 젖은 눈으로 이야기하던 티나한의 모습은 비늘이 빠질 정도로 충격적이었어.] 

 마치 저는 케이건을 추억하는 사람들을 보는 그리미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때로는 흥분해서 기운차게, 때로는 시무룩하게, 그리고 마지막은,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에 눈시울을 붉힙니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지만, 도저히 눈물을 주체하질 못합니다. 그것은 제게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도 노무현은 아린 것이었을까요. 저 역시 노빠라고 자청 할 만한 사람이지만, 그들이 노무현을 추억하는 방식은, 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네요. 충격적이었습니다.

 간략한 영화 소개이니만큼, 스포(?)가 될 수 있는 내용은 길게 적지 않았습니다. 2000년, 지역감정에 도전하던 고인의 모습을 추억함과 동시에, 오늘날 그분을 그리는 이들이 살아가는 삶까지. 소소하며, 여운이 남는 영화였으며, 한번쯤 추천하고 싶습니다. 개봉관이 너무 적어 아쉽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의 전기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보고 싶네요. 청문회 스타 시절, 국회의원 시절, 장관 시절, 대통령 후보 시절, 대통령 시절, 그리고 퇴임 이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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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relius
16/11/08 23:18
수정 아이콘
상식과 도덕, 그리고 최소한의 양심마저 모두 사라진 이명박근혜 치하의 대한민국에 있어 정말 중요한 영화라고 봅니다. 여러 결함이 있었더라도 적어도 상식과 양심 정도는 기대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계속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화두가 비정상화의 정상화라고 하죠. 맞는 말입니다. 지난 10년 간의 비정상 (후안무치, 비양심, 타락, 부패, 아니... 노골적인 사악함) 을 정상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는 걸 우리, 그리고 우리 후배 세대들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유히
16/11/08 23:39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영화 속에서 노무현을 추억하던 한분이 "노무현 정신은 바로 상식이 통하는 세상" 이라고 합니다. 배가 바다에 가라앉아도 학생들이 다 죽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대통령이 무당 말을 듣고 국가를 운영하면 안 되죠. 그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2000년 부산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연설을 합니다. (기억에 의지한 것이라 구체적 워딩은 불확실합니다.)

"저 노무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출세했습니다! 국회의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평범했다가 출세한 사람들을 보면은, 버립니다. 과거의 모습을 버립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합니다! 자기 옛날 모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어떻게 더 성공할지만 궁리합니다!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여러분, 저를 도와 주십시오!! 절대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영화 속에서, 나아가 고인의 모든 말 중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말이었습니다.
16/11/08 23:24
수정 아이콘
토요일날 서울극장에서 볼려고요. 집회 위치랑도 가깝고. 자백을 한 번 더 보면 보지 이다큐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봐야겠지요ㅜㅜ
16/11/08 23:29
수정 아이콘
간만에 영화한편 봐야겠네요....
...And justice
16/11/08 23:30
수정 아이콘
이 영화가 개봉 첫 주에는 지역 아트홀 한곳에서 하루 한번 개봉했는데
오늘 검색해보니 메가박스,롯데시네마까지도 관을 잡았더군요.요즘 분위기면 더 늘어날 것 같은데 조만간 보러 가야겠습니다.
호풍자
16/11/08 23:44
수정 아이콘
부기영화로 이거 보고싶네요. 오늘만화의 마지막도 멋있었는데.
<이제 영화를 완성해야할때입니다.>
16/11/08 23:50
수정 아이콘
부모님따라온 아이들 옆에서 훌쩍훌쩍 울면서 봤습니다만 창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쪽 아버님도 훌쩍훌쩍 울고 계셨거든요.
엡실론델타
16/11/09 00:02
수정 아이콘
저도 오늘봤는데 먹먹하더군요
제가 자식이있었다면 같이보고 싶은영화 였습니다
누네띠네
16/11/09 00:04
수정 아이콘
보고온 지인 두 분이 연출이 정말 별로였다고..
16/11/09 00:05
수정 아이콘
저희집근처는 다 안걸렸네요...
미사쯔모
16/11/09 00:06
수정 아이콘
그래도 가족인 돈 받은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원론주의 이상주의에 빠져 검경 칼자루를 홀라당 넘겨주고 그 칼에 당하게 된 것이지요.

원론주의와 이상주의에 말로는 좋지 않은거 아닐까요? 이런 썩은 세상에서 말입니다.
Notorious
16/11/09 10:12
수정 아이콘
근데 가족이 돈 받은건 정상참작해야해요
나라 신경쓰기도 바쁜데 가족 친구 지인 까지 어떻게 신경쓰나요
그런건 아래서 다 케어해줘야지
홈런볼
16/11/09 00:09
수정 아이콘
저는 그제 동수원 CGV에서 보고 왔습니다. 예매를 했는데 그당시 세자리 남아있더군요. 휴일이긴 했지만 좌석점유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흥행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혼자보러 갔었는데 제 옆자리도 혼자 보러 온 아가씨였어요. 혼자보러온 젊은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 보는내내 눈물이 흐르더군요. 근데 그 옆자리 아가씨는 계속 우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 노대통령 장례행렬이 나올 즈음엔 살짝 흐느끼기까지 하더라고요.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의 조명이 들어와 무의식중에 옆자리를 봤는데 눈이 마주쳤네요. 그리고 서로 살짝 미소지었습니다.
뭔가 공감대가 있는 영화같아요. 노대통령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쥴레이
16/11/09 00:50
수정 아이콘
아래 다른글때문이 하도 열받아서 구로역까지 달려가서 보고 왔습니다.

제가 극장 입장할때 놀란것이 관객들이 중장년층 및 나이 많은분들이었고 영화가 다 끝나고 스탭롤이 올라가도 나가는분들이 많지 않다는것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정말 울림이 있는 연설이었습니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 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 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을 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서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 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미니가 제가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 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 역사가 이뤄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16/11/09 00:52
수정 아이콘
눈물펑펑했네요 후....
풋사과
16/11/09 05:00
수정 아이콘
소개 감사드립니다. 늦기전에 토요일에 보러가려합니다
빙다리핫바지
16/11/09 09:59
수정 아이콘
영화보는 내내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져서 그런거라고 절대로 내용때문에 눈물이 나는 건 아니라고 되뇌였습니다.
울리히케슬러
16/11/09 17:31
수정 아이콘
오늘 이글을 읽고 친구랑 건대에서 보고왔는데 감명깊게 보고왔습니다 눈물참느라 힘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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