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 Project 내한 공연 티켓값은 8만 8천원이었는데, 한 달의 문화생활에 쓰기에는 너무나 안성맞춤이었다. 내 지갑 사정만 아니었다면. 예매를 할 때에도 돈이 없었고 그걸 보러 갈 때에도 돈이 없었다. 나는 그저 이걸 보겠다고 모인 친구들 얼굴을 보고 싶어서 눈 딱 감고 마우스 버튼을 내리질렀다.
옷을 좀 맞췄다. 그래도 오랜만에 사람을 보면 인상을 남겨야겠다 싶었다. 살 좀 빠졌다고 옷을 바짝 죄고 가죽 스니커를 짰는데 스탠딩 콘서트였다. 나는 페이스를 조절한 게 아니라 뛸 수 없었다. 5년만에 다시 듣는 열정 넘치는 목소리는 알 수 없는 노래를 미친듯이 쏴 제꼈다. 뭘 듣긴 했는데 그게 뭐였더라. 기억나는 건 나를 거칠게 밀치고 들어오는 내 옆의 덩치 큰 관객과 완전히 폼을 회복한 후쿠야마의 노익장 정도. 어차피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릎이 부러질 듯한 3시간이 아니라 마침내 수다를 떨 수 있게 된 콘서트 전후의 시간이었으니까.
친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잘난 녀석은 잘난 대로 못난 녀석은 못난 대로 제 살길은 서울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서울에 남아서 발악하는 나는 부모님에게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고는 피씨방에서 조용히 시간을 죽인다. 이런 아들을 둔 부모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스치면 온몸에 힘이 빠지지만 비참하게도 손가락은 키보드와 마우스 위에서 팔팔했다. MMORPG라는 놈이 강요하는 책임감은 다른 곳에서의 그것과 딱히 다르지 않더라.
그렇게 죽어가던 입이 마침내 친구'들'을 만나 시동을 걸었다. 나는 그 녀석들 앞에서 깨알같은 위트와 허를 찌르는 감각을 가진 토커였다. 그렇게 수많은 면접관들에게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어디서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디서도 부르지 않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나는 노래를 곧잘 하지만, 나의 레퍼토리는 시장성이 치명적으로 부족하여 쉬이 쓸 수 없었다. 오직 이 집단만이 나의 해방이고 구원이었다. 여기서의 내가 진짜인지 일상의 내가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둘 중에 무엇이 행복한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추가로 하루를 더 놀고 나서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 변한 것을 느꼈지만, 그들은 나에게 한결같다는 평가를 내렸다. 수 년을 못봤지만 그들에게 난 여전히 유쾌하고, 우리가 정말로 잘 놀았던 학창시절 언저리를 떠오르게 하는 존재였다. 그때처럼 노래하고, 그때처럼 옷을 입고, 그때처럼 떠들었다. 많은 게 바뀌었음에도 나는 그들에게 우리가 만났던 고3시절의 향기를 뿜어내었다. 그들은 시간을 한걸음씩 짚어갔고,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들에게 하나의 지점이 된 것은 대단히 기쁜 일이지만 나아갈 수 없는 나는 살그머니 서글퍼졌다. 멈춘 삶을 풀어 다시 태엽을 감기에는 너무 짧은 만남이었다. 다시 억지로 기관을 돌려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답해줄 옆구리가 허전해지고 난 뒤, 사무치게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너희들 머리 속에는 내가 남아있을까.
참새조차 그리운 허수아비. 나는 다시 그리우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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